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98화 (98/220)

98화

영화 ‘목소리’의 개봉까지 며칠 안 남은 상태였다. 즉, 돌아오는 주말이 지나고 다음 토요일이 되면 스크린에 영화가 걸릴 예정이었다.

“그러면 개봉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네? 지금 광고도 계속 나오고 있던데.”

“네. 사실 은곰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홍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홍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요.”

괜히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홍보비에만 수십억씩 쏟아붓는 게 아니다. 그만큼 최근 들어서 홍보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

그건 개봉을 앞둔 차서준 단독 주연 영화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오르는 관심의 불길을 더 활활 타오르게 만들기 위해. 더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이미 서도현이 잡아준 인터뷰들도 차례차례 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김우승을 찾아온 건.

“그래서 형.”

“응?”

“소하 피디님께 출연하면 개봉 전날 방송이 가능한지 좀 물어봐 주세요.”

김우승이 출연 중인 ‘소소한 하루’에 출연을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개봉 하루 전날인 금요일 밤을 노린 것.

“정말?”

김우승이 의외라는 듯 되묻는다. 안 그래도 지금 나를 향한 각종 예능 프로의 러브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김우승이었으니까.

기왕 출연하는 예능이니 김우승에게 도움도 되고, 나도 편안하게 찍을 수 있는 ‘소소한 하루’가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 인터뷰들이야 삼촌이 잡아줬고. 무엇보다 다른 프로들보다는 형과 함께하는 게 편하거든요. 그리고 이번에는 주우정 감독님도 같이 나올 거예요.”

단순히 영화와 관련된 토크는 인터뷰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만들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말로만 ‘촬영 준비 때는 이랬습니다.’ ‘촬영 중에 이런 웃긴 일도 있었어요.’ 이런 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부족할 테니까.

그래서 준비했다.

“주우정 감독이 목소리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작업실을 공개하겠다고?”

“네. 그런데 크게 기대하면 안 돼요. 정말 열악하거든요. 오히려 PD님은 좋아할 수도 있겠네요.”

아직 내가 말한 열악한 환경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질 않는지. 김우승은 ‘예술은 원래 배고픔에서 나오는 법이지.’ 하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중소돌의 기적이라 불리는 유니온의 리더 김우승이다. 처음 데뷔 직전에는 밥 먹을 돈도 없어서 김밥 한 줄로 멤버들끼리 나눠 먹은 적도 있었다고 하니.

“아, 그리고 주말에 바로 편성만 가능하면. 특별히 촬영하면서 귀요미 버스커로 버스킹도 가능하다고 말해주세요.”

“그러면 무조건이지. 지금 바로 피디님과 연락하마.”

‘소소한 하루’의 메인 PD인 이주연으로선 도저히 물지 않을 수 없는 미끼였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무엇이던가.

바로 ‘목소리’의 1차 예고편으로 공개된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였다.

정말 차서준이 노래까지 잘한다고?

이런 뜨거운 반응이 예고편을 공개함과 동시에 강타해버렸다. 그런 버스킹 관련 썰을 넘어, 그것도 주우정 감독과 함께 버스킹을 해주겠다니.

이건 당장 찍어놓은 분량도 다음 주로 미뤄두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미끼였다.

한 3분 정도 통화했을까.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고 김우승이 전화를 끊었다.

“서준아. 당장이라도 촬영하자는데?”

그렇게 영화 홍보를 위한 주우정 감독과 나의 첫 예능이 잡혔다.

*

급하게 진행된 촬영이었다. 그렇기에 주우정 감독의 작업실이 어딘가에 있다는 말만 들었지. 처음 가보는 촬영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런 촬영 스태프들을 보면서. 김우승이 주우정 감독에게 물었다. 지금 스태프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 어디까지 올라가야 되나요?”

“음. 지금까지 왔던 만큼만 더 가면 됩니다.”

“아이고. 아까 서준이가 차 타고 올라가자고 할 때 받아들일걸.”

저기 언덕 위에 시나리오를 완성한 작업실이 있다는 말에. 맨 아래서부터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온 우리였다.

언덕을 오르는 과정에서 소소한 토크를 곁들이면 좋겠다고 이주연 PD가 제안했으니까.

그런데.

이놈의 언덕이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었다. 마치 미로처럼 한없이 꾸불꾸불 올라갈 뿐.

“허억. 허억.”

무거운 카메라까지 든 카메라 감독님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지기 시작할 무렵.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주우정 감독의 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의 표정에 경악이 터졌다.

“헐. 여기에요?”

“네. 여기가 저와 서준이의 영화. 목소리의 시나리오가 완성된 공간입니다.”

