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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80화 (80/220)

80화

이곳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지 벌써 1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말은 슬슬 그 레슨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

가수가 되기 위해 보컬 레슨을 받는 게 아니었으니까. 보컬 레슨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주우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주우정 감독의 영화를 찍기 위한 수준까지의 성장을 끝마쳤으니.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부족한 부분은 기계의 힘을 빌리면 될 테니.

“서준아, 오늘이 마지막 수업인데.”

“너무 아쉬워요. 아직 쌤한테 배울 게 많이 남은 거 같은데.”

“많기는. 서준이 네 성장을 보면서 진짜 깜짝 놀랐는데. 이 정도로 스펀지처럼 배운 학생이 없었어. 더 이상 내가 가르쳐줄 것도 없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차마 보내기 싫은지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이 뚝뚝 떨어진다.

저번 ‘금괴 소동’의 관객수 공약으로 알게 된 춤에 대한 재능처럼. 차서준의 몸이 가진 ‘노래’에 대한 재능 역시 남달랐다.

마치 자동변속기처럼 자연스럽게 고음이 올라갔다. 어떻게 불러야겠다가 아닌. 부르고자 고음을 올리면 쭉쭉 올라가지는 것.

‘이게 재능이라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말이다.

물론, 내가 가진 연기력처럼 압도적인 천재성을 가졌느냐? 그건 아니었다. 다만 이대로 영화 촬영으로 끝내기엔 내가 가진 재능이 아까웠던 모양.

“서준아.”

“네?”

“진짜 가수할 생각 없니? 재능이 너무 아까워서 그래. 가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발성과 음색인데. 변성기가 남긴 하지만 서준이 네겐 가수의 가능성이 보이거든.”

“죄송해요 쌤. 저는 연기가 좋아요.”

한 달 동안 저 꼬심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아직 변성기라는 복병이 남아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몸이 가진 노래에 대한 재능이 엄청났으니.

김도경 시절에 공부했던 흉성이니, 두성이니 같은 발성법 같은 건 재능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부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부르면 그게 자연스러운 탄탄한 발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이라고 평가받는 건 내 음색.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가수를 해보면 어떻겠냐며 꼬시는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단호한 내 태도에 작게 한숨을 내쉰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은 결국 하산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지. 나도 20대 때 가수하겠다고 난리 치다가 집에서 쫓겨났었으니까.”

“근데 제가 본 사람들 중 선생님이 노래를 가장 잘하는 거 같아요! 가수들보다 더요!”

“가수가 되려면 잘 부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거든. 내게 그것이 없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지.”

침울한 분위기는 잠시였다.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금방 털어낸다.

“아참. 나중에 영화 개봉하고 누가 가르쳤냐고 묻는다면. 보컬트레이너 김신웅 쌤이라고 밝히는 거 잊으면 안 된다?”

깨알 같은 자기 홍보 부탁도 잊지 않는 보컬트레이너 선생님이었다.

일부러 실력은 있으나 이름을 알리지 못 한 사람으로 구했다.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테니까.

아마 주우정 감독의 영화가 대박이 터진다면 지난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터였다. 실제로 가르치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기도 했고.

“당연하죠! 나중에 기자들이 물어보면 여기서 다 배웠다고 꼭 3번 강조해서 말할게요.”

“녀석. 고맙다.”

‘재벌가 금동이’의 촬영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어린아이의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준비는 다 됐어요?”

“네!”

주우정 감독과 버스킹을 떠날 준비가 끝났다.

중요한 건 주우정 감독의 시나리오지. 결코 성공적인 버스킹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주우정 감독은 본인이 하려는 작품을 직접 경험해보려는 성향이 있었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팝송들은 연습 다 끝났어요.”

“수고했어요.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문제?

분명 얼마 전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영화 제작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감독 주우정과 아역 배우 차서준의 만남. 그 소식에 제작사는 완성되지도 않은 시나리오로도 오케이를 외쳐버렸다.

가뜩이나 현재 금동이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나였기에 투자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렇게 의아해하면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는데. 정작 주우정 감독의 입에서 나온 것은 허탈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내 기타 실력이 버스킹을 하기에 너무 형편없어요. 사실 부끄러워서 지금까지 차 배우에게도 안 보여주고 계속 연습했는데. 내가 이쪽에는 영 재능이 없나 봐.”

심각하게 말하는 주우정 감독의 표정만 아니었다면 웃을 뻔했다.

