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86화 (86/220)

86화

“시, 심지어 맛있어.”

“진짜?”

“어. 먹어봐.”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먼저 한 숟갈을 뜬 뒤. 김정범이 멍한 얼굴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반응에 김우승과 박우형이 너도나도 숟가락을 움직인다.

그러고 이어지는 감탄사.

“맛있다.”

“와, 이게 진짜 서준이가 만든 거라고?”

당연한 말씀. 홀로 떠나는 캠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식사였다. 자연 경관으로 힐링을 하고 하루 마지막을 맛없는 식사로 끝낸다? 마무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다.

그렇게 김도경 시절 다년간 숙련된 고인물의 손길로 만든 찌개인데. 맛이 없을 리가.

“신기하네.”

그런 김정범의 반응에 서둘러 덜어준 그릇의 찌개를 맛본 박우형의 고개가 갸웃한다. 마치 이게 대체 왜 맛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거기에 김우승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것도 꽤나 예리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어? 나 오늘 서준이 요리하는 거 처음 보는데. 내가 쟤를 6살 때부터 봤거든. 집에서도 요리를 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던 거 같은데.”

아, 맞다. 뉴비들에게 맛을 보여주기 위해 너무 흥분해버렸다. 적절히 힘 조절을 했어야 했는데. 장인 정신으로 준비하다 보니 최선을 다해버리고 만 것.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야외 캠핑이란 말을 듣자마자 변명들을 준비했으니까.

“배웠어요.”

“배웠다고?”

“네. 형들이랑 다 같이 처음 떠나는 여행이잖아요. 맛있는 걸 해주고 싶어서 엄마에게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우리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한 형들이다. 엄마의 음식 솜씨를 알기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 촬영을 떠나기 전에 엄마에게 배워두었다. 특별히 ‘고추장찌개로’로 말이다.

TV 예능 프로에 나와 아들이 ‘엄마에게 배웠어요.’라고 하는데. 정작 엄마는 내게 가르쳐준 적이 없으면 안 될 테니까.

알리바이는 미리미리. 그것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 법이다.

“서준이네 어머님 손맛이면 인정이지.”

“맞지. 나 처음 서준이네 초대받아서 갔다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저녁 먹고서 깜짝 놀랐잖아.”

“나도.”

그렇게 찌개 맛의 미스터리는 미리 준비한 ‘엄마의 요리 비법 전수’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저녁을 맛나게 먹고 난 뒤. 다음 일정은 바로 야외 캠핑의 꽃인 ‘불멍’이었다.

“이럴 때 촛불 하나 딱 가지고 와서. 서준이 손에 들려줘야 하는 건데.”

무슨 수학여행 온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눈을 감고 집에 계신 부모님들을 떠올려봅니다. 이럴 기세인 김정범을 무시하고.

나는 아까 전 막내 스태프에게 받은 가루가 담긴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걸 본 형들의 눈동자엔 호기심이 떠오른다.

이런. 트랜드에 뒤처진 형들 같으니라고.

“응? 그건 뭔데?”

“이게 불멍 오로라 가루인데요. 이걸 뿌리면 불꽃색이 엄청 예쁘게 나온대요. 형들이랑 캠핑 온다고 해서 가지고 왔어요.”

PPL로 들어온 불멍 오로라 가루였다. 자고로 예능에 출연했으면 협찬 광고에도 열성적이어야 하는 법이니까.

오늘 출연료. 그리고 여행을 오면서 먹은 것들이 모두 이런 광고 덕분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상표가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하며 불꽃 위에 가루를 뿌렸다. 그 환상적인 타이밍에 이주연 PD가 활짝 웃는다.

“오. 뭐야. 나 저런 색깔 나오는 거 처음 봐.”

“예쁜데.”

효과는 확실히 끝내줬다. 주황빛으로 일렁이던 장작불이 마치 오로라라도 되는 것처럼 다양한 빛깔로 변해버린다.

아마 이번 방송이 나가고 나면. 한동안 불멍과 저 오로라 가루가 유행할 터였다. 요즘이 캠핑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은 날씨였으니까.

잠시 불멍을 보며 조용히 사색에 잠겼던 네 사람. 그 침묵을 깬 것은 바로 김우승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서준이 차기작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형들도 이제 차기작들 들어가잖아요.”

“그렇긴 한데. 아마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금동이가 다음으로 무엇을 찍을까. 이거일 거 같은데.”

“아직 준비 단계인지라.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촬영에 들어갈 거 같아요.”

갑작스럽게 사전에 이야기도 나오지 않은 차기작 이야기가 시작되자. 저쪽에서 여길 바라보고 있던 제작진들의 입가가 환희 올라간다.

