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12월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기온은 점차 낮아졌다. 그런 추운 바깥 날씨와 다르게 우리집은 따스함이 넘쳤다.
그 이유는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막내 천사. 셋째 차하윤 때문이었다.
집 안에는 아기들의 이중창이 울려 퍼지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동생들은 자기들끼리 알 수 없는 언어들로 떠들곤 했다.
“꺄아!”
“빠아!”
하준이가 소리치면. 옆에 있던 하윤이 듣고 따라 한다. 그 반대로 하윤이 소리쳐도 하준이가 반응하곤 했다.
서로 아기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하는 듯. 알 수 없는 옹알이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퍽 귀여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 하윤이. 오빠 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하윤과 눈을 마주치며 우루루 까꿍을 하자.
“엉! 어엉!”
옆에 있던 하준이가 자신도 봐달라는 듯 손발을 바둥거리며 소리친다. 아직 옹알이만 하는 하윤이와 다르게. 하준이는 제법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우리 하준이도 형이 보고 싶지 않았어? 우루루 까꿍!”
“꺄아!”
“뿌우!”
하준이와 눈을 마주치며 놀아주면. 옆에 누운 하윤이가 자신에게도 관심을 달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동생들과 놀고 있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최근 내 하루일과는 초등학교에 다녀와 동생들과 놀아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 형들을 만나고 오는 정도.
다음 주부터는 방학도 할 예정이기에 동생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더 많아질 예정이었다.
“우리 서준이. 동생들 잘 놀아주고 있었니? 서준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동생들이 현관문을 몇 번이나 보면서 기다렸어.”
“네! 저도 동생들이 보고 싶어서 혼났어요.”
“정말?”
“사실 엄마가 더 보고 싶었어요.”
엄마가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그 웃음을 들은 동생들 역시 꺄하! 하면서 같이 웃음을 터트린다.
장난감을 흔드는 내 손끝을 따라 작은 눈동자들이 올망졸망 움직인다.
“이상하게 동생들이랑 같이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정말로.
‘잘 먹는 친구들’의 마지막 출연을 끝으로 휴식 기간을 가지고 있는 나였다.
말이 휴식이지, 1살 2살 아기들과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아직 방학을 하기 전인지라. 어젯밤에 동생들이 밤새 난리를 칠 때, 학교에 가기 위해 내 방에서 잠든 나였다.
“엄마. 조금 더 자고 나오셔도 괜찮은데.”
“괜찮아. 우리 서준이 덕분에 엄마가 조금 자고 나왔어요.”
어젯밤 하윤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었는지. 밤새 칭얼거리며 잠을 청하지 않았다. 그런 하윤이 때문에 잠이 깬 하준이 역시 울음을 터트렸고. 엄마는 그런 동생들을 달래느라 밤을 홀딱 샐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출근을 해야 하고. 나 역시 학교에 등교를 해야 하니. 엄마가 동생들과 함께 아기방에서 밤새 달래는 수밖에.
“마아!”
“마!”
그렇게 악동처럼 난리를 쳤던 두 동생들은. 어느새 천사처럼 미소를 방긋방긋 지으며 엄마를 향해 손을 뻗는다.
저런 모습을 보면. 어젯밤이 떠올라 밉다가도 사르르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하준이, 하윤이. 오늘은 밤에 엄마 잠 못 자게 괴롭히면 안 돼요. 알았지?”
“엉!”
“꺄아!”
알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엄마가 좋다는 건지. 어쨌거나 동생들은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보며 방긋방긋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천사가 따로 없는데. 가끔 울면서 떼를 쓰기 시작하면 동생이라지만 미워질 때가 있었다.
막내가 태어난 뒤. 아빠의 퇴근길 발걸음도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여보!”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를 안아주고 뽀뽀를 한 뒤.
“우리 서준이도 오늘 동생들이랑 잘 보냈어?”
“네! 다녀오셨어요.”
나를 번쩍 안아 주었다.
“빠아!”
“빠!”
아빠를 향해 하준이가 먼저 소리치면. 옆에 있던 하윤도 덩달아 따라 한다. 너무나도 귀여운 이중창이었다.
“당신도 오늘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무슨. 애들 생각하니까 힘이 펄펄 나던데.”
“나는요?”
“당연히 생각났지.”
안 그래도 문제의 크리스마스가 코앞이었다. 저 뜨거운 두 분의 사이를 보면 혹시나? 하는 걱정을 해야 될지도 몰랐지만. 이제는 괜찮아졌다.
아빠가 생산직에서 서비스직으로 2차 전직을 하셨으니까.
여기서 더 동생이 생긴다면 감당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 서준이는 학교 어땠어?”
“재밌었어요. 이제 애들도 조금 익숙해져서 처음처럼 난리 치고 그렇지도 않고요. 그리고 다음 주부터 겨울 방학이에요.”
