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88화 (88/220)

88화

주우정 감독의 영화가 촬영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제목이 뭐라고?”

“목소리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목소리’가 영화의 제목으로 선정되었다.

“내용은?”

“세상에 버려진 아이가 목소리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에요.”

“역시 주우정 감독의 이야기답네.”

박우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해외 각종 시상식에 초청을 받는다는 건.

상업적인 부분보다 예술적인 부분을 더 신경쓴다는 뜻이었다. 수익에 중점을 둔 한국 영화가 해외 시상식들에 초청받기란 요원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자기가 조금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주우정 감독이?”

“네. 저랑 버스킹을 직접 하는 동안 느낀 것들이 제법 있었대요.”

누군가가 봐주지 않으면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처음 버스킹을 준비하면서 누구 하나 시선을 주지 않는 행인들을 봤을 때 느낀 감정이라고 했다.

저들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기타 소리에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 노랫소리에 걸음을 멈추는 행인들을 보면서 주우정 감독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모두가 한 번쯤은 볼 수 있는 영화 속에 내 생각을 담자. 이렇게 말이다. 그 덕분에 시나리오 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시나리오 한 번 볼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여기 가져왔어요.”

박우형의 요청은 충분히 예상했던지라. 가방에서 ‘목소리’라는 제목이 적힌 시나리오를 자연스럽게 꺼내 박우형에게 건넸다.

“정범이 형도 이 시나리오에 대해 엄청 궁금해하던데. 오늘 촬영 때문에 못 와서 아쉽겠네.”

‘연사모’의 일원인 김정범은 오늘 촬영 때문에 이 자리에 오질 못했다. 그 덕분에 평소보다는 조금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형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보다 서준이 노래 실력에 진짜 깜짝 놀랐었잖아. 귀요미 버스커라니. 서준이 네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보고도 믿지 않았을 텐데.”

옆에 있던 김우승이 마치 신기한 존재라도 보는 듯 나를 요리조리 훑어본다. 대체 이 꼬맹이가 못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시선이다.

“한 달을 넘게 열심히 배웠잖아요.”

“노래라는 게 배운다고 되나. 한 달 배운다고 서준이 너처럼 보여줄 수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가수가 되었지.”

그렇게 김우승과 수다를 떠드는 사이. 묵묵히 종이를 넘기던 박우형이 마지막 장을 끝으로 시나리오를 덮었다.

“어때요?”

“좋네. 왜 서도현 대표가 서준이 네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더라.”

배우 차서준을 위한 영화.

이보다 더 적절한 평가가 없을 시나리오였다.

“거기에 주우정 감독이 고집을 조금 내려놓고 대중성에도 신경을 쓴 거 같고.”

“당연하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서준이를 데리고선. 자기 고집만 부리면 난리가 나지.”

‘재벌가 금동이’를 통해 최고 몸값에 도달한 나였다. 그런 나를 데리고선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간 팬들의 원성을 들을지도 몰랐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한다는 건. 그만큼의 결과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서준아.”

“네?”

“이거 읽어보니까. 음악이 가장 중요한 거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하기로 했어?”

역시나 예리한 박우형이었다. ‘음악’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음악’이다.

“안 그래도 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왜?”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주우정 감독이 엄청 똑똑한 사람 같더라고요.”

주우정 감독이 버스킹을 제안했을 때. 나는 추후에 영화 홍보 수단까지 생각한 것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제작사와 함께 움직인 주우정 감독의 행보는 내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영리한 것이었다.

“귀요미 버스커 영상들 있잖아요.”

“어.”

“그걸 가지고 음악 감독님을 구워삶았더라고요.”

“뭐? 서준이 네가 했었던 그 버스킹 영상들을?”

“네. 처음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힘들겠다고 고개를 젓던 음악 감독님이. 그 영상들을 보자마자 계약서에 도장 찍자고 먼저 나섰대요.”

