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67화 (67/220)

67화

“주말 연속극?”

“네. 이번에 CBS에서 하는 주말극 끝나고 나면 들어가기로 했어요.”

내가 엄마, 아빠에게 차기작으로 CBS 주말 연속극 ‘재벌가 금동이’를 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부터 지었다.

“서준아. 조금 더 쉬었다가 작품 들어가도 되지 않니?”

“괜찮아요. 많이 쉬었어요. 그리고 좋은 제안이 들어와서요.”

“왜 갑자기 주말 연속극이 하고 싶어진 거니?”

아직 갓난아기인 동생 때문에 외출이 거의 없는 엄마였지만.

정보화 시대였다. 손 안에 든 작은 핸드폰 하나면 인터넷을 통해 각종 정보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들 안에는 아역 배우 차서준에 대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드라마에 이은 영화까지 3연타 대성공을 거둔 나였다. 연기력을 눈여겨본 감독님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 역시 엄마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그런 엄마의 물음에.

“원래 조금 더 쉴까도 생각했었는데. 마음이 바뀔 만큼 재밌는 작품이 들어와서요.”

나는 일단 가장 중요한 이유부터 말했다. 애써 이런저런 부가 설명을 덧붙이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부터 말하는 게 나을 테니까.

엄마는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내 대답에 옆에서 잠시 듣고만 있던 아버지가 나섰다.

“서준아. 이번에 우형 동생에게 들으니 정말 좋은 제안도 몇 개 왔다던데.”

도원결의로 형님, 아우님을 하는 박우형에게 들은 모양이다.

“특히 VIP 시사회 뒤풀이 때 서준이 네 이야기가 정말 많이 언급되었다고 우승 동생도 말하더라.”

옆에서 엄마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이미 내게 이런 말을 꺼내기 전에, 엄마, 아빠 두 분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신 모양이었다.

그러니 좋은 작품들을 마다하고 주말 연속극을 하겠다는 내 말에 걱정스러운 표정들을 짓고 계시는 거겠지.

“그렇긴 한데. 영화는 나오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리고 당분간은 영화가 개봉되더라도 같이 보러 못 가잖아요.”

그랬다.

성공적인 흥행을 거둔 우지학 감독의 영화 ‘금괴 소동’이 스크린에서 내려오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VOD로 나오면 다 같이 보자는 약속도 아직까지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내년까지 또 다른 영화를 찍는다 한들. 아직 어린 동생을 데리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갈 순 없었다.

“영화관에 같이 못 보러 가는 것 때문에 그러면 엄마는 괜찮으니까. 서준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도 돼.”

이런.

엄마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주말 연속극을 선택한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아닌데.

“영화 쪽에서도 좋은 제안들이 오긴 했는데. 모두 ‘금괴 소동’의 지호처럼 감초 캐릭터뿐이었어요.”

비록 ‘너에게 다시’, ‘폭군의 세자’ 그리고 ‘금괴 소동’까지. 세 작품을 하는 동안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던 나였지만.

영화 쪽에서 들어온 배역들은 모두 ‘금괴 소동’의 지호처럼 비중 조금 있는 아역 캐릭터일 뿐이었다.

감독의 예술혼이 담긴 작품이 아닌 이상. 7살의 아역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는 감독은 없었다.

“안 그래도 우형 동생도 그 이야기도 같이 하더라. 서준이 네가 아직 어려서 가진 연기력에 비해 아쉬운 상황이라고.”

“맞아요. 아직 제가 어려서 주인공 역을 하기가 쉽지 않대요.”

아빠는 단순히 김우승과 박우형을 만나 술만 마시는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을 구름엑터스 대표 서도현에게 일임한 엄마, 아빠였기에 여전히 연예계에 대해서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다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족한 정보들을 김우승, 박우형과 함께 호형호제를 하면서 얻는 것이다.

“그리고 대본이 진짜 재밌어서 그래요. 삼촌에게 받은 것들 중 살펴보다가 정말 재미있는 대본을 발견했는데. 그게 ‘재벌가 금동이’었을 뿐이에요.”

“그러니?”

“네! 심지어 제게 들어온 배역이 제목에 있는 금동이잖아요. 완전 주인공!”

‘재벌가 금동이’의 금동이 역이 들어왔다는 말을 하며 방방 뛰자.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엄마, 아빠가 미소를 짓는다.

