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85화 (85/220)

85화

조수석 앞에 설치된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떠나는 길이라면 저런 카메라가 앞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운전석에 앉은 사람 역시 아빠가 아닌 김우승이었다.

“오랜만에 서준이랑 여행 가는 거 같은데? 서준이가 ‘재벌가 금동이’를 찍기 전에 단둘이 갔던 게 마지막이었던 거 같은데.”

운전대를 잡은 김우승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 그런데 오늘 진짜 야외 캠핑이에요?”

“재밌지 않을까? 연사모와 함께 떠나는 낭만 캠핑! 크.”

“역시 우승이가 뭘 좀 안다니까. 서준이가 아직 어려서 야외 캠핑의 참맛을 몰라요. 밤에 불멍하고 나면 서준이 너 다음에 또 가자고 그런다.”

“인정.”

그리고 내가 앉은 조수석 뒤에는 김정범과 박우형도 있었다.

그랬다.

김우승이 고정 멤버로 활동 중인 예능. ‘소소한 하루’에 출연하여 여행을 떠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연사모’ 형들과 함께.

기왕 떠나는 여행이면 영상으로 기록도 남기고. 출연료도 받으며 가는 게 좋지 않느냐는 김우승의 말에 홀딱 넘어간 결과였다.

“특별히 고기도 잔뜩 가져왔고. 찌개 재료들도 있어. 서준이 네가 좋아하는 소시지도 챙겼는데. 어때? 신나지?”

“···눼.”

김우승이 ‘서준아, 작품도 끝났으니 형들이랑 여행 떠날래?’라고 물었을 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넜어야 했는데.

박우형과 김정범까지 같이 가는 게 어떠냐는 말에 알겠다는 말부터 한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출연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소소한 하루’의 메인 PD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고 들었다. ‘재벌가 금동이’를 끝낸 이후 첫 예능 출연이었으니 말이다.

“다음 휴게소 들러야 돼.”

뒤에 앉아서 창밖을 보던 박우형이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마치 다른 건 넘어가도 다음 휴게소만큼은 꼭 방문해야 된다는 어조로.

“왜? 여기 말고 다음 휴게소가 20킬로만 더 가면 나오는데. 거기가 더 커.”

“요 앞 휴게소 호두과자가 맛있어.”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박우형이 저런 걸 좋아하기는 했었다. 벌집을 건드려서 ‘연기’에 관한 수다에 귀에 딱지가 앉으면서도. 맛집이라며 휴게소를 들렀던 기억이 떠오른다.

“호두과자? 조오치! 서준이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형이 쏜다!”

덩달아 신이 난 김정범이 소리쳤다.

“형. 도착하면 우리 점심 해 먹기로 했잖아요. 많이 먹으면 점심 못 먹어요.”

“아, 맞다.”

허나 그런 김정범의 흥분은 단호한 내 말에 침몰되었다. 준비된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잠을 잘 텐트를 치고. 점심을 만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아마 이주연 PD가 이 화면을 확인하면 활짝 웃을 것이다. 괜히 휴게소에 들러서 잔뜩 먹으면 좋은 그림이 나오질 않을 테니.

“그래도 우형이 형이 말한 호두과자가 궁금하긴 해요. 정범이 형은 대신 마실 거 사 주세요.”

“오케이! 어른들은 커피. 우리 서준이는 식혜로 가자.”

요즘 휴게소에서 식혜를 팔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알았다고 답해주었다.

그랬는데.

“어? 진짜 식혜 팔아요?”

“하여튼. 형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니까. 요즘 휴게소 식혜가 그렇게 인기에요, 인기.”

팔았다. 그것도 커피처럼 컵에 담아 파는 얼음 동동 띄운 식혜가.

내 반응이 맛있었는지 카메라를 든 박우형이 얼굴을 집중적으로 찍는다.

“이야, 서준아. 일로 와. 여기!”

또 호들갑을 떨며 부르는 김정범에 뭔 일인가 하고 가봤더니.

“이거 인형 귀엽다. 선물로 줘야겠어.”

이것저것을 파는 잡화점에서 멍멍거리며 뛰노는 장난감에 눈을 뺏긴 김정범이었다.

“형. 저 이런 장난감 가지고 놀 나이 지났어요.”

“알지. 서준이 너 말고 하준이. 하준이는 좋아할 거 같은데? 나 하준이랑 친해지려면 뇌물을 좀 줘야 돼.”

“맞지. 저번에 하준이가 형 보고서 울음 터트렸잖아. 그러게 왜 처음 만난 애한테 무서운 표정을 짓고 그랬어.”

김우승의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김정범이 팔짝 뛰었다.

“그거 친해지려고 웃긴 표정 지은 거야. 하여튼 얼굴 잘생긴 놈들은 이게 문제에요. 나도 잘생겨서 애기들에게 사랑받고 싶다!”

아마 이건 첨부 화면으로 나갈 거다. 김우승을 보며 방긋 웃던 하준이가 김정범을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영상은.

