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바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재벌가 금동이’ 촬영. 그리고 주우정 감독과 분장을 한 채 가끔씩 가는 버스킹까지.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진 어린아이의 버스킹 모습 덕분에. 슬슬 각종 커뮤니티에 알음알음 영상들이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정작 그 정체의 주인공인 나는 동생과 함께 우루루 까꿍 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하준아, 우루루 까꿍!”
“꺄아!”
“우리 동생 재밌어?”
“엉!”
누가 보면 1살짜리 동생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겠지만. 동생은 그저 나를 보고 방긋 웃으며 형이라고 부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가끔, 정말 가끔은 동생이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그렇게 동생과 놀아주고 있는데. 안방 문을 열고 하품과 기지개를 하면서 엄마가 나왔다.
“우리 서준이. 동생이랑 잘 놀고 있었어요?”
“네! 엄마는 낮잠 좀 주무셨어요? 아까 엄청 피곤해 보여서 걱정했어요.”
“그러엄. 우리 서준이가 하준이와 놀아준 덕분에 엄마가 꿀잠을 잘 수 있었어요. 고마워 서준아.”
하준이를 돌보면서도 씩씩하던 엄마였지만. 둘째 동생이 서서히 자랄수록 꾸벅꾸벅 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내가 동생과 놀아주며, 틈틈이 엄마가 낮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마아!”
“우리 하준이 배가 고프다고?”
“꺄아!”
“알았어요. 서준아 조금만 더 같이 있어주렴. 엄마가 얼른 하준이 맘마를 만들어 올 테니까. 알았지?”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엄마가 동생의 맘마를 준비하러 간 사이. 나는 동생과 놀아주면서 잠시 집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하더라도 엄마, 아빠가 대궐같이 넓은 집이라고 했는데. 어느새 집안 곳곳이 이런저런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육아용품들이 집안 곳곳을 차지하면서. 어느새 여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집안이 가득 찼다.
“이사를 가야 하나.”
4식구가 살기에는 정말 딱 좋은 크기였지만. 동생이 하나 더 생기면서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막내가 태어나고 크게 되면 자신의 방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가뜩이나 내가 잠자는 방 이외에도 하나를 더 보관용 방으로 쓰고 있는 상태였다.
“어머. 서준아 내일 또 팬들이 보내준 선물이 도착한다고 했니?”
동생 맘마를 가지고 오던 엄마가 어제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내게 물었다.
“네. 회사에서 팬들이 보낸 박스 내용물들을 확인하고 보내준다고 했어요.”
“조금만 지나면 서준이 선물 방이 꽉 차겠네?”
그랬다.
아역 배우 차서준이 6살의 나이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팬들이 보내준 선물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 소중한 마음을 담아 보낸 선물을 막 버릴 수는 없었으니.
심지어 놀이공원에서 받은 내 몸통만한 크기의 인형도 저 방 안에 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 방 하나를 온전히 선물 보관용으로 쓰고 있음에도 서서히 둘 공간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
“응?”
“우리 더 큰 집으로 이사 갈까요?”
돈이야 충분했다. 이미 금동이 신드롬이라 평가받고 있는 나다.
데뷔 3년 차에 지금까지 모은 돈이라면. 대저택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넓은 평수로 이사 가기엔 충분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더 큰 평수의 집들도 있었으니 이사 역시 금방일 터였다.
하지만.
“괜찮아 서준아.”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말을 한다.
“우리 서준이가 그런 생각을 한 이유가 동생이 하나 더 생겨서 그렇구나?”
“네. 필요한 물건들이 더 많을 텐데. 이제 슬슬 집이 꽉 차고 있잖아요.”
“이게 다 우리 서준이 덕분이에요. 연사모 형들이 보내준 선물이 너무 많아서. 엄마가 더 이상 필요한 게 없을 정도에요. 형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줬니?”
“네! 저엉말 고맙다고 꾸벅 인사도 했어요.”