“벌써? 시간이 엄청 빠르네.”
확실히 시간이 약이었다. 처음 보는 연예인에 쉬는 시간마다 난리를 치던 애들이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괜찮아졌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애들을 열심히 다루어야 했지만. 덕분에 이제는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내년에 있을 영화제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에 따라 다시 시끌시끌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저녁을 먹고 나면 그때부터 시끌시끌한 우리 가족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하준이, 하윤. 오늘 엄마 말 잘 들었어?”
“빠아!”
“빠!”
아빠의 양팔에 안긴 동생들이 방긋방긋 웃는다.
“그래도 하준이가 오빠라 그런지. 하윤이 울어도 오히려 달래려고 할 때가 있어요.”
“정말? 우리 하준이가 동생을 잘 돌봐주고 있어?”
“엉!”
이제 하준이가 제법 말을 알아들었기에. 아빠는 연신 미소 가득한 입가로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렇게 동생들과 한참을 놀던 아빠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준아, 올해는 연말 시상식에 간다면서?”
“네! 오랜만에 다시 금동이가 될 거 같아요.”“축하한다. 우리 아들 덕분에 요즘 아빠가 회사에서 다시 인기남이 되었어.”
그랬다.
5월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종영한 ‘재벌가 금동이’었지만. 그 인기나 파급력이 너무나도 강력했다.
그 증거로 몇 개 부문에나 후보에 오른 ‘재벌가 금동이’ 배우들이 있었다.
“세상에. 우리 서준이가 신인상도 아니고. 청소년 연기상도 아닌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올랐대요.”
“사실 아빠는 우리 서준이가 대상 후보에 오르지 않을까도 기대했었는데. 아쉽네.”
사실 금동이가 대상 후보에 오르지 않겠냐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곤 했었다. 올 11월에 방영한 수목 드라마에서 대박이 터지기 전까지는.
5월에 종영한 ‘재벌가 금동이’와 11월에 시작한 연말 드라마의 싸움. 그 결과는 후자가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재작년에는 신인 아역상. 작년에는 시상식에 가지 못했지만 올해는 최우수 연기상 후보잖아요.”
“그렇지? 그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 우리 아들이 있다니. 엄마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아쉬워하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최우수상 후보에 오른 아들이 믿기지 않는지 대견한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김준혁 PD에게 연락을 받은 참이었다. 원래라면 대상 후보에까지 오를 뻔했는데. 나에게 확실하게 상을 주기 위해서 최우수상 후보로 내려갔다는 것을.
그 말은.
“만약에 올해 상을 받게 되면.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한다고 다시 말할 거예요. 하윤도 새로 태어났으니까요.”
이미 수상자들이 후보 선정 때부터 내정이 되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대상 후보, 최우수상 후보 모두 경쟁이 필요 없을 정도의 성적들을 거둔 드라마들이었으니까.
*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벌써 이 몸으로 눈을 뜬 뒤 3번째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좋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첫 번째 크리스마스도 정말 행복했는데. 2번째, 3번째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행복은 갈수록 더 커져만 갔다.
“엉아!”
“엉!”
옆에서 나를 부르는 동생들과. 창밖에 내리는 눈송이들을 보니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준아, 하윤아. 저기 크리스마스트리 예쁘지?”
“엉!”
내가 전구들이 예쁘게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가리키자. 하준이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신기했다. 처음 옹알이만 하던 동생이 어느새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걸 본다는 것은.
“서준이가 벌써 준비 끝내고 동생들과 놀아주고 있었어?”
“네! 엄마, 아빠 준비는 끝났어요?”
“그러엄. 우리 서준이가 동생들 돌봐준 덕분에. 엄마, 아빠가 준비 다 했지.”
그랬다.
막내 하윤이가 태어나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한 것.
사실 지금까지는 내 작은 카메라에 추억과 함께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두었다.
하지만.
이제 막내까지 태어났으니 가족사진을 찍어 거실에 걸어두자는 제안을 한 나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었다.
“서준이가 정말 좋은 생각을 했네. 매년 이렇게 우리 서준이, 하준이, 하윤이가 커가는 모습들을 가족사진으로 남겨놓자고 하다니.”
“특히 거실에 거는 큰 사진 말고도. 작은 액자들이랑 평소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액세서리도 만들어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특별히 알아봤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잘 만들어주는 곳을 찾기 위해서.
“스튜디오가 집에서도 가까우니까. 천천히 출발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마침 스튜디오가 집 근처에 있었다. 거기에 미리 촬영과 앨범 제작에 필요한 비용까지 모두 지불해두었다.
괜히 엄마, 아빠가 비용 때문에 놀라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처리한 것이다.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제 남은 일은.