내가 촬영하면서도 즐거운 작품을 엄마, 아빠. 그리고 아직은 봐도 모를 동생과 함께 본다.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해볼까 하는 의사를 내비치자마자 받은 ‘재벌가 금동이’의 10화까지의 대본을 본 순간 미팅 날짜를 잡았다.

아무리 엄마, 아빠를 위한다 하더라도.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할 작품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슬슬 엄마, 아빠가 거의 다 넘어온 것 같으니.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그리고 엄마. 재벌가 금동이 대본 쓴 작가님이 김나희 작가님이래요. 엄마도 아는 그 김나희 작가님이요.”

“정말? 김나희 드라마에 우리 서준이가 출연하는 거야?”

“네! 대박이죠?”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엄마였다. 주말 연속극을 좋아하는 엄마가 가장 재밌게 봤던 드라마.

그 드라마를 쓴 작가가 김나희 작가였고. 또 그때의 연출이 김준혁 PD였었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의 2년 만의 재결합 작품에 내가 더해진 셈이다.

“제게 좋은 선택인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요.”

내 말에 엄마, 아빠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 오른다. 그런 두 분을 보면서 잠시 웃음을 터트린 뒤.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하준아. 형이 이번 드라마 잘 선택한 것 같아?”

이제 겨우 한 살인 동생이 알아들을 리 없지만.

“엉!”

이거 봐.

잘한 것 같다고 하잖아.

“서준아? 하준이는 형이라고 하는 거 같은데?”

“에이, 그러면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하준아. 형 이번 드라마 대박 날 것 같아?”

“어엉!”

나와 동생의 콩트에 엄마, 아빠도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동생의 잘 될 것 같다는 응원도 받았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느낌이 정말 좋다.

*

김준혁 PD와 ‘재벌가 금동이’를 쓴 김나희 작가는 초조한 얼굴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현실적인 문제로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금동이. 그 금동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니 초조할 수밖에.

“김 감독. 진짜 차서준이 우리랑 하려고 할까?”

“그러니 오늘 이 자리까지 만든 거 아니겠어?”

“그렇긴 한데. 도무지 이해하려 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그래.”

“어찌되었던 우리한텐 좋은 일이니. 오늘 차서준 잘 설득해 봅시다.”

친분이 꽤나 쌓인 두 사람이었다. 재작년에 손발을 맞춘 드라마의 성공은 사이가 돈독해지게 만들었다.

그런 두 사람이기에 바라만 봐도 서로의 눈동자 안에 담긴 불안과 초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윗선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났다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배우 본인의 의사였다. 오늘 이 자리가 끝난 뒤 마음이 바뀌면 엎어질 테니.

“일단 국장님이 구름엑터스 서도현 대표 만났을 때에는 긍정적인 이야기는 얼추 끝났다곤 했는데. 최종 결정을 아역 배우 본인에게 맡겨버렸다고 했으니.”

“거기 서 대표 배우들 끔찍하게 아끼잖아. 차서준이 마음이 변하면 안 하겠지?”

“그럴걸. 그러니 오늘 잘 설득해서 얼른 도장 찍읍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 바닥에 3연 성공은 갈대조차 빳빳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제 간절함을 담아 고개를 숙이던 배우가. 내일이면 본드라도 바른 양 빳빳해지는 게 어디 한둘이었던가.

이상한 조건들을 요구한다면 꽤나 깊은 고민을 해야 될지도 몰랐다.

“안녕하세요. 차서준입니다.”

문을 열고 등장한 아역 배우 차서준이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기다리고 있던 김준혁 PD와 김나희 작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서준을 반겼다.

비록 아직 S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화제성 하나만큼은 절대로 S급에게 밀리지 않는 아역 배우가 차서준이었다.

현재 드라마를 넘어 영화판에서도 어떻게든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아역 배우 1순위. 그런 배우를 주말 연속극에서 아무리 애원한다 하더라도 데려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만약 저 차서준을 잡을 수만 있다면 1화 스타트 시청률 20프로도 헛된 희망만은 아닐 터였다.

“어서 와요. 요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번 영화도 정말 재미있게 봤고요.”

이건 김나희 작가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건넨 말이었고.

“차 배우. 안 그래도 김도욱 PD가 내 친한 후배거든. ‘너에게 다시’ 때부터 이렇게 훌륭한 배우가 될 줄 알았다니까요. 얼른 거기 앉아요.”

