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지상파 3사의 연말 연기 대상 시상식만큼. 아니, 어찌 본다면 그보다 더 권위 있는 메이저급 시상식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백상예술대상’이었다.
“서준이 네가 벌써 백상 후보에 오르다니. 내 눈이 역시 틀리지 않았다.”
그런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신인연기상 후보에 아역 배우 차서준이 올랐다.
후보들이 공개됨과 동시에 차서준의 이름을 확인한 이들의 반응은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역시 차 배우가 후보에 오를 줄 알았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막장 드라마로 후보에 오르는 게 맞아?’라는 부정적인 반응들.
물론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후자 역시 주말 연속극이라는데 집중했을 뿐 내 연기력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모두 삼촌 덕분이죠. 제가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든 생각이 뭔지 아세요?”
“뭔데?”
“삼촌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어서 기쁘다. 또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했고요.”
“뭐? 하하. 고맙다 서준아.”
내 말에 서도현이 세상 행복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 기쁘지 않을까. 아역 배우 차서준을 통해서 구름엑터스 대표 서도현이 가진 능력이 만천하에 알려졌는데.
처음 구름엑터스 내부에서도 확신에 차 움직이는 서도현을 보면서. 거의 모든 직원들이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했다. 내부에서도 그럴 지언데 외부의 시선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들이 서도현의 능력을 입증하고 있었다. 구름엑터스를 넘어 배우들, 더 나아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말이다.
“그렇지. 서준이 네 덕분에 배우들이 가고 싶어 하는 소속사가 우리 구름엑터스가 되었어. 다 촬영장에서 열심히 홍보를 해준 서준이 덕분이지.”
“에이, 뭘요. 삼촌의 능력 덕분에 제가 배우가 될 수 있었는데요. 저는 사람들에게 사실만을 말하고 다녔어요.”
아역 배우로 데뷔한 차서준이 증명해버렸다. 구름엑터스 대표 서도현이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아역 배우 차서준이 사실 이미 탑급을 찍어본 배우의 인생 2회차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니. 날 배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서도현의 공이 맞았다.
“저도 소문 들었어요. 이번에 회사와 계약한 배우도 삼촌이 제안을 하자마자 도장 찍었다면서요?”
“다 서준이 네 덕분이지.”
그 결과가 구름엑터스와 계약한 배우들이었다. 나를 발굴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더 좋은 회사의 문을 두들기려던 이들이. 어느새 망설임 없이 구름엑터스와 계약하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서도현이 다시 내가 신인연기상 후보로 오른 백상예술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그렇고. 올해 서준이 네가 정말 사고치는 거 아니야? 삼촌은 솔직히 신인상 수상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는데.”
“에이. 자꾸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높은 데서 떨어지면 아프다고 했어요. 괜히 기대했다가 안 되면 어떡해요.”
“엄살이다 그건. 최근 몇 년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재벌가 금동이’가 종영된 지 10일 조금 지났다. 이런 상황에서 상 하나 안 챙겨줄 수 있을 리가.”
“그래도 백상은 단순히 시청률 잘 나왔다고 상 안 주는 거 아시잖아요.”
그랬다.
아무리 시청률이 잘 나온다고 할지라도. ‘백상예술대상’은 단순히 시청률로만 상을 주지는 않았다.
‘재벌가 금동이’가 기록한 최고 시청률이 46.5%까지 달성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주말 드라마였다면 그랬겠지. 허나 이번 ‘재벌가 금동이’의 대성공을 견인한 데에는 금동이 역을 연기한 서준이 네 역할이 가장 컸다. 그건 어떤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걸?”
서도현의 말이 맞았다. 단순히 막장만 섞었다 하여 시청률이 46.5프로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시청자들을 TV 앞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만든 매력적인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들이 있었다는 뜻.
낯간지러운 이야기지만.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한 것이 바로 금동이를 연기한 나였다. 오죽하면 금동이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받을 수 있으면 좋은 거고. 못 받아도 괜찮아요. 앞으로 더 좋은 연기를 선보여서 받으면 될 테니까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런 대답을 하면 놀란 눈으로 바라봤는데. 어느새 내게 익숙해진 서도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다른 그 누구보다 ‘차서준’이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내가 가진 특별함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눈앞의 서도현이었다. 엄마, 아빠 앞에서는 항상 조심했으니.
