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잘 먹는 친구들’의 메인 연출을 맡고 있는 김지석 PD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후우. 언제까지 빠져야 한다고?”
“최소 한 달은 요양해야 한다네요. 어쩌죠 피디님?”
“어쩌긴. 대타를 구해봐야지.”
하필이면 먹친들 중에서 맛집 사장님들과의 케미가 좋고. 맛깔나게 잘 먹는 박규용가 빠진 탓에 타격이 컸다.
진행이야 나머지 두 먹친들이 잘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잘 먹는 친구들’의 핵심 포인트에 구멍이 생겨버린 셈.
“후보들은 누구 나왔어?”
“어. 지금 스케줄 비어있고. 또 저희가 제안했을 때 긍정적인 답변을 보낼 만한 친구들이···.”
작가의 입에서 차례차례 나오는 이름들을 들을수록. 김지석 PD의 얼굴이 점점 거무죽죽해져만 갔다.
나쁘지 않은 카드다. 먹친 3명이 모두 건재한 상태에서 단발성 게스트로 나온다면.
문제는.
“그래서 거기 후보들 중 박규용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친구는?”
“···.”
없다. 사장님들과 좋은 그림도 뽑아내고. 야무지게 잘 먹는 후보가.
“어떻게 할까요?”
“지금 다음 주 방송 분량까지는 있으니까. 그 다음 주 방송 나가기 전까지만 어떻게든 구해봐야지.”
고정 시청자는 모으기 힘들지만. 그 고정을 떠나보기엔 쉽다. ‘재미’가 없으면 된다. 1번이야 참을지언정, 2번, 3번 연속 재미가 없다면 그건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질 테니까.
그런 김지석 PD의 눈을 사로잡은 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힘없는 손가락으로 채널을 돌리다 ‘소소한 하루’ 재방송을 봤을 때였다.
게스트로 나와 야무지게 요리를 하고. 또 복스럽게 음식을 입에 넣는 아역 배우 차서준을 본 순간.
“저거야!”
김지석 PD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
한 달 단기 고정 멤버로 출연을 결심한 ‘잘 먹는 친구들’이 방문할 첫 맛집이 결정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서도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국밥이라고?”
“네. 거기가 할머니 때부터 3대째 국밥 맛집으로 소문이 난 곳이래요. 원래 방송 촬영 같은 곳은 절대로 받지 않는 곳이었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도현이 미소를 짓는다. 마치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것처럼.
“금동이가 온다고 하니 허락했구나.”
정답. 전부터 그곳을 소개하고 싶었던 ‘잘 먹는 친구들’ 제작진 측에서 금동이를 미끼로 섭외에 성공했다.
물론, 무대뽀로 국밥집 섭외를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서도현에게 삼고초려 끝에 나를 모신 제작진이다. 그전에 미리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으니 큰 상관은 없었다.
다만.
“거기 작가진들이 고민 좀 했겠네. 서준이 널 불렀는데 첫 맛집으로 가는 곳이 국밥집이라니.”
서도현의 말처럼 걱정을 하며 내게 물어봤던 제작진 측이었다.
‘잘 먹는 친구들’ 섭외를 수락하면서. 첫 촬영부터 국밥집에 데려가기엔 8살인 내 나이가 걸렸을 테니까.
“이상해요. 왜 제가 국밥을 싫어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요? 그것도 수육 국밥인데. 진짜 요즘 날씨에 국밥만한 음식이 없는데.”
“하하. 당연하지. 삼촌이야 이제 익숙해졌다지만. 서준이 넌 아직까지 바깥에서 보기엔 8살 아이로 보일 테니까.”
연기력이야 규격 외로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땐 국밥보다 돈까스를 더 좋아할 나이로 보인다는 말이었다.
전혀 아닌데.
“거기가 특히나 세트로 주문할 때 나오는 수육 맛이 그렇게 끝내준대요. 새우젓을 올린 다음에 한입 먹으면 그게 행복이라던데요?”
“뭐?”
수육 국밥을 기대하는 내 맛 표현에 서도현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실 서도현이 가끔씩 날 보며 고개를 갸웃할 때가 있었다.
“서준이 널 보면 마치.”
지금 날 바라보는 시선처럼.
“30대 입맛처럼 보일 때가 있단 말이지.”
제법 날카로운 말이었으나.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말을 넘겼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이었는지. 서도현 역시 금방 다음 이야기로 넘겼다.
“이번에 서준이 네가 국밥집을 다녀와서 방송이 나가고 나면.”
