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75화 (75/220)

75화

주우정 감독이 당장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고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시놉 얼개만 써놓으셨대요.”

“그러면?”

“일단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는데. 그거 소화할 만한 아역 배우가 저밖에 없는 것 같대요. 그래서 직접 만나보고 결정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무조건 해야지!”

과묵하던 박우형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다른 감독도 아닌 주우정 감독이다. 당장 저 박우형에게 문자만 보내더라도 뛰어갔을지도 모를 정도로 배우에게 있어 매력적인 감독.

물론 박우형이야 이미 차기작에 도장을 찍었으니 안 되겠지만. 그만큼 연기에 진심인 배우들이 꼭 같이하고 싶어 하는 감독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일단 한번 만나기로 했어요. 만약 생각했던 거랑 제가 다르면 시놉에서 엎어질 거라면서요.”

내 말에 김정범의 고개가 갸웃한다. 이미 같이 ‘금괴 소동’을 촬영하면서 내 연기력을 아는 김정범이다. 그러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겠지.

“서준이 너라면 그냥 무조건 오케이 아니야? 내가 주우정 감독이래도 서준이 네 연기를 보고 나면 계약서부터 내밀 텐데?”

“심지어 서준이 널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떠올린 아이디어라며.”

박우형 역시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탠다.

하지만.

“연기력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 주우정 감독님이 생각하는 주제가 ‘음악’이래요.”

“음악?”

“역시 주 감독님은 톡톡 튄다니까. 이번에는 음악이라니. 이건 아무리 서준이의 연기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힘들 수 있겠는데?”

연기력만이라면 문제가 될 리가 없었다. 아니, 차라리 저 음악의 주제가 악기였다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를 텐데.

“심지어 음악 중에서도 노래에요.”

“어이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노래라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정범이었다. 그런 우리를 보던 김우승이 툭 하고선 질문 하나를 던진다.

“그런데 서준이가 노래를 잘했나? 춤이야 저번에 공약 영상을 봐서 잘 추는 걸 아는데.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아픈 데를 찌르고 그래. 그러고 보니 서준이 노래 실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나도.”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형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이대로 두었다간 이 자리에서 재롱 잔치라도 열어야 할지도 몰랐다.

“형들.”

내가 거절하려 했지만 이 사람들의 태도가 단호하다. 그렇게 구석에 몰리던 그 순간.

띵동.

“어? 음식 왔나 봐요.”

때마침 도착한 배달 음식들이 나를 구했다. 그제야 꼬르륵거리는 배를 확인한 김정범과 김우승이 재빨리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주문한 음식들이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메뉴 하나가 추가로 왔다.

“피자네요?”

분명 중국집에서 시킨 것들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는데. 도착한 배달원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배달원이 꺼낸 피자 박스에는 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 서준이가 광고도 찍었는데. 당연히 이걸 먹어야지.”

“옳소. 인증샷 얼른 찍어서 올리자.”

“브이.”

찰칵. 박스 위에서 환히 웃는 금동이. 그리고 ‘연사모’ 세 형들과 나. 순식간에 핸드폰 안에 우리가 담긴다.

최근 ‘재벌가 금동이’가 대박이 나면서. 피자 광고를 하나 찍긴 했다.

“저번에 이야기 들어보니. 여기 체인점 몇 군데에서 시켜 먹어 본 다음에 광고 찍었다면서?”

“네. 금동이 촬영 이후 어머님들이 저를 좋아해 주시는데. 괜히 절 보고 시켰다가 실망하면 안 되잖아요.”

“나도 우리 서준이 마인드 보고 배워야 할 거 같아.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마치 신기한 것이라도 보는 사람처럼 김정범이 나를 본다. 그러더니 뭔가 알아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쳤다.

“너 인생 2회차 맞지? 내가 볼 때 쟤는 2회차로 다시 살아가는 애라니까. 그러면 저 말도 안 되는 연기력도 설명이 된다고!”

“형.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피자 먹어요.”

“미안.”

피자 박스에는 내 얼굴이 크게 박혀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브로마이드까지 증정하는 광고였다.

광고를 받기 전에 배달과 포장으로 몇 군데 대리점에서 먹어본 다음. 모두 기본 이상 한다는 걸 확인한 다음 광고를 찍었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김우승의 표정에, 피자를 먹던 김정범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 말을 잇는다.

