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83화 (83/220)

83화

CBS 주말 드라마 ‘재벌가 금동이’의 대장정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모든 주말 연속극이 그러하듯. ‘재벌가 금동이’ 역시 사건들과 막장을 끝내고 하하호호의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삼촌은 금동이가 지금까지 아역 배우 차서준의 인생 캐릭터가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맞아요. 요즘 밖에서도 저를 금동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더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차 배우라고들 불렀는데. 이제는 다들 금동이라고 불러주고 있어요.”

금동이가 시청자들을 TV 앞에서 놓아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만든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힘이었다.

사소한 부작용도 있었다.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어느새 사람들이 부르는 내 이름이 금동이로 변해버린 것.

인터넷상에서도 ‘차 배우’라는 별명과 ‘금동이’라는 별명이 같이 쓰이고 있을 정도였다. 나이 드신 시청자 분들에겐 이제 금동이나 마찬가지였고.

“서준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음 작품을 하고 나면 또 서준이 널 부르는 이름이 변할 거거든.”

그런 부분이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서도현이 나를 보며 안심시키려 말을 꺼낸다.

몇몇 배우들이 한 배역의 이미지를 벗어내지 못하고 굳어지는 경우 때문에 저런 말을 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삼촌. 매번 작품을 찍을 때마다 저를 부르는 이름이 바뀔 거 같아요.”

“그렇지. 다른 배우였다면 금동이 이미지 때문에 걱정했을지 몰라도. 삼촌은 이제 서준이 너한텐 그런 걱정 하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의 배우에 대한 완벽한 믿음이 생긴 서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실제 인생 캐릭터를 만난 배우들의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말이었다.

“주우정 감독님과 다음 영화를 찍고 나면. 또 절 부르는 이름이 바뀌어 있을 거예요.”

자신이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사람들이 ‘금동이’라고 부르지만. 주우정 감독의 영화가 나오고 나면. 그때는 또 영화 주인공의 이름으로 바뀌어 불릴 터였다.

“그러고 보니 버스킹도 끝났다고 했지?”

“네. 슬슬 직접 정체를 물어보려는 사람들이 생겨서요. 정체에 관한 비교 분석 영상도 올라왔고요.”

“안 그래도 그 영상은 나도 봤다. 제법 날카롭던데.”

영상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아역 배우 차서준’일까 집중탐구 하는 어그로 영상을 말이다.

단순 어그로 영상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꽤나 그럴싸한 분석에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전격 비교!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는 정말 아역 배우 차서준일까?!]

└ 여기 분석에 따르면 좀 그럴싸한데? 키가 비슷하고, 모자랑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지만. 전체적인 얼굴형이 차서준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 그러니까. 차 배우가 귀요미 버스커라고 치고. 대체 왜? 가뜩이나 ‘재벌가 금동이’로 금동이 신드롬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차 배우가 왜 정체를 숨기고 버스킹을 함?

└ 그건 맞지. 차 배우가 저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 이유가 전혀 없음. 지금 금동이 시청률이 미쳤는데.

└ 무엇보다 발성부터가 제대로 배운 애인데. 아무리 우리 차 배우가 다재다능이라곤 하지만. 저건 너무 선 넘었지.

└ 왜? 차서준이 차기작과 관련해서 저런 이벤트를 하는 걸 수도 있잖아.

└ 그러니까. 저런 이벤트 자체가 필요 없을 정도의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니까. ㅋㅋㅋㅋㅋ 그냥 차기작 합니다. 이렇게만 인터뷰해도 홍보 효과 개쩔 텐데.

꽤나 날카로운 분석이었다. 다만, 아역 배우 차서준이 굳이 정체까지 숨기면서 버스킹을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 덕분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저런 영상까지 올라온 이상. 더 이상 버스킹을 하다간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너무 높아졌다.

“주우정 감독님도 그만해도 될 것 같대요.”

제작사 측에서도 훗날에 홍보 소스로 써먹기 위해 그만하면 어떠냐는 말을 꺼낸 상태이기도 했고. 더 이상 버스킹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주우정 감독의 말에 멈춘 상태였다.

그 뒤로 주우정 감독은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고 시나리오 마무리 작업에만 몰두 중이었다.

“기대가 되긴 하네.”

