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안 그래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던 차였다.
그런 아역 배우 차서준과 감독 주우정의 영화 ‘목소리’ 예고편이 공개된 순간.
가장 난리가 난 곳은 다름 아닌 차서준의 팬클럽이었다. 그중에서도 차서준의 열렬한 팬인 김시율이 빠질 리가 없었다.
“예고편이 공개되었다고? 그러면 얼른 봐야지.”
소식을 듣자마자 팬클럽에 접속한 김시율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생일도 아닌데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직 예고편을 클릭하기 전이었지만. 벌써부터 게시글 댓글이 수백 개가 돌파했다. 이 정도면 ‘목소리’가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에 달렸던 댓글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대체 무슨 일이지?”
더 이상 참을 인내심이 김시율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가 재빨리 마우스를 클릭해 예고편 영상을 누르는 순간.
“···응? 어, 어어?!”
예고편이 시작됨과 동시에 들려온 노랫소리에 김시율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지고 말았다.
그 익숙한 목소리는 김시율 역시 너무나도 잘 아는 것이었으니까.
“귀, 귀요미 버스커?!”
그랬다.
한동안 어린아이가 아빠와 함께 버스킹을 하는 영상들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그 영상을 본 차서준의 찐팬들은 혹시? 하는 생각으로 차서준이 아니냐는 말을 꺼냈었다.
“헐. 내가 직접 만나보고도 몰랐다고?”
무엇보다.
친구와 함께 운동을 하다가 귀요미 버스커를 직접 보기도 했었던 김시율이었다. 열성 팬이라고 자부하는 자신조차 코앞에서 알아보질 못했는데.
그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정말로 차서준이었다니.
“미, 미쳤어···. 진짜 노래까지 잘하는 거냐고.”
이어폰을 통해 흘러오는 차서준의 노래에 소름이 쫙 돋는다. 오죽하면 멍하니 화면만 보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일 정도였다.
이건 비단 김시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공개된 예고편을 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예고편 영상이 끝난 순간.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던 김시율이 서둘러 채팅방에 접속했다.
└ 다들 예고편 보셨어요? 저번에 여기서 난리가 났었던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차 배우였네요?
└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예고편 공개되자마자 난리 났음. 당장 실시간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접속자수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음. ㅋㅋㅋㅋ
└ 와. ‘금괴소동’ 관객 공약으로 춘 딩기리딩 춤을 봤을 때에도 깜짝 놀랐었는데. 방금 예고편에서 차 배우의 노래는 그냥 들으면서 소름이 쫙 돋았어요. ㄷㄷ
└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년이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라더니. 이건 예상했던 그 이상을 보여주네요.
└ 괜히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게 아니었음. 그나저나 우리 차 배우 가창력 실화에요? 대체 못 하는 게 뭐가 있으려나.
└ 지금 실시간 검색어도 죄다 차 배우가 점령해버렸음. ㅋㅋㅋㅋ 기사도 속속 올라오는 거 보니까. 이번 영화도 제대로 터지겠는데요?
채팅창은 실시간으로 도돌이표를 찍고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예고편을 본 팬들이 호들갑을 떨며 입장하고 있었으니까.
└ 예고편 보셨어요?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우리 차 배우 맞죠? 미친!!! 대박!!!
이런 류의 채팅을 치면서 입장하는 팬들이 한 트럭이었다. 다음 사람이 입장하면 방금 봤었던 채팅창 내용이 다시 반복되곤 해버렸다.
그때였다.
예고편만으로 아쉬움이 느껴지던 김시율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 떠오른 것은.
“귀요미 버스커 영상 올라온 거 있잖아!”
안 그래도 채팅창에 1분에 수십 개씩 귀요미 버스커란 말이 올라오는 이유는 하나였다.
과거에 차서준이 아니냐면서 귀요미 버스커의 영상들이 팬클럽에도 올라왔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시율은 재빨리 ‘귀요미 버스커’의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작년에 올라온 영상들에 빠르게 달리는 댓글들은 모두 몇 분 안에 작성된 것들이었다.
*
서도현을 만나기 위해 대표실에 왔지만. 우리의 대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핸드폰 때문에 방해받고 있었다.
