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놀란 마음에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가니.
“서준아. 많이 놀랐구나. 넘어질지도 모르니 뛰면 안 돼.”
엄마의 손을 잡고서 안심을 시키고 있던 아빠가 뛰어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진정시킨다.
“엄마!”
“서준아. 많이 놀랐어? 엄마는 괜찮아. 아빠가 바로 와줘서 병원까지 잘 왔어.”
회사에서 일하던 아빠가 엄마에게 연락을 받자마자 한걸음에 집으로 향했던 모양.
“역시 우리 아빠가 최고예요!”
“그러엄. 아빠가 있어서 엄마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되었어. 여보, 고마워요.”
“나한테 다른 무엇보다 무조건 당신이 최우선이라고. 진통은 좀 어때?”
“조금씩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데. 아직까진 괜찮아요. 간호사님도 조금 더 기다려도 될 것 같대요.”
엄마는 집에서 쉬다가 진통이 심해져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엄마의 연락을 받은 아빠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에 말하고 곧바로 집으로 달려갔다고.
“세상에나. 서준아, 네 아빠가 엄마보고 전화를 끊지 말라고 하고선. 옆자리 동료에게 부탁해서 택시 타고 바로 온 거 있지?”
“정말요?”
내가 대단하다는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자.
“크흠. 당연히 당신을 위해서 모든 일 제쳐두고 달려와야지. 그리고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끊을 수가 있었어야지.”
가끔 나와 관련된 일 때문에 엄마에게 구박을 받고 시무룩해하는 아빠였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빠였다.
“진짜 우리 아빠 최고예요!”
“당연히 엄마를 위해선 아빠가 해야 할 일이지. 만약 아빠에게 서준이가 급한 일이 있다고 연락 왔어도 한걸음에 달려갔을 거다.”
“정말요?”
“그럼.”
이어지는 나와 엄마의 칭찬에 아빠의 어깨가 다시 한번 으쓱한다.
“우리 서준이 많이 놀랐어?”
“인터뷰 끝나고 수진 누나에게 듣고 깜짝 놀랐었어요. 그래도 엄마가 보내준 문자를 보고 괜찮았어요.”
“다행이네. 엄마도 서준이가 연락받고서 깜짝 놀라지 않을까 걱정 많이 했거든.”
병원에 도착한 뒤 나에게 전화를 하려다 인터뷰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곤 수진 누나에게 연락한 것이다.
인터뷰 끝나고 소식을 듣고 놀랄까 내 핸드폰에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도 보내두고.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고 나니 조금 안정이 된다.
“엄마. 많이 아파요?”
“아직 괜찮아. 우리 서준이가 엄마가 아플까 봐 걱정인가 보네.”
“진짜 많이 걱정돼요.”
정말로.
이제는 어떤 일에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엄마가 병원에 갔다는 소식에 너무 걱정이 되었었다.
또 병실에서 만난 엄마의 모습을 보니 그 걱정이 배는 더 커지는 것 같고.
김도경 시절에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동생이 태어난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또 엄마가 얼마나 아플지가 걱정부터 되었다.
잠시 후.
진통 주기가 짧아진 엄마가 분만실로 들어갔다. 엄마의 손을 잡고서 씩씩함을 보이던 아빠가 문 너머로 사라짐과 동시에 깊은숨을 내쉰다.
“후우.”
지금까지 괜찮아 보이던 아빠의 얼굴에 초조함이 어리기 시작했다. 애써 눌러왔던 긴장감이 엄마가 사라지자 올라온 듯싶다.
“아빠 괜찮아요?”
“당연하지. 엄마도 우리 서준이처럼 씩씩해서 금방 나오실 거야. 알았지?”
“네.”
아빠가 왜 저리 걱정하는지 이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예전 차서준을 낳을 당시. 엄마의 몸이 제법 아팠었던 기억이 떠오른 모양.
잠시 그런 아빠를 바라보다가. 내가 조용히 다가가 아빠를 부르며 손을 잡아주었다.
“아빠.”
“으, 응? 서준아. 아빠는 괜찮아.”
“네! 제가 옆에 있잖아요. 그러니 아빠랑 저랑 손잡고 엄마 기다려요.”
“그럴까?”
“엄마가 금방 나오신다고 했잖아요.”