“뭐가요?”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서준이 너라는 게 밝혀졌을 때. 그때 사람들이 보일 반응들이 말이다. 완전 난리가 날 것 같은데.”

“헤헤. 사실 저도 기대가 돼요.”

정말로.

*

‘재벌가 금동이’의 마지막 화가 방송되는 일요일이 되었다.

“우리 서준이가 금동이를 겨울에 시작했는데. 봄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끝났네?”

“50부작이니까요.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까 촬영 기간이 엄청 길었어요.”

처음이었다. 과거 김도경 시절에도 미니 시리즈에는 출연할지언정. 이 정도의 장편 드라마에는 출연한 적이 없었으니.

50부작 드라마 촬영은 대장정이라고 표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엄청 긴 기간이었다.

“금동이가 방송한 지 벌써 6개월이나 지나서 그런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지나면 여름이잖니.”

“맞아요. 드라마 하나 찍었는데 반년이 지나가 버렸어요.”

엄마의 말처럼 12월에 시작된 방송이 5월 절반이 훌쩍 지나서야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었다.

그 사이 납작하던 엄마의 배도 어느새 막내가 제법 자랐는지 볼록 나왔다. 시간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엄마의 배였다.

“서준아, 이번 금동이 종방연은 다음 주에 한다고 했니?”

“네. 가평에서 1박 2일로 하기로 했어요.”

아예 1박 2일로 펜션들을 통으로 빌려 종방연을 하기로 한 터라. 오늘 마지막 방송은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보다 몰입하여 ‘재벌가 금동이’를 시청했던 엄마였던지라. 마지막 방송만 남겨두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 엄마가 하준이랑 시장을 갔는데. 오늘 금동이가 끝난다고 많이들 아쉬워하셨어. 엄마도 너무 아쉽고.”

“저도 그래요. 다들 금동이라고 불러주셨는데. 이제 더 이상 금동이가 아니잖아요.”

사실 연장 이야기도 내부적으로 계속 나왔었으나. 작가와 감독 모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보여줄 것들을 다 보여주었으니까.

처음 준비했던 대로 50부작으로 딱 끝낸 덕분에 모두가 박수칠 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 서준이 덕분에 엄마가 지난 몇 달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고마워 서준아.”

“저도 엄마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헤헤.”

이제 엄마, 아빠가 궁금해하는 건 하나였다. 내가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주우정 감독의 영화를 언제부터 들어가는지에 관한 것.

“우리 서준이 영화 촬영은 언제부터 들어간다고?”

옆에 있던 아빠도 궁금했는지 내게 물었다.

“아직 감독님이 시나리오 최종 작업 중이에요. 시나리오도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미 완성되어서 제작사에서 준비 중이니까. 감독님 작업 끝나는 대로 바로 시작할 거 같아요.”

버스킹을 멈춘 이후로. 말 그대로 시나리오 마무리 작업에 몰두한 주우정 감독이었다.

처음 작업실이라고 소개했던 곳에 갔다가 얼마나 놀랐던지.

곧 마무리가 되는 대로 연락을 준다고 했으니. 머지않아 끝날 것으로 보였다.

“어머, 금동이 시작한다.”

엄마,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한없이 많아진 광고들이 끝나고 ‘재벌가 금동이’ 마지막화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방송인 50화 시청률 46.5%.

내가 주연을 맡은 주말 드라마 ‘재벌가 금동이’가 얻은 최종 성적표였다.

*

가파른 언덕 위 구축 빌라 반지하 방. 벽지 곳곳에 곰팡이까지 핀 그 방 안에서 타닥타닥 키보드를 바쁘게 두들기는 이가 있었다.

“흐음.”

잠시 앓는 소리를 내는 남자 주변에는 딱히 살림살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었다.

우웅 소리를 내며 거친 소리를 내는 작은 냉장고 하나. 다 먹은 컵라면 용기들을 쌓을 수 있게 만든 뜨거운 물을 끓이는 커피포트 정도.

짧게라도 낮잠을 자기 위한 침대도 고작 5센티 정도의 얇은 접이식 매트리스가 전부였다.

아무리 낡은 반지하라 하더라도 살림살이가 거의 없는 이유. 그것은 이곳이 주우정 감독의 작업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르륵. 마침 기지개를 핀 주우정 감독의 핸드폰이 거칠게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네. 아, 장소 섭외랑 미팅 날짜 확정되었어요? 잘됐네. 그러면 내가 내일 점심쯤에 방문할게요. 네네. 고생했어요. 박 대표님.”

