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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82화 (82/220)

82화

‘귀요미 버스커’ 활동을 할 때. 철저하게 주우정 감독과 나, 단둘이서 움직였다. 언제 어디서 사진을 찍힐지 몰랐으니까.

그 덕분에 서도현 역시 사람들이 찍어준 ‘귀요미 버스커’ 영상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저 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나오는 내 노랫소리처럼 말이다.

지난주에 했었던 버스킹 영상을 보던 서도현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서준아. 영화 준비를 위해서라지만. 직접 버스킹을 해보니까 어때?”

“첩보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어요.”

“첩보 영화?”

“네.”

그랬다.

정체를 들키는 순간 미션이 종료되는 첩보 영화처럼.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아역 배우 차서준이라는 걸 들키지 않도록 변장부터 시작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귀요미 버스커’의 활동 시간이 해가 다 진 늦은 저녁 무렵인 것도. 그 정체가 나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 걸음걸이, 손을 움직이는 습관까지. 행동 하나하나까지 ‘차서준’과 달라지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꼭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는 것만 같았거든요.”

“무슨 말인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그제야 서도현에 내 말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귀요미 버스커’가 된 나에게 있어 버스킹은 일종의 트루먼 쇼와 같은 셈이다.

절대로 진실을 들켜서는 안 되는. 모두가 트루먼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닌 내가 모두를 속여야만 하는 연기 무대.

지금까지는 내 연기가 썩 훌륭했는지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영화를 위해서도 앞으로도 들키지 말아야 할 테지만.

“그래서 더 재밌어요.”

“재미있다고? 긴장이 되는 게 아니라?”

“네. 몰랐는데 노래에는 연기와 다른 색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정말이었다. 처음에는 정체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짙었는데. 버스킹 횟수가 늘어날수록 노래에 담긴 매력이 무엇인지를 알아갈 수 있었다.

‘노래’도 마치 ‘연기’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내가 노래에 있어 재미를 느낀 포인트는 그 부분이었다.

“그래? 그러면 나중에 노래도 하나 낼까? 보컬 선생과 이야기를 해 보니 서준이 네가 가진 보컬 재능을 아까워하던데.”

아마 서도현이 저 말을 꺼낸 이유는 당장이 아닌. 주우정 감독의 영화가 개봉된 이후를 노리고 말하는 걸 거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내 노래에 대해 관심이 폭발한 뒤일 테니까. 개봉 이후 노래를 낸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지도 몰랐다.

하지만.

서도현의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제 노래가 정말 필요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노래는 영화 촬영을 하면서 부르는 것들로 충분할 거 같아요.”

“서준이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영화 OST도 서준이 네가 불러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서도현이 깔끔하게 물러난다. 아직 어린아이인 지금 몸으로는 단발성 이벤트라면 모를까. 가수로서 활동하기엔 부족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름엑터스 대표인 서도현이 내가 가진 연기 재능을 두고. 진짜 가수를 하자고 할 리는 없으니.

지금도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는 나였다. 본업인 배우를 뒤로한 채 음악 방송을 뛰어다닐 생각은 없다.

“그래도 나중에. 정말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긴 해요. 생각보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재밌으니까요.”

처음 무심하게 지나치던 사람들이. 내 노래에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다가온다. 노래가 모두 끝날 무렵에는 이대로 보내기 아쉽다는 듯 앵콜 요청까지.

연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때와는 다른 묘한 기분이 들긴 했다.

내 설명을 들은 서도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묘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있는 것이. 또 무슨 좋은 꿍꿍이가 떠오른 듯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주 감독이랑 버스킹을 간다고?”

“네. 감독님이 시나리오 작업이 거의 다 되었다는 말을 했으니까. 아마 몇 번 내로 마무리 짓지 않을까 싶어요.”

“영상을 다 봤는데. 확실히 서준이 네 노래 실력에 비해 주 감독 기타 실력이 부족하긴 하더라.”

“감독님이 기타 연주에 집중하지 못해서 그래요. 연습할 때에는 그것보다는 더 잘 쳤거든요.”

버스킹을 하는 동안 주우정 감독의 기타 소리가 형편없는 건. 그가 기타를 치는데 집중하기보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데 더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 그것을 느껴보기 위한 것이 나와 함께하는 버스킹이었으니까.

