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금요일 밤 10시.
평소라면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서준아. 안 졸리니?”
“네! 하나도 안 졸려요.”
오늘이 바로 김우승의 게스트로 촬영했던 ‘소소한 하루’가 방송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 역시 아들의 첫 예능 출연이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소파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다행히 드라마를 기다릴 때와 다르게 걱정하거나, 우려하는 기색은 없었다.
“서준아. 첫 예능 촬영은 어땠어?”
“음. 정신이 없긴 했는데. 우승이형이나, 우형이 형 모두 친해서 재밌었어요. 피디님도 꽤나 좋은 장면들 많이 건졌다고 했고요.”
광고가 나오는 동안 엄마가 첫 예능 촬영이 어땠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본다.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아빠는 뭘 하고 있지?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난 봤다.
열심히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는 아빠를.
“아빠?”
“으, 응? 서준아. 사람들이 모두 오늘 서준이가 나올 걸 알고 있던데.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말해주더라.”
“예고편 때문에 그런가 봐요.”
안 그래도 ‘소소한 하루’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당시 꽤나 시끌시끌했었다. 실루엣만으로도 게스트가 아역 배우 차서준임이 알려졌으니까.
‘너에게 다시’, ‘폭군의 세자’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단 한 번도 예능에 출연하지 않았던 나였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역 배우 차서준의 첫 예능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데리고 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거기에 더해 김우승과 관련된 찌라시까지 터졌으니.
“시작한다.”
화면 속 스튜디오에는 하나를 비워둔 5개의 의자에 고정 출연진들이 앉아 있었다. 그 한 자리가 오늘 공개될 새로운 멤버의 자리임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자, 오늘은 새로운 소소단이 합류하게 될 텐데요. 혹시 원하는 새 멤버라도 있습니까?
-여배우! 솔직히 매번 칙칙한 남자들만 섭외하는 거. 이거 우리 PD님 사심이 잔뜩 들어간 거 아닙니까?
-이건 김범석 씨 개인의 의견이란 점. 저는 PD님 항상 사랑한다는 거. 아시죠?
-간신배다! 아까 촬영 시작 전에 내 말에 고개 열심히 끄덕였잖아! 여기서 말을 바꾼다고?
이런저런 수다와 함께 잠시 시간을 끌던 진행자 최성이 갑작스럽게 새로운 멤버를 외쳤다.
-자! 소개합니다. 오늘부터 소소단에 합류하게 된. 과거엔 아이돌, 이제는 연기자가 된 배우 김우승 씨!
그리고 등장하는 김우승. 열렬한 박수로 반기는 여자 고정 멤버인 이하나. 또 남자 멤버라는 사실에 실망한 표정을 짓는 김범석과 정성욱.
매번 새로운 ‘소소단’이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일종의 콩트였다.
그런 김우승의 등장을 보며 엄마가 참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우승 씨가 저렇게 보니 신기하네요. 저번에 당신이랑 형, 동생 할 때에는 마냥 옆집에 사는 동생 같았는데 말이에요.”
“그러게. 형, 동생 하던 친구가 저렇게 나오니 신기하네. 확실히 배우는 배우야.”
정작 배우인 아들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는 TV 속 김우승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도원결의를 외치던 날 김우승과 스스럼없이 웃고 떠드는 시간을 보냈었으니.
-자, 새로운 소소단이 된 우승 씨의 하루가 어떤지 살펴볼까요?
메인 MC 최성의 외침과 동시에 전환되는 화면. 이제는 내게 익숙해진 김우승의 집이 등장한다.
그리고 오른편 아래 작아진 스튜디오 화면에선. 김우승의 집을 확인한 고정 멤버들의 놀란 반응들이 이어진다.
-이야, 집 엄청 좋은데?
-우승 씨가 한때 정상급 아이돌이었잖아. ‘유니온’ 활동으로 산 집 맞죠?
-어? 한때라고 하면 지금은 아니란 뜻입니까?
-어허! 또 사람 하나 보내려고 한다. 그보다 집이 진짜 좋네.
오른편 아래 작은 화면에서 멋쩍게 웃는 김우승.
-사실 아이돌 정산보다는. 아는 분이 스타트업 시작할 때 투자를 좀 했다가 조금 벌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우성을 치기 시작하는 고정 멤버들.
-저게 조금이면 성이 형은 지금까지 조금 벌었네?
-아니. 김범석 씨. 자꾸 저를 물귀신처럼 끌고 가세요 왜. 그보다 오늘 김우승 씨의 첫 게스트는 누굴까요?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하는 메인 MC 최성.
처음 ‘소소한 하루’의 고정 멤버가 되면 하는 간단 집 소개가 끝난 뒤. 김우승이 부지런히 점심을 준비한다.