확실히 형들이 지속적으로 보내준 선물들 덕분에 육아에 필요한 고급 제품들은 모두 갖춰진 상태였다. 그러니 더 큰 집이 필요할지도 모를 텐데.
“아직은 괜찮단다. 나중에 우리 하준이랑 곧 태어날 동생이 서준이만큼 커서 자기 방이 필요할 때. 그때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알았지?”
“네! 좋아요!”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정이 많이 들긴 했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집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방금 엄마의 말처럼. 시간이 흘러 동생들이 커서 자신만의 방이 필요해질 때. 그때 더 넓은 집을 생각해봐도 될 터였다.
“엄마랑 동생들 생각해줘서 고마워 서준아.”
“헤헤. 가족이잖아요.”
따스한 손으로 나를 끌어안고 토닥여주자.
“마아! 흐응.”
언제까지 자신을 굶길 거냐는 듯이 시위하는 동생의 칭얼거림이 들려왔다.
“어머! 하준이 배고팠어요? 엄마가 미안해. 얼른 맘마 먹자.”
나를 놓아준 엄마가 자신을 안아주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맘마를 먹기 시작한 동생이었다.
*
‘재벌가 금동이’의 시청률이 44.1%를 돌파했다. 그 덕분에 생긴 부작용도 하나 있었다.
“드라마 시작 전 광고 타임이 더 길어졌다면서?”
“네.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광고 자리가 더 생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완판되었대요.”
“최근 몇 년간 없었던 역대급 시청률이니까. 특히나 단순히 시청률이 좋은 게 아니라. 그만큼의 파급력도 있고 충성도도 높으니.”
내 말에 서도현이 설명을 덧붙였다. 저 말처럼 역대급 시청률을 보이는 ‘재벌가 금동이’ 덕분에. 역대급으로 광고가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광고주들이 아무리 시청률이 높다 한들 효과 없는 광고에 목을 맬 리가 없다. 그 말은 ‘재벌가 금동이’의 광고 효과가 톡톡하다는 뜻.
“서준이 네가 찍은 피자꿈 매출 성장이 엄청나단다.”
“정말요? 안 그래도 피자 시켜 먹고 올라오는 인증샷이 엄청 많이 올라오는 건 봤어요.”
“그렇지. 특히나 어머님들 사이에 금동이가 있는 브로마이드를 모으는 게 유행이 되기까지 했으니.”
한 번에 하나밖에 받을 수 없는 금동이 브로마이드였지만. 어느새 5종류를 모두 모았다는 인증이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그 인증은 곧 내가 광고를 찍은 피자꿈 매출 성장을 의미했다.
“그리고 추가 촬영한 브로마이드도 나올 예정이니. 드라마가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인기가 이어질 거다.”
아직 ‘재벌가 금동이’의 종방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그 기회를 놓칠 피자꿈이 아니었다.
재빨리 우리 회사와 조율하여 추가 브로마이드 제작에 돌입한 것이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벌써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순히 추가 브로마이드 제작은 매력적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보통 이런 이벤트는 확 타올랐다가 빠르게 식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특히 이번에는 서준이 네 사인이 들어간 행운의 브로마이드가 소수 물량으로 포함된다고 하니. 벌써부터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고 하던데.”
한국인이 가장 열광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바로 확률성 뽑기 게임이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금동이 사인이 새겨진 브로마이드를 나만 가지고 있다? 이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특히나 피자 한 판 정도를 주문하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어머니 세대라면 더욱더.
“서준이 너는 그런 생각을 대체 어떻게 했니?”
서도현이 신기한 것을 본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헤헤.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삼촌. 예전에 도윤이를 처음 만났을 때.”
“황금 야광 카드 이야기?”
“네. 사람들은 남들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에 열광하곤 해요. 특히나 브로마이드 열풍을 가지고 온 어머님들에게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 피자라면 쉽게 주문할 테고요.”
서도현에게 피자꿈 측에서 추가 브로마이드 제작 요청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선. 내가 피자꿈 측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황금 야광 카드처럼. 유니크한 브로마이드도 만들어보자고. 그 결과가 바로 내 친필 사인이 들어간 특수 제작 브로마이드였다.