좋은 소식이었다. 촬영지 섭외가 끝났다는 제작사 대표의 연락이었으니까.

잠시 째깍째깍 힘겹게 움직이는 초침 시계를 바라본 주우정 감독은 이내 타이핑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똑똑. 마지막 타이핑을 끝낸 순간.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오지 말라니까. 건강에 안 좋은데.”

“에이. 감독님도 여기서 작업하시잖아요.”

문을 열어주니 고개를 빼꼼 들이민 것은 차서준이었다. 최근 ‘재벌가 금동이’에서 금동이 신드롬을 일으켰던 아역 배우 차서준.

지난 몇 달간 제법 친해졌는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차서준과 주우정 감독 사이에는 제법 친근함이 느껴졌다.

“나야 여기가 내 작업실이니까 그런 거고. 아, 내가 말했었나? 이곳이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곳이었는데.”

그랬다.

이 낡고 곰팡이 핀 반지하 방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이곳이 영화감독 주우정의 첫걸음이 시작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굳은 다짐을 하셨다면서요?”

“맞아. 이게 사실 아직 어린 서준이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주변 지인들이 다 자리 잡기 시작할 때에도 난 여기 이 반지하 단칸방에 있었단 말이지.”

젊은 날의 자신의 고뇌와 좌절을 함께 했던 장소였다. 훗날에 세계적인 영화제에 자신의 이름을 박는 순간에 여길 떠나자고 다짐했던 장소.

그 장소에서 아직까지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그 꿈을 여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각종 해외 시상식에 초청받는 주우정 감독이었지만. 그에게는 더 높은 꿈이 있었기에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안 그래도 이번 작업 끝나면 여기 벽지도 새로 하려고 하는데.”

자신에게야 친숙한 장소였지만. 어린 차서준에게는 제법 충격적으로 다가간 모양이었다.

건강에 나빠진다며 호들갑을 떠는 저 어린 친구 덕분에. 주우정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이 모두 끝나는 대로 도배를 새로 하기로 결정했다.

“안 해도 괜찮을지 몰라요.”

“응?”

그런데.

정작 도배를 하겠다는 말을 했음에도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감독님이랑 제가 이번 영화로 꿈을 이루면 되잖아요.”

“뭐? 흐흐. 그게 될까?”

“될까가 아니라 되게 만들어야죠. 감독님이랑 제가.”

차서준의 당찬 포부에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만 주우정 감독이었다. ‘진심인데.’라는 차서준의 말을 듣지 못한 채 말이다.

“요즘 귀요미 버스커가 나타나질 않아서 사람들이 궁금해한대요.”

마지막 버스킹을 끝으로 ‘귀요미 버스커’ 활동을 마친 주우정 감독과 차서준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버스킹을 통해 얻어야 하는 영감들을 다 얻었으니. 조금 더 했다간 정체를 들킬 위험도 있고.”

“맞아요. 세상에나. 그렇게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손을 움직이는 습관까지 바꿨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나올 뻔했으니까요.”

“워낙 서준이 인기가 좋아서 그렇지. 얼굴을 가려고 체형만으로 알아볼 정도로 팬들이 많기도 하고. 그만큼 팬들이 서준이 널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니.”

마지막 버스킹 당시 ‘재벌가 금동이’의 방송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역대급 시청률을 자랑하는 만큼, 금동이 팬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태.

그 덕분에 정체가 드러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버스킹을 멈춘 두 사람이었다.

다른 이유 하나는.

“감독님이 제게 그런 문자를 보내셨다는 건. 작업이 끝나간다는 말씀 아니에요?”

“그래. 방금 서준이 네가 문을 두들기기 전에 마지막 작업 끝냈다.”

“정말요?”

주우정 감독의 시나리오가 완성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영감에 필요한 것들은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는 차서준과 함께 버스킹을 통해 모두 얻은 주우정 감독이었다.

그러니 이제 다음 차례로 넘어갈 순서였다.

“이제 시작할 시간인데. 준비되었나요? 우리 차 배우?”

주우정 감독의 물음에.

“당연하죠!”

웃으며 답하는 차서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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