슬슬 이쯤이면 됐다는 말이 나온 것이. 조만간 마지막 라이브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김시율은 친구의 부탁 아닌 강요에 의해 산책에 끌려 나온 참이었다.

“나 평소에도 운동한다니까.”

“숨쉬기 운동? 너 그러다가 쓰러져. 주말에는 이렇게 걷기라도 해줘야 사람처럼 산다고.”

“알았어. 어디까지 갈 건데?”

“여기까지.”

친구가 보여준 목적지를 본 김시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손을 잡고 당기는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 그녀였다.

“나 8시까지는 가야 돼.”

“왜? 금동이 때문에?”

“응.”

그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김시율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알겠다는 말을 꺼내는 친구였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해가 저무는 쌀쌀한 한강 공원을 따라 걷던 김시율의 걸음이 멈춘 건.

“어?”

뭔가 익숙한 체형의 아이를 보았을 때였다. 갑자기 멈춘 김시율 때문에 고개를 돌린 그녀의 친구의 입에서도 놀람이 터졌다.

“귀요미 버스커 아니야?”

“귀요미 버스커? 아, 최근에 아빠랑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버스커 말하는 거지?”

김시율 역시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한동안 차서준 팬클럽에서 시끌시끌 이야기가 나왔던 상대인데.

“어? 차 배우?!”

그런 귀요미 버스커를 가까이서 본 순간. 김시율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외침에 순간적으로 아이의 손가락이 움찔했지만. 너무 작은 머뭇거림이었기에 알아본 사람이 없었다. 소리를 지른 김시율조차도.

“왜? 이미 팬클럽에서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더니만.”

“그러게. 그런데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네. 조금 있다가 사과해야겠다.”

다르다.

이미 버스킹을 하는 실제 모습을 본 차서준의 팬들이 했던 말처럼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시선이 가는 건.

“근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말 우리 차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지?”

“으휴. 그 정도면 병이다 병. 너 차서준이 광고한 피자를 대체 얼마나 먹었다고?”

친구의 말에 김시율의 얼굴이 바로 울상이 된다.

“나 브로마이드 추가된 것까지 모으느라. 2킬로나 쪘어.”

“잘한다 잘해. 그냥 다른 사람이 뽑은 거 사라니까.”

“손맛이 달라. 딱 배달받고 나서 개봉을 했는데. 거기서 우리 차 배우 사인이 있는 브로마이드가 나온 순간. 나 비명 질렀다니까. 팬클럽에서도 다들 부러워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 결과로 지금 나랑 운동 나온 거고. 그렇지?”

“···응.”

그렇게 친구와 수다를 떠는 사이. 준비를 마쳤는지 귀요미 버스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에이, 아니겠네.”

어린아이임에도 가슴을 흔드는 깊은 울림을 듣는 순간. 김시율은 저 아이가 차서준일 거라는 생각을 치워버렸다.

“노래까지 잘하면. 너무 사기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금동이 브로마이드 모으다 살쪄가지고. 한강 공원에 운동 갔다가 귀요미 버스커 봄.]

└ 그 버스커의 정체가 차 배우라는 썰이 있던데. 직접 보니까 어땠음?

└ 내가 데뷔 때부터 팬이라 느낀 건데. 좀 다르면서도 뭐랄까 차 배우 맞는 거 같기도 했는데.

└ 했는데?

└ 노래 듣는 순간 아니겠구나 싶었음. 세상에 그 미친 연기력에, 미래가 기대되는 외모에, 춤도 잘 춰. 거기에 노래도 미친 수준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아니겠더라. 너무 현실성이 없어. 영화도 이렇게 만들면 욕먹어.

└ ㅇㅈ ㅋㅋㅋㅋㅋㅋㅋ 귀요미 버스커 나도 직접 본 적이 있었는데. 그냥 당장 오디션에 나와도 될 정도로 잘 부르더라.

└ 나중에 귀요미 버스커가 정체 공개했는데. 짜잔, 차 배우였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

└ 어떻게 되긴. 난리 나는 거지. 당장 앨범 내달라고 구름엑터스에 전화할 거야.

*

“아이고. 금동이를 이대로 보내야만 하다니. 너무 아쉬운데.”