주우정 감독은 그 영상들을 미끼로 음악 감독을 구워삶았다. 거기에 더해 작곡가들까지.

생각해봐라.

작곡가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내 노래가 빛을 볼 수 있는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가다.

그런데 금동이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또 ‘귀요미 버스커’ 영상으로 엄청난 재능을 보여준 내가 부를 노래란다.

자신의 자식이 이런 최고의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데 거절할 수 있을 작곡가가 있을 리가 없었다.

“역시 주우정 감독이네. 소문으로 퍼진 썰들처럼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

“천재들은 뭔가 다르긴 다르네. 갑자기 무슨 버스킹인가 했더니만. 여기까지 보고서 큰 그림을 그린 모양이구나.”

내 설명을 들은 박우형과 김우승이 멍하니 감탄사만 내뱉었다.

그렇게 ‘귀요미 버스커’ 영상을 미끼로 작곡가들을 순식간에 낚은 주우정 감독 덕분에, 음악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니, 오히려 그 영상들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면서 계속해서 작업물들을 보내주고 있다고 했다.

*

“촬영 기간을 얼마로 잡자고 했다고?”

“최대 2달이요. 그보다 빠르게 촬영 마치겠대요.”

“그게 돼?”

영화 제작사 ‘푸른꿈나무’ 대표 박찬후는 제작 피디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지. 주 감독이니 시간이야 오히려 넉넉할 수도 있겠어.”

그러나 곧 감독이 누구인지 떠올린 박찬후 대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박찬후 대표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제작 피디가 말을 이었다.

“시나리오 잘 뽑혔고. 촬영 준비야 이미 저희가 한참 전부터 해왔으니 문제없고. 후작업도 크게 손이 많이 갈 것도 없으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능이야 하겠지. 그런데 그렇게까지 촉박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이번에 데려온 배우가 누군지 몰라? 차 배우잖아. 차 배우.”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상황이었다. 영화감독 주우정과 함께 벌써 4번째 영화를 만드는 박찬후 대표였으니까.

“처음 섭외한 주연이 누구라고 말했을 때.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니까. 그 금동이가 대체 왜?”

“그렇긴 하죠. 당장 블록버스터급 영화에서도 제안 들어간 걸로 아는데. 그런 좋은 작품들 다 뿌리치고 선택한 게 주 감독님이라니.”

가뜩이나 영화 제작사 푸른꿈나무는 대형제작사도 아닌 중소 제작사에 불과했다.

이번에 캐스팅한 배우가 신드롬 소리까지 듣고 있는 아역 배우 차서준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감독님께서 다시 출품해서 도전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출품? 대체 이번에는 어디에··· 설마?”

주우정 감독의 말을 전한 제작 피디의 말을 곱씹던 박찬후 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6월 초인 지금. 서둘러 촬영을 마쳐 영화를 완성한 다음. 출품을 노릴 만한 영화제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가뜩이나 방금 제작 피디가 한 말 중에 ‘다시’라는 단어가 있었다. 거기까지 퍼즐을 맞춘 박찬후 대표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영화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서두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수상이야 힘들지 모를지언정. 만약 후보에 오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홍보 무대가 없을 테니까.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주우정 감독의 영화에서 잭팟이 터질지도 몰랐다.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어떠냐고?”

잠시 주우정 감독을 떠올려본 박찬후 대표는 곧바로 생각을 말했다.

“반반.”

나머지 두 영화제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감독에게도 적극적이고 관대하다.

과거 주우정 감독이 전작 중 하나인 ‘전당포’로 도전을 한 적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탈락이라는 쓰디쓴 잔을 마셔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나리오 잘 뽑혔고. 또 연기력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차서준이가 있으니.”

