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평소처럼 구름엑터스 대표실의 문을 열었으나. 나를 반긴 건 서도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서준아, 왔어?”
“어. 어제 도장도 찍었다면서. 축하해.”
“다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내 축하에 몸 둘 바를 모르면서도 수줍게 고마워하는 건. 바로 사총사의 일원인 김도윤이었다.
그랬다.
나를 만남으로서 배우의 꿈을 활활 타오른 덕분일까. 김도윤이 드디어 조연이라지만 정식으로 드라마에 캐스팅된 것이다.
그것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꿈이라고 했었던. 구름엑터스 소속 배우로 이름을 단 채 말이다. 이제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내 사진 옆에 김도윤이 있게 되었다.
“이제 아역 배우 김도윤입니다. 이렇게 소개하고 다녀야 돼. 그리고 촬영장에서 내가 했던 것처럼 모든 분들에게 인사하고 다니는 거 잊지 말고. 알았지?”
“응. 그럴게. 그보다 서준아. 나 어제 대본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이 살짝 표현이 어렵더라고. 도와줄 수 있어?”
확실히 성장했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김도윤이었다면. 자신이 아역 배우로 정식 데뷔한다는 사실에 방방 뛰었을 텐데.
옆에서 나를 보고 자란 김도윤은 달라졌다. 기뻐하는 건 뒤로 미뤄둔 채. 어제 열심히 분석한 대본을 꺼내 질문부터 던진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 흥분보다는,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벌써들 왔네. 우리 도윤이도 도 배우로 불리는 날까지 삼촌이랑 열심히 해야 되는 거 알지?”
“응! 삼촌, 나 진짜 열심히 할게.”
응? 왜 도 배우야? 김도윤이니까 김 배우 아닌가.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김도윤이 서도현에게 묻는다.
“삼촌. 그런데 나는 김도윤인데 왜 도 배우야?”
“김 배우. 이렇게 부르면 너무나도 흔해 보이잖아. 옆에 있는 서준이가 차 배우로 불리니까. 우리 도윤이는 도 배우로 불리도록 열심히 하자.”
“응.”
조금 이상한 설명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당사자인 김도윤이 좋다는데 딱히 태클을 걸 생각은 없었다.
서도현의 늦둥이 외조카인 김도윤이다. 이미 정식 계약은 회사가 아닌 김도윤네 집에서. 그것도 온 가족이 모여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금 문제가 있긴 했다고.
“근데 삼촌.”
“왜?”
“오늘 할머니가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오래. 왜 자기 전화 안 받느냐고 화내시던데.”
“크흠.”
김도윤의 말에 차마 서도현이 다 설명하지 못하고 헛기침을 한다.
안 그래도 서도현이 매니저로 이 업계에 뛰어들 때부터. 서도현의 집안에선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했다.
지금이야 어디 나가도 성공한 대접을 받는 구름엑터스 대표이지만. 정작 집안에서는 늦은 나이까지 장가조차 가지 않은 채. 워커홀릭에 빠진 노총각으로 보일 뿐이었다.
거기에 늦둥이로 태어나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는 김도윤까지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으니.
“도윤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배우가 된다니까 뭐라 하지는 않으시든?”
“음. 내 손을 꼭 잡고 물어보긴 했어. 정말로 TV에 나오는 배우가 되고 싶은 거냐고. 혹시 삼촌이 꼬드겨서 괜히 헛바람 든 게 아니냐고,”
그렇게 말을 하는 김도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말했어. 나 진짜 꼭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만약 삼촌네 회사가 아니더라도 배우의 꿈을 꾸었을 거라고.”
“녀석.”
서도현의 꼬심에 넘어간 게 아니다. 그저 어릴 적 외삼촌의 손을 잡고 따라간 촬영장에서 본 스타들을 동경했을 뿐.
그 뒤로 배우로 스타의 길을 걷고 있는 날 보면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였다.
대견한 눈길로 늦둥이 외조카인 김도윤을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론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는 서도현이었다.
“도윤아.”
“응?”
“쉽지 않은 길이 될 거다. 지금 옆에 있는 서준이가 항상 네 비교 상대가 될 거고.”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 인연이다.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 ‘연사모’의 형들과 다르게. 또 샛별반 ‘사총사’로서 제법 귀여운 차서준의 친구라고 알려진 김도윤이다.
아마 이번 작품을 통해 아역 배우로 정식 데뷔를 하고 나면. 꼬리표처럼 차서준의 친구라는 비교가 따라올 터였다. 그 꼬리표는 두 친구의 연기 비교로 이어지겠지.
서도현이 걱정하는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아무리 김도윤이 열연을 펼친다 하더라도. 그 비교선상에는 친구인 차서준이 놓여있을 것이다.
아무리 늦둥이 외조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아도. 김도윤이 나를 따라잡기란 요원해 보일 테니. 누구보다 나와 김도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서도현이기에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알아. 삼촌. 그런데 나 진짜 괜찮아. 오히려 내 목표가 저기 하늘 위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는 거잖아. 몇 년이 걸리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옆에 서고 싶어.”
