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59화 (59/220)

59화

아침부터 보글보글 무언가를 요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부엌으로 향하던 나는 순간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가족이 내 생일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는 건 처음이라서.

김도경 시절 생일날 받은 거라곤 인스턴트 미역국이 전부였었다. 심지어 포장지에 그대로 담긴 채로 식탁 위에 달랑 놓여있었다.

“엄마?”

“서준이 일어났어?”

“네.”

재빨리 눈을 비비며 엄마를 부르자. 국자로 간을 보던 엄마가 나를 안아준다.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서 애정이 가득 느껴진다.

“오늘이 우리 서준이 생일이잖아. 그래서 엄마가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어.”

“정말요? 너무 좋아요!”

안 그래도 영화 촬영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였다.

생일인 오늘도 예외일 수 없었다. 촬영 기간 동안에 자신의 생일을 챙기지도 못하고 보내는 스태프들도 많을 테니까.

대신 우지학 감독의 배려 덕분에 오전 중에 내 촬영 분량은 끝낼 수 있었다.

엄마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아들을 위해 새벽부터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국의 진리는 오래 끓여서 흐물흐물해진 미역이라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그건 맞지.

“오늘 저녁에 아빠랑 더 맛있는 데로 갈까?”

“아니에요! 엄마, 아빠랑 기쁜 날에는 꼭 짜장면을 먹어야 돼요.”

생일이니 기쁜 날을 축하하기 위해 매번 가는 중국집에 가야지. 기쁜 날에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서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으러 가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아들! 생일 축하해!”

팡! 숨어 있던 아빠가 폭죽을 터트리며 등장한다. 모습을 드러낸 아빠의 손에는 7개의 초가 꽂혀있는 예쁜 케이크가 있었다.

내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선 재빨리 초에 불을 붙인 모양. 아빠가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자. 엄마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서준이~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붉게 타오르는 초를 응시했다.

소원 빌어야지.

엄마, 아빠. 그리고 곧 태어날 동생까지. 우리 가족에게 항상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게 해주세요.

노래가 끝나고.

“후우!”

소원 빌기를 마친 내가 후, 불어 초를 끄자.

“우리 서준이는 어떤 소원을 빌었어?”

엄마, 아빠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올해 새해 소망도 시상식 때문에 같이 못 있어서 아쉬웠다고 했었으니.

“비밀이에요!”

허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가 빈 소원을 말해주지 않았다.

부끄럽잖아.

“오늘 서준이가 케이크를 많이 받을 것 같아서. 엄마, 아빠가 가장 먼저 해주고 싶었어.”

“엄마, 아빠 사랑해요!”

사실이었다.

오전, 점심, 오후. 저녁 전까지. 평소보다 배는 바쁜 일정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하나 같이 생일을 맞이한 나를 축하해주겠다고 기다리는 일정들.

“그리고 이건 엄마, 아빠가 주는 서준이 생일 선물.”

“세상에나! 너무 좋아요!”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모자와 선글라스였다. 나들이 갈 때면 내 정체를 감추기 위해 종종 쓰는 것들.

슬슬 팬들에게 어떤 걸 쓰고 다니는지가 알려져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엄마, 아빠가 생일 선물이라며 나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걸 준비했다.

진정한 선물은 새벽부터 끓여준 사랑이 듬뿍 담긴 미역국이었지만.

출근을 앞둔 아빠와 함께 식탁에 앉자. 엄마가 재빨리 그릇에 미역국을 한가득 담아주었다.

“엄마! 미역국이 진짜 맛있어요!”

이건 진심.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새벽부터 팔팔 끓인 미역국의 맛은 정말 끝내줬다. 눈물이 다시 찔끔 났을 만큼.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렴.”

출근하는 아빠를 먼저 ‘안아주기’를 하고 보낸 뒤. 수진 누나가 도착했다는 연락에, 엄마를 안아주면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오늘은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른 아침부터 연락이 온 서도현을 찾아 구름엑터스 대표실에 방문하니. 팬들이 보내온 선물 박스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준아. 오전 촬영 끝나고. 오후에는 인증샷 찍으러 다녀야하는 거 알지?”

“알고 있어요. 팬들이 생일 축하 광고를 여기저기 많이 해줬다고 들었어요.”

아역 배우 차서준의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팬들이 지하철역뿐만 아니라, 버스에도 광고를 걸어준 것.

