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77화 (77/220)

77화

오늘 야외 촬영은 시장에서였다. ‘재벌가 금동이’ 촬영이 있다는 소식에 시장 사람들이 죄다 몰려온 상태였다.

“아이고. 우리 금동이 엄마가 기억을 잃어서 어떡하누.”

세팅이 끝나기 전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성큼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고 토닥여준다.

놀란 스태프들이 달려오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재벌가 금동이’를 촬영하면서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이었으니까.

가끔은 악역이 아니라 금동이 역을 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큰아버지들을 연기 중인 김준규, 김동화는 등짝도 맞은 적이 있다고 했으니.

“할머니. 우리 엄마 곧 기억 되찾을 거예요.”

“그려그려. 이건 내가 챙겨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께. 가져가서 먹어.”

그렇게 내 손에 사과가 든 봉지를 쥐어주고 나서야 할머니가 사라졌다.

그 모습에 다가오던 금동이 엄마 이지연 역을 연기하고 있는 이설영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서준이 시장에서 완전 인기스타네?”

“옛날에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시장에 갔었는데. 저 금동이가 되고 나서 시장도 마음대로 못 가고 있어요.”

“왜? 오늘 반응 보니까 상인 분들이 죄다 금동이 알아보던데.”

내 대답에 이설영이 고개를 갸웃한다.

“엄마랑 같이 손을 잡고 와서 물건을 사면. 값을 치른 것보다 덤이 더 많아서요.”

“뭐? 정말?”

농담 아닌데. 가벼운 조크라고 생각했는지 이설영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우리를 구경 온 시장 상인 분들이 열심히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아직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제법 시간이 남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팬서비스를 해야지.

“촬영 준비가 다 끝나기 전까지 사인해드릴게요.”

“참말이여? 우리 금동이가 사인을 해준다고?”

“네. 대신 촬영 시작하면 안 돼요. 이해해주실 수 있죠? 헤헤.”

“당연하제. 어여 줄들 서. 방금 금동이가 한 말 들었제? 저기 계신 감독님이 촬영 시작한다고 하면 사인도 끝이니까 떼쓰지 말고.”

촬영 장소에 일찍 도착했기에. 기다리던 상인 분들에게 모두 사인해드리기에 시간이 충분했다.

주말 드라마,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기억 상실’이 ‘재벌가 금동이’에서도 펼쳐졌다. 그것도 한 사람도 아닌 주인공 두 사람 모두에게서.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다시 불타올랐다. 허나 그 불타오름은 시청률 하락이 아닌 상승이라는 아주 좋은 불길이었다.

“나는 작가님이 수정한 대본 처음 받았을 때. 이거 감당이 되나? 하고 깜짝 놀랐잖아.”

“에이. 누나랑 제가 있는데 왜 놀라요. 작가님이 그러셨어요.”

“뭐라고?”

“누나랑 제 연기력이라면. 이런 전개도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고요.”

실제로도 그랬다. 소폭 하락하던 시청률이 다시 등반을 시작한 것.

거기에 방금도 보지 않았던가. 나를 금동이라고 부르면서 힘내라고 사과까지 주고 가시는 시청자이신 할머니를.

“서준아.”

“네?”

“그런데 준비 안 해도 괜찮아?”

이설영이 나를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지금 말하는 준비란 간단했다.

“바로 큐 들어가면 눈물 연기를 해야 되는데. 지금 너무 해맑아서 걱정이 되는데.”

바로 기억을 잃은. 정확하게는 준양 그룹과 관련된 기억만 잃은 엄마를 또다시 찾아온 금동이를 연기해야만 하기 때문.

지금까지와 다르게. 작정하고 시청자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장면인지라. 이설영이 저렇게 걱정하는 거였다.

“괜찮아요. 누나가 잘 이끌어주면 저 금방 펑펑 울 수 있어요.”

“그러면 내가 서준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될까.”

이번 씬은 달랐다. 지금까지는 준양가에서 쫓겨난 며느리이자 엄마로서 금동이를 바라봤다면. 오늘만은 낯선 아이를 보듯 금동이를 볼 터였다.

그런 엄마를 향해 금동이 혼자 시청자들에게 뭉클함을 넘어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야만 했다.

“서준이. 준비 다 됐어?”

“네! 감독님.”

