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94화 (94/220)

94화

연말을 맞이하여 지인들과의 만남보다 TV 앞에 앉은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아역 배우 차서준의 팬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차서준의 팬들 중에서도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김시율이 시상식을 놓칠 리가 없었다. 심지어 차서준이 최우수상 후보에 오른 상태였으니까.

“엄마! 나 왔어! TV 틀었어? 빨리 CBS로 채널 고정해야 돼.”

“너는 집에 오자마자 그런 소리부터 하니. 화장실에 가서 손부터 닦고 오렴.”

김시율은 새해를 부모님과 함께 맞이하기 위하여 본가에 내려왔다. 허나 집에 온 그녀를 반긴 건 엄마 혼자뿐이었다.

“엄마. 아빠는?”

“으이구. 네 아빠는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고 들어오겠단다. 연말이니까 오랜만에 얼굴들을 봐야 한다나 뭐라나.”

“저번 주말에 연말 모임하지 않았어?”

“그거랑 이거랑 다르데.”

평소라면 일 년의 마지막 날에 집을 나간 아빠에게 화를 냈을 엄마였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마치 ‘네 아빠는 신경쓸 겨를이 없어’ 이렇게 보인다고 할까.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지는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있었으니까.

“딸. 오늘 금동이가 나온다고 했지?”

“엄마 금동이 때문에 아빠가 나가도 화 안 났구나.”

“지금 술 마시러 나간 네 아빠가 문제니. 우리 금동이가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나 못 받나가 중요하지.”

금동이의 열렬한 팬이 된 엄마의 반응을 보면서. 김시율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최우수상 후보에 올라가 있잖아. 대상 후보 아닌 게 아쉽긴 한데, 최우수상이니 무조건 수상하지 않을까?”

“당연하지. 우리 금동이가 올해 얼마나 잘했는데. 나쁜 방송사 놈들. 무조건 우리 금동이가 대상이지. 다른 사람 주려고 최우수상에 후보 올린 거 보면 너무 괘씸해.”

“너무 화내지 마. 대신 최우수상 후보들 살펴보면, 우리 차 배우가 수상 확정이나 마찬가지잖아.”

CBS 연기대상에 차서준이 나온다는 사실에 이미 집을 나간 아빠는 안중에도 없는 엄마였다.

김시율은 그런 엄마를 보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엄마랑 함께 보는 시상식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팬클럽 사람들과 수다를 잊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까.

다들 약속도 취소하고 TV 앞에 모였는지. 벌써부터 채팅창이 시끌시끌했다.

└ 우리 차 배우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요. ㅠㅠ 이제 내일이면 곧 9살이 되니까 점점 미모에 물오르는 거 같아요.

└ ㅇㅈ 재작년 CBS 연기대상 당시 앳된 모습과 비교해보면. 이제 진짜 연예인 느낌이 물씬 나네요.

└ 그때는 마냥 애기애기스러웠는데. 이제는 잘생김이 느껴짐. ㅋㅋㅋㅋ

└ 오늘 우리 금동이가 최우수상 받겠죠? 사실 대상 후보에 오를 줄 알았는데. 왜 최우수상에 있는지. 정말 속상하네요.

└ 금동이맘 님은 차 배우를 항상 금동이라고 부르네요? 이제 다들 금동이 대신 차 배우라고 부르는데.

└ 저분 키보드 워리어임. 차 배우 관련 기사에서 누가 댓글로 깎아내리면 어디선가 등장해서 싸우심. ㅋㅋㅋ

팬클럽 채팅을 보던 김시율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닉네임 ‘금동이맘’을 사용하는 팬이었다. 차서준이 ‘재벌가 금동이’에 출연한 이후 가입한 사람이었는데. 이후 행보가 아주 열성적이었다.

안 그래도 김시율 역시 몇 번이나 ‘금동이맘’의 활약을 본 적이 있었다. 차기작 관련 기사에서 누군가 차서준을 향해 부정적인 댓글을 달면. 그곳에 득달같이 ‘금동이맘’이 나타나 싸웠다.

“참 이상한 팬이 생겼네.”

악성 팬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약간 연세가 보이는 언행을 제외하고는 차서준에 대한 팬심이 강해 보이는 정도였으니까.

그런 ‘금동이맘’에 대한 생각이 멈춘 건.

“딸. 치킨 온 거 같은데?”