감사하다는 의미를 담아 그 광고판 앞에서 인증샷을 빼먹으면 안 될 일이었다.

“특히나 오늘 생일인 게 알려졌으니까. 팬들에게 붙잡히지 않게 조심해야 돼.”

“잡히면 그 자리에서 팬사인회가 열리겠죠?”

“잘 아네. 평소라면 상관없는데. 오늘 오후에는 대여한 카페에서 생일 축하 팬미팅이 있으니까. 시간을 잘 쪼개서 써야 한다.”

생일날. 그것도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걸어준 광고다.

그런 생일 선물까지 받았는데. 붙잡히게 된다면 사인해달라는 요청을 뿌리치고 도망칠 순 없는 법. 평소라면 상관없겠지만 오늘은 정말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걸리지 않게 재빨리 인증샷을 찍고 다녀야만 했다.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곳을 방문해야 할 테니.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추첨을 통해 당첨된 팬들과 미니 팬미팅도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도 매년 생일이 되면.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팬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내 말에 서도현이 잘 생각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생각이다. 팬들의 사랑이 있으니 배우가 존재할 수 있는 법이지. 그 부분은 삼촌이 미리미리 조절해두마.”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

오늘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뒤에야 생일 축하한다며 말을 꺼내는 서도현이었다.

“이거는 선물. 일정 시작하면 바쁠 것 같아서 아침에 주려고 불렀다.”

“삼촌은 선물 안 줘도 되는데.”

“우리 구름엑터스의 소중한 보물인 차 배우인데. 당연히 삼촌이 생일 선물을 챙겨줘야지.”

“어? 삼촌 이건.”

“어때? 마음에 들지? 도윤이는 별로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서준이 너는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

마음에 들다마다. 작은 선물함 안에는 반짝반짝이는 앙증맞은 황금돼지가 들어있었다.

자고로 선물은 반짝이고 번쩍이는 게 최고라 했다.

“고마워요 삼촌!”

진심이 듬뿍 담긴 내 말에 서도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나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얼른 촬영장에 갈 준비하자. 밑에 매니저가 차 대기하고 있을 테니.”

“네! 다녀오겠습니다.”

수진 누나가 기다리고 있을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 서준아, 생일 축하한다. 형이 오늘 서준이 널 위해서 정말 큰 선물을 준비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시간을 내서 잠깐만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오늘 시간이···.

- 서준아, 생일 축하해. 내가 오늘 널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는데. 팬미팅까지 다 끝나고 가족들이랑 저녁 먹기 전에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시간이···.

반드시 내 생일을 챙겨줘야 한다며 김우승과 박우형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점점 문자 내용이 길어지는 거 보소.

차에 올라타니 수진 누나가 바쁘게 오늘 일정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있었다.

“서준아. 모레 오후에는 ‘소소한 하루’에서 짧게나마 촬영하고 싶어 한다면서?”

“네. 우승이 형의 생일 축하를 찍기로 했어요. 그날 저녁에는 형네 집으로 갈 거예요.”

“오늘이 서준이 생일날인데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겠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는 이런 바쁜 생일이 가장 기쁜 거 같아요.”

수진 누나가 최종 스케줄 점검이 끝났는지. 오늘 내가 소화해야 할 일정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 오전에는 영화 촬영장에서 생일파티 받고. 점심때 팬들이 촬영장으로 보내준 생일 밥차 앞에서 인증샷 찍고.”

“그거 끝나면 지하철역이랑 버스 앞에서 고맙다고 사진도 찍어야 돼요.”

사총사들의 축하는 주말에 받기로 했다. 아무리 시간을 내려고 해도 너무 바빠서.

오전 ‘금괴 소동’ 촬영장에서 사람들이 준비해준 생일 축하와 팬들의 밥차를 받은 뒤.

“누나. 무슨 역부터 갈 거예요?”

“삼성역부터 차근차근 돌자.”

그렇게 팬들이 선물해준 지하철역 광고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른 찍어요.”

사람들이 알아보기 전에 후다닥 인증샷을 찍고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서준이다!”

“차 배우!”

“서준아. 생일 축하해!”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려던 수진 누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대로 오랫동안 붙잡혀 있다간 차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테니까.

그런데.

“서준아. 단체 사진 찍어줄 수 있을까? 오늘 다른 곳에서도 인증샷 찍을 테니 시간이 없겠지만. 우리 오래 기다렸는데.”

