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구름엑터스 회식 자리.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구름엑터스의 회식 자리는 누구나 편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니지먼트팀 팀장이 서도현에게 질문을 위해 손을 들었다. 주변 직원들의 눈치를 보아하니 총대를 멘 모양.
“대표님.”
“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왜 이리 서준이 일이라면 대표님께서 직접 나서시는 겁니까? 아, 이건 누가 물어봐달라고 해서요.”
“누가 그랬는데?”
오늘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서도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엊그제 회사 왔었던 정우가 농담처럼 질투 난다고 하더라고요. 왜 대표님이 자기 촬영장에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으면서. 서준이 촬영장에는 그렇게 따라가는지 궁금하다고.”
“우리 정 배우님이 그렇다면. 섭섭해하지 않게 조만간 시간을 내서 정우 촬영장에 한 번 가야겠네.”
어차피 엊그제 그 말을 했다는 배우 정우나, 지금 촬영장에 가겠다는 서도현 둘 다 농담이라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자기 배우들을 끔찍하게 챙기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 눈앞의 서도현이었으니까.
다만, 아직 아역 배우에 불과한 차서준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서도현의 생각에 대해선 다들 궁금한 모양이었다.
“자, 다시 본론을 돌아와서. 다들 내 행동의 이유가 궁금하다는 건데. 일단 모두 잔부터 채우자고.”
서도현은 직원들의 잔을 채워주며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답을 기다리며 귀를 쫑긋 세운 직원들을 바라보면서.
“서준이가 천재적인 연기력을 타고난 배우긴 하지. 그렇고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표인 내가 이렇게까지 챙기는 이유가 궁금하겠지?”
끄덕끄덕. 고개글 끄덕이는 직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서도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 오히려 내가 질문 하나를 하지. 차서준이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뭔가 달라진 것들이 있는데 혹시 알고 있는 사람?”
그 말에 몇몇 이들의 표정이 변한다. 바로 팀장급 인사들에게서 뭔가 알겠다는 반응이 나온 것.
“아, 최근에 신준철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었어요. 선생님께서 우리와 계약하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요. 혹시 이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요?”
“정답.”
이 대답이 나오길 기다렸던 서도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서준이는 걸어 다니는 구름엑터스의 광고판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거든. 그것도 새로운 소속사를 생각하는 배우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맞네요. 서준T도 그렇고. 촬영장에서도 그렇고. 서준이 덕분에 우리 회사가 배우 케어를 잘한다는 소문이 쫙 퍼지긴 했어요.”
그랬다.
기존에 배우들에게 알려진 구름엑터스가 좋은 작품을 잘 찾아주는 이미지였다면. 차서준을 계기로 소속 배우들 케어 역시 훌륭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꽤나 좋은 배우들 중에서도 먼저 의사를 내비친 이들이 많아졌다.
이전이라면 구름엑터스에서 먼저 접근해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배우들이 먼저 찾아온다고 할까.
하지만.
단순히 구름엑터스에 대한 광고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엔 이유가 부족했다.
“하나 더 있지. 또 아는 사람?”
“제가 알 것 같아요. 서준이랑 같이 찍은 배우들 모두 대박 났잖아요. 배우 생활 끝나냐, 마냐 하던 김우승도 그렇고. 박우형은 뭐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초대박 났고.”
“정답. 상으로 잔을 주지.”
서도현의 그 말에 정답을 맞춘 직원이 울상이 되었지만. 농담이었는지 다 같이 짠을 외치는 서도현이었다.
서도현의 작품을 보는 눈 역시 재조명받게 되었다. 차서준의 차기작 선택에 서도현의 추천이 있었다는 건 다들 아는 이야기였으니까.
무엇보다.
차서준이 열심히 떠들고 다녔다. 다 서도현 덕분에 좋은 작품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작품 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게 배우들이다. 누구는 하루아침에 벼락스타가 될 수도 있고. 또 누구는 그간 쌓아온 커리어가 엉망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차기작 선택에 있어 배우들의 신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말로 서준이 덕분에 우리 대표님 작품 선구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잖아요. 거기에 지금 서준이 드라마 2연타 성적이 어마어마하니.”
“맞네? ‘너에게 다시’나 ‘폭군의 세자’ 모두 손꼽히는 작품이 되었으니. 특히 박우형 신드롬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잖아.”