“호두과자.”

그런 우리의 수다를 보던 박우형이 호두과자를 사야 한다며 말했다. 단 네 글자로.

저 형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아직 목적지까지 거리가 제법 남았기에 김우승이나 김정범도 조심하고 있었다.

괜히 ‘연기’라는 단어를 잘못 꺼내 폭탄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다시 차에 돌아온 우리는 야외 캠핑장을 향해 부지런히 이동을 시작했다.

“형. 입에 넣어줄게요. 아.”

“아, 뜨, 뜨거어!”

뜨겁구나. 겉에가 조금 식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안에 들은 팥은 여전히 뜨거운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형.”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먹을 건 야무지게 한입 베어 먹고 후후 불었다. 우승이 형 미안. 진짜 뜨겁더라.

*

'소소한 하루‘의 이주연 PD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

“PD님.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는데요.”

“오케이. 텐트는 준비 다 됐어?”

“네. 도착하면 바로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점심 만들기는 텐트가 완성되는 대로 시작할 거고요.”

‘재벌가 금동이’가 엄청난 대히트를 치며 종영을 했다. 따로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 아역 배우 차서준인지라. 김우승에게 넌지시 섭외 요청을 했었던 이주연 PD였다.

“우리 프로에서 같이 여행 한 번 가는 거 어때요? 추억도 쌓고 재미도 얻을 수 있게 야외 캠핑으로요. 야무지게 준비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미끼가 잡아 온 결과물들이 매우 훌륭했다. 차서준뿐만 아니라 주렁주렁 낚을 수 있었으니까.

‘연기를 사랑하는 모임’의 멤버들 전원을 데리고 야외 캠핑 여행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예고편이 나가는 순간부터 뜨거운 반응이 터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좋은 그림이 좀 나와야 할 텐데.”

이주연 PD의 그런 걱정은 잠시 후 도착한 차서준 일행에 의해 종식되어버렸다.

사실 특별할 거 없는 힐링을 주제로 한 캠핑 여행이었다. 소소하더라도 시청자들이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볼 수 있는 영상만 뽑으면 되었다.

분명 그랬는데.

막상 시작된 텐트 설치부터 이주연 PD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그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그림의 시발점은 바로 아역 배우 차서준이었다.

“형! 그렇게 치면 이렇게 쑥 뽑히잖아요. 이거 봐요. 내 작은 손으로도 쑥 뽑히네.”

“어어? 어, 그건 맞는데.”

“이렇게 설치하면. 우리 밤에 자다가 텐트 무너질지도 몰라요. 자다가 일어나서 다시 칠 거예요?”

카메라맨이 바쁘게 김정범과 차서준을 잡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텐트를 어설프게 치려고 하는 김정범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전문가 냄새가 물씬 나는 차서준의 케미 때문이었다.

“잘 봐요, 형. 여기를 이렇게 기울여서 땅땅하고 치면.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도 안 빠지지 않겠어요?”

“···서준이 너 군대라도 다녀왔냐? 이걸 어떻게 다 알아?”

“아하하, 우승이 형! 거기는 어때요?”

수직으로 고정핀을 박는 김정범을 구박하던 차서준이 그 말에 움찔하며 쪼르르 사라진다.

그런 차서준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정범이 고개를 갸웃. 그걸 지켜보던 이주연 PD의 얼굴이 활짝 필 수밖에 없었다.

“우승아. 쟤 뭔가 수상해.”

“뭐가요?”

“무슨 8살 꼬맹이가 텐트 치는 법까지 다 알고 있다니까. 그것도 완전 전문가야 전문가.”

구박을 받아 서러웠는지 김정범이 김우승에게 다가가 쪼르르 일러바친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맨이 잡았다.

“불. 잘 안 붙어.”

그 두 사람 너머에는 점심부터 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준비하는 박우형이 있었다.

“번개탄 어디 있어요?”

“저쪽에. 가져다줄래?”

“숯만 하면 원래 불이 잘 안 붙는다고 했어요. 얼른 번개탄 가져올게요.”

잠시 후.

어설프지만 그럴싸하게 완성된 텐트. 그리고 그 앞에서 그릴에 바비큐를 구워 먹는 네 사람이었다.

“서준아. 이거 먹어. 형이 너 주려고 열심히 구웠다. 자, 아 해.”

“아!”

뜨거울까 후후 불어 식힌 고기를 입에 쏙 넣어준 김정범이 툭하고 미끼를 던졌다.

“그런데 서준이 너는 왜 그렇게 잘 알아? 텐트도 그렇고, 보니까 우형이랑 불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무슨 전문가 느낌이 나던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움찔하긴 했지만. 배우답게 금방 표정 관리를 하는 차서준이었다.

“에이, 여기 오기 전에 미리 공부했어요. 왠지 형들이 지금처럼 무대뽀로 올 것 같아서요.”