“역시. 서준이 너는 아무리 봐도 네 또래 같지가 않다니까.”
“헤헤. 삼촌을 보고 배워서 그래요.”
“날 보고 배우긴. 매번 서준이 네가 보여주는 그런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기 바쁜데.”
그건 그렇고.
“감독님이 이제 곧 본격적인 영화 촬영에 들어갈 거 같대요.”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아역 배우 차서준이 5번째 작품을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우정 감독의 시나리오가 최종 완성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해온 제작 준비 과정을 통해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주우정 감독이 완성한 시나리오는 나도 읽어봤다.”
“삼촌이 읽어본 소감은 어땠어요?”
내 물음에 서도현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을 꺼냈다.
“배우 차서준을 위한 맞춤 영화. 정확하게는 지금 8살이 된 서준이 너를 위한 영화.”
서도현의 저 말처럼 주우정 감독이 최종 완성한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아역 배우 ‘차서준’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던데.”
시나리오를 읽고 감탄을 터트렸다면서 서도현이 말했다.
*
백상연기대상의 방송이 시작되고. 입장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언급되기 시작한 배우는 하나였다. 8살의 어린 나이로 신인연기상 후보에 오른 아역 배우 차서준.
가뜩이나 신인연기상 시상 순서는 앞부분에 위치해 있기에 그 떠들썩함은 클 수밖에 없었다.
└ 올해 백상에서 우리 차 배우 후보에 오른 신인연기상 수상 가능성 있음? ‘재벌가 금동이’로 미친 활약을 보여줬는데. 되지 않을까?
└ 힘들걸. 백상에서 주말 연속극 시청률 잘 나왔다고 해서 상을 준 적이 없음. ㅋㅋㅋ 재작년에도 시청률 잘 나왔던 것도 백상에서 빈손이었잖아.
└ 그건 안 줄만 했으니 그랬던 거고. ‘재벌가 금동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미쳤었잖아. 그 사이에서도 돋보였던 배우가 우리 차 배우였고.
└ 솔직히 후보들 살펴보니까. 올해 정말 우리 차 배우 신인연기상 노려볼 만한 거 같던데?
└ 노려볼 만한 게 아니라. 지금 적수가 없을 정도임. 괜히 ‘금동이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게 아님. 연기력이 그냥 미쳤음. ㄷㄷ
잠시 후.
백상예술대상을 시청하는 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TV 부문 신인연기상 시상 차례가 다가왔다.
-먼저 TV 부분 신인연기상 부문입니다. 시상에는 전년도 수상자이신 배우 김영웅님, 정은영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작년 수상자들이 무대 위에 나타나 이런저런 말을 꺼낸 뒤. 신인연기상 후보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 우리 차 배우 나오니까 사람들 소리 장난 아니네. ㅋㅋㅋㅋ
└ 인기로는 저기 후보들 중에서 차 배우 이길 사람이 없지. 사실 신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엄청나니.
└ ㅇㅈ 솔직히 차 배우가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이긴 함. 말 그대로 금동이 신드롬 소리까지 들었는데.
└ 후보들 동시에 스크린에 뜨는데. 우리 차 배우 미모가 가장 빛나는 거 머임? ㅋㅋㅋㅋㅋ
-TV 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수상자는 ‘재벌가 금동이’ 차서준님 축하드립니다.
카메라가 수상이 확정된 차서준을 잡아주자. 주변 배우들에게 축하를 받는 모습이 보인다.
차분하게 무대 위 마이크 앞까지 걸어간 차서준이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같이 고생해주셨는데. 그분들이 계셨기에 제가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고마운 서도현 대표님.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엄마, 아빠, 하준이. 곧 태어날 막내 동생까지. 우리 가족 사랑해요!
└ 저거 봐. 쟤 8살 아니라니까. 무슨 수상 소감을 저렇게 편안하게 말하냐. 누가 보면 몇 번이나 저런 상을 받은 사람인 줄 알겠음. ㅋㅋㅋㅋ
└ 몇 번 받은 건 맞지. 재작년 연말 시상식에서 상도 탔었는데.
