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심금을 울리는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 ‘폭군의 세자’ 마의 시청률 23.6% 돌파.
- 종편 채널의 한계를 극복시킨 계영-이환의 사랑. 두 사람의 애틋한 마지막.
-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을 애태우는 ‘폭군의 세자’. QTV 드라마 역대 시청률 또다시 갱신.
- 역대 QTV 최고의 드라마가 된 ‘폭군의 세자’. 숨은 공신은 아역 배우 차서준?
'폭군의 세자‘는 QTV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다. 그 엄청난 성공에 앞다투어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종편 채널. 그것도 일주일 먼저 시작한 ‘보이스피싱’을 상대로 선방만 해도 대단하다는 평가를 들었을 드라마였다.
하지만.
마지막화의 시청률이 무려 23프로를 돌파해버렸다. 그것도 종편 채널이라는 한계를 극복해버린 채로.
드라마 시작 전까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심지어 제작진들조차도 그랬으니 팬들의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 오늘은 서준이 쿠키 영상이 안 나오는 건가요? ㅠㅠ
└ 네. 아쉽지만 어제가 서준이의 마지막 쿠키 영상이었대요. 저도 사실 쿠키 영상 때문에 계속 본방 사수했었네요.
└ 6화부터 이지예와 박우형이 미친 케미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폭군의 세자’ 대박엔 서준이의 어린 세자 지분이 제법 컸었음.
└ ㅇㅈ 귀여운 서준이의 세자 이환을 시작으로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으니.
└ 오죽하면 지금도 각종 기사들에 차서준이 언급되겠음.
└ ‘폭군의 세자’ 종방연 때 서준이 볼 수 있을까요? 영화 촬영 들어갔다고 하던데.
└ 오지 않겠음? 비록 쿠키 영상으로라지만 19화 마지막까지 출연했는데.
이제 ‘폭군의 세자’ 팬들의 관심사는 종방연에 쏠렸다. 엄청난 파급력을 미쳤던 드라마인 만큼 마지막까지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박우형이었다. 오늘 종방연에 같이 가자면서 데리러 온 것이다.
“서준아.”
“네?”
“혹시 영화 촬영하다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 도와줄 테니까. 특히 영화 촬영에 관해선 아직 서준이 네가 어리다 보니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을 거다. 그러니 시간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언제든지 편하게···.”
“형 그러면 코믹 연기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걸까요?”
이런. 쉴 새 없이 떠들던 박우형의 입이 굳게 닫힌 채 시선을 피한다.
세자를 넘어 왕으로서 환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박우형이었지만.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자신 없는 분야가 코믹 연기였으니까.
뻘하게 웃기는 거야 박우형의 연기력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런 가벼운 캐릭터보다는 진중한 캐릭터가 어울리는 배우였다.
저 입이 또다시 닫히지 않고 떠들기 전에. 나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축하해요 형. 이제 완전히 스타 된 거 아니에요?”
“스타는 무슨. 축하 고맙다.”
뭘 축하냐나는 대답 따윈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 ‘폭군의 세자’를 통해 최고 수혜자로 평가받는 배우가 눈앞의 박우형이었으니까.
수많은 배역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배역이라 평가받는 ‘왕’이다. 그중에서도 완벽하게 달달한 로맨스까지 선보인 퓨전 사극의 왕.
때로는 왕의 위엄을. 때로는 계영을 연기한 이지예와 환상적인 커플 케미를 보여준 박우형이었다. 특히 그 눈빛 연기에 빠져든 팬들이 한 트럭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지긴 한다. ‘폭군의 세자’를 통해 탑급으로 올라선 박우형에겐 광고가 몇 개나 들어갔을지에 대해서.
“형 광고 엄청 들어오지 않았아요?”
“글쎄. 지금도 계속 들어오고 있긴 한데. 소속사에 일임해서 정리된 것들만 받고 있거든. 나는 딱히 관심은 없어서.”
역시 박우형다웠다. 가히 박우형 신드롬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의 인기를 얻은 박우형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광고에 관심을 가져도 될 법 한데.
여전히 박우형의 관심사는 오직 ‘연기’ 뿐이었다. 참으로 한결같고 대나무같이 올곧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를 틀면 수많은 광고에서 박우형이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어제도 광고 촬영을 했다고 들었으니.
“서준이 너한테도 광고 제안이 많이 들어갔을 텐데?”
