99화
오랜만에 샛별반 사총사 친구들이 모였다. 오늘 모인 가장 큰 이유는 영화 ‘목소리’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사총사들이 문을 열고 들어선 날 보자마자 우르르 달려온다.
“서준아! 상 탄 거 축하해!”
“···축하해. 어서 와.”
“나도 축하해. 세상에 베를린국제영화제라니. 삼촌이 엄청 기뻐했어. 나도 삼촌이랑 이번 영화가 상 탄 영상 같이 봤었어.”
아마 애들의 눈에는 내가 정말 멋져 보였을 터였다. 다른 곳도 아닌 베를린까지 가서 외국인 기자들 앞에서 능숙한 영어로 인터뷰까지 했었으니까.
저 초롱초롱한 눈빛들을 보아하니. 나를 향한 존경심이 한 층 더 깊어진 거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하지우나 최지환은 영화제에 대해 잘 모르는 듯했지만. 배우가 꿈이었던 김도윤은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다른 두 친구들보다 흥분의 정도가 배 이상 컸다. 심지어 서도현과 같이 시상식 영상까지 봤다고 했으니. 저렇게 방방 뛰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들 방학 잘 보내고 있었어?”
“응!”
“···응.”
“촬영 때문에 바쁘게 보내고 있었어.”
때마침 초등학교도 방학 기간이었다. 최근 내가 베를린에 다녀오고. 또 김도윤 역시 일일 드라마 촬영에 바빴던지라 다 같이 모일 기회가 없었던 사총사들이었다.
“비행기 타보니까 어땠어?”
“···외국 나가니까 무섭지 않아?”
해외에 나간 내가 부러웠는지. 최지환과 하지우가 비행기를 탄 소감과 해외에 나감 기분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나중에 너네도 열심히 하다 보면. 나처럼 해외에 나갈 일이 있을 거야. 그러니 내가 말했던 것처럼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애들에게 영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였다. 안 그래도 아이돌이 꿈인 하지우와 아역 배우로 데뷔한 김도윤에게는 특히나 더 열심히 하라고 했었다.
최지환 역시 감독님이 꿈이라면 영어를 잘해야 된다고 강조했었고.
애들이 꿈에 성큼 다가간다면 해외 진출이 멀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어린 지금부터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았다.
“···응. 지환이랑 학원 다녔었어.”
“맞아! 나 지우랑 시간 날 때마다 학원 갔었어!”
최지환이나 하지우는 학원을 다닌 모양. 김도윤은 서도현이 따로 선생님을 붙였다고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를 반긴 친구들이다. 비행기를 탄 소감이 어떠냐고 묻는 애들에게 어찌 선물을 준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덕분에 돌아오는 길에 사총사들에게 줄 선물도 사서 온 나였다.
“너네들 주려고 산 선물은 차에 있는데. 조금 있다가 집에 데려다주면서 줄게.”
“와! 선물!”
“고마워.”
“···고마워.”
내 시선이 멈춘 건 바로 하지우에게서였다. 안 그래도 오늘 모인 이유 중 하나가 하지우에게 있었으니까.
내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다녀오는 사이. 하지우에게도 정말 기쁜 일이 생겼다.
“연습생이 되었다고? 정말 축하해 지우야.”
“···고마워 서준아.”
하지우가 국내 4대 기획사라 불리는 곳 중 한 곳에 연습생이 되었다. 그것도 저쪽에서 먼저 하지우의 재능을 알아보고 캐스팅 제의를 한 것이다.
안 그래도 애들에게 종종 듣긴 했었다. 하지우가 정말 이 악물고 열심히 한다고.
그 결과 4대 기획사 중에서도 다른 곳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또 실력만 있다면 빠른 데뷔를 할 수 있는 곳에 캐스팅된 것이다.
“···다 서준이 네가 도와줘서 잘 풀린 거 같아.”
하지우가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날 보며 말했다. 당근을 줬으니 다음은 채찍질을 할 차례.
“대신 지금 그 마음가짐을 잊으면 안 돼. 생각보다 연습생으로 지내는 기간이 엄청 힘들 거야.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엄격하게 연습해야 할 테고. 또 내부에서 다른 연습생들과 끊임없는 경쟁도 해야 될 거야. 그러니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해. 알았지?”
“···응.”
시선이 묘하다. 마치 내가 박우형을 바라볼 때와 같은 눈빛이라면 착각일까.
에이, 아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사총사 중 한 명인 하지우의 일이기에 나도 모르게 흥분한 모양. 흠흠 하면서 헛기침을 한 나는 이번에는 김도윤을 바라보았다.
