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 베를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주우정 감독과 아역 배우 차서준.
- 영화감독 주우정, ‘목소리’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수상.
- 주우정 감독. 베를린영화제서 수상 소감으로 차서준을 가장 많이 언급해.
- ‘베를린 은곰상’ 주우정 감독, 아역 배우 차서준과 함께 환하게 웃어.
└ 미쳤다!!! 우리 차 배우 2번째 영화 만에 베를린국제영화제. 그것도 2등 상이나 마찬가지인 심사위원대상 받은 거? ㄷㄷ
└ 거기에 우리 차 배우 단독 주연임. ㅋㅋㅋㅋㅋ 처음 주연으로 찍은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 레드카펫 밟은 거임.
└ 내 무습다. 아직 9살인 차 배우가 더 크면. 유럽 3대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상까지 받는 거 아닌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어서 내 무습다!
└ 아쉽긴 함. 우리 차 배우가 성인만 되었어도 은곰상 남우주연상 무조건 받을 거 같았는데. 동양에서 온 9살 아역 배우라 못 받은 듯. ㅠㅠ
└ ㄱㅊ 어차피 우리 차 배우의 연기력이라면. 3대 영화제에서 주연상 받는 건 시간문제임. ㅋㅋㅋㅋ
아역 배우 차서준의 단독 주연. 그리고 감독 주우정의 영화 ‘목소리’의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 결과가 나왔다.
황금곰상 다음으로 높은 상이라고 불리는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수상. 결과가 나옴과 동시에 일제히 기사들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모두가 영화 ‘목소리’의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의 수상을 축하하고 있을 때.
아역 배우 차서준의 팬클럽은 한 가지 더 다른 이유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 지금 우리 차 배우가 주우정 감독에게 해외 기자들 질문 전달해주는 거 맞죠? ㅋㅋㅋㅋㅋ
└ 맞는 듯? ㄷㄷ 기자들이 차 배우에게 영어로 질문하면 자연스럽게 대답도 하네요. 언제 영어 공부를 저렇게 했지? ㄷㄷ
└ 한국에선 따로 영어를 쓸 일이 없었으니 몰랐던 거 같아요. 그보다 기자들의 어려운 질문에도 되게 유창하게 답변하네요.
└ 대체 우리 차 배우가 못하는 게 뭐지? 연기 잘해, 춤 잘 춰, 노래 잘해, 거기에 외국어까지. 그냥 톱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거 같아요. ㅋㅋㅋ
└ 기자와 함께 조크도 주고받네요. 응? 저건 미국에서 좀 지내보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말인데? 우리 차 배우한테는 신기한 게 정말 많아요.
바로 차서준의 유창한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처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시작된 차서준의 영어 인터뷰가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
외국인 기자들의 질문에 자연스러운 영어로 대답을 한 것뿐만 아니라. 주우정 감독에게도 자연스럽게 통역을 해주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잡혔다.
그렇게 난리가 난 바깥 상황들과 달리. 나는 주우정 감독과 함께 숙소에서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서준이 너 때문에 지금 팬클럽도 난리가 났던데? 이번 영화제에서 서준이 네가 보여준 유창한 영어 회화 실력에 다들 놀란 모양이더라.”
“감독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도 가입했으니까.”
응?
어쩐지. 어느 순간부터 수상할 정도로 나에 대해 많이 아는 주우정 감독이었는데. 내 팬클럽에 가입해서 이것저것 찾아본 모양이다.
아마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나에 대한 것들을 조사하기 위해 가입한 듯싶다.
“6살 때 회사와 계약하면서부터 준비했어요. 언젠가 이렇게 해외 영화제에도 진출할 것 같아서요.”
“역시 서 대표가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대체 6살의 서준이 널 보고서 어떻게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현재 주우정 감독. 그리고 나 다음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구름엑터스의 대표 서도현이었다.
과거 인터뷰를 통해 내가 어떻게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는지가 다시 재조명되었으니까.
베를린에 도착한 이후 있었던 기자회견 내내 서도현에 대한 언급을 빼먹지 않은 나였다. 약속했으니 잊지 말아야지.
아마 서도현이 한국에서 그 기사를 보고선 엄청 기뻐했을 것이 분명했다.
“서준아.”
“네?”