“우승이 넌 요즘 차서준 효과 몰라?”

“차서준 효과? 우리 서준이 광고 찍으면 대박이 나긴 하지.”

“그런데 이번 서준이 피자 광고가 아주 초대박이 났어요. 요즘 우리 부모님도 이거 모으시더라. 여기 브로마이드 모으는 사람 없으면 나 이거 가져간다?”

김정범이 이거라고 한 건 브로마이드였다. 총 5종류인가 나왔다고 들었는데.

‘또 가지고 있는 게 나왔네.’라고 하는 것이 브로마이드를 모으기 위해 피자를 시켜 먹은 것이 처음이 아닌 모양.

“서준아. 이거 혹시 종류별로 다 있어? 집에서 하나가 안 나온다고 꼭 좀 구해달라고 하시는데.”

“없어요. 공정함을 위해서 저도 엄마, 아빠랑 시킨 다음에 모으고 있어요.”

“이런.”

정말이었다. 내 지인이라고 5종밖에 안 되는 브로마이드를 뿌린다면. 힘들게 피자를 시켜 드신 팬들은 뭐가 되겠는가.

무엇보다 이런 이벤트에는 차별성 없는 공정함이 생명이었다.

“그보다 금동이 효과라니?”

“우리 서준이가 이거 피자 광고 찍고 나서. 아주 매출이 초대박이 났다잖아. 심지어 금동이 하는 주말이 되면 주문이 폭주해서 배달이 밀릴 정도래.”

“거의 ‘폭군의 세자’ 찍을 때 우형이 형의 인기 급인가?”

김우승의 말에 김정범이 고개를 젓는다. 무슨 그런 아쉬운 소리를 하냐는 듯이.

“그때는 젊은 여성 팬들이 우형이를 좋아한 거고. 지금 금동이는 어머니 세대들에게 있어 최고의 아이돌이라고.”

“나도 기사 봤어. 자식들이 대신 어플로 주문해드린다고.”

박우형도 광고 관련 기사를 봤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우리집에서도 엄마, 아빠가 브로마이드를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같은 사진이 나오면 얼마나 아쉬워하시던지.

심지어 브로마이드 안의 나와 같은 포즈를 취해달라며 사진도 몇 장이나 찍었을 정도였다.

*

김시율은 아역 배우 차서준의 팬으로서 ‘재벌가 금동이’를 실시간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차서준과 다르게 이번 주말 드라마는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었다.

- 시율아. 엄마가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했는데.

“왜 엄마? 부탁할 거라니?”

- 그거 있잖어. 옆집 사는 영순 아줌마가 그러는데. 그 집도 딸이 시켜줘서 그거 받았다더라.

“그거? 그게 뭔데?”

갑자기 토요일 낮부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알 수 없는 선문답 같은 말을 꺼내면서.

- 아니. 그거 있잖아 그거.

“아니.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뭔데?”

보통 아무리 옆집에 사는 영순 아줌마가 자랑을 하더라도 별말 하지 않는 엄마였다. 심지어 취직한 다음 명품백을 사줬다고 자랑을 들어도 사치라며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렇게 전화까지 걸어서 한다는 건 그만큼 엄마가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 우리 딸 금동이 안 봐? 금동이 팬이라며.

“당연히 보지. 내가 엄마한테 우리 차 배우 나온다고 꼭 보라고 했잖아.”

- 엄마는 주말마다 네 아빠랑 같이 주말 연속극은 꼭 챙겨보고 있지.

여기까지 대화가 나오자. 순간적으로 김시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엄마. 설마···.”

모녀지간임이라 그럴까. 딸이 자신이 원하는 걸 알아차렸다는 걸 안 엄마의 목소리가 밝아진다.

- 그래. 그거. 요즘 아줌마들 만나보면. 자식들이 하나씩 시켜줘서 그거 몇 장씩들 가지고 있다더라.

‘그거’라는 비밀이 풀린 순간. 김시율은 그만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브로마이드 말하는 거지? 우리 차 배우. 아니, 엄마한텐 금동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금동이 브로마이드.”

- 역시 우리 딸이야! 총 5종류가 있다는데. 중복이 되면 아줌마들이랑 바꿀 수 있으니까. 꼭 좀 시켜줘.

“알았어. 언제 시켜줄까?”

- 지금.