“내가 가서 받을 테니까. 엄마는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 좀 가져다줘.”

“알았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주문한 치킨이 도착함을 알리는 초인종이 울렸을 때였다.

그렇게 엄마와 나란히 소파 위에 앉아 치킨을 뜯기 시작하고. TV에선 어느새 CBS 연기대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연상에 김동화네.”

“두 큰 아빠의 악역 연기가 좋았잖아.”

“안 그래도 엄마들 만나면 저 나쁜 놈들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얼마나 난리였었는지 몰라.”

“엄마도 같이 욕했어?”

“···.”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이상한 엄마의 반응에 김시율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조연상을 수상한 김동화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네는 차서준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금동이, 우리 서준이와 함께 촬영하는 동안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또또 시작했네. 오늘은 우리 차 배우가 몇 번이나 언급되려나.”

“재벌가 금동이로 상을 타는 사람들은 다 언급하지 않겠니? 우리 금동이가 촬영장에서 그렇게 잘한다는데.”

“엄마도 아네? 우리 차 배우가 촬영장에서 그리 사랑받는데. 그리고 금동이 덕분에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으니 당연히 언급해야지.”

그런 반응은 모녀에게서만 나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 시작됐네요. ‘우리 서준이’ 도르. 오늘 차 배우가 수상 소감에 몇 번 언급되는지 내기하실 분?

└ 저요! 최소 10번 이상에 투표합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조연상에 김동화 발표되고 나서 차 배우 잡아줬는데. 자기가 상 받는 것처럼 기뻐하는 거 봄? 준비해온 축하 꽃다발 건네주러 쪼르르 달려가는 게 엄청 귀여웠음. ㅋㅋㅋ

└ 일단 김동화는 우리 차 배우를 4번 언급했네요. ㅋㅋㅋㅋ

다음은 네티즌상이었다. 시청자들의 투표로 결정되기에 수상자에게 더 의미 있는 상.

몇 명의 후보가 화면 위에 떠올랐지만. 이미 연기대상이 시작하기 전부터 누가 수상할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다.

네티즌들의 투표로 뽑는 저 상에 차서준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엄마도 차 배우한테 투표했어?”

“당연하지.”

“투표 방법은 어떻게 알았어? 엄마 그런 거 모른다고 나한테 매번 물어봤잖아.”

“얘는. 엄마도 이제 저런 거 다 할 줄 알아.”

김시율의 고개가 순간 갸웃했지만. 옆집 아줌마가 가르쳐줬나 하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차서준의 능숙한 수상소감이야 이미 몇 차례 수상을 통해 증명되었다.

-오늘 제게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집에서 TV로 보고 있을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하준이, 하윤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수상소감을 말하고 내려간 차서준이 다시 올라온 것은.

-인기상 수상자는···. 차서준 씨, 이지우 씨 축하드립니다.

프로듀서, 작가, 연예부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인기상에 또다시 수상하게 되었을 때였다.

“우리 차 배우 표정 얼떨떨한 거 봐.”

“금동이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될 줄은 몰랐나 본데?”

“보통 저런 상은 나눠주니까. 사실 투표로 하면 무조건 우리 차 배우가 들어가야지.”

김시율과 그녀의 엄마는 TV 화면에 잡힌 얼떨떨한 표정의 차서준을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장편 드라마 우수상을 받은 중년 배우 김준규 역시 수상소감으로 차서준을 몇 번이나 언급했다.

쪼르르 축하 꽃다발을 주러 가는 차서준의 모습에 모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후.

최우수상의 수상자는 역시나 예상대로 아역 배우 차서준이었다.

└ 왜 안 우냐고!!! 최우수상이라 이번에는 눈시울이라도 붉어질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ㅋ

└ 최우수상에 울기엔 내 연기력이 너무 뛰어나다. 이런 거 아닐까? 실제로도 대상 아니냐는 말이 1년 내내 나왔잖아. ㅋㅋㅋ

└ 사실 6살 때 아역상을 수상할 때부터 남다르긴 했음. ㅋㅋㅋ 백상에서도 능숙한 수상소감에 다들 인생 2회차 아니냐고 그랬잖아.

└ 이번에는 서도현 대표랑 연사모 형들도 언급하네요. ㅋㅋ 어? 그리고 이번엔 가족 이야기 꺼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친구인 김도윤도 언급하는데요?