“그건 맞지. 이 형들은 무슨 준비를 하나도 안 하고 왔어. 반성해야 돼, 반성. 서준이도 미리 공부를 하고 왔는데. 오늘 서준이 없었으면 우리 텐트치고 점심이 아니라 저녁 먹었을걸?”

김우승이 재빨리 툭 거든다. 몇 년을 구른 예능 짬밥이 지금이라 외친 것이다.

분명 이상한 조합이긴 했다. 30대 남자 배우 세 명과, 이제 겨우 8살이 된 아역 배우 하나.

그런데.

“피디님.”

“응?”

“저 네 사람을 보면 꼭 30대 배우 넷이 모인 거 같지 않아요?”

작가의 말처럼 저 네 사람의 조합을 보면. 꼭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 넷을 보는 기분이 자꾸만 드는 이주연 PD였다.

“이거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겠네.”

“네?”

“저기 봐. 아까부터 저 네 사람의 대화 중심에 누가 있는지를.”

“아, 그러네요? 나머지 세 사람의 시선도 그렇고. 차서준을 중심으로 있네요.”

그랬다.

오늘 다 함께 떠난 ‘연사모’가 아역 배우 차서준 덕분에 탄생하게 된 것이란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허나, 저렇게 ‘연사모’가 모여서도 차서준을 중심으로 편안하게 지낸다는 건 의외의 모습이었다. 당장 구운 고기를 차서준의 접시에 수북이 올려주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이거 방송 나가면 반응들 볼만 하겠네.”

*

김도경 시절 홀로 떠나는 캠핑을 즐기곤 했었다. 작품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홀로 마음을 회복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그 결과 엉망으로 텐트를 치는 김정범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열심히 훈수를 두고 말았다.

고인물에게 눈앞에 나타난 뉴비란 참을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심지어 이 자리가 형들과 단순히 떠난 캠핑이 아닌. 예능 촬영임을 깜빡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나 ‘소하’ 하면서 이 PD님이 저렇게 밝게 웃는 거 처음 봤잖아.”

“서준이 덕분에 장면들이 잘 뽑혔을걸?”

“형들. 어디까지 가요?”

이 사람들이 진짜. 본인들이야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다지만. 나는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따라가야만 했다.

“서준이 다리 아파?”

“조금요.”

“어쩔 수 없네. 일로 와.”

영화 촬영을 위해 전문 헬스 트레이너까지 붙었다는 김정범이 나를 번쩍 안아주었다.

“특별 서비스!”

“저 형 내가 봤을 땐. 지금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려는 거야. 자기 운동했다고.”

“인정.”

어쨌거나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도 주고받고.

“그러니까 이번에 내가 차기작을 선택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대화 주제를 바꾸려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은 김정범이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맞지. 사실 서준이가 ‘재벌가 금동이’를 한다고 했을 때. 갑자기 왜 주말 연속극을 하려고 하지? 이렇게 생각했단 말이지. 그런데 서준이가 보여준 대본을 본 순간 알겠더라고. 이거 서준이를 위한 드라마구나. 그래서 내가···.”

‘연기’라는 스위치가 눌려지자 쉴 새 없이 입을 멈추지 않는 박우형이었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도 멈추지 않고 떠들 정도로 입이 닫히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박우형의 ‘연기론’에 대해 들었을까.

“형들. 배고프지 않아요?”

결국 내가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오다가 개울가에서 물장구도 치고. 걷기도 제법 많이 걸었다.

슬슬 허기가 지고, 해도 슬슬 떨어질 준비를 하는데. 정작 박우형의 수다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으니.

“저녁 준비할 사람 가위, 바위, 보 하자.”

“네?”

“좋다 진짜.”

“좋은데.”

이 사람들이 진짜. 아까 앞서가면서 무언가 속닥속닥하더니 흉계를 꾸민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가위, 바위, 보!”

내가 저녁 당번으로 당첨되었으니까. 저쪽에서 제작진들이 웃는 걸 보니. 이거 나만 빼고 다 한통속인 모양이다.

“서준아. 정 안 되면 형한테 도와달라고 해.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나도. 대신 소원 들어주기 어때?”

“좋다.”

다시 차분함을 되찾은 박우형의 마지막 끄덕임까지 보면서.

“후우. 보여줄게요.”

오랜만에 내가 비장의 무기인 ‘나 홀로 캠핑 찌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도도도.

거침없이 움직이는 도마 위의 칼.

고추장 듬뿍. 구워 먹고 남은 돼지고기 한 움큼, 국물을 찐득하게 만들어줄 감자 잔뜩. 그리고 애호박, 양파 송송.

캠핑의 꽃. 한 숟갈만 들어도 술 한 잔이 절로 생각나게 만드는 비장의 무기. ‘고추장찌개’였다.

보글보글.

침이 절로 꿀꺽 넘어가게 만들며 끓어오르는 찌개.

“···아니. 왜 잘하는데?”

그 완성된 요리를 본 형들의 멍한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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