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서도현의 연락을 받은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실시간 뉴스 랭킹을 채운 기사들이 무엇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당장 거실에서 아빠와 흥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엄마를 통해서 말이다. 아빠는 벌써 출근했는지 핸드폰 너머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전화가 끝났을 무렵 거실로 나가자. 화등잔만큼 커진 눈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잘 잤니. 그런데 서준아, 아빠에게 들어서 엄마도 방금 알았는데. 여기 기사들이 말하는 게 정말이니?”
아빠 덕분에 기사들을 보고 있었는지. 엄마가 눈을 비비며 방을 나오는 날 보며 물었다.
출근한 아빠에게, 화들짝 놀란 직원들이 달려와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빠가 전화를 한 것이고.
엄마는 내가 아직 자고 있다면서 깨우지 않은 것이다. 당장이라도 아들을 깨워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면서.
“네. 어제 도현 삼촌에게 연락받았어요.”
사실 어젯밤 서도현의 연락을 받고 나서. 엄마, 아빠에게 미리 말해줄까 잠시 생각했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깜짝 선물처럼 알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이 더 클 것 같아서.
예상대로 아빠는 회사에서 모두의 깜짝 축하를 받았고. 엄마는 기쁨에 가득 차올라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우리 서준이, 엄마가 정말 축하해. 영화 촬영하느라 고생 많았지? 새해부터 정말 좋은 소식에 엄마는 너무 기뻐.”
“아니요! 엄마, 아빠. 그리고 하준이, 하윤이가 응원해줘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아, 맞다!”
엄마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느끼며. 나도 작은 손을 쭉 뻗어 엄마를 안아주었다.
“엄마가 응원해준 덕분에 영화 촬영도 잘 마쳤고.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엄마.”
“서준아···.”
내 말에 감정이 복받쳤는지 나를 안은 손에 힘이 더해진다. 그런 우리의 감동이 흔들린 것은.
“마아! 뿌우!”
“어엉!”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깼는지. 방 안에서 왜 우리는 빼놓느냐는 듯 시위를 하는 동생들 때문이었다. 빨리 자기들도 안아달라는 듯 엄마와 나를 열심히 부른다.
엄마 대신 내가 방에 들어가자. 아침부터 반갑다는 듯 동생들이 날 보며 방긋 웃는다.
“하준이, 하윤이는 방에 두고. 아침부터 엄마랑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섭섭했어요?”
“엉!”
“어엉!”
응?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하는 동생들 덕분에 고개가 잠시 갸웃했지만. 이내 방 안에 모습을 드러낸 날 부르는 것임을 알고선 웃음을 터트렸다.
하준이야 날 보며 형이라고 부르는 게 맞았지만. 옆에 있는 하윤이는 왜 덩달아 형이라고 부르는 건지. 오빠라고 몇 번을 설명해줘도 하준이랑 같이 형이라고 부르는 하윤이었다.
호칭이야 말을 할 줄 알게 될 때 다시 가르쳐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동생들을 향해 우루루 까꿍을 해주었다.
“꺄아!”
“꺄하!”
어젯밤에도 실컷 놀아주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기억을 잊은 듯이 나에게 놀아달라며 재촉하는 동생들이었다.
“하준이, 하윤아. 형이, 아니. 오빠가···. 음, 둘이 같이 있으면.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참 어렵단 말이지.”
그랬다.
하준이에겐 형이고. 하윤이에겐 오빠였다. 그런 두 동생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나를 향할 때면. 대체 나를 어떻게 말하면서 동생들을 불러야 할지 참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렇게 동생들과 아침부터 놀아주는 동안.
우웅. 우웅.
다들 일어나자마자 기사들을 확인했는지. 이른 시간부터 핸드폰의 진동이 멈추질 않고 있었다.
특히나 박우형에게는 거의 3초에 하나씩 문자가 오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얼마나 빠르게 쳤는지 오타 가득한 장문의 내용으로.
원래 며칠 전부터 오늘 오후에 형들을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저 형들을 만났을 때의 상황이 그려져서.