“너무 부담감 가지지 않아도 돼. 배경음 들어가고 편집 좀 만지면 최대한 좋은 장면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런 걱정은 김준혁 PD 마찬가지였는지. 내 옆으로 다가와 나를 안심시킨다.

모두가 나를 토닥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내 연기에 따라 ‘재벌가 금동이’가 흔한 막장 드라마로 치닫느냐. 아니면 시청자들에게 남은 20화 동안 TV 앞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느냐가 결정될지도 몰랐으니까.

40프로라는 시청률은 그만큼 높으면서도. 또 언제든지 내려올 수 있는 수치였다.

*

김준혁 PD는 구경을 온 상인들에게 사인까지 마친 차서준을 보면서 실소를 삼켜야만 했다.

‘애한테서 탑급 배우들에게만 보이는 여유를 느끼다니.’

지금까지 ‘재벌가 금동이’를 촬영한 감독이기에 차서준이 연기 천재란 건 안다. 조연출부터 시작해 10년 이상을 굴렀지만. 차서준 같은 아역은 본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감정 씬을 앞두고 있음에도 보이는 저 여유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조연출 시절, 촬영을 같이할 기회가 있었던 당대 최고의 톱스타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서준아. 이해했지?”

“네! 걱정 마세요.”

특히나 디렉팅에 막힘이 없었다. 김나희 작가가 제법 어려운 장면들을 만들었기에 걱정이 제법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본 촬영이 시작되고 나니 그런 걱정 따윈 필요 없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아, 아줌마.”

“응? 누구니? 못 보던 아인데. 입고 있는 옷을 보니 이런데 올 아이가 아닌데?”

김밥 재료를 사러 온 시장에서 마주하게 된 금동이와 금동이 엄마 이지연. 허나 기억을 잃은 그녀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데.

“김밥집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불러봤어요.”

“그러니? 엄마는 어디에 가시고 혼자 있어.”

걱정이 담긴 이지연의 말에 금동이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린다.

‘미쳤네.’

그런 차서준의 연기를 모니터 너머로 보고 있던 김준혁 PD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차서준이 출연을 결정한 이후부터 그전까지의 연기들을 모조리 살핀 김준혁 PD였다.

그런 차서준의 연기들 중에서 눈앞에서 보이는 금동이 같은 연기는 없었다. 그 말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연기를 펼치고 있다는 뜻.

자신도 놀랄 정도인데. 화면 너머로 차서준의 연기를 만날 시청자들은 경악할지도 몰랐다.

“커엇!”

김준혁 PD가 오케이를 외침과 동시에. 잠시 고개를 숙여 눈을 슥슥 비빈 차서준이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며 해맑게 웃는다.

“쟤는 진짜 물건이라니까.”

“그 아는 지인 중에 ‘폭군의 세자’ 촬영팀에 있던 친구가 있는데. 거기서 연기 똑딱이 스위치 있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대요.”

“하긴. 그거 아니면 말이 안 되지. 방금 전까지 이설영이랑 웃고 떠들다가. 큐 사인 한 번에 눈동자 돌변하는 거 봤지?”

카메라 감독과 조명 감독의 대화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준혁 PD였다.

무엇보다.

“아까 제 사인 못 받으신 분이 계시면. 이동하기 전에 마저 해드릴게요. 대신 장비 치우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이쪽으로 와주세요.”

인기 연예인들만 보여주는 팬 다루기를 보면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저 팬서비스.

‘재벌가 금동이’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 중에는 저 차서준의 팬서비스도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저렇게 해맑은 미소와 함께 사인까지 받고 난다면. 주말마다 저 금동이를 보기 위해 TV 앞으로 가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

이 차서준의 몸에는 숨겨진 뜻밖의 재능들이 있었다. 영화 ‘금괴 소동’의 관객수 공약으로 내걸었던 딩기리딩 춤도 그중 하나였다.

심지어 그냥 잘 추네 수준의 재능도 아니었다. 한때 정상을 찍었던 아이돌 ‘유니온’의 리더 김우승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의 재능이었다.

“서준이 너만 아니었다면 이쪽 길로 가보라는 말을 했을 텐데. 너는 진짜 재능이 있어. 거참 말이 안 되는데.”

이런 말을 하며 헛웃음까지 흘렸던 김우승이었다.

차서준이 가진 재주들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장, 자장 우리 동생~ 아주 잘도 잔다~”

또 하나의 놀라운 재능.

그것은 바로 이 목소리였다.

“어엉···.”