-어. 거의 다 왔어?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김우승. 통화를 하는 목소리에서 꽤나 친근함이 느껴졌다.
-저 정도로 친근한 거 보면 ‘유니온’의 멤버 아니에요? 최근에도 자주 만난다고 들었는데?
김범석의 호들갑에 묘한 미소를 짓는 김우승. 그리고 화면 속 김우승이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어준다.
게스트의 정체가 공개됨과 동시에 경악하는 고정 멤버들.
-진짜? 진짜야?
-차 배우가 오늘 게스트로 나왔다고?!
-아, 나도 저기 불러주지. 나 진짜 차 배우 팬인데.
아역 배우 차서준이 등장함과 동시에. 스튜디오의 고정 멤버들에게선 난리가 났다.
대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저런 반응을 노린 이주연 PD의 깜짝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화면 너머로 보는 이들조차 흥분감이 느껴질 정도의 팔딱거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역 배우 차서준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바뀐 화면에는 인터뷰를 시작한 내가 등장했다.
-‘너에게 다시’를 통해 우승이 형과 절친이 된? 배우 차서준입니다.
재빨리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자.
└ 절친은 뭐임? 그리고 그 뒤에 물음표는 또 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 왜? 서준맘 김우승 모름? 작년 시상식 때 울부짖는 짤 아직도 떠도는데.
└ 정작 김우승 본인은 그 짤을 자랑스러워함. ㅋㅋㅋ 그리고 둘이 친하게 지내는 거 김우승 SNS에 종종 올라옴. ㅋㅋ
└ 역시 예고편대로 차 배우가 나왔네. 서준이의 첫 예능 출연이네.
└ 매번 김우주, 어린 세자 이환으로 보다가. 배우 차서준으로 보니까 신기하네요. 셋 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아요. ㄷㄷ
반응들은 역시 좋았다. 특히나 ‘너에게 다시’의 김우주, ‘폭군의 세자’의 이환. 마지막으로 방금 등장한 차서준이 같은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각각 느낌이 달랐으니까.
시청자들도 동일 인물이라곤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옆에 있는 엄마, 아빠도 가끔 신기한 눈으로 볼 때가 있는데. 처음 본 시청자들이면 더욱더 당연한 반응이었다.
└ 근데 진짜 친해 보이네요? 같이 화면에 있는데 어색함이 없음. 보통 대본이면 조금씩 어색함이 느껴지곤 하는데.
└ ㅇㅈ 7살이랑 30 초반 남자가 편안하게 대화 나누는 거 자체가 신기하네요. ㅋㅋ
└ 저게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 아니겠어요?
└ 뛰어넘어도 너무 뛰어넘었잖아. ㅋㅋㅋ 거의 나랑 내 조카 친구가 우정을 나눈다는 건데. 나랑 조카 대화도 잘 안 됨. 세대 차이가 난다고. ㅋㅋㅋ
└ 우리 차 배우가 그래서 특별한 거라고요. 촬영장 썰들 들어보면 무슨 인생 2회차 배우 같음.
그렇게 시청자들이 난리가 난 사이. 화면 속 나와 김우승은 한 명 더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오른편 아래 작은 화면 속 고정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어? 게스트가 한 명 더 온다고요?
-누구지? 우승 씨랑 서준이. 여기까지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또 올 사람은 예상이 안 가네? 범석이 넌 누구 같아?
-음. 알았다! 우주 아빠가 오늘의 주인공이니. 우주 엄마가 오겠네!
그 말이 무섭게 초인종이 울리고.
-응?
-어?
-진짜?
모습을 드러낸 박우형 때문에 스튜디오 한 차례 더 난리가 났다. ‘폭군의 세자’로 한창 화제의 인물인 박우형이었으니까.
-서준이 너 왜 먼저 갔어. 같이 가자니까.
-형 촬영하다가 왔잖아요. 같이 간다고 하면 아침부터 납치했을 거면서.
-들켰네.
묘한 그림이었다.
김우승이 ‘소소단’으로 등장했을 때. 예고편으로 알려진 아역 배우 차서준까지는 모두가 예상했던 게스트였다.
그런데.
지금 ‘폭군의 세자’로 한창 주가가 드높은 박우형의 등장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깜짝쇼였다.
자연스럽게 차서준의 옆자리에 앉는 박우형.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주제는 오직 하나. ‘연기’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서준이 덕분에 세자 이환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될지 알았다니까.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세자 이환이 서준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저거다! 싶은 거야. 그래서···.
-정말요? 저도 ‘너에게 다시’에 캐스팅되었을 때. 걱정이 엄청 많았거든요. 사실 제가 배우로서 첫 도전을 할 때 안 좋은 일이 하나 있었거든요.
시작됐다.
김우승이 ‘소소한 하루’라는 관찰 예능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 그리고 찌라시로도 언급되어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채널 고정을 만든 이야기.