앓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촬영장까지 찾아와 안타까운 눈빛을 금치 못하는 CBS 드라마국 박형철 CP였다.

“김 작가가 연장 안 된다지?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는데.”

“무리에요. 그리고 벌써 차기작 편성까지 다 끝냈는데. 저 맞아 죽을 일 있어요?”

“아까워서 그렇지. 지금 달린 광고가 몇 갠데.”

박형철 CP도 억지라는 건 알고 있을 터였다. 다만, 저 표정처럼 이대로 ‘재벌가 금동이’를 보내기엔 아쉬워서 그러는 것일 뿐.

“차 배우. 차기작도 우리 CBS와 함께 어때? 서 대표에겐 내가 잘 말할 테니.”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온 목적은 저것이었을 거다. 아까부터 옆에 다가와 앓는 소리를 한 것도 저 말을 꺼내기 위한 빌드업일 테고.

후배 PD의 부탁을 받아 내게 은근슬쩍 작품을 들이미는 것.

아마 서도현에게는 이미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했을 터였다. 그러니 배우 본인인 나를 설득하려고 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미 도장을 찍은 작품이 있어서요.”

당장이라도 계약서를 들이밀려는 박형철 CP를 거절한 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중년 배우를 향해 다가갔다.

“마지막 촬영인데 안 아쉬우세요?”

“어휴. 말도 말어. 세상 행복하니까. 우리 금동이는 시장에서도 사랑을 받았겠지만. 나는 식당에서도 밥 먹다가 반찬으로 욕만 먹었어.”

“왜? 연기력을 인정받는 거 같아서 좋다며.”

“처음엔 좋았지. 그런데 연기력이 너무 뛰어났나 봐. 집에서도 안사람이 어쩜 사람이 그리 나쁘냐면서 딸들이랑 그렇게 구박을 해요. 금동이 좀 그만 괴롭히라고.”

중년 배우 김준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김동화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정작 김동화 본인도 비슷한 일들을 경험했으면서.

‘재벌가 금동이’의 시청률이 46%가 넘어서면서. 주말 연속극 시청자들 중에서 금동이를 안 보는 사람이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연기력을 인정받은 덕에 싱글벙글하던 두 중년 배우는. 회차가 지나갈수록 자주 가던 단골 국밥집 할머니에게도 냉대를 받는 일까지 경험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저 두 사람의 표정이 밝은 건.

“저 들었어요. 좋은 소식이 있었다면서요.”

“서준이도 들었어? 하여튼 이 바닥은 말보다 소문이 더 빨라.”

“네! 엄청 좋은 제안들이 많이 들어왔다고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제대로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아침 드라마, 일일 연속극 같은 가벼운 연기가 아닌. 정말 배우의 깊은 연기력이 필요한 역할. 그런 배역들이 두 중년 배우에게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촬영이 끝나고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년 배우들이다. 다가온 기회에 어찌 기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서준이 너도 이거 끝나면 영화 촬영 들어간다면서?”

“네. 지금도 감독님이랑 계속 준비 중에 있어요.”

“나도 영화 하나 들어가기로 했어. 저 웬수랑.”

주우정 감독의 영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다른 영화에 같이 캐스팅되었다는 말.

“조폭과 경찰의 전쟁을 그린 영화인데. 나는 경찰 간부. 동화 쟈는 생긴 것처럼 조폭 간부로.”

“대박! 축하드려요!”

“쉿. 아직 확정까진 아니고. 감독님이랑 내일 만나기로 했으니 소문 퍼지면 안 돼.”

“그렇지. 동네방네 떠들다가 떨어지면 그게 또 무슨 망신이야.”

말은 저렇게 해도. 두 사람 모두 이미 캐스팅 완료된 거나 마찬가지인 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재벌가 금동이’가 지금처럼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이 기득권 악당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두 중년 배우의 연기력 덕분이었으니까.

자고로 진짜 악당을 상대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안타까움과 또 사이다를 느끼는 법이었다.

그런 명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감독이 먼저 연락했다는 건.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준아.”

“네?”

“나중에 우리가 필요할 때가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 금동이를 위해 큰아빠들이 도와줄 테니까.”

“고맙습니다!”

‘재벌가 금동이’를 통해 또 새로운 차서준의 사람들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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