김도윤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고작 8살의 어린 꼬맹이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삼촌이 나한테 그랬잖아. 질투를 하기보단 그 옆에 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나 죽어라 노력할 자신 있어. 그리고 서준이 네가 옆에서 엄청 많이 도와줄 거잖아. 그렇지?”
“당연하지.”
“녀석들.”
어느새 쑥 커버린 늦둥이 외조카를 보면서. 결국 서도현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서준아. 앞으로도 도윤이 잘 부탁한다.”
“걱정 마세요 삼촌. 제가 제대로 굴려서 어엿한 배우로 만들 테니까요.”
“응?”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김도윤의 고개가, 내 마지막 말에 갸웃한다. 잘못 듣지 않았다면. 내 입에서 ‘굴려서’라는 말이 들렸을 테니까.
아주 잘 들었다. 지금까지는 뉴비로서 대우를 해줬던 거지만. 이제는 ‘아역 배우’로서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줘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잠깐씩 얼굴만 비추는 보조 출연자였잖아. 그때와 정식 아역 배우로 데뷔하는 지금이 같아?”
“아, 아니지?”
“그렇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죽어라 노력해야겠지?”
“···그렇겠지?”
“자, 지금부터 시작하자.”
지금까지는 정식으로 배우가 되지 않았기에 놔두었을 뿐이었다. 아직 어렸기에 언제 또 꿈이 바뀔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정식으로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어설픈 연기를 선보이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어디 가서 발연기라도 선보이는 순간. 그 욕은 김도윤뿐만이 아니라 나까지 같이 들을 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절친이라고 할 수 있는 사총사의 일원 김도윤이었으니까.
그래서 가지고 왔다.
“서, 서준아. 그 빨간 모자는 뭐야?”
“본 선생님의 말에 토를 달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대본 캐릭터 분석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대답은 오직 악!으로 대신합니다. 알겠습니까?”
“어?”
“알겠습니까!”
“악!”
연기 레슨을 시작한 나와 김도윤을 보면서. 서도현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금요일 밤 10시. 평소라면 엄마가 하준이를 재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셨을 시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우리 하준이. TV에 형이 나오니까 안 자고 기다리는구나?”
“어엉!”
오늘따라 유난히 눈망울이 생똥생똥한 동생을 안고서 광고들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파에 앉아있는 아빠 역시 마찬가지.
하준이를 안고 있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손에 든 핸드폰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우들이랑 캠핑 촬영이 재밌었다면서?”
내일이 토요일이었기에 아빠의 손에는 맥주도 들려 있었다.
“네. 사실 예능 촬영이라고 해서 크게 기대를 안 했었는데. 생각보다 편안하고 재밌었어요.”
이제는 아빠가 따로 내 스케줄에 대해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회사에서 ‘금동이가 예능 찍었다면서요?’하며 먼저 알려주는 직원들까지 생겼으니까.
물론, 그런 질문을 던지는 직원들은 아빠와 몇 년간 함께 일하며. 내 돌잔치 때 돌 반지도 선물해준 분들이었다.
“야외 캠핑 가보니까. 아직 하준이도 어리고 그래서 힘들겠지만. 조금 더 크고 나면 우리 가족끼리 캠핑 여행가도 엄청 좋을 거 같아요.”
정말로. 아마 바비큐를 구울 때 아빠가 활짝 웃을 테고. 불멍에 오로라 가루를 뿌려주면 하준이나, 곧 태어날 하윤이 모두 우와! 하며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려면 아직 몇 년이 더 걸리겠는걸?”
“맞아요. 하준이가 유치원에는 들어갈 나이가 되어야 캠핑을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그쯤이 되면 정말 우리 가족이 많은 추억들을 쌓을 수 있을 터였다. 야외 캠핑도 가고, 또 해외여행도 가고. 아빠의 휴가만 있다면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조잘조잘 떠드는 내 이야기를 듣는 아빠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반응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당신은 서준이도 가만히 있는데. 왜 그렇게 핸드폰에서 눈을 떼질 못해요.”
“안 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이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찾아보게 되네. 미안해 서준아.”
“아니에요. 사실 형들도 오늘 각자 집에서 사람들 반응들 살펴보면서 본다고 했어요.”
내 말에 아빠 역시 반색을 하며. 그렇지? 하고선 고개를 끄덕인다.
나야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황이라지만. 아직 아빠에게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맛있을 테니까.
“시작한다.”
광고가 끝나고. 화면 속 스튜디오의 5개 의자에 앉은 고정 출연진들이 수다를 떨며 ‘소소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빠.”
“응?”
“사람들 반응 저도 같이 봐요.”
“그럴래?”
내가 아빠 옆에 앉아 핸드폰 화면을 보는 사이. TV에선 ‘소소한 하루’의 고정 멤버들의 오프닝 멘트가 흘러나왔다.
-아니! 이번에 또 차 배우를 불렀다면서. 우리도 같이 데려가주지!