“거기에 주제도 좋아요. 솔직히 전 이번에 주 감독님이 사고 제대로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박찬후 대표는 재빨리 핸드폰을 찾았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예. 주 감독님. 우리 피디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바로 한 번 보시죠.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주우정 감독의 목표를 들은 이상. 같이 파트너로 달려야 하는 자신이 더 바쁘게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

‘너에게 다시’, ‘폭군의 세자’, ‘금괴 소동’, ‘재벌가 금동이’. 이 4개의 작품을 통해 모두 성공을 거둔 아역 배우 차서준에 관한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 우리 차 배우 차기작 소식 없나요?

└ ㅋㅋㅋㅋㅋ 저번 달에 금동이 끝남. 금동이가 50부작이었던 걸 생각하면. 우리 차 배우도 좀 쉬어야지.

└ 맞지. 보통 배우들의 작품 텀을 생각하면. 우리 차 배우가 정말 소처럼 일하긴 했네. 고작 6살에 데뷔해서 벌써 4작품이라니.

└ 저는 우리 차 배우가 선택할 차기작이 너무 궁금해요. 어떤 드라마를 선택해서 돌아올지 말이에요.

└ 미니 시리즈로 오지 않을까?

└ 그게 확률이 가장 높음. 일단 캐스팅만 되면 시청률은 보장이 될 테니.

사람들의 예상은 바로 드라마였다. 워낙에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재벌가 금동이’ 덕분에. 캐스팅만 된다면 1화부터 톡톡한 시청률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방송가에서는 차서준을 캐스팅하기 위해. 구름엑터스 대표와 부지런히 연락을 한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 금동이 신드롬은 주인공 아역 배우 차서준. 차기작으로 주우정 감독 영화 선택.

- 주우정 감독과 차서준 영화 ‘목소리’로 만난다. 크랭크인 앞둬.

- 단독 주연으로 캐스팅한 주우정 감독의 ‘목소리’는 어떤 영화?

- 아역 배우 차서준의 ‘목소리’. 유명 작곡가 겸 음악감독 장은석 합류.

아역 배우 차서준이 선택한 차기작은 영화였다. 그것도 차서준 단독 주연, 감독 주우정의 영화.

처음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간단했다. 대체 주우정 감독이 누군데? 그리고 주우정 감독에 대해 찾아본 사람들은 기대감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유명 영화제는 아니더라도. 각종 해외 시상식에 초청을 받은 이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으니까.

반대로 이런 우려도 있었다. 연기력 뛰어난 차서준을 데리고 가서 예술 작품이나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왔다.

“사람들 반응은 어때요?”

“일단 서준이 네가 보여준 것들이 있으니 기대가 된다는 반응들이 압도적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전해주던 서도현이 조금 걱정이 된다는 듯 나를 보았다.

나는 이미 서도현이 무얼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사람들의 기대감에 관한 것.

배우인 내가 그 기대감에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서준아.”

“네?”

“너도 주우정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알겠듯이.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둔 감독이 아니다.”

서도현이 걱정하는 건 하나였다. 아역 배우 차서준의 전작인 영화 ‘금괴 소동’처럼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작품을 거듭할수록 더 큰 성공만을 거둬온 배우가 차서준이었다. 그런 내가 이번 영화를 통해 조금 부족한 성적을 받았을 때를 걱정하는 것이다.

‘재벌가 금동이’로 성적의 정점을 찍었으니. 소속사 대표로서 그 부분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연사모’ 형들과 이야기도 나눈 참이었다. 나보다 형들이 어찌나 걱정하던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삼촌도 주우정 감독님과 만나기 전에 이미 제게 말해줬었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배우 자신도 모르게 기대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 그러는 거다.”

“제 단독 주연 영화잖아요. 새로운 도전으로 생각할래요.”

내 말에 그제야 서도현이 미소를 짓는다. 방금 말속에 담긴 내 생각을 읽은 것이다.

이번 작품의 흥행 여부에 상관없이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촬영하겠다는 것을.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됐다. 너는 이제부터 최선을 다해서 영화에만 집중하면 돼. 홍보나 부가적인 부분에 대해선 삼촌이 최선을 다해줄 테니. 알았지?”

“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이제 남은 건 크랭크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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