“그렇긴 한데. 꼭 괜찮다 싶은 것만 하려고요. 곧 들어갈 영화 촬영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나 역시 들어오는 광고들을 마구 찍을 생각은 없었다. 이건 괜찮다 싶은 것들만 추려서 선택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본격적인 촬영을 앞둔 ‘금괴 소동’이었으니까.
“역시. 서준이 너는 내가 처음부터 정확하게 알아봤다니까. 영화에 집중한다는 건 정말 좋은 생각이다. 배우는 오로지 연기만을 생각해야지. 광고와 그에 따라오는 돈에 집착하는 순간부터 작품을 소홀히 하게 되고···.”
아뿔싸. 무심코 질문에 답변하느라 간신히 다물게 한 박우형의 봉인을 풀어버리고 말았다. 그 대가는 제법 참혹했다.
“나도 이번에 소속사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하도 애원을 해서 하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배우란 모름지기 인기에 취하기보단 부지런히 작품을 쌓아 자신이 연기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니 서준이 너도···.”
제발.
참으로 한결같은 박우형이었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박우형의 입은 차가 종방연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다물어졌다.
*
이 자리에 참석한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기쁨. 이 단어를 제외하고 저 표정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
“하하핫! 내가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차 배우를 딱 보는 순간! 우리 김 감독이랑 정 작가에게 차 배우를 꼭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외쳤다니까.”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그날 바로 도장을 찍고서 차 배우를 캐스팅해 버렸지.”
스튜디오 마운틴의 대표 박홍철은 벌게진 얼굴로 연신 자기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과거 있었던 일에 대한 선동과 날조를 듬뿍 섞어서.
취한 건 아니었다. 제작사 대표답게 말술을 마시는 박홍철 대표였다. 게다가 아직 본격적인 종방연 시작 전인지라 술도 딱 한 잔만 마셨다.
그저 제작사 대표로서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공에 취해버린 것이다. 이 자리에서 드라마 성공에 대한 기쁨을 가장 만끽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면서도 김준수 PD와 정은희 작가는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과정이야 어쨌거나 결과가 초대박이니. 박홍철이 무슨 헛소리를 해도 마냥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 박홍철 대표 너머 한쪽 구석에선. 종방연 자리에 참석한 단역 배우들의 수다가 이어지고 있었다.
“너 ‘너에게 다시’에서도 단역으로 나가지 않았었나? 그때도 차서준이랑 같이 잠깐이나마 찍었다면서.”
“그랬죠. 그러고 보니 저는 서준이랑 참 인연이 깊은가 봐요.”
“깊기는. 우리 같은 단역은 같이 출연했다고 기억해주지도 않아요. 나중에 가면 어? 그때 우리 같이 찍었었나요? 면전에서 이런 소리까지 듣는다니까.”
삐뚜름한 남자의 말에. 듣고 있던 이가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닐걸요. 저번에 서준이가 쿠키 영상 찍으러 왔을 때. 정확하게 제 이름 알고서 여기서 또 본다고 먼저 다가와서 인사까지 해주더라고요.”
“그래? 우리 같은 단역들의 얼굴을 기억했다고?”
“네. 사실 저도 ‘너에게 다시’에 이어 ‘폭군의 세자’도 대박을 치면서. 애가 좀 변하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솔직히 이 바닥이 다 그렇잖아요.”
그 말에 듣고 있던 단역 배우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연예계란 하루아침에 인기를 얻어 돌변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첫 대본 리딩 때 깍듯하게 인사하던 신인 배우였는데. 드라마가 끝날 때쯤 인기를 얻더니 고개가 빳빳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재수 없으면 냄새를 맡은 기자들에게 걸려서 기사화되곤 했다. 흔히 말하는 ‘스타병’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서준이는 진짜 처음 봤을 때 그대로더라고요. 애가 하나도 안 변해. 오히려 더 예의 발라.”
“하긴. 저 정도 인기를 얻었으면 초심 잃을 만도 한데. 쿠키 영상 찍고 나면 스태프 막내까지 찾아가서 인사한다니까.”
“그러니까요. 이번에 영화 하나 들어간다는데. 또 얼마나 대단한 성적을 거둘지가 궁금하더라고요.”
“하긴. 이번에 영화까지 성공하면 3연타인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선구안이 미쳤네. 나도 구름엑터스에 가볼까?”