쉬지 않고 울리는 핸드폰을 보면서. 서도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삼촌 말이 맞지? 아마 베를린에 초청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보다 더 난리가 났을 거 같은데.”
“맞아요 삼촌. 저 지금 진짜 귀요미 버스커가 맞느냐는 연락들 때문에 핸드폰을 쓰지도 못할 정도에요.”
“그럴 거다. 몇 달 동안 꼭꼭 숨겨왔던 비밀을 공개한 셈이니. 거기에 서준이 네 가창력에 모두가 경악했을 테니.”
주우정 감독의 영화 ‘목소리’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다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주었는데. 이번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로는 정말로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나였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연락처를 아는 PD들의 섭외 요청이 빗발치고 있었다. 내가 이럴 지언데 서도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방금 회사에 도착한 순간부터 전화기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직원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 서준이 널 찾는 프로가 한둘이 아니야. 심지어 음악 프로들에서도 한 번만 나와 줄 수 없냐고 섭외 요청이 쏟아지고 있어.”
그랬다.
지금 당장 실시간 검색어만 보더라도 차서준과 관련된 것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그런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놓칠 방송가가 아니었다. 특히나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상황.
방송국 PD들에게 있어 지금 나는 걸어 다니는 보물 고블린처럼 보일 터였다. 잡기만 하면 시청률 대박이라는 보물을 산더미처럼 얻을 수 있는.
“안 그래도 ‘잘 먹는 친구들’이랑 ‘소소한 하루’가 제가 나왔던 편을 재방송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 당장 서준이 네가 TV에 얼굴만 나와도 시청자들이 찾아보는 수준이니.”
사실 사람들의 반응은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당장 대표실에 들어오기 전 마주했던 직원들 상황. 그리고 날 보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온 홍보팀장까지.
이미 회사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직원들에게 시달린 참이었다. 회사로 나를 찾는 문의가 쏟아지다 못해 넘치는 상황이었으니.
“홍보팀장님이 저한테 전에 말했던 노래 내볼 생각 없냐고 하시던데요? 그냥 회사에서 다 준비할 테니까 노래만 부르라고요. 지금 제가 동요만 불러도 대박이 날 거래요.”
“그래서 서준이 네 의견은?”
서도현은 다른 것들은 상관없다는 듯 내 의견을 묻는다. 누구보다 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서도현을 보면서 나는 정리한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노래는 당분간 생각이 없어요. 무엇보다 베를린 다녀오면 슬슬 차기작을 준비하고 싶어요.”
“배우는 연기로 말하는 법이니까?”
“네. 노래는 나중에 커서 부르고 싶을 때 할래요. 지금은 연기가 더 재밌어요.”
내가 서도현을 좋아하고. 또 신뢰하는 이유.
“그래. 서준이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것은 철저하게 내 의견을 존중해주기 때문이었다. 그 상대가 아직 9살에 불과한 아이일지라도 말이다.
물이 들어오다 못해 홍수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도현은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당장 돈을 쓸어담을 수 있는 기회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임에도 말이다.
“그러면 들어오는 제안들은 삼촌 선에서 적당히 정리하마. 광고에 관한 건 추려서 보여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고.”
“고맙습니다 삼촌.”
서도현은 내 의견을 존중하며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밖에 있는 홍보팀장이 들으면 뒤로 넘어갈 이야기였지만.
“당연히 소속사 대표로서 해야 하는 일이지. 그보다 앞으로는 더 많은 기회들이 서준이 네게 들어올 거다.”
“단독 주연으로 찍은 영화로 베를린에 초청되었으니까요?”
“그렇지. 지금까지 계산기만 두들기고 있던 이들조차 이제는 서준이 네게 주연을 제안하겠지.”
안 그래도 박우형도 그런 말을 한 참이었다. 내가 주연으로 찍은 ‘재벌가 금동이’에 이은 영화 ‘목소리’까지 연달아 대성공을 거둔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날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이 들어올 거라고.
“그나저나 이번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열심히 배운 노래와 기타를 쓸 일이 없어져서 조금 아쉬운데?”
무슨 소리.
누구보다 배운 노래와 기타를 알차게 써먹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심지어 어제도 미니 콘서트를 소화했었다.