“얼른 가서 찍어요!”
지금 이 순간의 모습들을 담아두는 일이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정말 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촬영 때 입을 수 있는 정말 다양한 옷들과 액세서리들이 있었다.
“하준이랑 하윤이는 어떤 옷을 입고 싶어?”
아빠가 동생들을 양팔에 안고 옷들이 걸려있는 곳 앞으로 가자.
“이고!”
하준이는 뭔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손을 번쩍 들어 가리킨다. 하준이가 고른 옷은 바로 알록달록 색상을 가진 아기용 한복이었다.
“하준이는 저거가 입고 싶어?”
“엉!”
하윤이는 그저 똥그래진 눈으로 옷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아직 어린 하윤이에게는 아빠의 말이 너무 어려웠던 모양.
“그러면 우리 하윤이는 오빠랑 비슷한 옷으로 입을까?”
칭얼거릴 만도 했지만.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하준이, 하윤이가 미소를 지으며 옷을 순순히 갈아입었다.
“엄마.”
“응?”
“하준이랑 하윤이 옷이 정해졌으니까. 엄마, 아빠랑 저도 저렇게 세트로 입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럴래?”
“네!”
그렇게 올해 가족사진 컨셉은 한복으로 정해졌다.
“자, 찍습니다.”
찰칵찰칵 셔터음과 함께 플래시가 터짐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이 방긋방긋 웃는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진 기사님이 역시 차 배우네 가족이라는 말을 한다.
“보통 아기들이 막상 본 촬영에 들어가면 울곤 하는데. 차 배우님네 동생들은 촬영을 아는 것처럼 방긋 웃네요?”
“아마 절 닮아서 그런가 봐요.”
사실 여기에는 비밀이 있었다. 내 우루루 까꿍을 하준이가 참 좋아했는데. 하윤이 역시 엄청 좋아했던 것.
사진을 찍기 전에 동생들이 인상을 찌푸리면 재빨리 우루루 까꿍을 한 것이다.
그 덕분에 가족사진 촬영은 웃음꽃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 하윤이가 어렸기에 밖에서 먹을 순 없었다. 그래서 특별히 집에서 요리를 하기로 했다.
누가?
내가.
“어머, 서준이가 정말 요리를 할 거야?”
“네! 대신 엄마가 많이 도와주셔야 돼요. 제가 특별히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을 위해서 배워왔거든요. 동생들은 나중에 크면 다시 해줄 거예요.”
“정말? 엄마, 아빠를 위해서 배웠니?”
“네!”
그럴 리가. 갑자기 수준급 요리를 하는 아들을 보며 의아해할 엄마, 아빠를 위한 변명이었다.
아직 몸이 작지만 요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크리스마스이니까 혼자보다는 엄마와 함께 만들고 싶었을 뿐.
“그러면 아빠가 하준이, 하윤이 돌보고 있을 테니까. 서준이가 엄마랑 맛있는 요리 만들어.”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도도도.
어린이용 칼이 도마 위를 움직일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던 엄마의 눈이 동그래진다.
“어머. 서준이 진짜 요리 잘하네?”
“엄마. 저기서 저것도 좀 가져다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줄래.”
특별한 요리를 만드는 건 아니다. 크리스마스이니 간단한 투움바 파스타와 마늘 바게트를 준비했다.
잠시 후.
“우와. 이걸 우리 서준이가 만들었단 말이야?”
“엄마가 옆에서 다 도와줬어요.”
“아닌데. 우리 서준이가 다 만들고. 엄마는 옆에서 살짝 도와주기만 했는걸?”
완성된 저녁 식사 앞에 우리 가족들이 앉았다. 아직 요리를 먹을 수 없는 하준이와 하윤이는 엄마가 만든 맘마를 입에 물고 있었다.
“자! 그러면 초에 불 붙여볼까?”
생일 축하 노래에서 개사된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려 퍼지고.
“서준이 소원 빌면서 초 꺼야지.”
“네!”
잠시 눈을 감고 소원을 빈 내가 후! 하고서 초를 껐다.
“우리 서준이 무슨 소원 빌었어?”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우리 가족 지금처럼 계속 행복하게 해달라고. 물론, 아직까지 그 말을 엄마, 아빠에게 꺼내기엔 조금 부끄러웠다.
“비밀이에요!”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이미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짓고 계셨다.
“엉아!”
“응? 나도 먹으라고?”
엄마가 만들어준 맘마가 제법 맛있었는지. 나에게도 한입 하라면서 권하는 하준이 덕분에 식탁 위에 웃음이 터졌다.
*
12월 31일.
오랜만에 어린이용 수트를 차려입은 나는 차에 올랐다.
“서준아. 출발할까?”
“네.”
CBS 연기대상.
8살의 나이에 최우수상 후보로 참가하는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