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58화 (58/220)

58화

영화와 드라마의 대표적인 차이점을 하나 꼽자면. 바로 촬영 순서에 있었다.

1화, 2화, 3화. 이렇게 방송에 나갈 순서로 촬영하는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촬영 스케줄에 짜여진 순서대로 촬영에 들어갔다.

그것은 우리 영화 역시 마찬가지.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는 내 앞에선 추격신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 어! 저, 저거 도망간다! 잡아!”

“튀어!”

“야이 나쁜 놈아! 니가 다 잘 될 거라며. 이거 여기선 팔 수 있다면서!”

아직 촬영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술래잡기처럼 쫓고 쫓기는 배우들이 찍는 장면은 영화 중반부였다.

옆에 있던 이현아가 슬쩍 내 귓가에 고개를 가까이 댄다.

“어때?”

“저는 제가 아직 어린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기 껴서 안 달리고 있어서?”

“네. 오늘 달리는 씬이 무려 3개나 더 있잖아요.”

내 말에 옆에서 있던 이현아가 빵 터졌다. 실제로 이현아 역시 저 추격 씬에 자신도 빠져서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필이면 뛰는 장소도 경사가 있는 언덕이었으니.

정작 본인은 다음 장소에서, 저기 김정범과 함께 발에 땀이 차도록 달려야 한다는 걸 잊은 듯했다. 애써 외면하는 걸 수도 있고.

“서준이 너 조금 있다가 나도 달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었지?”

“···아니요.”

“그래그래. 하지만 나는 실내에서 잠깐 달리는 거고. 저기 정범 오빠는 롱테이크로 몇백 미터를 달려야 하잖아. 심지어 언덕이야. 어? 또 NG 나겠는데?”

정말이다.

이미 NG가 두 번이나 터졌기에. 다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뛰는 배우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현아의 말처럼 모니터를 바라보는 우지혁 감독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원하는 그림이 좀처럼 나오질 않는 모양.

“캇! 좋아! 정범 씨, 와서 여기 잠깐만 확인해보고 한 번만 더 가자고! 괜찮겠어?”

“와, 감독님 저 죽겠는데요?”

“안 죽어, 안 죽어. 대신 딱 한 번만 더 뛰면 진짜 끝내주는 그림 나올 거 같은데.”

“그러면 해야죠. 다른 사람도 아닌 감독님이 그렇게 된다는데.”

또 한 가지.

분위기가 변했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자 우지학 감독의 지론처럼 ‘코미디 영화’답게 촬영 현장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지금도 한 번만 더 가자는 우지학 감독의 말에 김정범이 인상을 찌푸릴 만도 했으나. 오케이를 외치는 얼굴엔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실제로 몇 번의 재촬영 끝에 오케이를 외치는 장면은 배우들 모두 만족해할 만한 것이었으니까.

“딱 여기 이 부분 있잖아. 여기서 조금만···.”

“오케이. 감독님이 뭘 말씀하시는지 알겠습니다.”

“그지? 역시 정범 씨야. 사실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는데. 정범 씨가 나중에 마음에 안 들어 할 것 같아서.”

“역시 우리 감독님이 뭘 좀 아신다니까. 그런데 조금만 쉬었다 가요. 나 이러다 진짜 숨넘어가겠어요.”

비공식 대본 리딩 때 배우들의 대사 속 감정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지적하던 사람은 없어졌다.

지금처럼 파이팅을 외치고. 또 누구보다 앞장서서 디렉팅에 적극적인 감독님만 있을 뿐.

실제 그렇게 바뀐 우지학 감독의 분위기에 촬영장의 분위기 역시 파이팅이 넘쳤다.

“감독님도 참 대단한 거 같아요.”

“뭐가?”

“마치 머릿속에 다 그림이 있다는 듯이. 필요한 부분만 딱딱 촬영해버리시잖아요.”

내 감탄에 이현아 역시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서도현의 말처럼 우지학 감독의 촬영장에 잡음이 없을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지금처럼 우지학 감독의 머릿속에 완성된 그림 덕분이었다. 그걸 콘티로 세세하게 다 짜둔 뒤. 불필요한 촬영을 최대한 배제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지학 감독이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지금처럼 촬영을 반복할 때가 있긴 했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저 김정범처럼. 허나, 배우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진짜 재촬영한 그림이 더 쌔끈하게 빠졌으니까.

“오케이! 방금 진짜 좋았다. 다들 땀 식히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시다.”

우지학 감독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태프들이 달려들어 부채질을 한다.

잠시 땀을 식히던 김정범의 레이더망에 나와 이현아가 포착되었다. 그와 동시에 부채를 받아 성큼성큼 다가오는 김정범.

“허억, 허억. 서준이 넌 좀 편해 보인다? 옆에 있는 현아 너도?”

