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55화 (55/220)

55화

결과적으로 본다면 내 첫 예능 출연은 대성공이었다.

- 서준아 형이 미안하다.

“형이 왜 미안해요?”

- 그게···. 반응들이 워낙 좋다 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그만. 지금이라도 지울까?

“괜찮아요. 사실 저도 형이랑 예능 나가서 좋았어요. 다른 사람들도 아닌 형들이랑 제가 그만큼 가깝게 지낸다는 사실이 알려진 거잖아요.

그랬다.

어떻게 이어진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차서준, 김우승, 박우형. 이 세 사람의 모임은 ‘연기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별칭까지 붙여서 부르고 있었다.

저 이름을 이번 생에도 듣게 될 줄이야. 심지어 모임의 핵심이자, 창설 핵심 멤버가 김우승, 박우형도 아닌 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건. 그만큼 이번 예능 출연을 통해 나에 대한 이미지가 제고되었기 때문이었다.

- 우리 차 배우 첫 예능 재밌었네요. 지금까지 몰랐던 차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요.

└ ㅇㅈ 형들이랑 연기에 관해서 대화 나누는 거 다시 보니까. 정말 많이 공부를 했다는 게 느껴졌어요.

└ 맞음. 그냥 단순히 연기 재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뒤에서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게 이번에서야 알려짐.

└ 그냥 천재였다고 부러워만 한 사람들 반성하세요. 진짜 서준이의 연기 이론에 대한 지식을 보면. 박우형 못지않았음.

└ 그러니 김우승이 시상식에서 서준아!!! 하고 울부짖은 거 아니겠음? 이번 ‘소하’에서도 말했잖아. 자기는 서준이 아니었으면 평생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 했을 거라고.

└ 차 배우는 진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인 거 같아요. 이제 겨우 7살이라니. ㄷㄷ

우스갯소리로 차서준은 그냥 타고난 거야. 천재라서 잘하는 거 아닐까? 이런 농담들이 만연해 있었다.

그만큼 6살에 데뷔하여 7살까지 보여준 내 연기들이 충격적이었으니까. 사람들은 나이를 초월한 연기력에만 집중을 했었다.

그런데 ‘소소한 하루’에서 배우 박우형, 김우승과 함께 나누는 대화에서 보여준 것이다. 아직 어리지만 배우 차서준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부해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론, 그 이론적인 부분들은 차서준이 아니라. 배우 김도경 시절에 했던 것들이지만. 어쨌거나 둘 다 나였기에 그게 그거였다.

“삼촌 왔어요?”

“그래. 그보다 챙겨봤는데 재밌더라. 확실히 PD가 지루하지 않게 잘 편집한 거 같던데.”

서도현도 ‘소소한 하루’를 챙겨봤는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바로 언급부터 시작한다.

무엇보다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것이. 방송이 끝난 이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 듯싶다.

“어때? 삼촌 말이 맞았지?”

“그러게요. 남자 셋이서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고. 연기에 대해서만 떠들었는데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몰랐어요.”

“그 세 명 중 하나가 아직 7살인 서준이 너였으니까 그렇지. 거기에 중간중간 나오는 서준이 네 표정이 엄청 웃겼거든.”

엄마, 아빠도 웃긴 했었다. 신이 나서 열심히 대화에 참여하다가. 잠시 쉴 때면 지친 얼굴로 김우승과 박우형을 슬쩍 바라보는 내 표정 때문에.

순간순간 그 절묘한 타이밍이 시청자들에게 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나도 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줄 몰랐었으니. 방송으로 볼 때 재밌긴 했다.

“아, 그리고 모레 미팅 있는 거 들었지?”

“네. 수진 누나가 말해줬어요. 우지학 감독님이 배우들 부른 비공식 미팅이라고요.”

“그래. 전에 삼촌이 했던 말 기억나니? 우지학 감독의 촬영장에선 잡음이 거의 없다고.”

촬영장에서 잡음이 터지지 않는다는 건. 본격적인 촬영 시작 전에 교통정리를 모두 끝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우지학 감독은 배우들을 불러 모은 다음. 자신의 머릿속에 그린 그림과 다른 배우들을 분량을 조절할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아는 배우들은 모레가 되기 전까지. 시나리오에 담긴 자신의 배역을 완벽하게 준비해올 것이다.

“치열하겠네요?”