그것이 바로 김우승의 배우 도전 첫 촬영장에 있었던 감독의 배우 죽이기였다. 만약 그 PD가 여전히 방송국에 남아 있었다면 이런 일화를 공개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 PD는 드라마도 말아먹고. 외주 제작사로 이직해버렸다. 고로 이 이야기가 방송에서 공개된다 하더라도 반발할 이가 없다는 것.
아, 한 명 있긴 했었다. 찌라시에서 언급되었던 전 소속사 사장. 거기까지 생각하고 이야기를 꺼내는 김우승이었다.
└ 어? 그러면 진짜 찌라시 내용이 사실이었나?
└ 왜요? 뭔데요?
└ 그게. 김우승이 배우 도전하면서 첫 카메오로 출연했던 드라마. 그거 촬영하기 며칠 전에 드라마 감독이랑 옛 유니온 소속사 사장이랑 술집에서 같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음.
└ 그리고 며칠 뒤에 카메오로 김우승이 촬영장에 왔을 때. 무한 NG 외쳐가지고 난리도 아니었었지. 그때 스텝 하나가 익명글 올렸다가 바로 삭제했었는데. 그거 본 사람 여기에도 한두 명쯤은 있을 걸?
└ 지금 김우승이 이야기하네요.
-분명 아이돌 생활을 몇 년 동안 하면서 카메라에 익숙해졌거든. 그런데 나는 분명 연습해온 대로. 아니, 그 이상의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NG가 나는 거야.
김우승이 이제는 지나간 별거 아니었단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던 사람들도. 아무래도 계속해서 촬영이 딜레이되니까 짜증스러운 눈빛이 되더라고. 그렇게 몇 시간을 NG 소리만 듣고 나니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못하겠더라고. 트라우마가 생긴 거지.
어떻게든 프로 정신으로 삐걱거리는 연기라도 하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로 오케이를 외친 감독. 그것이 김우승이 발연기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였다.
-나쁜 사람이네. 배우의 연기를 부정하고 어떻게든 뭉개려고 하다니. 심지어 마음에 안 들면 차라리 빼면 되지.
박우형이 한마디 거들었다. 허나 김우승은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에이. 이제는 우리 서준이를 만나서 다 극복한 옛날이야긴데요 뭘. 그러고 보니 서준이는 작품 선택하는 기준이 뭐야?
이건 대본.
이미 내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는지 아는 김우승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작가가 요청한 질문이었다.
-저는 엄마, 아빠랑 같이 앉아서 제가 나온 드라마를 보는 게 너무 즐거워요. 그래서 고를 때 엄마, 아빠랑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요.
그리고.
곧 촬영이 시작될 영화의 홍보 소스로도 활용될 수 있는 좋은 떡밥이었다. 사전에 홍보팀과 이야기도 된 내용이고.
아마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면. 홍보팀에서 부지런히 배우 차서준이 선택한 영화! 추석에 개봉 예정! 이런 식으로 기사가 배포될 예정이었다.
잠시 후.
‘소소한 하루’가 끝났다.
그와 동시에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나열되기 시작한 건 김우승, 그리고 나와 관련된 연관 단어들이었다.
└ 오늘 ‘소하’ 기대도 안 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ㅋㅋㅋ
└ ㅇㅈ 김우승의 발연기에 대한 비화도 알게 되었고. 서준이가 작품 고르는 기준도 알게 됨. 그리고 다음 주에는 김우승이랑 서준이 둘이서 여행가네요? ㅋㅋ
└ 무엇보다 박우형까지 합류했는데. 대화 주제가 오직 ‘연기’만 나오는 거 실화임? ㅋㅋㅋㅋ 심지어 수다가 멈추질 않음. ㅋㅋㅋㅋ
└ 우리 차 배우 외모는 7살인데. 연기에 대해 말하는 건 30대를 보는 줄. 그만큼 연기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서 좋긴 한데. 신기했음.
└ 쟤 7살 아니라니까. ㄷㄷ 그보다 박우형 등장부터 퇴장까지 ‘연기’만 이야기하는 거 엄청 웃겼음. ㅋㅋ
└ 중간중간 서준이가 지쳐서 질린 표정으로 두 형들 볼 때 진짜 빵 터짐. ㅋㅋㅋ
└ 서준이 덕분에 알게 된 두 사람이. 서준이를 중심으로 모임 하나를 만들었다네. ㅋㅋㅋㅋㅋㅋ
어?
마지막 반응을 본 순간 이상함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상한 느낌은 김우승이 올린 SNS 글에 쐐기가 박혀버렸다.
└ 김우승 SNS에 올라온 글 봤음?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즐거운 촬영이었다고 후기 올라옴. ㅋㅋㅋ
이 형이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