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CBS 주말 연속극 ‘재벌가 금동이’의 첫 성적표가 나왔다.
그 성적표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전 주까지 방송되던 전작의 마지막 시청률이 24.6%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종영되었으니까.
그리고.
나온 성적표는 모두를 웃게 만들기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1화 스타트 시청률이 22.3프로라. 이보다 더 좋은 시작이 어디 있을까. 고작 2화 만에 전작 시청률을 넘어섰고,”
“촬영장에서도 1, 2화 시청률 나온 거 보고 깜짝 놀랐대요.”
“그렇겠지. 첫 시작은 전작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데. 주말에 나온 시청률은 오히려 앞길에 꽃길만 남았다는 걸 보여주었으니까.”
“안 그래도 감독님이랑 작가님 얼굴에 웃음꽃이 폈어요.”
정말로.
월요일 촬영을 위해 세트장에서 만난 김준혁 PD와 김나희 작가의 얼굴은 그보다 더 해맑을 수가 없었다.
서도현의 말처럼 아무래도 첫 주의 방송 시청률은 전작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1화 시청률 22.3%, 2화 시청률 24.7%라는 성적은 앞으로 꽃길만 남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 1화 시청률 22.3% 시작. ‘재벌가 금동이’의 성공적인 스타트.
- ‘재벌가 금동이’ 24.7% 돌파. 2화 만에 아역 배우 차서준 효과 제대로 입증했다.
- ‘재벌가 금동이’ 아역 배우 차서준. 성공적인 안방극장 데뷔.
└ 역시 우리 차 배우 ㄷㄷ ‘폭군의 세자’ 이환과 비슷한 연기 보여줄 거라 생각했는데 틀렸네. 말 그대로 재벌가 사람이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네. ㄷㄷ
└ 현대판 귀족가 아이가 뭔지 제대로 보여줌. ㅋㅋㅋ 그보다 서약서 보고 나서 엄마 만났을 때 입술 떨리는 연기 봄?
└ 나 그거 보면서 소름 돋았잖아. 어떻게 4번의 작품을 하는 동안 각각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도록 연기를 할 수가 있지? 그것도 고작 7살의 어린 배우가?
└ 그래서 우리가 서준이를 차 배우, 차 배우 하고 부르는 거 아니겠음? 또순철이라지만 언제나 제대로 보여주는 재벌 회장님. 차서준이 보여주는 재벌가 손자. 두 사람의 케미가 제대로임. ㅋㅋ
└ 우리 엄마가 주말만 기다리시는 거 보니까. 이번 ‘재벌가 금동이’도 제대로 터질 듯?
└ 이미 터졌어요. 주말 동안에 실시간 검색어 차지했고. 다음 주에 30프로 넘어가느냐, 그 다음 주에 가냐 마냐 수준이에요.
성공적인 스타트에 일제히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팬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
김나희 작가가 10화까지 제대로 전개에 힘을 주었다는 걸 생각하면. 돌아오는 주말에 30프로 언저리에 도달할지도 몰랐다.
“오늘 오후에도 촬영 있다면서?”
“네. 급하게 장면 하나가 추가되긴 했는데. 오히려 놀랄 정도로 엄청 좋았어요.”
“작가는 탄력 받으면 대본이 쏟아지는 사람들이거든. 아마 김나희 작가도 시청률 영향을 제대로 받았을 거다.”
“맞아요. 어제도 잠깐 작가님이랑 통화했는데. 요즘 잠도 안 자고 글만 쓰고 있다고 했어요.”
오히려 김준혁 PD가 김나희 작가의 건강을 걱정했을 정도였다. 첫 방송이 나간 주말이 지났을 뿐인데. 눈 밑에 짙은 다크써클을 달고 왔으니.
김나희 작가의 얼굴은 피곤에 찌들었는데. 그 눈동자만큼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심지어 월요일에 세트장에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홱홱 돌리는 것이. 무슨 약이라도 한 줄 알았었다. 약을 하긴 했다. 시청률이라는 엄청난 도핑을 했으니.
“거기에 김나희 작가가 서준이 널 보물처럼 생각한다니. 잘됐다.”
“대본이 수정될수록 대사나 지문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수정이 될수록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면 문제가 없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나를 번쩍 안아 들면서. 지금처럼만 보여 달라는 김나희 작가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던 나였다.
“이번 ‘재벌가 금동이’를 하면서. 서준이 네가 얻는 게 생각보다 많네.”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졌으니까요.”
아역 배우 차서준은 데뷔 이후 정확히 4작품에 출연했다.