보통은 몸에 좋은 영양제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한사코 손을 저은 엄마였지만. 이번만큼은 조금이라도 빨리 받고 싶었는지 당장 보내달라는 말을 한다.

“나 집에도 같은 거 2장씩 2개 있는데. 다음 주말에 집에 갈 때 가져갈까?”

- 우리 딸은 타지에서 잘 지내나 걱정했는데. 피자 너무 많이 먹지 말어. 몸에 안 좋아.

“피자가 몸에 안 좋은데. 엄마는 브로마이드 5종류 언제 다 모으게?”

- 네 아빠 주면 돼. 안 그래도 TV에 금동이가 나오는 피자 광고 보더니. 저거 시켜 먹자고 난리도 아니야. 피자 맛도 제법 괜찮다더라. 역시 우리 금동이가 광고하는 피자는 맛도 좋을 것 같지 뭐니.

그랬다.

이건 비단 김시율의 집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재벌가 금동이’의 금동이가 나오는 피자 브랜드 ‘피자꿈’ 광고가 나간 뒤.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정확히는 금동이의 얼굴이 새겨진 피자 박스와, 함께 따라오는 금동이 브로마이드 때문에.

이미 김시율의 방에도 금동이가 있는 피자 박스가 5개나 있는 참이었다. 엄마에게는 하나 줄여서 말한 것일 뿐.

“지금 바로 주문할 테니까. 여기서 계산까지 다 해서 보낼 거니 그냥 받기만 해.”

- 역시 우리 딸밖에 없어. 다음 주에 오면 또 먹자.

엄마의 그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고만 김시율이었다.

보통은 오랜만에 집에 내려오는 딸을 위해서 맛난 음식들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금동이 브로마이드를 모으기 위해 피자를 먹자고 한 것이다.

어플을 켜서 엄마 집으로 피자를 보낸 김시율은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 갑자기 엄마에게 연락이 왔는데. 금동이 브로마이드 주는 피자 시켜달라고 함. ㅋㅋㅋ

└ 어? 님네 집도 그랬음? 나도 저번 주부터 주말마다 피자꿈 피자 시켜드리는 중. 브로마이드 같은 거 나오면 동네 아줌마랑 바꾸기도 하시던데? ㅋㅋ

└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심지어 우리집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나가서 브로마이드 바꿔옴. ㅋㅋㅋ 교환하러 나가면 금동이 팬인 아줌마가 대신 내보낸 아저씨가 나온대. ㅋㅋㅋㅋㅋㅋㅋ

└ 나 피자 안 좋아하는데. 저것 때문에 외식은 무조건 피자가 되었음. 치킨 먹고 싶은데. 엄마가 금동이 다 모아야 하다고 안 된대. ㅠㅠ

└ 우리 엄마는 5개 다 모으고서 아줌마들에게 자랑 엄청 하셨어. 박스도 포즈가 3종류나 있다면서? 엄마 덕분에 박스마다 금동이 포즈 다른 거 알게 됨. ㄷㄷ

└ 지금 엄마들에게 있어 금동이는 톱스타야. 주말 8시에 시장에 가면. 시장 할머니들도 죄다 금동이 보느라 손님 와도 시큰둥함.

가히 어머님들에게 있어 ‘금동이 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인기였다.

*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늦은 시간까지 촬영이 이어졌던 터라. 아빠가 나보다 먼저 퇴근했을 시간대였다.

보통은 내가 삐빅삐빅 하고 현관문 도어락 버튼을 누르자마자 나오곤 하셨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반응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한걸음에 거실로 달려갔지만.

“어엉! 꺄아!”

몇 시간 만에 나를 본 동생이 빵긋 웃으며 반길 뿐이었다.

그리고.

“이거 정말 어쩌면 좋아. 농담처럼···.”

“그러니까 그날 맞는 거 같은데. 이 소식을 들으면 우리 서준이가 충격을···.”

살짝 열려있는 안방 문 너머 수군수군하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려온다.

똑똑.

내가 안방 문을 두들겨 집에 왔음을 알리자. 문 너머 화들짝 놀라는 엄마, 아빠의 반응이 느껴졌다.

“우, 우리 서준이 왔니?”

“오늘도 고생했어. 배고프지? 엄마가 저녁 줄게.”

당황함을 숨기며 부엌으로 향하는 엄마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본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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