들켰네.

“헤헤. 선배님 힘들 줄 알고. 제가 여기 시원한 물도 준비해두었어요.”

나는 재빨리 미리 챙겨둔 얼음물을 김정범에게 건넸다. 옆에 있던 이현아는 전화가 걸려 온 척 도망쳐버렸다.

의리 없는 엄마 같으니라고. 영화 속에서는 수시로 싸우기는 해도 알콩달콩한 엄마, 아들인데. 현실에서는 김정범을 피해 나를 두고 도망쳐버렸다.

내가 준비한 얼음물을 꿀꺽꿀꺽 마신 김정범이 만족스러워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이야. 이 얼음물은 어디서 났어? 스탭들이 준비한 얼음물은 이미 다 떨어졌다고. 지금 얼음 사러 갔다고 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났긴. 내가 어젯밤부터 준비해둔 거다. 오늘 배우들이 달려야 하는 장면들이 여럿 있다는 걸 들었으니까.

보통 원큐에 달리는 장면이 오케이가 떨어진다면 헛수고였겠지만. 지금처럼 반복 촬영이 될 때는 얼음물의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더 목에 넘기고서야. 삐뚜름하던 김정범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시원한 얼음물을 준비한 나를 보는 눈빛엔 애정까지 담겨있었다. 참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서준이 너 진짜 물건이더라.”

“네?”

“대본 리딩 때에도 솔직히 감탄하긴 했는데. 본 촬영을 시작하니 아예 날라 다니던데?”

안다. 수차례 진행했던 대본 리딩 때에도 제법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던 나지만.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고 나선 우지학 감독조차 NG를 외치지 않을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신 덕분이에요.”

“무슨 7살답지 않게 말도 진짜 잘한다니까. 너 설마···.”

뜨끔. 뚫어져라 쳐다보는 김정범의 시선을 피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예상이 되어서.

“그래. 맞아, 그랬지. 내가 요즘 들어 서준이 널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니까.”

“어떤 생각인데요?”

“서준이 널 보고 있으면 마치···.”

마치?

“배우로, 그것도 탑급 배우로 한 15년 이상 구르다가 어린애가 된 사람 같다니까. 연기력이면 연기력. 평소 보여주는 행실까지.”

“하하···. 칭찬 고맙습니다.”

이상한 부분에서 예리하다. 김우승, 박우형과 다르게 묘한 눈으로 관찰하며 농담만 던지던 김정범이었는데.

방금 내게 던진 농담은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예리한 말이었다.

“너,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 봐. 너 팬들이 농담처럼 하는 인생 2회차 아니야?”

“오빠. 오빠는 무슨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저번에 서준이가 나왔던 ‘소소한 하루’도 안 봤어?”

도망쳤던 이현아가 어느새 다시 돌아와 나를 도와준다. 마치 그것도 안 봤으면서 애한테 무슨 말을 하냐는 듯.

김우승의 게스트로 내가 나왔던 ‘소소한 하루’를 안 봤는지. 김정범이 고개를 저었다.

“응? 안 봤는데.”

“으휴. 그거 재방 구해서 한번 봐. 서준이가 왜 연기를 잘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나중에 시간 나면 한 번 보지 뭐.”

“그거 보고 나면. 오빠가 방금 했던 인생 2회차니, 이런 이상한 소리는 꺼내지도 못할 거야.”

감동.

방금 날 버리고 도망쳤던 건. 지금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확실히 김우승의 게스트로 나갔던 ‘소소한 하루’가 배우 차서준의 이미지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재능을 가진 연기 천재.

이런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던 사람들조차. 배우 차서준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고. 또 연기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또 하나.

나이 차가 제법 나는 형들이랑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 알려져. 가끔 애늙은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도 설명이 되어버렸다.

“서준이가 성숙한 건 우승 씨나, 우형 씨 같은 형들이랑 모임까지 만들어서 종종 만나서 그럴걸.”

“아, 그건 나도 들었다. 그 뭐였더라. 조금 이상한 이름이었는데.”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었는지. 김정범이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연기를 사랑하는 모임’. 어느새 인정하기 싫었지만 배우 차서준 덕분에 탄생한 모임이 되어버렸다.

*

우지학 감독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화면 안에는 간신히 장물을 취급하는 업자들에게 간신히 도망친 김정범이 꾀죄죄한 몰골로 있었다.

그 옆에는 흙투성이로 엉망이 된 이현아와 차서준. 그리고 열심히 판 구덩이. 그 옆에 쌓인 흙 위에 삽 두 자루가 있었다.

“으이구. 화상아! 지금 그게 목구멍에 넘어가니?”

