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하자. 배우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특히나 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중년 배우들의 시선 속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쟤가 소문의 차서준인가?’
‘애가 연기력이 그렇게 끝내준다면서.’
‘에이, 이제 겨우 7살인데. 그냥 잘 생겨서 그런 거 아닐까?’
‘아니래요. 저번에 같이 한 현주가 그랬는데. 쟤가 완전 연기 천재래요. 연기 천재.’
못 들은 척하려 해도 수군거림이 들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내 캐스팅 소식을 듣고서 이 작품을 선택한 배우 몇몇은 주변에 침을 튀겨가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 배우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모두 인사를 마쳤을 무렵.
“선생님. 오셨어요?”
“오랜만에 같이 작품 하는 거 같아요. 선생님.”
“허허. 다들 오랜만일세.”
중년 배우들에게도 선생님이라 불리는 김순철이 등장했다.
배우들의 선생님이란 호칭에 걸맞게 등장과 동시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김순철은 대본 리딩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인사를 받으며 누군가를 찾는 듯 보였다. 모두가 그런 김순철의 행동에 의아해하는 순간.
“여기 있었구만.”
그 두리번거리던 시선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나를 발견하고 나서였다.
“할아버지. 오셨어요?”
“그래. 오늘 준비는 잘했고?”
“네! 오늘도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거참 기대가 되는구먼.”
나와 김순철 선생님의 대화를 지켜보던 이들이 깜짝 놀란다. 특히나 김순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중년 배우들의 반응이 팔딱거렸다.
촬영장에서 호랑이 선생님이라고도 불리는 김순철이다. 그런 김순철 선생님이 마치 손자라도 대하듯 나와 주고받는 대화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진짜 아끼시는 것 같은데? 선생님이 아역이라고 해서 저런 자상한 모습 보여주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는데.”
“그러게. 나는 선생님이 이런 자리에서 저런 미소를 짓는 거 처음 봤어.”
“쟤가 연기력이 그렇게 끝내준대. 그러니 선생님이 안 예뻐하실 수가 있겠어?”
그 모습에 나를 보는 배우들의 수군거림이 더 커져 버렸다. 그만큼 김순철 선생님과 나의 관계가 저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간 모양이었다.
“다들 오셨네요.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전에 조연출로 선생님과 함께했었던 김준혁입니다.”
“허허. 김 감독이라 부름세. 내 이번 작품에 대해 기대가 커.”
“선생님께 실망을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몇 년 만에 주말 안방을 찾아온 김순철 선생님이다. 나와 엮어서 나간 기사들도 그 부분을 몇 번이나 말했을 정도.
무엇보다 김준혁 PD가 입사하던 시절부터 선생님이라 불리던 김순철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김준혁 PD가 배우들을 찾아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그가 나에게 오늘 상태를 묻는다.
“우리 서준이. 오늘 컨디션은 어때?”
“좋아요. 감독님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내가 오히려 서준이에게 잘 부탁한다고 해야지.”
김준혁 PD와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바로 내 자리에 김순철 선생님 옆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감독의 바로 앞이란 뜻.
그런 내 자리가 신기했는지. 오늘 이 자리에서 나를 처음 본 배우들의 시선 속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대체 얼마나 잘하기에. 선생님께서 옆자리에 앉히려고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담은 시선들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보여줘야지.
*
아역 배우 차서준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특히나 지금까지 실패한 적 없는 작품 선택은 특히나 더.
그 소문에 간을 보다가 도장을 찍은 사람이 김준규 본인 아니던가. 주변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 연기력도 출중한 배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역 배우 차서준이 어느 정도 잘할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게 말이 돼?’
직접 확인한 연기력은 충격적이었다.
중년 배우 김준규는 김순철 선생님 옆자리에 앉아 대사를 읊는 아역 배우 차서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연기 경력만 20년이 넘은 자신이다. 그동안 아침드라마를 비롯한 평일드라마, 주말드라마까지. 지금까지 찍은 작품만 하더라도 셀 수조차 없었다.
그 과정에서 보아온 아역 배우들만 하더라도 한 트럭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금동이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는 차서준 만큼의 연기력을 보여준 친구는 없었다.
“검사님. 검사님은 끝까지 정의를 위해 달리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대가 준양 그룹인데도요?”