다 낡은 빌라. 그중에서도 작은 창문만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반지하 좁은 방.

아마 김우승이 데뷔 전에 멤버들과 지내던 방조차도 이곳에 비하면 호텔 수준이었을 거다.

“헐.”

나와 주우정 감독을 따라 작업실에 발을 들인 김우승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것은 뒤따라오던 촬영팀 역시 마찬가지.

카메라가 바쁘게 움직이며 방 내부를 찍는다. 그렇게 방 전체를 화면에 담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초도 채 안 걸렸다.

“여, 여기가 베를린에서 은곰상까지 받은 영화 시나리오가 탄생한 곳이라고요?”

햇빛이 거의 들어오질 않는 반지하. 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뿐.

그것도 벽지 군데군데 곰팡이가 핀 모습은. 한눈에 봐도 이곳이 월세가 참 저렴한 방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만들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홍보용 메이킹이 아니라, 실제 이곳에서 주우정 감독이 작업을 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버, 벌레다!”

중소돌의 기적이라 불리는 김우승이 벌레 하나에 놀랄 리는 없다. 과거 벌레 나오는 숙소에서도 살았다고 했었으니까.

비명소리는 촬영을 위해 뒤따라온 막내 스태프의 입에서 터진 것이었다.

“아. 자리를 오래 비워서 또 들어왔나 보네요. 제가 잡으면 됩니다.”

탁. 카메라맨이 후다닥 도망치는 벌레는 담기 전. 주우정 감독이 재빨리 책을 하나 집어 들고선 내려친다. 그 자연스러운 행동에 촬영팀의 입이 멍하니 벌어진다.

베를린국제영화제. 그곳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이라는 명예를 수상한 작품이 탄생한 곳이라기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

“누추하긴 하지만. 여기가 제가 젊은 시절부터 몇 년 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그 뒤로는 작업실로 쓰고 있지만요. 이제는 여기서 살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실 오늘 촬영이 있기 전. ‘소소한 하루’에서 작업실을 공개하겠다는 주우정 감독의 말에 내가 되물은 적이 있었다.

“감독님. 여기 진짜 공개하려고요? TV에 나가는 순간 모든 사람이 다 볼 텐데요?”

“알지. 만약에 베를린에 가지 못했더라면. 이곳이 부끄러워서라도 공개할 생각을 못 했겠지.”

확실히 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보이는 반지하 창문을 바라보는 주우정 감독과. 베를린에서 창밖을 보던 주우정 감독은 분명 같은 사람인데.

어느 순간 알을 깨고 나온 사람처럼 달라져 있었다. 주우정 감독이 잠시 곰팡이가 덕지덕지 핀 벽지에서 내게로 시선을 옮긴다.

“어차피 이제 여기를 떠날 건데. 떠나기 전에 서준이 너와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풀어주고 싶어서. 우리 영화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겸.”

“사람들에게요?”

“그래. 사실 20년 가까이 사용하던 작업실이라. 이번 작품이 끝나고 돈이 들어오면 벽지를 새로 바르려고 했는데. 우리 서준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자랑도 좀 하고.”

그렇게 말하며 이곳을 공개하겠다고 한 주우정 감독이었다.

잠시 나와 관련된 그간 썰을 듣던 김우승이 불쑥 하고 질문을 던진다.

“감독님. 그러면 이제 이곳을 떠나시겠네요?”

“네. 그럴 생각이에요. 20대 때 정말 배를 곯던 시절 결심했거든요. 나중에 내가 성공하면 이곳을 떠나겠다고요.”

“크. 그 성공이 무려 베를린국제영화제. 그것도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이라니.”

김우승이 적절한 추임새를 넣으며 주우정 감독을 추켜세운다. 아마 저 대사가 나올 때면 베를린에서 상을 받던 모습이 나오겠지.

“어? 저거 그거 아니에요?”

“맞아요. 우리 서준이랑 같이 귀요미 버스커로 활동할 당시에 사용했던 기타.”

그런 김우승의 시선이 덜컥 멈춘 곳은. 바로 통기타 하나가 놓여 있는 걸 보았을 때였다.

“안 그래도 제 주변에서도 난리가 났었 거든요. 서준이가 정말 귀요미 버스커였냐. 이러면서.”

“그러면 이거 어떨까요? 어차피 이런 칙칙한 공간에서 계속 있는 것보다. 그때의 추억도 떠올릴 겸 버스킹 다시 가보는 게.”

이미 장소 섭외는 모두 끝내놓았다. 전처럼 아무 장소에서 갑작스럽게 했다간.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제작진 측에서 버스킹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장소를 정리하고 있을 터였다.