정작 본인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지만.

“감독님. 괜찮아요. 우리 영감을 얻으러 가는 거잖아요.”

세상에는 다양한 감독이 있는 법이다. 그나마 이번 영화의 주제가 ‘음악’이라 다행이지.

예전 사채업과 관련된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선 심각한 위험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혹여나 또 미친 짓을 하지 않을까 달려간 주우정 감독의 친우가 아니었더라면. 정말 험악할 꼴을 봤을지도 몰랐다며 웃으면서 말하는데.

저게 천재가 가진 광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가 주우정 감독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긴 했지만 말이다.

“음. 그것보다 조금 더 심한데. 일단 차 배우와 내가 손발을 맞춰봐야 하니. 지금 여기서 한 번 해봅시다.”

“좋아요!”

나의 저 외침은 주우정 감독이 가져온 기타에서 나는 딩딩딩 소리에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저기서 왜 저런 형편없는 소리가 나는데?

예상보다 조금 더 심각한 실력에 사태의 심각성을 나도 깨닫게 된 것.

“괘, 괜찮아요, 감독님. 어차피 우리가 버스킹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는 게 아니잖아요. 감독님과 제가 영감만 얻으면 되잖아요.”

“···.”

제작 준비도 순조롭고. 시나리오 작업도 모두 순풍인데. 이상한 곳에서 침울해지는 주우정 감독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버스킹은 기타는 거의 없다 생각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와 주우정 감독의 목표는 성공적인 버스킹이 아니다. 그러니 같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내가 손발을 걷고 나서야지.

“감독님. 그러면 이렇게 가요.”

“어떻게요?”

“훌륭한 선생님이 있어요. 지금 감독님의 상태도 단 며칠이면 몇 곡 정도는 가능하게 만들어줄 훌륭한 선생님이요.”

저 평범보다 조금 못 미치는 기타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려다간 불협화음이 터질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인 김신웅을 불렀다.

“쌤. 기타도 치실 줄 아시죠?”

“당연하지. 내가 이래 봬도 20대 초반에는 통기타 가수가 꿈이었다.”

“잘 되었네요. 저 감독님이랑 버스킹을 가려고 예정 중인데. 가장 기본적인 팝송으로 기본 코드만 칠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그렇게 예상보다 5일이 더 흐르고 나서야. 나는 주우정 감독과 함께 정체를 가리고 버스킹을 떠날 수 있었다.

*

직장인 최하나는 오랜만에 연차를 썼다. 기절하듯 잠들어 12시가 다 되어 눈을 뜬 뒤. 이불에서 뒹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진 저녁이 다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산책은 빼먹으면 안 되겠지? 살기 위해서 걸어야지.”

혼자서 중얼거리던 최하나는. 결국 한숨을 푹푹 쉬다가 운동을 나가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30대 직장인에게 있어 운동은 자기 관리가 아닌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으니까.

날씨가 좋은 탓인지. 해질녘 서서히 붉어지는 호수 공원은 산책을 나온 이런저런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걷기 운동을 시작한 최하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어린애?’

버스킹을 하려는지 작은 의자를 피고 있는 어린아이였다. 홍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흔한 모습이었다.

다만.

‘버스킹인데 스피커도 없이?’

최하나가 시선을 떼지 못한 건. 버스킹을 준비하는 아이의 옆에 스피커가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마이크도 없었다.

보통 버스킹을 할 때면 작은 휴대용 앰프라도 가져와서 마이크를 놓고 부르곤 하는데.

눈앞의 어린아이는 푹 눌러쓴 모자로 얼굴을 대부분 가린 채 가만히 목을 가다듬을 뿐이었다. 그 옆에는 선글라스를 쓴 기타를 만지는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통기타를 조율하는 그 섬세한 손길에선 뭔가 숨은 고수의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신기한 조합이네?”

그 이상한 조합에 걷던 최하나의 걸음이 멈추었다. 아직까지 저 두 사람을 보기 위해 멈춰있는 사람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몇몇이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지곤 했으나. 이내 흥미를 잃고 걷던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저 모습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 최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실행시켰다.

“혹시 촬영해도 괜찮아요?”

미리 촬영 허락을 구하는 것도 잊지 않고. 아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다라랑.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기타를 튕기며 가볍게 전주를 연주하는 순간.

“뭐야.”

최하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뭔가 엄청난 실력을 보여줄 것 같았던 기타에선 평범한 소리만 울려 퍼졌으니.