일단 그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문자들을 잠시 뒤로한 채. 나는 컴퓨터를 켜고 기사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소식을 안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핸드폰은 밀려드는 축하 문자들 때문에 제대로 확인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주우정 감독의 영화 ‘목소리’. 베를린 영화제 초청]
아역 배우 차서준 주연, 주우정 감독의 영화 ‘목소리’가 오는 2월에 열리는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주우정 감독의 영화 ‘목소리’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년이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
베를린국제영화제는 2월 10일부터 20일까지 열리며 ‘목소리’는 영화제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이후 국내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 미쳤다!!! 이런 대박 깜짝 소식을 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차 배우가 잠잠했던 거구나. ㄷㄷ
└ 어쩐지···. 아직까지 예고편도 공개가 안 되어서 대체 언제 나오냐고 다들 궁금해했는데. 한국보다 베를린에서 먼저 개봉을 하겠네요. ㄷㄷ
└ 그러면 우리 차 배우가 이제 베를린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건가? 작년 말에 CBS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는 대상 후보가 되었으면 바랐더니 베를린영화제에 가버리네. ㄷㄷㄷ
└ 차 배우 소식만 기다렸는데. 그 소식이 베를린에서 전해져오네요. 다들 아침부터 실시간 검색어 보고선 깜짝 놀랐을 듯. ㅋㅋㅋㅋ
└ 수상 가능성은 있으려나. 일단 초청된 것만 하더라도 대박이긴 한데. 기왕이면 베를린까지 갔으니 트로피 하나 받았으면 좋겠음.
└ 영화 예고편 언제 공개되나요? 슬슬 공개될 때가 된 것 같은데. 요즘 그것만 기다리고 있어요.
이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특히나 내 팬클럽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후보에 오른 것뿐이지만. 벌써 수상이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나를 아는 사람들일수록 그 강도가 더 심했다.
그중에서도 정서불안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심하게 흥분한 사람이 있었다.
누구냐고?
누구겠어.
당연히 연기에 살고 연기에 죽는 배우.
박우형이지.
“우형이 형. 좋은 아침···.”
- 서준아!!! 축하한다! 내가 이번에 너 정말로 사고 제대로 칠 줄 알았거든. 특히 주우정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이건 서준이 널 위한 맞춤옷 같은 영화다. 이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내 예상처럼···.
어차피 이미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전화를 괜히 받은 걸까. 문자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전화를 걸기 시작한 박우형의 연락을 받은 순간.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스위치가 눌려 흥분하기 시작한 박우형의 말이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았으니까.
마치 래퍼가 속사포 랩을 하듯 쉴 새 없이 떠드는 박우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르게 내 입가가 슬며시 올라가는 이유는.
“고마워요 형. 정말로.”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박우형의 목소리엔. 진심으로 나를 축하하는 마음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속담이 무엇이던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잘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생의 김도경 시절에는 더욱더 그랬다. 그때는 처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심 어린 축하보다 시기 질투가 더 많았었다.
그런데.
지금 박우형은 마치 자기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 감동이 순간 흔들린 것은.
- 그래서 지금 형들이 너 축하해주기 위해서 지금 바로 모일 예정인데. 오늘 오전 일정은 어떻게 돼?
응? 지금?
당장 나를 데리러 출발하겠다는 박우형의 말을 들었을 때였다. 자느라 몰랐는데 이미 첫 기사가 나온 시점부터 모이자고 연락까지 마친 모양.
아까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차키를 찾는 소리였나 보다. 부드러운 엔진음이 들려오는 걸 보니.
“형. 저 저녁에는 회사에 가야 해요. 삼촌 만나기로 했거든요.”
- 잘됐네. 형이 지금 출발했으니까. 낮에는 형들이랑 시간 보내고. 저녁에 시간 맞춰서 회사에 데려다줄게. 안 그래도 아침부터 서준이 네가 베를린에 초청됐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촬영을 마치고 느낌이 좋다는 서준이 네 말을 듣긴 했었지만 이런 엄청나게 기쁜 소식이라니. 나는 정말···.