나가고 나면?
“광고 들어오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 뜨거운 뚝배기를 후후 불면서 한입 먹는 그런 광고 말이다.”
서도현의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좋은데?
*
토요일 오후 6시. 평소라면 팬클럽이 조용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 다들 ‘잘 먹는 친구들’ 본방 기다리시는 건가요?
└ 당연하죠. ㅋㅋㅋ 우리 차 배우가 나온다는데. 저번 ‘소소한 하루’ 이후로 활동이 없어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 그런데 예고편을 보니까. 오늘 가는 곳이 수육 국밥집이라던데. 기껏 우리 차 배우를 섭외하고선 이게 맞나요?
└ 왜 그러셈? 수육 국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뜨끈한 국물에 깍두기 올려서 먹으면. 크, 나도 모르게 이모님 불러서 소주 한 병 시킴.
└ 우리 차 배우는 이제 8살인데요. 기왕이면 저번에 갔었던 닭갈비 맛집 같은 곳을 섭외해주지. 메뉴 선정이 좀 아쉽네요.
안 그래도 이미 예고편을 통해 3대째 전통을 이어가는 수육 국밥집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들 있었다.
아직 8살에 불과한 차서준을 기껏 섭외해서 데려간다는 곳이 국밥집이 맞느냐. 이에 대한 논쟁들이 채팅창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김시율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 우리 차 배우가 ‘소하’에 나와서 고추장찌개 야무지게 먹지 않았나요? 애호박에 감자까지 후후 불면서 진짜 맛있게 먹던데. 저 그거 보고 바로 배달 어플 켜서 야식으로 고추장찌개 주문했었는데.
김시율이 저번에 차서준이 나왔던 ‘소소한 하루’를 생각하면서 채팅을 치자.
└ 맞네. ‘소하’에서 우리 차 배우 고추장찌개 해 먹는 거 보고. 저도 다음날 되자마자 나가서 재료 사 와서 바로 해먹었어요. ㅋㅋㅋㅋ
└ 내가 봤을 땐. ‘잘 먹는 친구들’ PD가 그 방송 보고서 섭외한 듯. ㅋㅋ
└ 그냥 복스럽게 잘 먹던데. 형들이 구워준 고기부터 시작해서. 호두과자까지. 우리 차 배우가 먹는 걸 보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먹고 싶어짐.
└ 순식간에 여론 변하는 거 보소. ㅋㅋㅋ
└ 이제 시작해요. 그만 싸우고 얼른 우리 차 배우 보러 가요.
순식간에 옳소! 하면서 여론이 기울어졌다. 그런 사람들의 논쟁이 끝난 건. 6시가 되어 ‘잘 먹는 친구들’ 방송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앞으로 한 달간 여러분과 함께 맛집 탐방을 떠날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메인 PD의 소개와 함께 차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오늘 방문할 맛집 앞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던 터라. 곧바로 일행들이 가게 안으로 이동한다.
이미 그 지역에서 유명한 가게였는지. 방송을 보고 있던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며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 어어? 저기가 나오면 안 되는데···
└ 왜요? 맛집이 아님?
└ ㄴㄴ 저기가 진짜 숨겨진 맛집임. 주인 할머니가 방송 나오는 걸 너무 싫어하셔서. 저기 할머니 손주며느리가 그랬는데. 진짜 출연 제의가 수십 곳에서 왔는데 다 거절했다고 했음.
└ 그런데 갑자기 왜 출연을 결심한 걸까?
└ 저기가 점심, 저녁 시간에는 진짜 줄서서 들어가는 곳이거든. 예전에 저녁에 갔을 때마다 주인 할머니가 손님도 신경 안 쓰고 ‘재벌가 금동이’ 보던 시절이 있었음.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 역시 우리 차 배우. 아니, 금동이. 수십 년 동안 방송 출연을 거부했던 국밥집 할머니조차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배우라니.
진짜 그 지역 사람이었는지.
-아이고! 우리 금동이 아니여!
차서준이 문을 열고 들어감과 동시에. 나이를 지긋이 드신 주인 할머니가 한걸음에 달려와 손을 꼬옥 잡는다.
그 모습을 본 팬클럽 채팅에선 웃음 이모티콘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역시 우리 금동이야. 방송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에도 여전히 금동이라고 불리네.”
그런 장면을 보면서 김시율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먹친 둘에게는 ‘뉘쇼?’하는 표정이었지만. 차서준은 한눈에 알아보았을 뿐만 아니라 격하게 반겼으니까.