아름다운 통기타 소리를 예상했는데. 막상 나온 건 분식집 메뉴마냥 지극히 평범한 기타 소리였다.

“예서야. 저거 잠깐 보고 갈까?”

“별로야. 방금 들었는데 기타 실력이 형편없어.”

오죽하면 잠시 멈춰 섰던 커플이 다시 걸음을 옮길 정도.

그런데.

“I walked alone in the rain~♪”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떠나려던 커플의 걸음이 뚝 하고선 멈췄다.

“오빠. 보고 가자.”

“응? 배고프다며. 얼른 가서 고기 먹자.”

“아니야. 저거 보고 가야 될 것 같아.”

멀어지던 커플이 되돌아와 자리를 잡고. 아이의 노래가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다.

앰프조차 없기에 나직한 노랫소리였지만. 팝송을 듣는 이들의 고개에 리듬을 타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잠시 후.

서너 곡을 부른 버스킹 꼬마가 자리를 정리하자. 구경하면서 촬영하고 있었던 최하나가 재빨리 다가가 물었다.

“혹시 오늘 찍은 영상 인터넷에 올려도 괜찮아요? 만약 안 된다고 하시면 개인 소장만 할게요.”

끄덕.

“된다고요?”

끄덕. 아이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 순간. 옆에 있던 아빠로 보이는 선글라스를 낀 남성이 나섰다.

“올리셔도 괜찮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최하나는 산책을 멈추고 재빨리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호수 공원에서 만난 어린 귀요미 버스커]

└ 뭐야? 꼬마앤데 왜 이리 노래를 잘 부름? 팝송인데 소울이 살아있는데? 아니 첫 소절부터 음색 뭔데!

└ 미쳤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되기 힘든 게 킹반인이라더니. 우리나라 일반인은 어릴 때부터 노래도 끝내주게 잘하네. ㄷㄷ

└ 근데 옆에 기타 치는 아빠인가? 아들의 노래 실력에 비해서 기타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 ㅋㅋㅋ

└ 너무 그러지 마세요. ㅠㅠ 아들의 버스킹 꿈을 이뤄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되게 뭉클한 조합인데.

어린 꼬맹이가 평범한 기타 소리를 배경 삼아 부르는 팝송은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렸다.

물론, 전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알음알음 사람들 사이에 귀요미 버스커라는 이름으로 동영상이 각 커뮤니티에 퍼지기 시작한 것.

그 과정에서 이런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 어? 저거 차 배우 아니에요? 내가 차 배우 찐팬인데 체형이 우리 차 배우랑 너무 비슷한데?

└ ㄴㄴ 아니에요. 저도 차 배우 팬인데. 평소 걸음걸이랑 행동하는 습관이 우리 차 배우랑 달라요. 그리고 우리 차 배우는 춤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졌습니다. ㅋㅋㅋ

└ 맞지. 금동이 연기로 신드롬까지 일으키고 있는데. 춤도 잘 추고 노래까지 잘한다? 세상에 그건 너무 선 넘었지.

└ 저도 차 배우 나오는 일상 영상들 다 찾아봤는데. 얼굴도 가리고 키가 비슷해서 그런 말 나온 거 같아요. 그런데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데요?

└ 차 배우라면 저렇게 꽁꽁 싸매고 저기서 노래 부르고 있을 이유가 있음? 아직 ‘재벌가 금동이’ 촬영이 막바지에 치달아서 바쁘다고 들었는데?

잠깐 귀요미 버스커가 아역 배우 차서준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내 그게 말이 되냐는 사람들의 반응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

“어땠어?”

서도현이 첫 버스킹을 마친 소감을 내게 물었다.

“재밌었어요. 연기할 때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요.”

“그래? 삼촌도 영상을 찾아보니까. 정체를 가렸어도 사람들 반응이 제법 좋더라.”

내가 정체를 숨긴 귀요미 버스킹 영상이 알음알음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었다.

단순히 주우정 감독의 영감만을 위해서 버스킹을 진행한 게 아니었다.

후에 영화가 모두 완성이 되면. 그때 저 귀요미 버스커의 정체가 나였다면서 홍보 수단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애초에 준비 단계서부터 주우정 감독이 기획한 홍보 방식이기도 했고.

“금동이 끝나고. 나중에 홍보 단계에서 저 영상의 주인공이 저인 게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요?”

내 물음에 서도현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주 난리가 날걸? 영화 홍보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난리가 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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