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과연 아역 배우 차서준의 네 번째 도전도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대목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CBS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주말 드라마 ‘재벌가 금동이’는 시작도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첫 방송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 특히나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엄마가 그 주인공이었다.
“서준아.”
“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어? 엄마가 듣기로는 주말드라마 촬영은 특히나 세트장 안에서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예전처럼 염려나 우려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아들이 촬영장에서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은 엄마로서 어쩔 수 없었다.
“맞아요. 지금까지 찍었던 작품들보다 세트장 촬영이 특히나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이 더 편했어요.”
정말로 더 좋았다. 특별히 이동 시간을 길게 가져갈 필요도 없었고. 같이 촬영하는 배우들 역시 주말극에 자주 보이던 얼굴들답게 안정적인 연기들을 보여주었으니까.
촬영장 분위기는 벌써부터 대박이라도 난 것처럼 훈훈함이 가득했다. 실제로도 무언가 잘될 기운을 느꼈는지 배우들의 얼굴이 밝았다.
“김준규 선생님이 많은 작품들을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이번 작품이 특히나 느낌이 좋다고 하셨어요.”
“정말? 엄마가 아는 그 배우 김준규 맞지? 저번 아침 드라마에 나왔던 그 배우.”
“네. 그 김준규 선생님이요.”
배우들. 특히나 연기 경력이 수십 년 차가 된 중년 배우쯤의 경력이 쌓이면. 첫 방송이 나가기 전이라도 뭔가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 드라마가 반응이 좋을지, 아니면 반대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감이 100퍼센트 맞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맞는다고는 했다.
그런 감이 있는 중년 배우들의 표정이 특히나 밝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준혁 PD와 김나희 작가 역시 연신 나를 향해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감독님이랑 작가님도 저한테 계속 잘한다고 칭찬 엄청 하셨어요.”
내가 출연을 확정지은 뒤. 금동이의 비중을 늘린 김나희 작가는 첫 촬영장에서 황홀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이거에요! 이게 내가 생각하던 금동이였거든.”
첫 촬영이 모두 끝나고 난 다음.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김나희 작가가 나에게 뛰어오며 외쳤던 말이었다.
내가 금동이로 캐스팅된 뒤. 금동이 비중을 늘리면서 제법 표현이 어려운 장면들이 생겼는데. 그 부분이 걱정되어 찾아온 촬영장에서 내가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었으니.
갑자기 느낌이 왔는지 즉석에서 대본을 쓰더니 내게 보여주기도 했었다. 이런 표현도 혹시 가능하겠냐는 말과 함께.
내 대답은?
“맡겨만 주시면 정말 최고의 연기를 보여드릴게요.”
당연히 가능하다였다. 7살 아역 배우의 입장에선 어려운 표현일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충분히. 아니, 김나희 작가가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금동이 그 자체를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기존에 있던 금동이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져 버렸다.
“어머, 서준이가 촬영장에서 그런 말을 듣고 나면 항상 대박이 났는데. 이번에도 대박이 나겠네?”
“예고편부터 벌써 재밌잖아요. 지금 사총사 친구들 집에서도 첫 방송만 기다리고 있대요.”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지금. 사총사들뿐만 아니라 같이 작품을 했었던 배우들에게서도 연락이 오고 있었다.
‘재벌가 금동이’의 첫 방송을 꼭 챙겨보겠다면서.
정작 주말드라마를 가장 사랑하던 엄마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드라마가 얼마나 대박이 날까가 아닌. 바로 내가 촬영장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른 배우들은 어땠니? 우리 서준이한테 잘해주나 엄마는 걱정이 되네. 혹시 별일 같은 건 없었니?”
“네! 다들 엄청 잘해주셔요.”
주말 드라마를 보면 한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젊은 배우들이야 꾸준하게 교체가 된다지만. 중년 배우들은 매번 보는 얼굴들이 계속해서 다른 작품에도 나온다는 것.
심지어 평일 아침에는 ㅇㅇ그룹 사모님이었던 배우가, 주말에는 대가족 할머니를 모시는 맏며느리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워낙 막장 요소가 섞인 내용인지라. 가끔 그런 배우들의 연기가 평소 이미지로 굳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엄마는 그런 배우의 이미지에 걱정을 하는 것이고.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말라고 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 엄청 잘하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 말고 주말에 아빠랑 그리고 하준이랑 같이 첫 방송 봐요.”
*
시작은 당연히 김우승이었다. 정작 출연은 내가 했는데 본인의 드라마가 곧 방송할 것처럼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서준이의 첫 주말드라마. ‘재벌가 금동이’를 기다리며. by 우형이 형. 그리고 깜짝 손님 하나 더.]