-할머니! 할머니께서 만드신 국밥이 맛있다고 해서. 제가 오늘 먹친 형들이랑 맛보러 왔어요.
-그려? 그러면 얼른 저기 앉어. 내가 금방 뜨끈한 국밥 가져다줄 테니께.
금동이에게 뜨끈한 국밥을 주기 위해 주인 할머니가 서둘러 주방으로 사라지고.
테이블에 앉은 차서준이 열심히 짧은 팔을 뻗어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깍두기부터 꺼내서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르네요. 국밥 좀 먹어봤나? 저 사이즈는 많이 먹어본 사람들만 자르는 크기인데. ㅋㅋㅋ
└ 먹친 중 하나가 반찬으로 나온 부추무침 먹으려고 하니까. 차 배우가 화들짝 놀라면서 말리네요.
└ ㅋㅋㅋㅋㅋ 그렇지. 부추무침이 반찬으로 나오긴 하지만. 저걸 수육 국밥에 넣어서 먹어야 진리거든. 차 배우가 진짜 국밥 좀 먹을 줄 아나 본데?
└ 보통 8살이면 국밥 안 좋아하지 않나요? 우리 조카는 국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고개 절레절레 젓고선 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하던데.
└ 차 배우가 괜히 ‘연사모’ 형들과 잘 어울리는 게 아니야. 형들이랑 입맛이 비슷한 거 같음. 아무리 봐도. ㅋㅋㅋ
신기했다. 할머니가 수육 국밥과 함께 서비스라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육을 가져다주자.
-어? 서준이 너 수육 좀 먹을 줄 아는데?
-역시. 사실 작가님들이 여기 간다고 말했을 때. 서준이가 엄청 기뻐했다고 들었거든. 왜 그런지 이제 알겠네.
야무지게 새우젓을 젓가락으로 집어 수육 위에 얹은 뒤. 적절한 크기로 자른 겉절이를 턱하고 올리고선 오물오물 먹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표정 변화.
└ 와, 차 배우 먹는 거 보니까 군침이 도는데?
└ 왜 이리 잘 먹지. 아니, 무슨 CF 한 장면도 아니고. 박규용보다 더 맛나게 먹는 거 같은데?
└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머니 보셈. ㅋㅋㅋ 마치 손주가 차린 음식을 맛나게 먹을 때 보는 표정이심. ㅋㅋㅋㅋ
└ 안 되겠다. 저기 어디에요? 아까 여기에 근처에 사는 분 있지 않았음?
└ 내가 봤을 땐. 오늘 이후로 저분 저기 마음대로 못 감. 우리 엄마도 옆에서 내일 저녁에 저거 먹으러 가자고 하시네.
그건 비단 채팅창뿐만이 아니었다. 방송을 보고 있던 김시율 역시 재빨리 채팅창을 끄고 검색창을 띄웠다.
“가깝지는 않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네비 어플을 켜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하는 김시율이었다.
그때였다.
김시율의 핸드폰이 익숙한 벨소리를 울리며 진동한 것은. 발신인은 바로 그녀의 엄마였다.
“엄마?”
- 딸. 지금 방송 보고 있지?
이미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고서 던지는 질문. ‘재벌가 금동이’를 통해 금동이 팬이 된 엄마였기에, 본가에서도 ‘잘 먹는 친구들’을 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응. 왜?”
-네 아빠가 내일 저기를 꼭 가고 싶으시다네. 우리 딸 내일 시간 괜찮아?
잠깐 핸드폰을 떼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팬클럽 채팅을 확인한 김시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그런데 저기 당분간 사람 미어터질 거 같은데.”
-괜찮아. 네 엄마, 아빠 시간 많다. 딸이 싫다 그러면 아빠랑만 갈 거야.
“알았어. 조금 있다가 준비해서 내려갈게.”
전화를 끊은 김시율은 시계를 한 번.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잘 먹는 친구들’에서 야무지게 국밥을 흡입하는 차서준을 한 번 보았다.
“그래. 가자.”
이것은 비단 김시율의 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재벌가 금동이’를 통해 팬이 된 어머님들이 토요일 6시에 방송을 놓칠 리 없었다.
[그만 와! 점심 조금 지나자마자 재료 다 떨어져서 헛걸음했잖아! 사장님이 넉넉하게 준비했다고 했는데 이 정도로 미어터질 줄은 예상도 못 했단다!]
차서준 효과가 터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