“여기서 만약 ‘금괴 소동’까지 터져준다면. 진짜 너도나도 우리 회사로 오고 싶어 할걸요?”
소문이 그 어떤 업계보다 빠른 곳이다. ‘너에게 다시’나, ‘폭군의 세자’의 차서준 오디션에 모두 서도현이 직접 따라갔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했다.
그 말은 서도현에게 이 작품들이 반드시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 대표가 그 자리까지 따라가서 배우가 배역을 따내는데 힘을 썼다는 뜻이었으니까.
구름엑터스 문을 두들기려는 배우들은 그 부분에 주목했다.
“거기에 서준이가 촬영장에서 우리 회사 자랑을 그렇게 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회사 옮길 생각하던 이들 중 몇몇은 귀가 솔깃했을걸?”
한마디로 구름엑터스에게 있어 아역 배우 차서준은 걸어 다니는 복덩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차서준이 구름엑터스와 계약한 이후. 회사의 이미지 떡상에 배우들의 계약 문의까지 이어졌으니.
그런 직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서도현은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이유를 꺼냈다.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납득해버릴 만한 가장 큰 이유를.
“마지막으로. 최근에 회사에서 우리 조카 도윤이 본 사람?”
“어? 그러네요?”
“맞네. 요즘 도윤이가 안 보였어요.”
그랬다.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서도현을 달달 들볶던 외조카 김도윤이었다.
가뜩이나 뒤늦게 얻은 늦둥이 외조카에 서도현을 비롯한 가족들이 쩔쩔매곤 했었다. 직원들 없는 대표실 안에서만 떼를 쓰니 서도현 역시 방법이 없었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시로 찾아와 조르던 김도윤이 보이질 않았다. 차서준과 가끔 놀러 올 때를 제외하곤 회사 방문이 사라진 것이다.
“도윤이가 그러더라고. 서준이처럼 내가 먼저 계약을 제안하도록 열심히 연기 공부를 하겠다고. 그러니 내가 서준이를 예뻐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마지막 말이 본심일지도 모른다.
서도현의 말을 모두 듣고 난 직원들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
점점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그날.
“서준아. 잠깐만 나와서 엄마 좀 도와줄 수 있니?”
“네! 지금 나가요!”
엄마의 부름에 나는 하던 일도 멈추고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제 슬슬 혼자서 하던 일들이 벅차게 된 엄마였으니까.
깜짝이로 불리던 내 동생이 드디어 세상에 나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영화 ‘금괴 소동’ 관련 일정을 제외하면 남은 시간 모두를 엄마와 함께 보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엄마, 깜짝이까지 셋이서 함께 보내고 있는 거였지만 말이다.
“서준아, 엄마 도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내 씩씩한 말에 엄마가 미소를 짓는다. 배가 뽈록 나온 것이 이제는 주변의 도움 없이는 하기 힘든 일들이 제법 많아졌다.
그때마다 집에 있던 내가 아직은 짧은 두 팔을 걷어 올리고 나섰다. 우리 아들 다 컸다며 대견해하는 엄마의 칭찬에 헤실헤실 웃음이 나온 건 덤이고.
“우리 서준이 오늘은 오후 스케줄이 있다고 했지?”
“네. 영화 홍보 일정이 있어요.”
그랬다.
곧 다가올 추석 시즌을 맞이하여 개봉을 앞둔 ‘금괴 소동’의 디데이 카운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는 나 역시 함께 촬영한 배우들과 함께 홍보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오늘은 김정범, 이현아와 함께 각종 영화를 홍보하는 ‘집중 연예 TV'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영화 반응은 어떠니?”
“엄청 좋아요! 내부 시사회 때 직원들 반응이 엄청 좋았대요. 다들 보다가 배꼽이 빠져서 찾느라 애를 먹었대요.”
예상치 못한 내 농담에 엄마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 엄마는 우리 서준이가 찍은 영화라서 당연히 잘 될 줄 알았어.”
“헤헤. 맞아요.”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정말로 우지학 감독의 손을 거쳐 완성한 ‘금괴 소동’의 내부 시사회 반응들이 좋았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말로 잘 될까? 하던 내부 우려들이 내부 시사회와 함께 싹 사라졌다고. 오히려 하루라도 더 빨리 언론시사회를 열자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들었다.
“엄마도 예고편 봤는데. 엄청 기대가 되던걸?”