김준혁 PD가 어색한 입꼬리로 위스키를 그리며 자리를 권했다.

차서준이 자리에 앉자마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김나희 작가가 차서준에게 물었다.

많은 드라마 작가들이 그렇듯. 김나희 작가 역시 하나에 꽂히면 주변을 잘 보지 못하는 타입의 작가였다.

“차서준 배우. 편하게 차 배우라고 불러도 될까요? 촬영장에선 다들 차 배우라고 부른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네. 편하게 서준이라고 불러주셔도 괜찮습니다.”

의젓하다. 7살의 어린 아역 배우를 대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성숙한. 아니, 어지간한 성인 연기자를 대하는 느낌까지 받는 김준혁 PD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너에게 다시’ 촬영 당시의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천재는 남다른 법이지.’

이제는 이 바닥에서 연기 천재로 인정받기 시작한 차서준이기 때문이었다. 천재는 일반 또래들과 궤를 달리하는 법이다.

“왜 우리 작품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듣기론 차 배우와 함께하고 싶다는 작품들이 엄청 많다고 들었는데.”

두 사람은 이게 가장 궁금했다.

대체 왜?

“작가님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서요.”

“응?”

“네?”

정작 돌아온 대답은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그리고 배우가 할 수 있는 가장 원론적인 대답이기도 했다.

작품이 재밌으니까.

그 대답을 듣자마자 김나희 작가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참아보려했지만 면전에서 제 자식이 극찬을 받았는데. 참을 수 있는 작가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감독님이랑 작가님이 같이 하셨던 ‘울지 마세요.’를 엄청 좋아하셨거든요.”

“어머나. 어머니께서 그걸 보셨구나.”

“네! 무엇보다 이번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재벌가 금동이’의 금동이잖아요.”

차서준의 그 말에 감나희 작가의 고개가 열심히 끄덕여졌다.

아역 배우에 관한 문제로 금동이의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차서준이 금동이 역을 해준다면?

김나희 작가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중을 늘려도 충분할 터였다.

“무엇보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나올 거라는 생각에. 김준혁 PD와 김나희 작가의 시선이 차서준의 입을 향했다.

그런데.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요. 엄마가 주말 연속극은 꼬박꼬박 챙겨보시거든요.”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그만 두 사람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말았다.

“하하! 내가 깜박했었네. 우리 차 배우가 저번에 ‘소소한 하루’에 나와서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는지 봤는데도.”

먼저 정신을 차린 김준혁 PD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 차 배우네 어머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더 재미있는 대본을 써야겠네. 그렇죠?”

“네! 그리고 이제부터 작가님 배우니까 편하게 서준아 하고 불러주세요.”

방긋 웃는 차서준의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달려들어 안을 뻔한 김나희 작가였다.

[대세 아역 배우 차서준. 차기작으로 CBS 주말 연속극 ‘재벌가 금동이’ 캐스팅 확정]

└ ??? 저 차서준이 내가 아는 그 차 배우가 맞음?

└ ㅇㅇ ‘너에게 다시’, ‘폭군의 세자’, ‘금괴 소동’ 3연타 성공시킨 우리 차 배우가 맞음.

└ 대체 왜? 내가 알기론 우지학 감독의 ‘금괴 소동’에서 뛰어난 연기력 선보여서 탐내는 영화감독들 많다고 들었었는데. 그거 다 헛소문이었음?

└ 그건 헛소문이 아니라 찐임. 다만 차 배우 본인이 원해서 주말 연속극을 차기작으로 선택한 듯?

└ ㅋㅋㅋㅋㅋㅋ 아니, 구름엑터스 대표가 배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 해준 거 아님? 무슨 주말 드라마야.

└ 그런데 마냥 나쁜 건 아님. 2년 전에 나름 대박쳤던 김준혁 PD와 김나희 작가의 작품임. 막장 맛이 있긴 해도 진짜 재밌게 잘 씀.

*

내가 차기작으로 CBS 주말 연속극 ‘재벌가 금동이’를 선택했다는 기사가 나간 다음 날.

“김순철 선생님이요?”

“그래. 서준이 널 꼭 봤으면 한다고 하던데.”

수많은 배우들의 선생님이라 불리는 원로 배우 김순철에게서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