“저도 좋아요! 감독님이랑 영화 준비하면서 버스킹 했던 추억도 떠올리고. 또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를 궁금해했던 사람들에게 공개도 하고요.”

내 말에 이주연 PD가 활짝 웃는다. 저번 연사모 형들과의 여행 편도 시청률이 대박이 터졌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시청률이 팡 터질 만한 소스를 가지고 돌아왔으니.

버스킹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

사실 주우정 감독이 말을 재밌게 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제작진 측과 촬영 전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냥 진솔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자고. 방송에 필요한 분량은 아까 작업실과 곧 도착할 버스킹에서 다 뽑을 수 있을 테니.

“사실 서준이가 아니었으면. 목소리라는 영화가 탄생하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왜요?”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 자체가 쓴 것은 제가 혼자 썼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만든 사람이 서준이니까요.”

‘목소리’의 주인공의 시점을 알고 싶어 버스킹을 요청했을 때에도. 내가 흔쾌히 수락하고 한 달이 넘게 레슨을 받았던 이야기.

또 반지하 작업실에서 매일 같이 자신을 찾아와 식사를 챙겨주었던 썰까지.

“여기 보면 그 증거가 있어요.”

“뭔데요. 푸하하!”

주우정 감독이 내미는 핸드폰을 보던 김우승이 빵 터지고 말았다.

- 감독님. 밥 먹었어요?

- 또 시나리오 쓰다가 끼니 거른 거 아니죠?

- 밥 드세요. 냉장고에 포장해서 넣어둔 거 있어요.

- 지금 가고 있으니까. 전화하면 밥 먹으러 가게 나오세요.

내가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주우정 감독을 챙겼던 증거들을 보여준 것이다.

크흠. 사람 부끄럽게. 허나 이주연 PD에게 달려가 내보내지 말아달란 말은 하지 않았다. 모두 홍보에 도움이 될 테니까.

이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만한 말들이 이어졌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이주연 PD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왜냐고?

다들 궁금해하던 것들이었으니까. 9살 아역 배우를 단독 주연으로 내세워서. 다른 곳도 아닌 3대 영화제라 불리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그것도 황금곰상 다음으로 평가받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으니.

“그러면 감독님은 나중에 서준이랑 또 작품 하나 같이 하고 싶으시겠네요?”

“네. 기회가 된다면요. 사실 이번 작품도 꽤나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이에요. 다음번에 서준이와 함께 영화를 찍는다면. 그때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방송으로 시청할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말을 하면서. 주우정 감독이 날 보며 웃었다.

안 그래도 기대가 되던 참이었다.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그날 밤. 주우정 감독이 내게 말했다.

“서준아. 네가 성인이 되고 나면. 그때 내가 완성한 시나리오 보고 괜찮다 싶으면 다시 한번 같이 해보자. 널 위한 시나리오로 몇 년을 준비해볼 테니까.”

이번 작품으로 사랑받는 영화가 뭔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 주우정 감독이었다. 그런 그가 나를 위해 몇 년 동안 준비한 작품이라.

기대가 된다.

*

[미쳤다! ‘소하’ 촬영에서 차 배우가 귀요미 버스커로 버스킹함.]

처음에는 다들 어어? 이러고 있었는데. 아빠로 알려졌던 주우정 감독이 기타 치니까 다들 웃으면서 알아보더라.

‘소소한 하루’ 촬영 중이라 모를 수가 없었음. 지나가던 사람들도 다 몰려와서 완전 차 배우 콘서트가 열렸었음.

└ 차 배우 실제로도 노래 잘함?

└ 미쳤음. ㅋㅋㅋ 솔직히 영화가 아니라 작년 크리스마스 때 캐롤송부터 좀 내주지. 이런 생각부터 들었음.

└ 차 배우 나오는 ‘소하’ 봐야겠네. 저번 연사모 형들과 여행편도 재밌었는데. 이번에는 주우정 감독이랑 같이 나오는 듯?

└ 그보단 노래 듣고 나니까. 이번에 상까지 받았다는 영화 보고 싶어지더라. 영화관 사운드로 차 배우의 노래를 듣고 싶어.

└ ‘소하’ 촬영이었으면 김우승도 같이 부름?

└ 어. 그런데 서준이가 훨씬 더 노래를 잘하더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우승 흑역사 생성이네 ㅋㅋㅋ

“난 그룹 내 댄스 포지션이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던 김우승은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입가에 미소가 걸린 건.

“홍보 효과는 확실하네.”

실시간 매진이 되고 있는 차서준의 영화 ‘목소리’ 예매 상황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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