아니. 저 형들은 또 언제 모였대.
이미 ‘소소한 하루’를 통해 알려진 김우승의 거실 대형 TV 앞에는 박우형도 같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인물도 있었다.
└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 김정범은 왜 저기 있음? 내가 알기론 김정범은 저 둘과 접점이 없는 거로 아는데?
└ 접점이 왜 없음. 우리 차 배우 있잖아 ㅋㅋㅋ 김우승, 박우형이 차 배우 때문에 만들어진 ‘연기를 사랑하는 모임’의 멤버인데.
└ 저번 ‘금괴 소동’ VIP 시사회 때 만났다는 썰이 있음. 뒤풀이 때 김우승과 김정범이 짝짝궁이 아주 잘 맞았다는 거 같던데.
└ 무슨 서준교도 아니고. 왜 자꾸 신도들이 늘어나는데. ㅋㅋㅋ
└ 저 셋뿐만 아니라. 차 배우랑 같이 작품 했던 배우들 SNS에 ‘재벌가 금동이’ 응원글들이 계속 올라오는 중.
정말이었다. 저 형들뿐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작품을 했었던 배우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기대감 속에서.
드디어 ‘재벌가 금동이’의 첫 방송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는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동생을 품에 안고서 신신당부가 아닌 부탁을 하고 있었다.
“하준아. 형 나오는 드라마가 곧 시작하니까. 오늘은 울면 안 돼요. 알았지?”
아직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리도 없는데.
“엉! 어엉!”
응?
알아들었어?
그럴 리는 없지만. 어쨌거나 울면 안 된다는 엄마의 말에 형을 연신 외치는 동생이었다. 들뜬 가족의 분위기에 기분이 좋은지 방긋방긋 웃으면서.
그렇게 TV 앞에 우리 네 식구가 모두 모이고. ‘재벌가 금동이’의 첫 방송이 시작되었다.
5년 전 교통사고로 준양 그룹의 늦둥이 막내 신철민이 사망해버렸다.
뒤늦게 얻은 막둥이를 누구보다 아끼던 신준양 회장이었다. 내심 회사를 막내에게 물려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기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사고의 원인이 며느리에게 있다며 가문에서 쫓아내 버린 신준양 회장.
며느리 이지연은 사고가 누군가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 주장했지만. 시아버지인 신준양 회장조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몇 년이 흐른 뒤.
그렇게 금동이마저 뺏긴 채 살아가는 이지연. 그런 그녀의 앞에 누군가가 찾아오는데.
-안녕하십니까. 저는 특수부 검사 이태성이라고 합니다.
재벌가 준양 그룹의 뒤를 파헤치던 중 무언가를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몇 년 전 사고 이후 준양 그룹에서 쫓겨난 이지연을 찾아가는 특수부 검사 이태성.
-검사님께서 제게 무슨 일로 오셨죠?
갑작스럽게 찾아온 검사를 경계하는 이지연.
-과거 남편분의 사고. 당시 이지연 씨께선 그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의 사고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아뇨. 드릴 말씀 없어요. 여기서 나가주시죠.
이지연의 매몰찬 냉대에 쫓겨나는 검사 이태성. 쫓겨났음에도 이지연이 운영하는 김밥집 문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예. 부장님.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잘하면 부회장 약점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부장 검사의 전화에 무언가를 보고하는 이태성.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준양 그룹의 첫째 아들 부회장이었다.
한편.
-으허허! 우리 손주.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면서?
-네, 할아버지. 약속하신 대로 저에게 선물 주시는 거예요. 성적 잘 받으면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시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래.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지.
냉혹한 기업가라 평가받지만. 이제는 세상을 떠난 늦둥이 막내아들에게서 얻은 손주에게만은 자상한 할아버지인 신준양 회장.
그리고 그 손주인 신금동. 학교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오고. 약속한 대로 선물을 달라하는 금동이.
-우리 손주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을꼬.
-할아버지. 이제 우리 엄마 그만 미워하고 용서해주세요. 저도 엄마랑 할아버지랑 같이 살고 싶어요.
금동이가 소원으로 엄마를 용서해달라 말하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리고 마는 신준양 회장.
-금동아. 그날 네 엄마라는 여자가 거길 가야 한다고 고집만 부리지 않았어도. 네 아빠는 그날 죽지 않았을 거다.