특히 메인 PD인 이주연 PD의 표정이 해맑다. 아마 이 대화들의 앞부분을 짤라서 예고편에만 넣어도. 본편을 시청하겠다는 사람들이 한가득일 테니.

성공적인 PPL 홍보에 이어, 금동이의 차기작 떡밥까지. 이주연 PD에게 있어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그렇게 잠시 서로 준비 중인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다음 기다리고 있는 일정은 하루의 마무리인 취침이었다.

“야외 취침 미션은···.”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있으면 나 집에 갈래.”

“없습니다. 다 같이 열심히 완성한 텐트 안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잠들 시간이 찾아왔다. 다행히 힐링 여행을 테마로 잡았기에 야외 취침 같은 건 없었다.

아직 8살인 금동이를 데리고선 게임에서 졌다고 야외 취침을 시킨다? 그걸 방송으로 내보냈다간 금동이 팬들에게 항의를 받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잠을 자기 위해 치카치카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왔는데.

“제가 가운데에서 자요?”

“당연하지. 형들이 밖에서 잘 테니까. 서준이 너는 안에서 자.”

내 자리가 정확히 가운데가 되어버렸다. 특히 새벽에 찬바람에 추울지도 모른다며 가장 좋은 침낭을 내게 양보한다.

“서준아. 오늘 캠핑 어땠어?”

“아까 보니까 불멍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던데.”

“맞아.”

야외 캠핑이다. 자리에 누웠다고 바로 잠드는 것이 아닌. 풀벌레 소리를 배경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사실 형들이랑은 자주 보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이번 야외 캠핑도 고생만 하고 오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바깥의 풀벌레 소리가 찌륵찌륵 들려온다. 그리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세 형들이 나란히 누워있고.

“그런데 막상 형들이랑 이렇게 오니까 정말 재밌는 거 같아요. 야외에서 먹는 음식들도 맛있고. 불멍도 좋았고. 그래서 형들이랑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런 힐링 캠핑의 끝은 훈훈한 이야기로 밤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분명 그랬는데.

“드르렁!”

“크어엉!”

“···형들?”

돌아오는 건 훈훈한 대답이 아닌 벌써부터 골기 시작한 코골이였다. 특히 이곳까지 운전하느라 제법 피곤했는지 김우승은 완전 기절 상태.

“잘 자요.”

예능 촬영임을 잊은 채 잠에 빠져든 형들을 뒤로한 채. 나는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 뒤 잠을 청했다.

“으음.”

정신을 차려보니 아직은 해가 뜨기 전 새벽인 모양. 잠깐 몸을 일으키니 정신없이 잠에 곯아떨어진 형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 걷어차고 자네. 감기 걸린다니까.”

잠결에 뒤척였는지 배까지 보인 채로 걷어찬 김정범의 침낭을 다시 잘 덮어준 뒤.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뜨니 바깥에서 고소한 냄새와 함께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일어났어?”

“어린 친구가 제일 늦게 일어나네.”

“이야, 서준이 넌 기절한 것처럼 자던데? 누가 엎어가도 모르겠더라.”

마지막에 김정범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어제 그냥 감기에 걸리게 놔둘걸.

형들의 아침 인사를 받으며. 내가 부스스한 얼굴로 텐트 문을 열고 나섰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맨이 재빨리 달라붙는다.

그리고 형들이 준비하고 있는 아침을 본 순간.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가 보였으니까.

“무슨 아침부터 고기에요?”

“얘가 뭘 모르네. 어제 먹다 남은 아침 고기가 진리지.”

“저기 우형이 형이 라면도 끓이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맛있게 끓일게.”

저쪽 제작진들이 있는 곳을 보니. 아침부터 나오는 그림에 활짝 웃고 있는 이주연 PD가 보인다. 잠을 별로 못 잤는지 눈 아래가 어두침침해도 표정만은 밝다.

“형들.”

“응?”

“어?”

“왜?”

내가 부르자 동시에 이쪽을 향하는 3개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우리 가끔씩 이렇게 여행 떠나요.”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소소한 하루’의 예고편이 공개되고. 그걸 본 사람들에게서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 우리 금동이 예능 나온다는데? 그것도 ‘연사모’ 형들이랑 같이.

└ ‘소하’면 좋은 선택이지. 저번에도 김우승이랑 당일치기 여행 괜찮게 뽑혔잖아. 예고편 보니까 이번에는 힐링 여행 테마로 야외 캠핑 가는 거 같던데.

└ 저 네 사람 조합이 참 신기하긴 함. 차 배우 빼면 같이 작품을 한 적도 한 번도 없는데. 김우승 SNS 보면 어느새 자주 만나는 거 같더라.