“고맙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주우정 감독이 툭 말을 던졌다. 그 눈빛이 깊은 호수처럼 고요하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불안 증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절부절못하던 주우정 감독이었는데.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유로 차분함을 되찾았다.
마치 큰 무대에서 상을 받은 이후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이랄까. 영화감독으로서 능력이야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제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이었다.
“정말 서준이 네 말처럼 되었어. 사실 이번 영화를 출품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제 말이 맞았죠? 우리 영화가 정말 잘 만들어져서. 모든 일들이 잘 풀릴 거라고 했잖아요. 일단 다른 사람도 아닌 감독님이 만든 시나리오잖아요.”
“다 서준이 덕분이지. 아마 서준이 네가 연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영광은 없었을 거다.”
말을 마친 주우정 감독의 시선이 다시 창밖을 향한다. 지금 주우정 감독이 창밖을 보면서 무얼 떠올리는지 알 것 같다.
곰팡이가 군데군데 핀 낡고 좁은 반지하 작업실이 떠오르겠지. 더 나아가 젊은 날 그곳에서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키우던 과거의 자신도 떠오를 테고.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펑펑 울던 주우정 감독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면서도 ‘우리 서준이 덕분에’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던지.
“감독님.”
“응?”
“우리 아직 안 끝났잖아요. 이제 돌아가면 개봉 준비를 위한 홍보 활동도 해야죠.”
“그래. 이제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니. 돌아가면 지금까지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지.”
그랬다.
예술을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다.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성공하기 위해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만큼 본격적인 게임은 이제부터였다. 지금쯤 우리 영화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테니.
아마 내일쯤 2차 예고편이 공개된다고 들었는데.
“엄청나게 바빠질 거예요.”
“우리 서준이 말이 맞네. 지금 쏟아지는 연락만 보더라도. 한국에 돌아가면 더 바빠지겠어.”
당연한 말씀. 한국에서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에는 그저 경쟁 부문에 초청된 감독들 중 한 명이었지만. 돌아갈 때에는 은곰상 수상자였다. 그것도 심사위원대상 수상자.
아마 TV 각종 프로그램에서도 주우정 감독을 모시기 위해서 난리가 날 터. 영화 홍보 차원에서도 다양한 프로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도착하면 공항에서부터 난리가 날 거예요.”
“그렇겠지?”
“네!”
돌아가는 공항에서부터 기자들과 팬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와 주우정 감독이 베를린으로 떠나 있는 동안. ‘귀요미 버스커’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이라는 환상적인 떡밥들이 뿌려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
베를린국제영화제로 떠났던 주우정 감독과 아역 배우 차서준이 귀국하는 날.
이미 몇 시간 전부터 기자들과 팬들로 인하여 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단하네. 주우정 감독이 기어코 베를린에서 상을 받아오네. 재수 끝에 성공인가?”
“사실 저번에 도전했었던 ‘전당포’도 괜찮았잖아. 다만 거기 배우가 연기를 참 더럽게 못하긴 했어.”
“어쩔 수 있나. 당시 주우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려는 연기력 되는 배우가 없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건 수다뿐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주우정 감독이 떡상하겠어.”
“주우정 감독도 그렇지만. 사실 이번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따로 있지.”
“누구? 아, 차서준?”
“어. 첫 영화에 조연으로 들어가서 800만 스코어. 거기에 ‘목소리’ 직전에 주연으로 들어갔던 드라마 ‘재벌가 금동이’는 시청률 46.5프로.”
“마지막으로 2번째 단독 주연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이니까?”
기자의 말에 동료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떠도는 말이 하나 있었다.
아역 배우 차서준의 나이가 성인만 되었어도. 남우주연상은 무조건 차서준의 차지였을 거라고. 그 정도로 해외에서도 극찬을 받은 차서준의 연기였다.
“이번 영화 개봉하면 몇만이나 달성하려나? 지금도 사람들의 관심이 엄청 뜨거운데.”
“글쎄. 아무리 차서준의 단독 주연 영화라 하더라도. 대진운이 좋진 않아서 흥행이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여기서 베를린이라는 변수가 터졌으니.”
“일단 손익분기점은 첫 주에 무난히 넘길 테고. 몇만 관객까지 달성하느냐가 관건이겠네.”