손으로 가슴을 살짝 토닥이며 자장가를 불러주자.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보던 동생의 눈꺼풀이 서서히 잠긴다.

동생이 코 잠들자. 그런 나와 동생을 바라보던 엄마가 조용히 내게 속삭인다. 혹여나 목소리에 겨우 잠이 든 동생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우리 서준이가 자장가만 불러주면 하준이가 코 잠드네.”

“평소에도 노래 불러주면 엄청 좋아해요.”

“엄마한테도 가끔 노래 불러달라고 하는데. 막상 불러주면 고개를 홱 하고 돌려버려요. 엄마 상처받게. 우리 하준이가 형 노래만 좋아해.”

“정말요?”

“그러엄.”

먼저 동생이 선곡을 신청할 때도 있었다. 짧은 팔로 나를 툭툭 치면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는 것.

참 신기하게도. 다 똑같은 옹알이인데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느껴질 때가 있었다.

꺄아 하며 천사처럼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그깟 노래쯤은 10곡도 불러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서준이가 노래를 정말 잘하네?”

처음에는 장난식으로 불러줬기에. 엄마도 그저 형이 동생을 놀아주는 재롱잔치로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좋아하고. 또 자장가를 넘어 이런저런 동요와 가요들을 불러주자.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깜짝 놀라며 말한 것이다.

“정말요?”

“그러엄. 서준이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서 과자를 선물로 받았어요.”

“헤헤. 동생이 좋아하다 보니까. 노래를 자주 불러서 더 잘해지는 거 같아요.”

어느새 잠들었던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 동생이 나를 보며 손발을 바둥거리고 있었다.

“엉! 어엉!”

왜 자기만 빼고 엄마랑 나랑 즐겁게 놀고 있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러니 얼른 사죄의 의미로.

“노래 불러달라고?”

“꺄아!”

내가 3곡을 더 불러주고 나서야. 다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에 드는 동생이었다.

*

“반가워요, 차 배우. 나는 영화감독 주우정이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아역 배우 차서준입니다.”

나는 주우정 감독과 단둘이 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저쪽에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점은 주우정 감독이 노트북 가방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오늘은 가벼운 미팅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또 한 가지 더. 내가 이 방을 들어선 순간부터 주우정 감독의 시선이 바쁘게 나를 살폈다. 내가 자신의 머릿속에 구상 중인 캐릭터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서도현 대표에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이번에 영감 하나가 떠올라서 준비 중이었거든요. 차 배우가 거기에 어울리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연기력이야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나였다. 실제로 4인 4색의 연기 비교 영상은 해외까지 입소문이 퍼진 상태.

그렇다면 연기력에 관한 걸 보고 싶다는 게 아니다.

“대표님께 말씀 들었어요. 음악을 주제로 하는 영화를 준비하신다고요.”

“하하. 맞아요. 확실히 소문처럼 또래 아이들과 다르네요. 차 배우는.”

주우정 감독과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사람.

천재다.

“발성을 보아하니 음율감 있는 딕션 좋고. 말하면서도 표정이 풍부하니 다양한 감정을 소화할 수 있겠네요.”

마치 발성 몇 점. 표정 몇 점. 점수를 매기듯 말하던 주우정 감독이 아차 싶은 얼굴로 사과를 한다.

직업정신으로 냉철하게 분석하던 상대가 아직 어린아이라는 사실이 그제야 떠오른 모양.

“미안해요. 내가 일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사족을 못 써서. 주변에서도 안 좋은 습관이라고 하는데 고쳐지질 않네.”

“괜찮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확실히 해외 시상식에 단골로 초청되는 이유가 있었다. 오직 ‘영화’만을 생각하며 지낸다는 걸 방금 대화로도 유추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요. 내가 이번에 영화 하나를 준비 중이긴 한데. 방금 차 배우의 말처럼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란 말이지. 특히 ‘노래’.”

잠시 후 확인할 내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우정 감독은 다른 대안을 찾으려고 할 터였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이런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서도현이 나를 이곳까지 홀로 보낸 이유.

그건 휘둥그레진 눈. 파리라도 들어갈까 걱정될 정도로 벌어진 입. 서도현이 이미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서도현 대표에게 어떤 노래를 간단하게라도 연습해 와달라고 부탁했는데. 했어요?”

했다.

“바로 시작할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주우정 감독을 보면서.

나는 망설임 없이 호흡을 삼키며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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