“아니에요. 요즘 노래 엄청 부르고 있어요.”
“응? 어디서?”
서도현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는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노래와 기타를 배웠다. 앨범을 낸다거나 가수로 활동할 생각이 없었기에 당분간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그 활용법을 찾았다.
“집에서요.”
“뭐?”
내 대답에 그제야 알았다는 듯 서도현이 웃음을 터트린다.
엄마가 육아에 지쳐 낮잠을 주무시러 가면. 그 잠깐의 시간동안 내가 열심히 동생들과 놀아주었다.
“꺄하!”
“꺄아!”
하준이, 하윤이가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친다. 저 말들을 해석해보자면.
“노래 불러달라고?”
“어엉!”
“엉!”
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의미가 되시겠다.
처음 울음을 멈추지 않는 하윤이를 달래기 위해서 기타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 저렇게 선곡을 요청할 때가 있었다.
“이 노래 불러줄까?”
내가 기타를 만지며 가볍게 허밍을 내뱉자.
“뿌우!”
“뿌!”
그 노래는 별로라는 듯 하준이와 하윤이의 입이 튀어나왔다. 동생들의 그런 격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저 반응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싫어하는 노래를 흥얼거렸으니까.
더 장난을 쳤다간 삐져서 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동생들이 원하는 노래들을 들려줘야지.
“알았어. 대신 노래 불러주면 조용히 있는 거다. 엄마가 방에서 주무시니까 울면 안 돼요. 알았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상관없었다. 나는 동생들의 앞에서 미니 콘서트를 열 수밖에 없었다.
한 곡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엉아!”
“엉!”
하준이와 하윤이가 자연스럽게 앙코르 요청을 했다. 마치 한 곡 더 안 부르고 어딜 가냐는 듯한 느낌으로.
결국 나는 동생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이 들 때까지 노래를 멈출 수 없었다.
*
└ ‘목소리’ 예고편에 나오는 목소리가 그거 맞죠? 예전에 차 배우냐 아니냐로 말이 나왔던 귀요미 버스커.
└ 지금 차 배우가 귀요미 버스커냐 아니냐가 중요함? 예고편만 보더라도 알 수 있겠네. 우리 차 배우가 노래까지 미친 듯이 잘한다는 걸. 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래서 저번에 엑스트라로 촬영에 갔었던 사람이 영화관에서 3번 보겠다고 한 거구나. 저 노래를 제대로 들으려면 영화관에서 봐야지.
└ 미쳤다!!! 내가 그래서 저번에 계속 귀요미 버스커가 차 배우 같다고 했었잖아!!! 어쩐지 묘하게 다르면서도 차 배우 같더니만. 이거 개봉 언제 해요???
난리가 났네.
1차 예고편이 공개되고 난 뒤.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개봉해달라는 요청들이 쏟아질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베를린으로 떠나는 나와 주우정 감독을 찍으려는 기자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차 안에 같이 있는 주우정 감독의 눈시울이 붉다. 아마 ‘전당포’로 도전했지만 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셨던 때가 떠오르는 모양.
“서준아. 정말 네 말처럼 됐네. 우리 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다니. 베를린으로 가는 이 순간까지도 믿기지가 않아. 다 서준이 네 덕분이다.”
마치 툭 건드리면 이대로 성불이라도 할 것 같은 주우정 감독을 보면서.
“에이, 감독님. 아직 후보에 오른 거에 불과하잖아요. 눈물은 수상을 하고 나서 흘려도 늦지 않아요.”
내가 웃으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릴지도 몰랐으니까.
하이에나처럼 잔뜩 기다리고 있을 기자들에게 그 모습을 찍히기라도 했다간. 나중에 이불킥을 할 흑역사가 될지도 몰랐다.
차가 멈추고. 감정이 가라앉았는지 말끔해진 주우정 감독을 보며 내가 말했다.
“감독님. 이제 내려요. 당당하게 인터뷰하고 출국해야죠.”
“그래. 서준이 네 말처럼 좋은 결과가 있을 때까지는 참아야지.”
내가 주우정 감독과 차에서 내린 순간 무수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들.
‘베를린국제영화제’
그곳에 아역 배우 차서준으로서 참석하기 위한 출국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