‘너에게 다시’, ‘폭군의 세자’, ‘금괴 소동’, ‘재벌가 금동이’. 이걸 모두 본 팬들 중 누군가가 저 4개의 작품들에서. 연기한 모습들을 비교 편집한 영상으로 올렸다.
- 차 배우의 4인 4색의 연기 비교. 이게 같은 사람이라고?!
└ 와씨.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까 확연히 느껴지네. 그냥 전부 다 다른 사람들 같음. 같은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들이라곤 느껴지지가 않네?
└ 놀라운 건. ‘폭군의 세자’ 이환과 ‘재벌가 금동이’의 금동이를 비슷하게 연기할 거라는 예상들이 많았는데. 아예 결이 다른 연기를 보여줌.
└ 그래서 지금 영화감독들이 안달이 났다잖아. 탑급 배우들도 저렇게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연기가 쉽지 않은데. 고작 7살 아역 배우가 보여주고 있으니까.
└ 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보여줘도 아직까지 검증론 나오는 게 꿀잼임. 아마 나중에 차서준이 할리우드에 진출해도 검증론 계속 나올 듯. ㅋㅋㅋ
└ 고작 7살인데 할리우드는 무슨. 한때 반짝였다가 폼 무너지고 사라지는 배우가 한둘임? 그냥 운이 좋은 거지.
└ 영상 안 봄? 운이 좋다기엔 4명이 다 다른 아이처럼 느껴지잖아. 세자 이환이랑 금괴 소동 지호는 얼핏 보면 몰라볼 정도임.
댓글로 싸우는 사람들의 반응이야 하루이틀이 아니었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었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서준아. 댓글들 봤니?”
“네. 갑자기 영어 댓글들이 달려서 놀랐어요.”
“그래. 아무래도 해외 팬들이 네 연기에 깜짝 놀란 모양이다.”
그랬다.
지금까지는 내 연기력에 대해서 국내 팬들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런데 이번 4인 4색 연기 영상이 공개된 뒤에 외국인들도 관심을 갖게 된 모양.
“그거 외국 한 인터넷 방송인이 영상 리뷰를 한 모양인데. 그 방송인 인기가 제법 되어서 난리가 난 것 같다.”
갑작스럽게 외국까지 내 영상이 알려질 이유가 없었다.
방금 서도현의 말처럼 외국의 유명 인터넷 방송인이 저 영상에 대한 리액션을 했고. 그 결과 경악한 외국인들이 유입된 것.
“이거. 우리 서준이 벌써부터 해외 진출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영어 공부는 잘하고 있지?”
“네! 작년부터 열심히 배우고 있었잖아요.”
“안 그래도 이야기는 들었다. 벌써 자연스러운 대화도 가능할 수준에 올라섰다고.”
구름엑터스와 계약을 맺은 뒤. 서도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외국어 강사들을 소개시켜주는 일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배우라면 분명 해외에 진출하게 될 거라면서. 어릴 적부터 외국어 회화 준비를 시작한 것.
이미 김도경 시절에도 할리우드까지 진출했었던 나다. 영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가능했고. 다른 언어도 기본적인 소통은 그냥저냥 가능했다.
덕분에 작년에 처음 강사들과 만났을 때. 외국어 초보처럼 보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일단은 지금 촬영에 집중하고. 내년에 촬영이 끝나면 또 어떤 좋은 제안이 들어올지 기다려보자.”
“네!”
*
좋은 소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힘든 촬영에 잘 먹어야 힘이 난다면서 부른 김우승이 ‘피치노’ 관련 이야기를 꺼냈다.
“서준이 네가 입고 나온 옷들이 매진되고 있다면서?”
“네. 재벌가 금동이 옷들을 DQ 패션에서 협찬했으니까요. 지금 몇몇 매장들에선 옷이 없어서 못 팔고 있대요.”
“다른 사람도 아닌 서준이 네가 입었으니까. 금동이 자체가 귀티 나는 캐릭터인데. 또래 나이의 아이를 둔 부모라면 그거 못 참지.”
내가 ‘재벌가 금동이’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DQ 패션의 이유란 사장이 협찬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1, 2화에서 금동이가 입고 나온 피치노’의 협찬 옷들은 백화점들이 오픈함과 동시에 불티나게 팔렸다고 들었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물량이 소진되어서 추가 생산에 들어갔대요.”
“이거. 서준이 몸값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TV만 틀면 CF 광고들이 줄줄이 쏟아지는 박우형이 말했다.
“형들도 곧 차기작 한다면서요?”
“그래. 나는 내년쯤 들어갈 거 같은데.”
“어. 나도.”
김우승은 수목 미니 시리즈. 그리고 박우형은 영화를 고려 중이라고 했다.
“우승이 형 하려는 캐릭터 보니까. 형이랑 잘 어울릴 거 같아요.”