“맞아요! 벌써부터 예고편 본 사람들이 기대된다고 엄청 난리도 아니에요.”
“그러게. 엄마도 아빠랑 서준이랑 같이 개봉하고 나면. 영화관에서 함께 보면 좋을 텐데.”
“괜찮아요. 나중에 VOD로 공개되면 집에서 다 같이 봐요. 동생까지 같이요.”
“그럴까?”
“네!”
내 말에 포근한 미소를 짓는 엄마였다. 혹여나 영화관에 따라가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내가 실망할까 걱정이 되었던 것 같은데.
내가 씩씩하게 괜찮다고 하니 그제야 안심이 된 듯싶다.
좋은 소식은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형이 형이 선물을 집으로 보냈대요. 가지고 오기엔 무거워서 전문 설치 기사가 가지고 올 거래요.”
“정말? 우형 씨나 우승 씨 모두 너무 고맙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초대해야겠어. 서준이 생일 때에는 비싼 침대까지 보내주었잖아.”
김우승, 박우형이 정말 잘했다. 나한테만이 아닌 엄마, 아빠한테까지.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이 형들이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겠다며 이것저것 보내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집에는 살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고가의 육아용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내 생일에는 최고급 침대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었고.
“괜찮아요. 그리고 저번 주에 아빠가 제 생일 선물 고맙다고 형들이랑 만났었잖아요.”
“으휴. 네 아빠가 또 이상한 걸 하고 온 모양이던데. 별말 없었니? 엄마는 혹시 그것 때문에 선물을 보낸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되는데.”
“괜찮아요. 형들도 엄청 즐거웠대요. 선물은 그전에 미리 주문해둔 거래요.”
“다행이네.”
이미 얼마 전에 두 사람이 아빠를 불러 셋이서 한잔을 했었다. 정확히는 ‘연사모’ 핑계로 마시려던 김우승이 아빠까지 초대한 것.
금요일 저녁에 나가 늦은 새벽에서야 잔뜩 취해 들어온 아빠가 다음 날 엄마에게 엄청 혼났었다.
“서준아, 네 아빠가 또 취해서 도원결의니 뭐니 한 거 아닌지 몰라.”
“···.”
했다.
나를 낳아준 아빠가 큰형님. 그리고 다음으로 박우형, 김우승이 서로 호형호제를 하기로 했다나 뭐라나.
원래는 나를 포함시키려고 했는데. 저 도원결의는 술을 마시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 대신 아빠가 들어갔다고.
어쨌거나.
김우승, 박우형의 나를 향한 사랑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가끔은 아직까지 쉴 새 없이 떠드는 수다에 입을 막아버리고 싶을 때가 가끔. 아니, 종종 들긴 했지만.
“수진 누나한테 연락 왔어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우리 서준이 오늘도 잘 다녀오렴.”
“네!”
이제는 안아주기엔 엄마의 배가 너무나도 커졌다. 그 덕분에 동생까지 함께 안아준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
“여러분! 오늘은 우지학 감독님의 ‘금괴 소동’ 배우 분들을 모셔봤습니다.”
리포터의 인사를 시작으로.
“안녕하세요. 금괴를 갖고 소동을 벌이는 지호 아빠, 김정범입니다.”
“안녕하세요. 지호 엄마 역을 연기한 이현아입니다.”
김정범과 이현아가 영화 속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금괴 소동’의 귀여운 막내 지호 역의 차서준입니다.”
마지막 내 소개까지 끝나자.
“우지학 감독님의 코미디 영화. 그것도 ‘금괴 소동’이라는 제목부터 얼마나 웃길지 기대가 되는 영화인데요. 예고편을 본 많은 분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는 반응들이 많습니다.”
리포터가 호들갑으로 기대감을 주는 멘트를 친 다음.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사실 말이 인터뷰지 홍보나 다름없었다.
잠시 후.
“인터뷰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인터뷰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리포터 누나에게 인사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저쪽에서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수진 누나가 보였다.
무슨 일이지?
“서준아! 집에서 연락이 왔는데.”
설마?
출산 예정일을 고려해서 인터뷰 일정으로 최대한 당겼던 나였다.
그런데.
“어머님이 진통 시작하셨대.”
우리 가족이 보고 싶었는지 예정보다 동생이 빠르게 태어나려나 보다.
서둘러 인사를 마친 나는 수진 누나에게 달려갔다.
“당장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