└ 그래서 사람들이 농담으로 차 배우를 인생 2회차 배우라고도 하잖아. 연기력이면 연기력, 인터뷰 스킬이면 인터뷰 스킬. 팬서비스까지. 그냥 스타가 되기 위해서 타고난 거 같음.
└ 맞지. 빠르게 말하면서도 같이 촬영했었던 스태프들까지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니. ㅋㅋㅋㅋ 이번에도 금동이 촬영 끝나고 서준T를 모두에게 나눠줬다면서.
└ 어? 잠깐만. 마지막에 차 배우가 한 말이 좀 이상한데?
└ 그렇네? 곧 태어날 막내 동생이라고 한 거 맞지? 동생이 또 생겼어?!
시끌시끌하던 채팅창이 주목한 건. 바로 마지막에 차서준이 말한 막내 동생이라는 단어였다.
*
백상예술대상에서 누가 어떤 상을 수상했는지 쏟아지는 기사들 속에서. 정작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기사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아역 배우 차서준의 수상 소감에 관한 기사였다.
- 아역 배우 차서준.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신인상 수상.
- 신인상 수상보다 더 관심받은 차서준의 수상 소감. 곧 태어날 막내 동생에게 사랑한다 말해.
- 동생을 육아하느라 힘든 엄마를 위해 찍은 ‘재벌가 금동이’. 막내 동생을 위해 아역 배우 차서준이 선택할 다음 작품은?
└ 맞네. ㅋㅋㅋㅋㅋㅋ 차 배우가 들어온 많은 제안들 중에서 금동이 선택한 이유가 육아에 지친 엄마 때문이었는데. 그러면 차기작은 뭘 선택할까?
└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서 찍은 드라마로 시청률 46%를 넘김. ㄷㄷ 그렇다면 막내까지 태어나면 대체 어떤 연기를 보여줄 것인가. ㄷㄷㄷ
└ 어? 그러면 ‘피치노’ 한정판 제품은 어떻게 되는 거임? 나 내년에 꼭 사주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ㅠㅠ
└ 올해도 문제없이 출시할 듯. 몇 년이 지나 차 배우가 자라서 ‘피치노’의 광고를 하지 못할 때 문제가 되는 거지. ㅋㅋㅋㅋ
└ 그러고 보니 차 배우가 거의 휴식기 짧게 가면서 차기작을 하던데. 차기작 소식은 없나요?
이번에 신인연기상을 수상받을 수 있게 만든 주말 드라마. ‘재벌가 금동이’가 육아에 지친 엄마를 위해서 찍었다는 건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 아역 배우 차서준이 막내가 생겼다는 기쁜 소식을 수상 소감으로 말함과 동시에. 과연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우리 서준이 덕분에 동생이 생겼다고 전국에 소문이 났네.”
“전 그래서 더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동생이 태어나는 걸 축하해줄 테니까요.”
엄마도 내 말이 맞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 엄마의 손길을 느끼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획들을 세우고 있었다.
무슨 계획이냐고?
여동생이 태어나고. 또 하준이랑 함께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에 함께 하고 싶은 것들.
바로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면.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동생들이 형! 오빠! 하면서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면 어떤 것들을 같이 해야 할까에 대해서 말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여행이었다.
“엄마.”
“응?”
“나중에 막내 태어나고. 몇 년 더 커서 걸어 다닐 때가 되면.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까지 다 함께 가족 여행가요.”
“그럴까? 어디로 갈까?”
엄마는 저기 아래 부산이나 제주도 정도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는 당장이라도 갈 수 있는 곳들이었다. 버킷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먼 곳이 아니란 말씀.
내가 생각한 곳은 바로.
“하와이요.”
“응?”
하와이였다.
과거 김도경 시절 가족들끼리 하와이에 여행 온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었다. 그 얼굴에 떠오른 행복한 표정들을 보면서 말이다.
이번 생에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간다면 나 역시 그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터였다.
푸른 바다. 이국적인 풍경과 처음 보는 먹거리들. 엄마, 아빠 역시 한 번도 해외여행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마 동생들만큼이나 더 행복해할 사람이 엄마, 아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누구보다 가장 행복할 사람은 나일 테고.
그러니.
“동생들이 크고 나면. 우리 가족 다 같이 하와이에 꼭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