우형이 형. 제발.
*
“뭐? 금괴소동보다 안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베를린에 가는 애한테?”
“크흠. 우승이 넌 또 다 지나간 일을 꺼내고 그러냐.”
김우승이 김정범을 놀리자. 과거 자신의 발언에 부끄러움을 느낀 김정범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구어진다.
사실 주우정 감독과 작품을 한다했을 때. 여기 있는 형들뿐만이 아니라, 서도현 역시 성적에 대한 우려를 했었다.
그런데.
정작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잭팟이 터졌다. 그것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초대박이.
이미 아침부터 줄줄이 기사가 쏟아지는 것이. 이대로라면 개봉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관심이 치솟을 터였다.
“서준아. 사실 형들도 그런 곳에 초청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대체 서준이 너한테 어떤 말을 해줘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만은 확실하게 해줄 수 있는 건.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정말 축하한다는 말뿐인 거 같다. 그래서···.”
우형이 형. 제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단 1분도 안 쉬고 떠들었잖아요. 이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런 주제들이 튀어나오는 거야.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옆에서 나와 박우형을 지켜보고 있던 김정범이 박우형을 진정시켰다.
“진정해 우형아. 그러다가 서준이 귀에서 피 나오겠다. 너 서준이 데리고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떠들었을 거 아니야. 서준이 저거 넋 나간 표정 봐라.”
김정범이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면서 낄낄거리며 웃는다.
박우형의 입을 다물게 해줘서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저 웃음이 얄미워서 한 대 때리고 싶어 해야 하는 건지.
“맞아. 우형이 형도 흥분을 좀 가라앉혀야 돼. 아침부터 납치당해서 배고플 텐데. 서준이 뭐 먹고 싶어? 이런 기쁜 날에 형이 다 시켜줄게! 아니면 나가서 먹을까?”
김우승도 귀가 따가웠는지 이때다 싶어 재빨리 점심 메뉴를 고르자며 손을 번쩍 든다.
그렇게 단 1초도 쉬지 않고 울려퍼지던 박우형의 목소리가 멈추고. 드디어 집 안에 휴식이 찾아왔다.
“지금 서준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긴 좀 그렇지 않을까?”
“그렇겠지? 안 그래도 지금도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이 다 서준이 관련된 것들인데. 그러면 시켜서 먹자.”
“저번에 먹었던 거기 괜찮더라. 서준이가 진짜 맛있게 먹었던 거 같은데. 거기 어때?”
“오케이. 서준아. 저번에 형들이랑 먹었던 거기에 주문하려고 하는데. 괜찮아?”
잠시 점심 메뉴로 나에게 무얼 먹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는 형들을 보면서. 나는 그만 미소를 짓고 말았다.
“형들. 정말 고마워요.”
정말로.
박우형도 그랬지만. 김우승이나, 김정범 역시 나를 보자마자 정말 축하한다면서 꽈악 안아주었다. 내 입에서 순간 꽥! 하고 짜부라지는 소리가 터질 정도로.
그만큼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준 사람들이 눈앞의 형들이었다. 그러니 내 가슴이 어찌 뭉클해지지 않을까.
“고맙긴.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서준이에게 기쁜 일이 생긴 건데. 형들이 내 일처럼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맞아.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축하한다며 전화하던 녀석이. 이럴 때면 이상하게 부끄러워하더라.”
“서준이 일이 내 일이나 마찬가지지.”
마지막으로 다시 묵묵함을 되찾은 박우형까지. 형들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직 사람들에게 난리가 날 일이 하나 더 남아있지 않아?”
“맞네. 그거 언제야? 영화 예고편 공개하는 날. 그거 공개되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충격 받을 거 같은데?”
“인정.”
*
영화 ‘목소리’의 1차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이미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에 모두의 관심이 쏠린 상태.
하지만.
정작 예고편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다른 데서 터져 나왔다.
└ 어? 자, 잠깐만!!!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