“뭐? 너 지금 뭐라고···.”
“저는 지금 어린아이가 아닌. 검사님이 찾는 이제는 돌아가신 제 아버지. 준양 그룹 삼남 신철민의 아들 금동이로서 물어보는 겁니다. 검사님도 그런 제가 필요해서 찾아오신 거잖아요.”
방금 전까지 자신들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인사를 하던 아역 배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냥 단순히 많은 것들을 보고 자란. 흔히 어린 배우들이 보여주는 재벌가 아이의 연기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자신이 이렇게까지 놀랄 이유도 없을 테니까.
차서준은 방금 전까지 김순철 선생님이 선보인 준양 그룹 회장님의 모습을 쏙 닮은 재벌가 손자의 느낌. 그걸 제대로 살려서 대사를 내뱉고 있었다.
말 그대로 ‘재벌가 금동이’의 대본 속 금동이가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수십 년 연기 경력의 김준규 본인이나, 옆에 앉은 김동화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오늘 힘을 빡 줘야겠네.’라고 할 정도로.
주말극 대본 리딩이라 편하게 생각하고 나온 다른 배우들 역시 충격을 받은 얼굴로 차서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저게 7살의 연기라고? 성격이 원래 금동이랑 비슷한가? 방금 전 인사를 나눌 때 보면 아니었는데.’
김준규는 손아래에 둔 대본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차서준을 보면서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김준규는 자신도 모르게 차서준에게 다갔다.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오늘 차서준을 처음 본 다른 중년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
김순철이 잠시 화장실을 위해 자리를 비우자. 차서준에게 다가간 배우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서준이라고 했니?”
“네! 차서준입니다. 편하게 서준이라고 불러주세요.”
“혹시 부모님이 배우신가? 아니면 어디 기업을 하시는 분들이거나?”
“아니요! 아빠는 회사 다니는 회사원이고. 엄마는 집에서 동생 돌보고 있어요.”
어처구니없는 배우 김동화의 질문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배우들이 타박한다.
“아니. 애한테 무슨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래.”
“그게···. 아까 너무 충격을 받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미안하구나 서준아.”
“아니에요!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방긋 웃으며 말하는 차서준의 얼굴에선. 방금 전까지 연기하던 금동이의 흔적을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방금 전 금동이 연기가 평소 성격이 아니라는 뜻. 다시 한번 그 사실을 떠올린 배우들이 차서준을 보며 감탄을 멈추지 못 했다.
“크. 쟤는 진짜 타고났다. 타고났어.”
“이거 하길 잘했네. 쟤랑 같이 촬영하는 동안 즐겁겠어.”
“이번 촬영은 재미있겠네. 보는 맛이 있겠어.”
그런 소리들을 들으며 김준규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박에 없었다. 다른 작품을 까고 ‘재벌가 금동이’를 선택한 자신을 칭찬하면서.
*
“서준아. 대본 리딩 때 제대로 보여줬다면서?”
“그냥 평소처럼 했어요, 삼촌. 할아버지가 옆에 계신대 대충 할 수가 없었어요.”
“안 그래도 김순철 선생님께서 서준이 네 칭찬을 그렇게 하셨다고 하더라. 다른 배우들한테도 말이지.”
“그래요?”
‘재벌가 금동이’의 대본 리딩 당시의 소식을 들은 서도현이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마 서도현과 친분이 있는 중년 배우들 중에서 누군가가 직접 연락까지 한 모양.
그만큼 어제 대본 리딩이 끝나고 나에게 칭찬들이 쏟아지긴 했었다.
“대체 어디서 서준이 너 같은 보석을 발견했냐고. 다들 아주 난리도 아니더라.”
“제가 나온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셨대요.”
“그렇지. 다들 여러 작품에 나오시느라 보통 촬영에 바쁘시니.”
배우들뿐만이 아니었다. 김준혁 PD, 김나희 작가를 넘어서 관계자들까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래. 대본 리딩을 다녀온 소감은 어때?”
“확실히 이번 드라마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여기저기에 얼굴이 나온다고 해서 쉽게 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중년 배우들의 연기력은 탄탄하거든. 이번에 같이 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다.”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들은 과거 혹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다양한 작품에 얼굴을 비추는 이들은 그만큼의 내공이 쌓인 배우들이란 뜻.