역시나 기자들의 관심은 곧 개봉할 영화의 흥행 여부였다. 영화 ‘목소리’ 몇만 관객 돌파! 같은 기사만큼 좋은 소스가 없으니까.
기사에 ‘차서준’ 이 이름만 넣어도 조회수가 보장되었는데. 한동안은 어떤 기사를 써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거 알아? 차서준 다음 수혜자가 주우정 감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거?”
그 말에 듣고 있던 이의 고개가 갸우뚱한다. 마치 누구? 라는 표정.
“너 연예부 기자 맞아? 누구겠어. 서도현 대표잖아. 심지어 차서준이 베를린에서 레드카펫을 밟자마자 언급한 사람이 주 감독, 그리고 항상 하는 가족 이야기. 마지막으로 서도현 대표였는데.”
“맞네. 안 그래도 차서준과 계약한 이후로 구름엑터스 몸집이 엄청 커졌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커지겠어.”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기자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당사자들이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의 소속사 대표가 같이 주목을 받는 건 특이한 상황이긴 했다.
“요즘 연기력 좀 되는 배우들 중에서 계약 기간 끝난 사람이면 다들 구름엑터스 한 번쯤은 고려한다고 하더라.”
“차서준의 작품 선택이 다 서도현 대표가 골라준 거라고 하니. 거기에 요즘 구름엑터스 소속 배우들 성적이 다들 좋잖아. 최근 미끄러지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기자들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질 수가 없었다. 문이 열리고 차서준과 주우정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 두 사람이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팬들의 비명소리가 귀를 따갑게 울렸다.
*
“서준아!”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서도현이 격하게 안았다. 내 입에서 꽥! 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삼촌. 말씀드렸잖아요. 아역 배우 차서준이 오늘 이 자리까지 있을 수 있었던 건. 열심히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삼촌 덕분이라고.”
참고로 이 대사는 베를린에 도착한 이후부터 줄곧 내가 말했던 것이었다.
내 말에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서도현이 추임새를 넣는다. 3년 동안 지켜본 서도현의 모습들 중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면 착각일까.
안 그래도 베를린에 도착한 이후 잊어버리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열심히 서도현에 대해서 언급을 했었다.
소속사 대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김도경 시절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이제 휴식 기간이 끝났네?”
끄덕. 서도현의 말처럼 휴가가 끝났다. 동생들과 온종일 우루루 까꿍 놀이를 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열심히 달릴 시간이 찾아왔다.
“제가 단독 주연인 영화잖아요. 주연 배우가 홍보를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잘 생각했다.”
탑급 배우들도 자신들이 찍은 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홍보 일정들을 소화한다.
‘목소리’는 내가 단독 주연으로 촬영한 영화였다. 그 말은 나를 제외하곤 홍보를 뛸 수 있는 배우가 없다는 뜻.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야지.
또 한 가지 더. 이번 영화를 통해 얻는 성적들은 모두 내 공이 될 터였다. 그렇다면 더 열심히 홍보해야지.
“일단 가벼운 영화 소개 인터뷰들부터 나가면 된다. 벌써부터 인터뷰하자는 곳들이 줄을 섰으니까. 그다음 예능 출연은.”
“주우정 감독님이랑 같이 나갈 수 있는 것들로 나갈래요.”
“그럴래?”
“네. 혼자보다는 주우정 감독님과 같이 나가면 버스킹 썰도 풀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 홍보를 위해 예능에 나가지 않았던 나다. 그렇기에 깜짝 놀라는 서도현의 반응은. 앞으로 터질 사람들의 반응들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그 부분은 삼촌이 주 감독이랑 이야기를 해서 일정들을 잡아보마.”
“네. 부탁드릴게요 삼촌.”
“아, 그리고 2차 예고편 올라온 거 봤니?”
안 그래도 봤다. 1차 예고편이 나와 귀요미 버스커와의 연관성을 중점적으로 보여주었다면. 2차 예고편은 ‘목소리’가 어떤 영화인지를 보여주려 했다.
결과는?
이미 업로드와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올라가는 조회수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서준이 네가 주연을 맡은 첫 영화가 개봉을 하겠네.”
“맞아요. 다음 주 개봉이라고 했으니까요.”
이제 남은 건.
영화 ‘목소리’의 개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