-에이. 연사모 야외 캠핑 여행이었다잖아. 거기에 널 어떻게 데려가.
-그것도 맞지. 괜히 거기 꼈다간 어색한 캠핑 여행되었을지도 모르지.
고정 출연진들이 오른쪽 화면 아래에서 옥신각신하며 떠들고. 차를 타고 형들과 이동하는 중앙 화면의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 서준이 배우 맞네. 김우승이 입에 넣어준 호두과자가 너무 뜨겁다고 하니까. 눈에 동공 지진 일어났다가 자기는 식혀서 먹음. ㅋㅋㅋ
└ 식혜 맛있나 보다. 무심코 한 입 먹은 다음에 눈이 똥그래지는 거 봐. ㅋㅋㅋㅋㅋㅋㅋ
└ 형들이랑 있으니까. 확실히 차 배우가 제 나이로 보이네요. 매번 말도 안 되는 연기력만 보여줘서 몰랐는데.
└ ‘연사모’끼리 정말 친한 게 느껴짐. 무엇보다 형들이 차 배우를 엄청 잘 챙기네요.
여기까지는 엄마도, 아빠도 웃으면서 보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야외 캠핑장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서준아?”
아빠가 멍하니 나를 부르는 이유. 화면 속의 내가 김정범을 구박하면서 텐트 지주핀을 어떻게 박아야 되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차 배우 엄마, 아빠랑 캠핑 좀 다닌 듯?
└ 그렇지. 저거 저렇게 박으면 조금만 힘이 가해지면 팅 하고 뽑혀져 나옴.
└ 그러면 텐트 무너지는 거야! 차 배우 말 틀린 거 하나 없음. ㅋㅋㅋ
└ 옆으로 가선 바비큐 준비하는 박우형에게 불붙이는 법 가르쳐주네요.
└ 뭔가 그림이 반대로 돌아가는 거 같은데. 묘하게 재밌네?
화면 속의 내가 전문가처럼 형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줄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과거 차가 없던 우리집은 저렇게 야외 캠핑을 간 적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의 말처럼 마치 자주 야외 캠핑을 다녀본 것처럼 훈수를 두는 내 모습에 엄마, 아빠가 의아해하는 것이다.
“예능 촬영이잖아요. 가기 전에 야외 캠핑에서 어떤 것들을 알아야 하는지 공부하고 갔어요.”
“저게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저렇게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나?”
아빠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여보. 당신은 우리 서준이를 그렇게 몰라요? 학교에서도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우리 서준이 엄청 똑똑해요.”
누구를 닮아서 똑똑하다며 뿌듯하게 말하는 엄마 덕분에 넘어갈 수 있었다.
지금이었다. 아빠가 긴가민가하며 반쯤 넘어왔을 때. 얼른 화제를 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빠.”
“응?”
“아까도 말했지만 형들이랑 야외 캠핑을 가보니까. 엄청 재밌었어요. 나중에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이랑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 정도로요.”
너무 즐거웠다는 내 말과. 화면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날 보던 아빠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나중에 우리 하준이, 하윤이가 좀 크고 나면. 그때 텐트랑 장비들을 사서 주말마다 캠핑 여행도 다닐까?”
“좋아요!”
그렇게 위기를 무사히 넘겼는데. 그다음 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 우리 차 배우 요리 실력도 미친 거 같은데? 칼질이 왜 이리 자연스러움? ㄷㄷ
└ 차 배우가 아니라 차 천재라고 해야 하나. 옆에 있는 연사모 형들 입이 멍하니 벌어진 거 보셈. ㅋㅋㅋㅋㅋ
└ 심지어 맛있나 본데요? 한 입 먹자마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짐. 리액션이라고 하기엔 너무 깜놀한 표정인데.
└ 옆에 박우형은 한입 먹고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묵묵히 밥까지 말아서 먹고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내가 엄마에게 전수받았다면서 비장의 무기 ‘고추장찌개’를 열심히 완성했을 때였다.
칼질이야 예고편에서 나왔을 때. 잘 나온 그림을 썼다고 둘러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요리를 완성해나가는 모습에서 고인물의 느낌이 물씬 풍겼으니까.
이래서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 했는데. 뉴비들에게 고인물의 맛을 보여주려고 눈이 돌아간지라 깜빡해버리고 말았다.
“하하···.”
잠시 멋쩍은 웃음을 지은 뒤. 저것도 가기 전에 열심히 연습했어요. 애써 믿기 힘든 말을 하며 상황을 넘기는 나였다.
“나중에 우리 가족이 야외 캠핑 여행 가면. 그때 제가 저 찌개를 만들어드릴게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하윤이가 자란 후를 기약하는 공수표까지 남발하면서.
“벌써부터 그날이 기대가 되는데?”
하준이, 하윤이까지 함께 캠핑을 떠날 생각에 미소를 짓는 엄마, 아빠였다.
뉴비 넷과 함께 떠나는 캠핑 여행이라니. 벌써부터 설레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