“그거야 서준이 네가 피치노와 한정판 콜라보를 할 때부터 알아봤지.”
단순히 사인 브로마이드로 저런 시선을 보낼 리는 없다.
나를 저렇게 보는 이유는 하나. 그 낮은 확률 뽑기를 선정하는 방법을 내가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맹점 주인도 확인할 수 없도록 한 건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나조차 깜짝 놀랐을 만큼 좋았어.”
“만약 지금처럼 브로마이드 종이를 사장님이 준다면. 자기 지인들에게 빼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하고도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요.”
“그렇지. 이런 이벤트의 가장 큰 문제가. 가맹점 사장님들이 뒤로 빼서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문제였으니까.”
김도경 시절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잡음을 보면서 떠올린 방법이었다.
가맹점 주인이라도 어떤 종류의 브로마이드인지 알 수 없도록 하는 것.
그리고.
“완전히 밀봉되어서 오니까. 처음 뜯어보는 사람도 엄청 두근두근할 거 아니에요. 뽑을 때 손맛이 있을 거예요.”
“뭐? 손맛? 하하.”
내 말에 서도현이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 그리고 서준아.”
“네?”
“부모님께서 동생 성별 말씀해주셨어? 슬슬 삼촌이 선물들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서도현의 말을 듣고 나니 생각났다.
“오늘 병원에 간다고 하셨으니. 집에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막내가 남동생인지, 여동생인지 오늘 알게 된다는 사실을.
*
오늘만큼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날이 없었다. 촬영장에서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한 것이. 김준혁 PD조차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촬영이 끝나고 저녁을 먹자는 김준규, 김동화 두 중년 배우의 제안도 정중히 거절한 채. 나는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엄마! 아빠!”
흥분한 마음에 뛰어 들어가던 나는 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코 자고 있는 동생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으니까.
엄마, 아빠를 따라 병원을 다녀왔을 테니. 잠든 지 얼마 안 된 동생을 깨울 수는 없었다.
“우리 서준이 왔어? 오늘도 고생했어요.”
“아빠는요?”
동생의 등을 토닥토닥해주던 엄마가 물소리가 들려오는 화장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씻고 계셔. 방금 막 들어가셨는데. 서준이도 아빠랑 같이 씻을래?”
“네! 아빠랑 얼른 씻고 나올게요.”
재빨리 화장실로 다가가자. 닫힌 문 너머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콧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나보다 오늘을 더 기다렸던 사람이 아빠였으니.
문을 열자 그윽한 수증기가 나를 반긴다. 그리고 노래까지 부르며 샤워를 하던 아빠가 나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이쿠. 우리 서준이 왔어? 이리 와. 아빠가 뽀득뽀득 씻겨줄 테니까.”
“저도 아빠 등 밀어드릴게요!”
오늘 병원에 다녀온 것에 대해 묻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꾹 참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까지 모두 있는 자리에서 기쁜 소식을 듣고 싶어서.
아빠의 커다란 손이 드라이기와 함께 내 머리를 말려주고 나서야.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거실에 앉을 수 있었다.
“엄마!”
“응? 우리 서준이 많이 궁금했구나?”
“네!”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묻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엄마, 아빠가 웃음을 터트리신다.
그런 아빠의 웃음을 보는 순간. 뭔가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작년부터 엄마를 똑 빼닮은 딸을 낳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아빠였다. 그리고 떠오르는 아까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콧노래를 부르고 있던 아빠의 모습.
어?
“아빠! 엄마!”
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그걸 보던 엄마, 아빠가 미소를 짓는다.
“우리 서준이는 막내 동생으로 남동생이 좋아? 여동생이 좋아?”
엄마의 물음에 나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번쩍 손을 들며 외쳤다.
“여동생이요!”
그리고.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졌네? 우리 서준이에게 여동생이 생겼거든.”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한 아빠가 내게 말했다.
세상에나.
너무나도 행복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