개개인과의 사진이 아닌 단체 사진을 요청하는 팬들의 모습에, 수진 누나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도 더 좋아요! 우리 광고판 속 저를 배경으로 다 같이 사진 찍어요.”

덕분에 몰래 사진을 찍고 가는 게 아닌. 광고를 선물한 팬들과 함께 다 같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이후 전철역과 버스 앞에서 기다리던 팬들과 단체 인증샷. 그리고 카페에서 이루어진 소규모 팬미팅.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정해진 스케줄이 모두 끝났다.

“누나. 오늘 저 때문에 정말 고생 많았어요.”

“뭘. 그리고 이건 내가 준비한 서준이 생일 선물. 너무 바빠서 이제야 주네.”

수진 누나가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어린이 헤드셋이었다. 그것도 나와 잘 어울릴 만한 디자인의 헤드셋.

“고마워요 누나.”

이렇게 훈훈하게 끝나고 집으로 향했으면 좋으련만. 아직 일정이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그것도 가장 힘든 일정이.

“어서 와. 생일 축하한다, 서준아. 내 선물이랑 준형이 형 선물은 조만간 집으로 배달이 갈 거야.”

이건 보자마자 건넨 김우승의 생일 축하 인사.

“오늘 오전에 영화 촬영도 했었다면서? 안 그래도 코미디 영화라는 게 어떤 포인트가 중요한지 서준이 네게 알려주려고 했었는데. 오늘 마침 시간이 짧게나마 되었으니 잠깐만 나랑 이야기를···”

이건 박우형 스타일의 장문의 축하 인사.

그날 밤.

SNS에 각종 사진들과 후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건.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들과 함께한 차서준의 생일 축하]

김우승이 올린 글과 사진이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다 끝났다. 특히나 추가 촬영 없기로 유명한 우지학 감독이기에 현장 촬영은 모두 끝난 셈이다. 남은 것은 후반 작업뿐.

추후 후시 녹음을 위해 녹음실에 찾아갈 일이야 몇 번 있겠지만. 드디어 ‘금괴 소동’의 본 촬영은 끝난 것이다.

“서준아.”

“네?”

“너 혹시 다음 작품 나랑 같이하지 않을래? 저번에 잠깐 말했던 그거 있잖아. 그게 진짜 예술적이라니까. 거기 배역 소화할 수 있는 배우 생각하니까 서준이가 딱 떠오르더라고.”

“죄송해요. 조금 쉬었다가 찾아보려고요.”

“쩝. 본인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김정범이 입맛을 다시며 물러난다. 이미 어떤 작품인지 시나리오가 구름엑터스에도 들어왔기에 확인한 참이었다.

전형적인 감독의 예술관을 때려 박은 영화. 인간의 심오한 본성을 탐구한 예술 영화랄까.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이야 하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쉽게도 아직 7살인 아역 배우 차서준이 원하는 작품은 엄마, 아빠와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예술적인 작품은 성인이 된 후에 마음껏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어때?”

“뭐가요?”

이번에는 슬쩍 이현아에게 다가간 김정범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솔직히 우리 영화 어떨 거 같아? 누구보다 연기한 배우가 가장 잘 알잖아.”

김정범이야 과거 우지학 감독과 작품을 같이 한 경험이 있기에 개의치 않아 보였지만. 이현아의 얼굴에선 가끔 걱정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촬영 중후반으로 갈수록 ‘이게 정말 먹힐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보일 때가 종종 있었으니까.

다만, 감독이 우지학이기에 불안감을 애써 감추려는 기색이 있었다.

“서준이는 어떻게 생각해?”

역시 여배우답게 능숙하게 곤란한 질문을 나에게 토스한다. 지금 우리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건 셋뿐만 아니라, 주변 스태프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거 대박 날 거 같아요.”

내 당찬 대답과 동시에. 이쪽 대화를 향해 귀를 쫑긋이던 사람들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지금까지 아역 배우 차서준이 출연한 모든 작품이 모두 대박이 났었으니까. 그런 내가 확신에 찬 대답을 하니 안심이 된 것이다.

“재밌잖아요. 코미디 영화에서 재밌다는 게 최고의 무기 아니겠어요?”

“하하. 맞지. 서준이가 뭘 좀 안다니까.”

그제야 걱정을 날린 이들이 하나둘 떠들기 시작한다. 그런 이들을 뒤로한 채 핸드폰을 들어 달력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건 영화 ‘금괴 소동’의 개봉 박두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