└ ‘연사모’가 그냥 서준이 때문에 생긴 모임이잖아. 나라도 차 배우랑 같이 작품 찍고 나면 계속 인연 이어나가고 싶을 듯.

└ 야외 캠핑 기대되네요. 우리 엄마도 금동이 나온다는 소식에 금요일 밤만 기다리고 계심. ㅋㅋㅋ

확실히 기대가 된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예고편 중간에 아역 배우 차서준이 야무지게 요리를 하는 듯한 장면을 본 이들이라면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예고편을 보면서. 엄마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진다.

“서준이가 요리를 그렇게 잘했다면서?”

엄마 역시 예고편 속에서 자연스러운 칼질을 하는 날 보면서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촬영을 가기 전에 가르쳐달라는 내 요청에 찌개를 끓이는 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화면 속에 신중한 얼굴로 도마를 도도도 두들기는 아들에게선 전문가의 냄새가 물씬 풍겼으니까.

원래 고수일수록 고수의 손길을 알아보는 법이다. 내가 봐도 너무 열심히 하긴 했다.

“저거 몇 번 연습하다가 잘 나온 장면 썼어요. 그리고 원래 저런 데서 요리 완성하면. 맛없어도 엄청 맛있다고 리액션할 수밖에 없대요.”

아들의 설명에 잠시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은 엄마는 이내 찌개의 맛이 어땠는지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그렇긴 한데. 엄마도 우리 서준이 찌개가 궁금한걸?”

“그러면 우리 나중에. 동생들과 함께 캠핑을 떠날 수 있을 때 한번 가요. 제가 엄마, 아빠를 위해서 정말 맛있는 찌개를 끓일게요!”

내 말에 엄마가 웃음을 터트린다. 어차피 집에서 내가 요리를 하겠다고 두 팔 걷어 올리고 나서봤자. 칼질에 대한 걱정에 하지 말라고 할 엄마였으니까.

야외 캠핑 때에는 ‘소소한 하루’ 제작진이 준비한 어린이 요리용 칼을 썼지만. 집에는 그런 도구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진짜 농담 아닌데. 정말 나중에 하준이랑 뱃속에 있는 동생까지 훌쩍 크고 나면. 저렇게 우리 다섯 식구가 함께 캠핑 여행을 떠나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저녁.

거실 바닥에 둘러앉은 우리 가족의 얼굴에는 제법 심각함이 떠올라 있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나까지. 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 채 싱글벙글한 건 오직 동생 하준이뿐이었다.

“꺄아!”

동생의 신난 칭얼거림을 배경음 삼아.

“나도 많이 고민했는데. 처음 나왔던 후보가 맞는 거 같아.”

“무슨 소리에요. 요즘 시대에 그런 걸 누가 쓴다고. 차라리 서준이가 말한 게 나을지도 몰라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빠.”

마치 중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사람들처럼. 열띤 토론을 주고받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나였다.

그런 우리 세 사람 가운데에는 노트가 하나 놓여 있었다. 다양한 후보의 이름들이 적혀있는 노트가.

그랬다.

몇 달 뒤면 태어날 우리집 막내.

그 막내의 이름을 정해야 하는 가족회의가 열린 것이다.

꺄아! 하면서 소리치고 있는 하준이의 이름은 저번 회의 때 엄마의 제안에 의해 결정되었다.

“서연이가 어때서? 차서연. 이름부터가 엄청 예쁘잖아.”

“아빠. 그런 이름을 하면. 나중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야! 거기 차가 서연? 하고 놀림 받을지도 몰라요.”

싸늘한 침묵.

나름 회심의 개그였는데. 옆에서 충격에 빠진 엄마의 얼굴을 보아하니 실패한 모양이다.

“서, 서준이가 개그에는 재능이 없구나. 여보, 우리 서준이 말처럼 그런 이름은 나중에 놀림거리가 될지도 몰라요.”

“아, 그건 또 생각을 못 했네.”

그렇게 다양한 이름들을 써놓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엄마, 아빠.”

“응?”

“왜?”

엄청 좋은 이름이 떠오른 것이.

“하윤이 어때요?”

“엉! 어엉!”

옆에서 얌전히 있던 하준이 역시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갑자기 손을 쭉 뻗으며 나를 불렀다. 정말 형을 찾는 거 맞겠지?

“하윤이라. 우리 하준이랑 연년생이니까 하준, 하윤 남매로 할까?”

“마아!”

그게 좋겠다는 듯 손발을 열심히 바둥거리는 동생. 우리집 막내의 이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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