“그래? 서준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안 그래도 박우형도 같은 말을 했었는지. 얼굴이 활짝 피는 김우승이었다.
아직 연기 경력이 길지 않은 김우승이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쾌활하면서도 내면에 상처를 가진 캐릭터는 김우승에게 있어 맞춤형 배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너에게 다시’ 때보다 더욱더.
“우형이 형은 갑자기 왜 영화에요? 저번까지만 하더라도 조금 더 쉬었다가 한다면서요.”
“이게 갑자기 들어와서. 지금 신중하게 생각 중인데. 서준이 네가 보고서 어떤지 말해줘.”
박우형이 기다렸다는 듯이 시나리오를 꺼내 건네준다.
“어? 이거 장준병 감독님 시나리오네요?”
“서준이 네가 장준병 감독님을 알아?”
알다마다. 올해 중순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 세상의 유명 영화, 드라마들을 찾아보고 있던 나였다.
좋은 제안이 들어왔을 때. 작가, 연출이나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바로바로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장준병 감독은 자신만의 예술성을 추구하면서도 상업성을 놓지 않는 감독이었다. 놓지 않는다는 거지 상업적 성공을 추구한다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박우형에게 있어 누구보다 좋은 감독일 터였다. 박우형처럼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들에게 있어 같이 하고 싶게 만드는 정말 뛰어난 감독이니까.
다만.
“소속사에선 괜찮대요?”
“아니. 그럴 리가.”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지금 몸값이 최고조에 이른 박우형이다. 그런 소속사 배우가 갑자기 예술 작품을 찍겠다고 하니 기겁했겠지.
당장 2백억짜리 대작 영화의 주연 자리도 들어왔다고 했으니.
“형 생각은요?”
“일단 할 생각. 생각보다 이 시나리오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몇 없을 거 같거든.”
“그 말은 할 수만 있다면 대박이란 거지.”
여기서 말하는 대박이란 몇백만 관객 돌파. 이런 류가 아니었다.
배우 본인의 만족. 그리고 국내 시상식 및 해외 시상식에서 수상 정도의 대박을 의미했다.
박우형 본인이야 연기에 살고, 연기에 죽으니 하고 싶겠지만. 소속사에겐 핵폭탄이 터진 거나 마찬가지일 거다.
“회사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 이거 읽어보고 소감 좀 말해봐.”
“네. 지금 바로 볼게요.”
흔히 말하는 ‘연기를 사랑하는 모임’. 농담처럼 굳어진 이 모임에 나랑 형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간단했다.
연기 이야기, 그리고 작품에 관한 대화. 그 후자에는 각자에게 들어온 대본 및 시나리오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보자.
박우형이 건넨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한 나였다.
잠시 후.
“어? 형 이거 진짜 괜찮은데요?”
“그래? 서준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확실한 거겠지. 그거 한다.”
내 대답과 동시에 출연을 결심해버린 박우형이었다.
이거 설마.
이 형 또 나중에 잘 되었을 때 이상한 말 하는 거 아니겠지?
*
캐롤송이 거리에 울려 퍼진다. 과거 김도경 시절에는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거리에서 사라졌었는데.
Jingle Bells~ Jingle Bells~
이곳 차서준 세상에서는 크리스마스 같은 특수한 날에는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올해도 거리에는 캐롤송이 가득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그 노래가 마음에 드는지. 손과 발을 까딱까딱 흔들며 꺄아 거리는 동생이었다.
“하준아. 노래 좋아?”
“엉!”
나를 보며 외친 동생의 저 말은 형이라는 단어였겠지만. 가끔은 묘하게 동생이 알아듣고서 저리 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서준아. 동생 잘 돌보고 있어?”
“네!”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야.”
“제가 하준이 안 울게 잘 돌볼게요.”
출발하기 전만 하더라도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걱정을 했었다. 중간에 동생이 잠에서 깨 칭얼거리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허나 괜한 우려였다.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코 잠들었던 동생이 중간쯤 깼지만. 우렁차게 우는 대신 내가 얼굴만 보여주면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아빠의 말에 조수석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엄마가 일어났다.
“서준이 덕분에 엄마가 편하게 왔네.”
“어제 동생 때문에 못 잤잖아요. 조금 주무셨어요?”
“그러엄. 우리 서준이가 하준이를 잘 봐준 덕분에 엄마가 좀 잤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동생이 좋아하는 곳으로 가기로 했는데. 어제 낮에 많이 잔 동생이 새벽에 우렁차게 엄마를 찾았다.
꼬박 선잠으로 밤을 새운 엄마를 위해 내가 동생을 케어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 여행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