└ 맞네. 안 그래도 일일 드라마에 지금 차 배우 친구가 조연으로 나오고 있음. ㅋㅋㅋ 나름 나쁘지 않은 연기 보여주고 있는 중.

이건 모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김시율이 엄마를 향해 물었다.

“엄마도 알고 있었어? 우리 차 배우가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이번에 아역 배우로 데뷔한 거?”

“샛별반 사총사 친구인 김도윤 말하는 거니?”

“응? 엄마가 김도윤이 샛별반에 사총사 중 한 명인 걸 어떻게 알아?”

“엄마가 왜 모르니. 우리 금동이와 관련된 건 다 알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재벌가 금동이’를 통해 차서준의 팬이 되었다곤 하지만. 차서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마치 꼭 팬클럽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시율의 눈이 재빨리 엄마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향했다.

그리고.

경악으로 서서히 물드는 눈동자.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김시율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어?!”

엄마의 핸드폰에 떠오른 화면 때문에. 단순히 차서준의 팬클럽에 엄마가 가입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가 놀랄 리는 없었다.

문제는.

엄마가 팬클럽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에 있었다.

‘그, 금동이맘?!’

팬클럽에서도 유명한 금동이맘의 정체가 엄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김시율은 멍하니 입만 벌린 채 엄마를 바라보았다.

*

- [CBS 연기대상] 차서준 ‘최우수상’ 수상.

- 아역 배우 차서준 CBS 연기대상서 3관왕 쾌거.

- 수상보다 더 빛난 ‘재벌가 금동이’ 수상자들의 차서준 언급.

- 작년은 ‘금동이’의 해였다. CBS 연기대상에서 각종 상 싹쓸이.

며칠이 지났지만 저 기사들만큼 음미하기 좋은 것들이 없었다.

연예인이란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였으니까. 그것은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며칠이나 지난 기사를 클릭한 뒤. 내용은 보지도 않고 스크롤을 쭉쭉 내려 사람들의 댓글들을 음미했다.

그런 내 감상이 끊긴 건.

“엉아!”

“어엉!”

동생들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나를 향해 소리쳤을 때였다.

핸드폰만 보고 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준이가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불렀다. 옆에 누운 하윤이도 오빠를 따라 하고.

“하윤아. 하준이에겐 형이지만, 하윤이에겐 오빠인데?”

“뿌우.”

자신에게 뭐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윤이가 입술을 쭉 내밀며 잔소리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하하.”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이리 귀여울까.

“하윤이 오빠 해봐.”

“엉!”

아직 오빠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 보인다.

아빠도 하윤이에게 아빠 소리를 듣기 위해서 저녁마다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내가 동생들의 볼을 콕콕 찌르며 장난을 치자. 그 장난이 마음에 들었는지 둘 다 꺄아! 하며 방긋 미소를 짓는다.

지금이다. 기분 좋은 동생들에게 협상을 제안할 타이밍이.

“하준아, 하윤아. 오늘 밤에는 엄마, 아빠 코 주무실 수 있게 울지 말고 잘 자야 돼요. 알았지?”

한 명이 새벽에 잠을 안 자고 소란을 피우면. 다른 한 명도 덩달아 마아! 하면서 엄마를 찾았다.

내가 엄마 대신 잠재우려고 노력해봤지만. 아직까진 나보다는 엄마가 더 좋은 동생들이었다.

“뿌우!”

“뿌!”

이런. 협상 실패다. 그래도 오늘은 낮에 낮잠을 별로 안 잤으니까. 새벽에 곤히 자겠지.

그때였다.

거실 탁자 위에 올려둔 내 핸드폰이 전화가 왔음을 알리며 진동한 것은.

“응?”

이 늦은 시간에 전화다. 그것도 서도현의 전화.

“무슨 일이지?”

이 시간엔 보통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문자만 넣는 서도현이었는데.

늦은 시각에 전화까지 할 정도면 정말 급한 용무가 있는 모양.

“네, 삼촌.”

내가 서도현의 전화를 받는 순간. 수화기 너머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서도현의 숨소리가 들렸다.

- 됐다, 서준아. 됐다고.

“네?”

주어, 목적어를 다 빼놓고 서술어만 내뱉는 서도현에게 되묻는 그 순간.

- 축하한다 서준아. 네 영화가 베를린에 초청되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