말은 이렇게 태연한 척했지만. 지금 아빠만큼 속이 타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째깍째깍,
시간은 무심하게도 흘러만 갔다. 나와 아빠는 하염없이 기쁜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혹여나 잠시라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동생이 태어날까. 화장실도 후다닥 다녀왔다.
“서준아. 피곤하면 좀 자. 동생이 태어나면 아빠가 깨워줄 테니까. 알았지?”
“아니에요. 저 기다릴 수 있어요.”
엄마에 대한 걱정에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1분이 10분과도 같은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애를 태우는 시간이 한참이나 더 지나서야.
동생이 태어났다.
“우와.”
“서준아. 네 동생이야.”
유리 너머로 아직 눈조차 제대로 못 뜨는 동생을 보는 순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아빠.”
“응?”
“저 좋은 형이 될게요.”
그랬다.
남동생이 태어났다.
나와 아빠는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 채.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동생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작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하나까지도.
“아빠.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동생도 엄마를 닮은 거 같아요.”
“응? 정말이네?”
농담이다. 아직 갓난아기인지라 똑 빼닮지는 않았지만. 나와 다르게 동생은 아빠를 많이 닮아 보였다.
내 말에 좋아하면서도 시무룩해하는 아빠의 반응. 그러면서도 나처럼 눈, 코, 입을 뜯어보면 자기를 닮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내게 동생이 생겨버렸다.
*
엄마가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회복하는 동안. 집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어디다가 설치해드릴까요?”
“그건 여기다가 설치해주시고요. 그리고 저건 저쪽에다가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동생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들을 플렉스해버렸다. 엄마가 집에 있었다면 없어도 괜찮다며 말렸겠지만. 지금은 내 행동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사기 전에 구름엑터스 사람들에게까지 물어물어 꼭 필요한 것들로 주문했다.
마침 주말인지라 아빠도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상황. 한가로워야 할 주말이 오전부터 이것저것 설치에 바빴다.
“아들. 아빠는 우리 서준이가 정말 대견해.”
“헤헤. 동생에게 이거 사주고 싶어서 광고도 많이 찍었어요. 그리고 저건 우형이 형이 보내줬어요.”
“우형 동생이? 조만간 고마우니 얼굴 한번 봐야겠네.”
건수가 생겼다는 듯 기뻐하는 아빠를 보면서.
“아빠. 그러면 내일까지 형들을 만나야 되겠네요?”
“왜? 아,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 봐야겠구나. 우승 동생네 집에서 먹을 테니 서준이 너도 같이 가자꾸나.”
“네?”
“응? 그러면 혼자 집에 있으려고 했어? 그러면 아빠가 엄마한테 혼나.”
변수였다.
아빠가 김우승과 박우형을 만나 술자리를 갖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 자리에 나도 참석해야 된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말았다.
집에 나를 혼자 두고서 술을 마시러 갔다는 사실을 알면 엄마가 펄쩍 뛸 테니까.
“그러면 같이 가요 아빠.”
“그래. 동생들에게 연락을 해서 내일 저녁쯤에 시간을 잡아봐야겠네.”
아빠는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엄마를 보러 갈 준비를 한다. 거기에 엄마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것들의 메모를 꼼꼼히 확인한다.
세상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빠였으니까.
“설치 다 끝나면 바로 동생 보러 가요.”
“그럴까? 우리 서준이 동생이 많이 보고 싶었구나.”
“네! 엄마도 보고 싶어요! 그것도 엄청 많이요.”
“그러면 설치 끝나자마자 바로 출발하자. 그전까지 아빠가 짐들을 준비할게.”
조리원에 도착한 뒤.
동생을 만난 나는 꼬물거리는 손가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작은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뭔가 불편한지 인상을 찌푸리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라도 챙겨주고 싶어진다.
“서준아. 동생이 생기니까 어때?”
그런 나를 보던 엄마가 동생이 생긴 소감을 물었다.
“너무 좋아요. 엄마는 어디 아픈데 없어요?”
내가 다른 무엇보다 엄마를 가장 먼저 걱정하자. 엄마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러엄. 우리 서준이가 엄마를 걱정해줘서 그런지. 이제는 하나도 안 아프던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쉴 때 확실히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여기 최대한 오래 있으면 좋다고 했어요.”
“그래? 엄마가 집에 없어서 서준이 밤에 무섭진 않고?”