-할아버지. 사고였잖아요. 그리고 엄마 잘못이 아니었어요. 성적 잘 받아오면 무엇이든 선물로 주기로 약속했잖아요. 할아버지.
굳은 얼굴로 금동이를 바라보는 신준양 회장.
-할아버지···.
자신을 닮아 포기할 줄 모르는 금동이의 고집에 결국 김 실장을 부르는 신준양 회장.
-김 실장 그거 갖고 온나.
김 실장이 가져온 것은 바로 서약서. 30억을 받고 금동이에 대한 모든 권한을 포기하겠다는 서약서였다.
그걸 보고서 눈망울이 커지는 금동이.
그 절정의 순간에 흘러나오는 엔딩 OST.
“크. 우리 서준이 저렇게 보니 진짜 재벌집 손주 같은데?”
“저는 저런 재벌집보다 엄마, 아빠가 더 좋아요!”
재벌가 손주 금동이를 보며 감탄한 아빠를 향해 그렇게 외치자.
“어엉! 엉! 빠아!”
자기도 빼먹지 말라고 외치는 동생.
“동생도 같이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꺄! 하고 웃는 동생이었다.
“어땠어요?”
“엄청 재밌었어.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서준아, 엄마에게 선물 고마워.”
엄마가 어찌 모를까.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말드라마 ‘재벌가 금동이’를 선택한 데에는 엄마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나를 보는 엄마의 눈빛에는 사랑이 듬뿍 담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진짜로 대본부터가 재밌었어요. 이거 한 번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지금 사람들의 반응도 장난이 아니야.”
안 그래도 옆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찾던 아빠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재벌가 금동이 첫방 어땠음? 밖이라 못 봤는데.]
└ 집에 가서 다시보기로 꼭 보셈. 일단 주말드라마답게 전개가 엄청 파격적임. ㅋㅋㅋ 근데 그게 맛있음. 그것도 엄청. 막장 맛이 이래서 인기가 있구나. ㅋㅋㅋㅋ
└ 나도 엄마 때문에 옆에서 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1화가 벌써 끝났더라. 내일부터 엄마랑 무조건 같이 생방으로 따라가려고.
└ ㅇㅈ 김순철, 차서준 조합이 예상은 했었지만. 그 이상이었음. 무슨 중간중간 저 둘만 나올 때에는 영화를 보는 줄 알았음. 이게 어떻게 주말극 퀄리티냐고. ㄷㄷ
└ 확실히 감독, 작가가 배우들 섭외에 신경 쓴 게 보이더라. 기존 주말극처럼 아이돌 안 쓰고 모두 연기자만 데려온 게 느껴졌음. 하긴, 차 배우가 있는데 아이돌을 쓸 필요가 없긴 하지.
└ 이거 내가 봤을 땐. 막장 좀 섞이더라도 역대급 주말드라마 성적 나올 거 같은데? 무엇보다 ‘재벌가 금동이’에서 ‘금동이’의 연기력이 너무 좋음.
*
주말 동안 고작 1, 2화가 방송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고. 금동이 엄마랑 장 보러 왔구나?”
“금동아! 오늘 맛 좋은 과일 들어왔는데. 와서 하나만 맛보고 가려무나.”
뭐, 뭐지?
가끔씩 엄마 손을 잡고 오던 시장이었다. ‘옆에 잘생긴 아는 누구여?’하고 물어보면. 옆에서 아줌마가 ‘TV 나오는 배우 아니야?’하는 아역 배우 차서준을 잘 알아보지 못했던 시장.
그런데.
지난 주말 ‘재벌가 금동이’의 1, 2화가 방송되고 난 뒤.
엄마 손을 잡고 도착한 시장에서 나는 완전 인기 스타가 되어버렸다. 유모차 안의 동생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시장 구경이 신기한지 열심히 눈동자를 굴릴 뿐이었다.
당황한 나보다 더 당황한 사람은 엄마였다. 유모차 아래에 방금 산 물건을 넣으려고 하는데.
“아, 아니. 이렇게 많이 안 주셔도 괜찮은데···.”
“서비스여! 우리 금동이가 잘 먹어야 또 주말에 잘 나올 거 아니여. 가지고 가서 금동이 잘 챙겨줘.”
“여기 이건 서비스! 드라마 보니까 금동이가 고기 좋아한다며. 가져가서 구워줘. 오늘 들어온 진짜 맛있는 고기야.”
“금동이를 위해서 내가 몰래 주는 거니까···.”
어째 엄마가 돈을 주고 산 것들보다 서비스로 받은 것들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하하···.
이것이 주말 드라마 주인공 금동이 효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