누군가의 얼굴에는 부러움, 또 고개를 숙인 누군가의 얼굴에는 질투심이 떠오른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단역을 넘어 주조연을 꿈꾸는 사람들. 7살의 어린 나이부터 승승장구하는 차서준의 성공 가도에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한쪽 구석에 있던 청년 하나가 불쑥 끼어든 것은.
“근데 저는 서준이가 그냥 타고난 천재인 줄만 알았거든요?”
“천재지. 나는 신준철 선생님이랑 언쟁하는 연기를 볼 때. 그냥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 저게 어떻게 7살이겠냐고.”
“저번에 ‘소소한 하루’에서 김우승 게스트로 서준이가 나왔을 때. 김우승, 박우형. 차서준. 이렇게 셋이 연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 그냥 감탄만 나오더라고요.”
“왜?”
청년이야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보지만. 이 자리에 앉은 나머지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고.
“연기에 대해 진짜 많이 공부한 태가 났어요. 티 말고 태. 방에 연기에 관한 서적들도 많대요. 심지어 김우승이랑 단둘이 여행 가서 연기에 관한 이야기만 하더라니까요.”
청년은 차서준의 노력에 대해 말했지만. 시기와 질투를 숙인 고개에 숨기고 있던 남자는 단박에 부정해버렸다.
“에이, 그거 다 방송 설정이지. 예능 중에 대본 없는 예능 봤어? 그냥 애가 이렇게나 노력을 해서 연기를 잘하는 겁니다. 이렇게 포장한 거지 뭘.”
노력을 애써 무시하는 말에 언성을 높이려던 청년이 참았다. 오늘이 정말 좋은 날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야기의 당사자인 차서준이 등장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생글생글한 목소리와 함께. 차서준의 뒤를 따라 구름엑터스 직원들이 무언가를 바리바리 들고 들어왔다.
“어? 저거 그거 아니에요?”
“맞네. 첫작만 기념으로 나눠준 건 줄 알았는데. 우리도 받나?”
“아마 그럴걸요. 대박이네. SNS에 바로 자랑해야지.”
그랬다.
차서준과 함께 등장한 직원들이 들고 온 박스 안에 담겨 있는 건 티셔츠였다.
배우 차서준이 작품을 끝낼 때마다 함께 고생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기념품.
‘서준T’였다.
*
오늘 종방연의 주인공은 이지예와 박우형이었다. ‘폭군의 세자’를 통해 전국적인 인기를 얻은 두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준아. 서준T 너무 고마워. 이거 당장 자랑해도 돼?”
“네! 바로 올리셔도 괜찮아요.”
내가 등장함과 동시에 나눠준 ‘서준T'로 인하여. 이 자리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뺏긴 이지예와 박우형 역시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서준아. 나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하나만 더 주면 안 돼?”
이지예는 오히려 콕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한 장 더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아마 넉넉하게 주문해서 수량이 남을 거예요. 스태프분들까지 다 드리고 사이즈 남으면 드릴게요.”
“약속했어? 안 주면 나 삐질 거야.”
새끼손가락을 걸고서 약속까지 받은 다음에야 이지예가 날 놓아주었다.
나와 배턴 터치로 촬영에 들어간 지라 같이 촬영을 한 적은 없었지만. 쿠키 영상 촬영 기간 동안 제법 친해진 덕분에 스스럼이 없었다.
“자, 브이!”
심지어 날 옆에 앉히고 볼까지 대며 사진까지 찍어댔으니.
종방연의 분위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활짝 핀 얼굴로 감독, 작가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배우들이 각자 소감을 말했다.
“선배님들, 그리고 많은 좋은 분들과 최고의 작품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카메라가 나와 내가 입고 있는 서준T를 찍고 있는 걸 보니. 이 모습은 영상으로 나갈 듯싶다.
영상으로 내보낼 촬영들을 모두 끝낸 뒤.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와 동시에 김준수 PD, 정은희 작가, 박홍철 대표가 함께한 테이블에 붙잡히고 말았다.
불콰한 얼굴이 된 박홍철 대표가 내게 영화에 대해 묻는다. 지금 당장 차기작의 차만 꺼내도 당장 계약서를 가지고 올 기세였다.
“그러고 보니 서준이는 요즘 촬영 때문에 바쁘지 않아?”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궁금하다는 표정을 한 채로.
“안 그래도 내일 촬영 있어요.”
그랬다.
내일도 우지학 감독의 ‘금괴 소동’ 촬영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