“네! 엄마가 얼른 좋아져서 동생이랑 집에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새로운 식구가 집에 들어오면. 한동안은 제법 시끌시끌할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 쌍의 원앙처럼 부부 사이가 좋은 엄마, 아빠였다. 지금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듬뿍 담긴 꿀이 뚝뚝 떨어진다.
과연 동생이 하나로 끝날까?
에이, 설마.
*
“우지학 감독표 코미디 영화라. 이거 이제 좀 식상하지 않나?”
“왜? 들어보니까 내부 반응 좋았다던데.”
“요즘은 중간만 넘어도 다 좋다고 하잖아. 그래도 클릭수는 좀 나오겠네.”
영화 기자들이 시사회를 앞두고 수군수군 거리고 있었다.
우지학 감독에 배우 김정범, 이현아. 마지막으로 아역임에도 제법 많은 인기를 받고 있는 차서준. 조회수가 나오기 딱 좋은 조합이었다.
“난 그래도 우지학 감독 개그 코드가 맞더라고. 저번 영화도 그래서 엄청 웃었잖아.”
“슬슬 미끄러질 때가 되긴 했는데. 이번이 딱 좋은 기회인데 말이야. 기사 쓰기에 소스도 끝내주고.”
그 말을 내뱉은 기자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무대 위에 올라와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감독과 배우들이 내려가고.
‘금괴 소동’의 상영을 위해 천장의 조명들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 무대 위로 배우들이 올라오고. 그 모습을 찍기 위해 기자들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이번 영화도 대박이네. 뭐? 미끄러진다고?”
“거참. 똑같은 개그 패턴인데. 배우들이 달라졌다고 이렇게나 재밌어질 수가 있나?”
구시렁거리던 기자는 이내 무대에 올라오는 배우들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포토월에 선 차서준을 찍던 기자 하나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쟤는 진짜 물건이네. 이제 겨우 7살 아닌가? 뭐 저리 포즈들이 자연스럽냐. 연기력이야 방금 봤으니 말할 필요도 없고.”
편하게 서서 다양한 포즈를 선보이는 차서준의 모습에 다른 기자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쟤를 저번에 봤을 때도 느꼈지만. 그 탑급들에게만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어.”
“너도 그래? 그냥 연기력부터 시작해서. 소문에 들려오는 촬영장 태도, 성격. 그냥 연예인 하기 위해서 태어난 거 같더라.”
기자들의 그 감탄이 절정에 이른 건. 질문을 받은 차서준이 마이크를 잡았을 때였다.
“쟤 영화 촬영 이번이 처음 아니야?”
“처음이지. 예능에 한 번 나와서 말 잘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냥 인터뷰 스킬까지도 좋네.”
“천생 연예인이네 연예인. 쟤는 시간만 지나면 무조건 탑급까지 오르겠다.”
웃음을 빵빵 터트린 영화도 주목받았지만. 정작 영화 기자들이 주목한 건 바로 아역 배우 차서준이었다.
영화 ‘금괴 소동’의 언론 시사회가 끝났다.
[눈물 강요가 없는 코미디의 정수.]
-김은철(★★★☆)
[오랜만에 신파 없는 한국형 코미디가 주는 큰 웃음]
-허웅철(★★★☆)
[추석 연휴, 웃음을 찾고 싶다면 볼만한 코미디.]
-박은중(★★★★)
평론가들의 평이 공개됨과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 어? 김은철이 상업 영화에 별 3개 준 적이 언제였었지?
└ 그거 몇 달 되었을걸. 나 그거 보다가 배꼽 빠지게 웃었음. ㅋㅋㅋ
└ 그러면 이번 추석에 ‘금괴 소동’ 예약해 볼까요? 평론가들이나 기자들 평가가 다 좋은데?
└ 처음엔 언플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시사회 본 사람들의 평들이 다 좋음. 이번 추석 연휴 때 가족들이랑 보기 좋은 영화인 듯?
└ 저는 서준이 보러 갈려고요. 대형 스크린에서 우리 차 배우를 볼 수 있다니. 무조건 가야지!
└ 확실히 우지학 감독의 영화답게 신파가 없는 모양이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려고 작정했다는 말이 많아요.
언론 시사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박한 점수를 주기로 유명한 평론가 김은철부터 시작해서. 보고 나온 이들 대부분이 올 추석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손꼽기 시작한 것.
그런 기대감 속에서.
영화 ‘금괴 소동’ VIP 시사회가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