베를린에 있는 동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열심히 국제전화로 떠들었던 김도윤이었으니까.
“도윤이도 사인 요청하는 팬들이 생겼다면서. 축하해.”
“고마워. 나한테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 서준이 너처럼 어딜 가고 있는데 팬이라면서 사인 요청을 받은 거야.”
김도윤은 마치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지 몽롱한 눈으로 말했다.
어찌 기쁘지 않을까. 처음 자신을 보고선 팬이라면서 사인을 요청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아마 밤에 설레서 잠도 안 왔을 거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윤이 드라마도 요즘 엄청 잘나가! 나도 엄마랑 같이 매일 저녁마다 도윤이 드라마 챙겨보고 있어.”
“···나도. 엄마가 도윤이 사인도 받고 싶대.”
사총사들의 방방 뛰는 그 말에.
“에이. 너네 나 부끄럽게 왜 그래.”
김도윤이 좋아하면서도 몸을 배배 꼰다. 눈앞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 모양.
그러다 문득 자랑하고 싶었던 일이 떠올랐는지. 흥분한 얼굴로 떠들기 시작했다.
“아, 맞다. 서준아 나도 최근에 엄마랑 시장 갔다가 경험했어. 그거 있잖아 그거!”
“나한테 말했던 거?”
“응. 막 나를 알아보시더니. 이건 다른 사람들 몰래 주는 거라면서 막 이것저것 챙겨주셨어. 엄마도 엄청 좋아했어.”
김도윤이 흥분한 얼굴로 다다다 말을 잇기 시작했다. 금동이 시장 썰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도윤이기에 자신이 경험한 일들이 신기했던 모양.
거기에 김도윤의 어머니도 시장 아주머니들이 아들을 위해 주는 거라는 덤에 정말 기뻐하셨다고 했다.
“이제 앞으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거야. 누군가가 사인 요청하면 절대 거부하면 안 돼. 알았지?”
“응.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이상. 다가온 팬들에게 팬 서비스를 잊지 말라는 거. 나 기억하고 있어.”
“그래. 도윤이 너에겐 그저 지나가다 만나는 팬 한 명일 수도 있지만. 그 팬에게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배우를 만나는 거거든. 거기서 도윤이 네가 차갑게 거절을 해버리면. 지금까지 널 향했던 그분의 팬심도 싸늘하게 식을 수 있어. 그러니 언제나 자동 반사처럼 팬이 요청하면 자동으로 팬서비스가 나와야 돼. 이건 지우 너도 항상 명심해야 돼. 알았지?”
또 느껴진다.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지우의 시선이. 저건 분명 끊임없는 말을 내뱉는 박우형을 볼 때의 내 눈빛이었다.
심지어 입을 멍하니 벌리고 나를 바라보는 김도윤과 최지환의 눈빛 역시 비슷해 보인다면 착각일까.
“···응.”
좋은 일이 생긴 하지우와 김도윤을 축하한 뒤. 내 시선은 최지환을 향했다.
사실 걱정이 조금 되긴 했다. 나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연예인이 되었기에 익숙해졌겠지만. 다른 사총사인 김도윤과 하지우 역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상태.
김도윤은 아역 배우로 데뷔를. 그리고 하지우는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러면 최지환은?
꿈이 감독님이라고 했지만. 아직 9살인 최지환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직 먼 미래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일뿐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대박! 너무 좋아! 너희들이 다 잘 되어서 나 너무 기뻐!”
내 우려가 괜한 걱정이었다는 듯 최지환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활짝 웃었다. 정말로 친구들이 모두 잘 되어서 행복하다는 듯이.
“서준이야 이미 스타가 되었고. 도윤이도 배우가 되고. 지우도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연습생이 되었잖아!”
무슨 말이 이어질까 기다리던 나는.
“나중에 너네 내가 감독님이 되면. 부르면 무조건 나와 줘야 돼. 약속!”
이어지는 최지환의 당찬 말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서준이 너 왜 웃어? 안 나와 줄 거야?”
“아니야. 지환이가 부르면 무조건 나가야지. 그런데 어떤 감독님이 될지 결정했어?”
“아니! 서준이가 나왔던 소소한 하루나 잘 먹는 친구들 보니까. 예능 프로그램 감독님도 좋은 거 같은데. 또 서준이가 영화감독님이랑 해외에서 상도 받고. 도윤이도 드라마를 찍는 거 보니까 드라마나 영화 감독님도 좋을 거 같아!”