서도현의 말처럼 이번 기회에 그런 선배님들과 함께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촬영장에 조금 더 일찍 가서. 선생님들이랑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요.”
“잘 생각했다. 보통 본 촬영이 시작하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게 생각하시거든. 끝나고도 같이 식사하는 것도 좋아들 하시고.”
조금 더 촬영장에 일찍 도착해서 친분을 다지겠다는 내 말에 서도현이 좋아한다.
요즘이야 해당 씬을 찍을 때만 나와서 좋은 연기만 선보이면 된다는 이들도 있지만. 과거부터 연기를 해온 배우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촬영이 끝나면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닌. 같이 식사도 하면서 친분을 다져야 좋다고 생각하는 중년 배우들이 많았다.
나 역시 이번 기회에 그런 선배님들과 친분을 쌓을 생각이었다.
“저 열심히 할게요!”
배우의 연기란 배움에 끝이 없는 법이다. 김도경 시절의 연기력과 지금 차서준의 연기력을 배교해 본다면.
아마 지금이 조금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
시간이 지나.
드디어 ‘재벌가 금동이’ 메이킹 영상들이 하나둘 공개되었다.
그중에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은 건. 가벼운 인터뷰와 함께 공개된 포스터 촬영 현장 영상이었다.
- CBS 주말드라마 ‘재벌가 금동이’ 포스터 촬영 현장 메이킹
└ 와씨. ‘폭군의 세자’ 이환도 좋았는데. 이걸 보니까 우리 서준이의 금동이는 또 어떨지 너무 궁금한데.
└ 메이킹 영상 속에서. 우리 차 배우 말할 때랑 금동이로 포즈 취할 때. 눈빛 확 변화는 거 봄?
└ ㄷㄷ 역시 우리 차 배우다. 이번 작품도 성공하면 4연속 대박인가? 보통 이쯤에서 한 번 미끄러지긴 하는데.
└ ㅋㅋㅋㅋㅋ 월화 드라마나, 수목 드라마였음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주말 드라마임. 거기에 우리 엄마도 차 배우 나온다는 소식 듣고서 이거 무조건 본다고 하시는 중. 오히려 1화 시청률을 기대해볼 만할 듯?
└ ㅇㅋㅇㅋ 그건 ㅇㅈ. 그런데 차서준 캐스팅으로 화제성 잡는 것까진 좋은데. 제목부터 알다시피 금동이가 주인공이나 다름없는데. 아직 차서준은 메인으로 끌고 가기엔 부족하지 않나?
└ 또 나왔다. 검증론. ㅋㅋㅋㅋㅋㅋ 대체 몇 번을 더 보여줘야 잘할까? 못하지 않을까? 이런 헛소리들이 안 나오려나. 궁금하면 토요일에 TV 앞에 앉으세요.
역시나 이번에도 몇몇 사람들이 내 연기력에 대한 검증론을 제기했지만. 이번에는 반응들이 조금 달랐다.
“어때? 삼촌 말처럼 다르지?”
“저도 알고 있었어요. 벌써 3번이나 보여줬잖아요.”
‘너에게 다시’, ‘폭군의 세자’. ‘금괴 소동’. 각각 3작품에 출연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캐릭터가 겹치지 않은 나였다.
심지어 동일 인물이 맞느냐는 물음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게 그 작품 속 캐릭터를 연기했었다.
그러니 이제는 ‘잘할까?’가 아닌. ‘기대가 되는데?’라는 반응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
“첫 방송은 집에서 가족들이랑 본다고 했지?”
“네. 그러려고 주말 드라마를 선택한 거니까요.”
곧 첫 방송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조건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랑 봐야지.
이미 한참 전부터 ‘우리 서준이가 나오는 주말드라마라니. 엄마 너무 설레’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엄마였었다.
아빠는 몰래 내 방에 있는 대본을 보려다가 엄마에게 혼나기도 했었다.
“CBS 내부에서도 이번에는 기대해 볼만 하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던데.”
“사실 삼촌에게만 말하는 비밀인데요.”
내가 소곤소곤 속삭이자 서도현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귀를 가까이 댄다.
“이번 작품 초대박이 날지도 몰라요.”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