이현아가 컵라면을 후후 불던 김정범의 뒷통수를 탁 소리가 나게 때린다. 그와 동시에 중심을 잃으며 떨어뜨리는 컵라면.

뒤에서 그걸 바라보며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는 차서준. 꼬로록 소리를 나는 배를 한 번, 다시 고개를 돌려 땅에 흩어진 컵라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 차서준을 모른 채. 뒷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는 김정범.

‘이거지!’

우지학 감독은 배경에서 감초 연기를 선보이는 차서준의 행동에 쾌재를 불렀다.

코미디 영화가 유치해지지 않으려면 빠른 템포가 필수다. 그런 치고 빠지는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를 차서준이 보여주고 있는 것.

심지어 저게 애드리브라는 사실에 소름까지 돋는 우지학 감독이었다.

“나 진짜 방금 죽을 뻔했다니까.”

“그래. 거기서 죽지 그랬니. 으이구, 이 화상아.”

“아까 거기서 잡혔으면. 나 당신이랑 지호 다시는 못 볼 뻔했다고.”

방금 전까지 뒷거래 장물을 다루던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느라 거지꼴이 된 김정범. 그런 그의 뒤통수를 한 대 더 때리는 이현아.

“내가 그러니까 진철이 믿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언제 믿었어. 솔직히 내가 여기에 묻지 말자고 했잖아.”

“네네. 여기 장소를 먼저 꺼낸 사람이 당신이에요. 그리고 안 믿어서 금괴 들고튀었나 보다. 그렇지?”

“쉿! 누구 들을라.”

“들으면 뭐 어쩔 건데! 지금 우리 빈털터리 되게 생겼는데.”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부모 사이에 잠시 멍하니 있던 차서준. 문득 멀리를 보고 있던 차서준이 천천히 손가락을 들었다.

“···아빠. 저기 진철이 아저씨 아니야?”

차서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홱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

그 둘과 다르게 걸어오는 박주병을 훑는 차서준. 달랑달랑 맨몸으로 오는 걸 보고, 먹을 것이 없음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차서준.

그걸 본 순간 우지학 감독은 확신했다.

‘미쳤네. 저 타이밍을 순간적으로 캐치해서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고작 눈앞의 7살의 아역 배우였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라고.

“어어? 저 자식!”

“어머! 진철 씨.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이야기는 들었어요. 이 사람이 진철 씨가 금괴 안 뺏기려고 달렸고요.”

마치 믿고 있었다고. 네가 우리를 구하러 와줬구나. 이렇게 외치는 두 사람에게.

“···어? 잡혀서 뚜들겨 맞다가 뺏겼는데?”

나도 잡혔어를 외치는 박주병.

“컷! 이야, 최고였어요. 최고.”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로 오케이를 외치는 우지학 감독. 곧바로 헤드셋을 내려놓곤 흥분한 얼굴로 서둘러 배우들에게 다가갔다. 정확히는 차서준에게로.

“역시 서준이야. 대체 대사 딱 한 줄만 줬는데.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생각을 했어?”

“감독님의 디렉팅을 듣고 열심히 고민했어요.”

그 말에 활짝 웃는 우지학 감독이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그 이상의 웃긴 장면이 뽑혔다. 방금 저 표정을 본 관객들의 반응을 상상한 우지학 감독은 짜릿함을 감출 수 없었다.

*

“서준아.”

“네?”

“우리 서준이는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어?”

그랬다.

차서준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 서준아. 곧 네 생일이 다가오는데. 형이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혹시 받고 싶은 선물 있니? 만약 서준이 너만 괜찮다면 형이 정말 마음과 정성을 듬뿍 담아···.

- 서준아. 곧 생일이라면서.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만약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게 있다면 따로 말하고. 없으면 내가 생각해둔 걸로 주고 싶은데. 서준이 너만 시간이 괜찮다면···.

무슨 알람도 아니고.

한참 전부터 생일에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물어보는 김우승과 박우형 덕분에 알게 되었다.

- 괜찮아요. 그냥 우리 밥이나 먹어요.

생일 선물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저 형들에겐 들어 먹히지도 않았다.

자기들이 알아서 준비한다고 나는 신경도 쓰지 말라는데. 왜 그 말이 무섭게만 들리는지.

어쨌거나.

“저는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깜짝이가 제 생일 선물이에요.”

“정말?”

내가 우리 가족의 존재 자체가 생일 선물이라는 말에 엄마가 활짝 웃는다.

“그런데 우리 서준이는 올해 생일 파티를 여러 번 해야겠는데?”

“···눼. 맞아요.”

그랬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여러 번의 생일 파티를 하게 생겼다.

샛별반에서 한 번. 그리고 사총사들과 따로 또 한 번. 형들이랑 한 번. 마지막으로 팬들과 한 번.

이러면 순식간에 4살을 더 먹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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