“그렇지. 저번에 우리 소속사 배우 하나도 참석했다가 우 감독 고성에 깜짝 놀랐던 일도 있었다고 하니. 그때 고성을 들었던 친구가 그대로 하차했었지.”

“저도 못 할까 걱정되세요?”

“그럴 리가. 다른 배우였다면 혹시나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겠지만. 서준이 너는 이제 걱정이 되질 않는다.”

서도현이 내 말에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우 감독에게 제대로 눈도장 찍어서 분량 늘려보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 감독은 단번에 서준이 네 연기력을 알아볼 테니까.”

꽤나 솔깃한 이야기였다. 어쩐지 내가 할 캐릭터의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서도현이 추천한 이유가 있었다.

분량이 적다?

그러면 연기력으로 내 지분을 늘리면 될 테니까. 이제는 나를 향한 믿음이 확고한 서도현이었다.

*

영화 ‘금괴 소동’ 배우들의 첫 미팅 날이었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우지학 감독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비공식적인 자리.

그럼에도 참석한 배우들의 얼굴에는 나름 긴장감이 엿보였다.

그런 낯선 분위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한 배우 박주병이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 표정을 봤음일까. 다른 작품에서 같이 출연한 적 있는 배우 김정범이 박주병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잘해. 비공식 자리에다가, 다음에 공식 대본 리딩 있다고 괜히 어중간하게 하다가 분량 날리지 말고.”

“소문을 듣긴 했었는데. 그거 소문 과장 아니었어요? 진짜로 그래요? 오늘 그냥 안면 익히는 자리 아니었어요?”

“당연하지. 자기 소속사에서 우 감독에 관한 이야기도 안 해줬어?”

배우가 모든 감독들에 대한 정보를 알긴 어려웠다. 가뜩이나 며칠 전에서야 캐스팅이 확정된 박주병이라면 더욱더.

김정범의 나무람에 박주병이 뒷머리를 긁었다. 아무래도 소속사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건네주지 않은 듯했다.

“으이구. 잘 들어둬. 오늘 우 감독이 미팅을 요청한 건. 자기 머릿속에 있는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가 일치하는지 보기 위해서야.”

“만약 감독님 기준에 부족하다고 느껴지면요?”

“분량 조정되는 거지. 자기가 주연급이면 문제가 없는데, 아니잖아. 아니면 얄짤 없이 분량 줄어드는 거지 뭐. 다행이라면 교체는 거의 안 일어나더라고.”

없다가 아닌 거의 안 일어난다. 김정범의 그 말에 박주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금괴 소동’에 캐스팅된 사람들 중 영화판에서 주연급이라 못 박을 만한 배우는 단둘뿐이었다. 나머지는 철저히 연기파 조연들이라 소문난 배우들로 캐스팅된 상황.

가뜩이나 박주병은 배우들 중 가장 마지막에 확정된 지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저 얼굴을 익히는 자리라 생각하고 나온 것이 실수였다.

이번 우지학 감독의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제대로 얼굴을 알릴 욕심을 가졌던 박주병이었다. 다만, 게으른 성격 때문에 미리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에이씨. 이번 계약 기간만 끝나면 소속사를 옮기던지 해야지. 매번 꼭 필요한 정보들은 죄다 빠트려먹네.”

씩씩거림은 잠시. 박주병은 서둘러 시나리오를 꺼내 얼굴을 파묻었다.

김정범은 그런 박주병에게서 시선을 돌려 반대편을 향해 물었다.

“오늘 차서준이 온대? 대사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되려나.”

“오지 않을까요? 우지학 감독님 성향상 무조건 부를 거 같은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녕하세요. 배우 차서준입니다.”

차서준이 문을 열고서 인사와 함께 등장했다. 대부분 영화판에서만 활동하는 이들인지라 차서준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귀엽네.’

‘이야, 연기할 때랑 평상시의 모습이 다르네.’

‘저 정도면 나중에 홍보 걱정은 필요 없겠어.’

각자의 다른 생각을 떠올린 배우들이 차서준을 반겼다.

특히나 며칠 전에 방송된 ‘소소한 하루’를 본 배우들의 표정이 밝았다. 차서준이 어떤 기준으로 차기작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봤으니까.

추후 영화를 홍보할 때에도, 저 차서준이 가장 전면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가져와 줄 터였다.

“서준이라고 불러도 괜찮지?”

“네! 선배님. 편하게 서준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이번에는 내가 서준이 엄마가 될 테니. 서준이도 편하게 대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간 차서준의 대답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은 건.