아직 9살인 최지환에겐 어려운 선택지인 모양. 어차피 차차 성장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그때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으면 될 터였다.
어떤 감독이 되더라도 최지환이 부르면 언제든지 출연해줄 수 있는 나였다. 그것이 어떤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그래. 나중에 어떤 감독님이 되던 간에. 네가 부르면 무조건 나가줄게.”
“고마워!”
이후는 여느 9살처럼 웃고 떠드는 시간이었다.
*
처음 차서준이 단독 주연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업계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은 건 단연코 영화의 성공 여부였다.
아직 이름값이 없는 영화감독 주우정과 아역 배우 단독 주연. 이 말은 차서준의 이름만으로 관객들을 극장 앞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영화 크랭크인 당시. 소식을 접한 관계자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의견들이 압도적이었다.
“이번에도 성공하면 차서준도 아역 배우라는 나이 상관없이 그냥 탑급 아니야?”
“성공하면 S급에 올라서는 거지. 성공할 수만 있다면. 근데 되겠냐고.”
“하긴. 그렇지? 당장 티켓 파워 있는 S급 배우들에, 증명된 감독을 데리고도 죽 쓰는 영화가 한둘이 아닌데.”
“내가 봤을 땐. 서도현 대표가 연달아 큰 성공을 경험하더니 너무 도취된 거 아닌가 싶어. 주우정 감독 영화 보면 상업성이 많이 부족하던데.”
아역 배우 차서준은 데뷔 이후 단 한 번의 실패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 성공 가도에 시기 질투와 삐딱한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차서준이 그간 성공에 취해 너무 무리한 도전을 하는 거다. 이번에 거하게 실패하면 이 업계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아역 배우 차서준의 첫 실패를 바라는 이들의 기대 속에서. 영화 ‘목소리’의 개봉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말 메인 시간대 표는 다 매진이라고?”
“네. 심지어 맨 앞자리까지 다 찼대요.”
아직 주우정 감독과 찍은 ‘소소한 하루’의 방송도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랬는데.
조금 과장해서 서울에 있는 극장가에서는 ‘목소리’의 주말 표를 구할 수가 없어 아우성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베를린영화제랑 2차 예고편이 사람들의 기대감을 제대로 살렸나 봐요.”
“그렇지. 아무래도 귀요미 버스커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유행이었다지만. 부모님 세대들에게는 서준이 네 팬이 아닌 이상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가족들끼리 보기 좋은 영화. 2차 예고편이 보여준 ‘목소리’의 내용은 가족 관객들을 영화관 앞으로 데려오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촉박한 일정에 동시에 진행한 VIP 시사회와 언론 시사회 반응이 끝내줬다.
[가슴을 울리는 노래에서 오는 감동.]
-김은철(★★★★)
[차가워진 우리 사회 속 따스함을 더해주는 음악 동화.]
-허웅철(★★★☆)
[예술과 상업, 그 경계를 넘나들게 만드는 차서준의 연기.]
-주지아(★★★★)
평론가들의 평이 공개됨과 동시에, ‘목소리’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 본 사람들마다 차서준의 연기력에 대해서 극찬을 하네. 지금까지와 궤를 달리한 원맨쇼 수준의 연기를 보여줬다면서.
└ 나 VIP 때 다녀왔는데. 이 영화는 무조건 영화관에서 웅장한 사운드로 들어야 함. 진짜 농담 안 치고 노래 나올 때에는 콘서트에 온 기분까지 듦.
└ 일단 스토리에 대해선 베를린이 선택했으니 문제없을 테고. 가족끼리 보기 좋은 영화라는 말이 많은 듯?
└ ㅇㅇ 기자들도 다 그 이야기하더라. 연인이나 가족끼리 보기 좋은 영화라고. 그러면 성적 진짜 기대 해볼 만하겠던데.
└ 지금 서울에서는 개봉하는 주말 이틀 동안의 표를 구할 수가 없음. ㅋㅋㅋㅋㅋ 우리 동네는 이른 아침에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죄다 매진되어버림. ㄷㄷ
└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소소한 하루’ 나오지 않아요? 주우정 감독이랑 차서준이 영화 준비부터 촬영까지의 썰들 푼다던데.
내일 있을 ‘목소리’의 개봉을 앞둔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주우정 감독과 차서준이 출연한 ‘소소한 하루’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차서준의 팬클럽을 넘어 각종 커뮤니티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저도 지금 ‘소하’만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