“반갑습니다. 다들 벌써 자리에 앉으셨네요.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서로 얼굴을 익히는 자리니까. 편하게 인사들 나눕시다.”

우지학 감독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배우는 총 10명. 하나하나가 ‘금괴 소동’의 주조연급 분량을 가진 이들이었다.

아마 이 미팅이 끝나면 누군가는 줄어든 분량에 울상을. 또 누군가는 늘어난 비중에 활짝 웃을지도 몰랐다.

“다들 저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테고. 바로 시작합시다.”

*

서도현이 우지학 감독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촬영 현장에서 크게 잡음이 터지지 않는 감독.’

반대로 그 말은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애초에 감독의 기준에 못 미치는 연기는 쳐내거나, 확 줄여버린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금괴다! 여, 여기에 금괴가 있다고!”

배우 박주병의 대사가 끝남과 동시에 우지학 감독이 스톱을 외쳤다.

“잠깐만. 방금 거기 왜 그렇게 표현했어요?”

“네?”

끝나고 개별 미팅이 아닌, 이 자리에서 갑자기 감독이 지적하자. 박주병이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런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우지학 감독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거기 보면 땅을 파던 도중 끝에 무언가가 걸리고. 그 안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금이라는 걸 알고 휘둥그레지는 진철. 이게 진철의 행동이잖아요. 안 그래?”

“네네. 맞습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공식 대본 리딩 현장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거다. 허나 오늘은 비공식적으로 감독과 배우들만 자리한 미팅 자리.

미간을 잔뜩 찌푸린 우지학 감독의 태클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런데 왜 목소리에 그런 감정이 실리냐고. 자, 직장에서 짤리고, 당장 두 달 뒤 월세가 걱정인 친구야. 그렇죠? 인생 역전의 기회인 금괴 발견이나 마찬가진데. 반응이 너무 맛이 없잖아.”

코미디 영화가 관객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고 해서 배우들의 연기까지 가벼워선 안 된다. 우지학 감독이 지적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순간적인 상황 속 캐릭터의 대사만 생각해서 내뱉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 처지, 감정 등을 모두 고려해서 대사를 치라는 뜻.

“다시 해봅시다.”

말과 동시에 수첩에서 무언가를 적는 우지학 감독. 어지간한 영화감독이었다면 배우가 불만을 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지학 감독은 이미 수차례 성적으로 증명한 감독이었다.

그리고 이미 우지학 감독과 작품을 같이 한 경험이 있는 배우들에게선 당연하단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사전에 문제가 될 것들을 모두 조율한 뒤. 정작 촬영장에서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는 걸 알기 때문.

즉, 우지학 감독의 철학은 간단했다. 코미디 영화인 만큼 본격적인 촬영 시작에는 밝은 분위기로 진행하지만. 그 전에 준비 과정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잡고 가겠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잘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렇게 인자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빠! 아까 진철 아저씨가 가방에 반짝이는 금들 넣어서 나갔어.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뭐?! 이, 이 자식이!”

“아, 아빠! 바지는 입고 나가야지!”

나와 김정범이 호들갑을 떨며 허둥지둥 주고받는 대사에는 흐뭇한 미소를.

“어? 아빠 머리에서 피 나.”

“응?”

“푸슉푸슉 막 나온다. 아빠 머리에 구멍 뚫렸어!”

“지, 지혈해야 되는데. 휴지! 아니, 병원으로 가자. 지호야 아빠 전화기 못 봤어?”

“저어기. 방금 아빠가 던졌잖아.”

내가 대사를 칠 때마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우지학 감독이었다.

우지학 감독뿐만 아니라, 영화판에서만 활동하는 배우들 역시 내가 대사를 칠 때마다 놀랍다는 시선을 보냈다.

잠시 후.

“수고하셨습니다.”

비공식 미팅이 끝나고 하나둘 자리를 일어서는데.

“잠깐 시간 괜찮나?”

우지학 감독이 나를 불렀다. 이미 그에 대한 정보를 서도현에게 자세히 들은 나기에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있었다.

분량 조절.

아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던 박주병의 분량을 줄이고. 아빠인 김정범과 괜찮은 호흡을 보여주던 내 분량을 늘리겠다는 것.

“혹시 지호 분량이나 대사가 늘어나도 괜찮나?”

괜찮냐고?

오히려 이쪽에서 환영할 제안이었다.

“네! 맡겨만 주세요 감독님.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당찬 포부를 밝히는 내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우지학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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