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가제 ‘금괴 소동’
제목부터가 나 코미디 영화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추석 특수 극장가를 노리고 만드는 가족 영화.
수많은 제안들 중 서도현이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는 간단했다. 시나리오가 제법 재밌었으니까. 스피디한 스토리 진행에 순간순간 빵 터지는 개그. 거기에 더한 맛깔난 대사와 살아있는 캐릭터까지.
마지막으로 감독이 순수하게 관객의 웃음. 이 한 포인트만 노린다는 의도가 너무 좋았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단했다.
돈 때문에 전쟁처럼 살아가는 아들 하나를 둔 주인공 가족, 친구네 연인, 7년째 개그맨 지망생 친구. 오랜 우정을 다진 세 절친 일행들이 단체로 여행을 떠난다.
휴양지보다 야생 캠핑을 즐기는 그들은 산속 깊은 평지에 텐트를 칠 준비를 하는데.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던 순간 발견된 금괴. 그 숫자가 무려 100개!
그 금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당탕탕 코미디 영화였다.
“감독님이 순수하게 웃음 코드 하나만 가져가려고 만든 거 같아요.”
“그렇지? 그게 그 감독의 장점이지. 애꿎은 신파를 넣어서 눈물을 빼려고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에게 즐거움만 주려고 한다는 게.”
보통 아무리 명절에 가족 관객들을 노렸다곤 하더라도. 이런 가벼운 영화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우지학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고 했다.
시나리오에 적힌 이름을 보고. 내가 서도현에게 물었다.
“우지학 감독님이요?”
“그래. 예술이나, 영화를 관통하는 감독만의 고집도 없고. 꽤나 재밌는 감독이지.”
“엄청 유명한 감독님이에요?”
“천만 관객 영화는 없어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해 실패한 영화가 하나도 없는 감독이다.”
그랬다.
김도경 시절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타입이긴 했다.
보통 영화감독들은 몇 번의 성공을 거두고 나면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영화를 만들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우지학 감독 특징이. 철저하게 상업적 성공만을 목표로 하는 괴짜 같은 면모가 있거든.”
“정말요?”
“그래. 덕분에 주변 감독들은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제작사나, 투자사, 배급사 입장에선 최고의 감독이지. 우리 서준이 같은 배우들에게도 그렇고.”
우지학은 철저히 상업적 성공을 추구했다. 영화 속에 메시지를 담는다거나 하지 않고. 오직 극장에 관객들이 표값을 지불하고 볼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
“자기는 영화관에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매진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더라.”
“엄청 신기한 감독님이네요.”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캐스팅이 한 명씩 완료될 때마다 조금씩 수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캐릭터에 배우를 우겨넣는 게 아니라. 그 배우가 가진 특색을 캐릭터에 입힌다는 것.
“서준아. 연예계에는 이런 말이 있어.”
“어떤 말이요?”
“드라마는 작가 놀음, 영화는 감독 놀음. 물론 이런 말은 어디 가서 하면 안된다. 알았지?”
“네! 그러면 영화는 감독님이 제일 중요하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그 영화는 감독이 진짜 좋아. 그래서 삼촌은 서준이가 한번 해봤으면 한다.”
서도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시나리오를 본 순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으니까.
아쉽게도 서도현이 말한 장점 중 엄마, 아빠 손을 잡고서 영화관에선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쯤이면 동생이 태어났을 테니까.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줄 수 있는 영화이고. 무엇보다 VOD로 나오면 우리 가족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될 터였다.
그럼 해야지.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
평화로운 나날이 찾아왔다.
바쁜 드라마 촬영도 끝났기에 유치원도 빠짐없이 출석하다 보니.
“서준아! 끝나고 지우네 가자!”
“오늘?”
“응!”
사총사에 어울리는 시간이 제법 많아지게 되었다. 지금도 최지환이 유치원이 끝나고 하지우네 놀러가자고 제안을 하는 것처럼.
나도 사총사 애들과 같이 있다 보면 힐링하는 기분도 들고 해서 나쁘지 않았다. 사총사들이 다른 유치원 친구들과 다르게 제법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서준아, 그런데 있잖아.”
응?
갑자기 차분해진 최지환의 말투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하이 텐션으로 방방 뛰어다니던 녀석이. 심지어 심각한 얼굴로 내게 속삭이고 있었으니까. 혹여나 주변에서 누가 들을까 주변을 살피면서.
“요즘 지우가 이상해.”
“지우가?”
“응. 원래 말이 없긴 했는데. 요즘은 더 심각해졌어.”
처음에는 하지우가 표정 변화도 거의 없는 줄 알았는데. 제법 친해지다 보니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면 기쁨. 눈꼬리가 슬쩍 내려오면 슬픔. 눈동자를 깜빡이면 당황함.
나도 알아볼 정도인데. 그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최지환이 심각하게 느낄 정도라면. 하지우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도윤이는? 오늘 도윤이도 시간 된대?”
“응! 내가 지우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어서 도윤이한테 먼저 물어보고. 서준이 너에게 말한 거야!”
역시.
어리지만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
그보다 하지우의 고민이 무엇일까.
“···오늘?”
나와 김도윤, 그리고 최지환이 끝나고 놀자는 말에 하지우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상하긴 하네. 보통 반 박자 늦게 반응이 나오긴 했어도. 같이 놀자고 하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기쁜 표정이 나왔었는데.
오늘은 눈꼬리가 조금 내려갔다. 하지우의 그런 표정에 김도윤이 물었다.
“지우야. 무슨 일 있어? 너 요즘 이상해.”
평소와 다른 하지우의 반응에 김도윤의 얼굴에 걱정이 떠오르자.
“···고민이 있어.”
하지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런.
내가 한동안 드라마 촬영에 바빠 사총사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모양이다. 하지 우에게 고민이 생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유치원 친구들에게 시달릴 때에도. 소심함을 무릅쓰고 두 팔 걷고 나서서 도와준 친구가 하지우였다.
그러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오늘 지우네 집 말고. 내가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가자.”
자고로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이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수진 누나를 불러 사총사를 데리고 돈가스 전문점으로 갔다.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갈까 했지만. 7살 꼬맹이들에게 있어 여기가 한우보다 더 좋은 곳 같아서.
“서, 서준아. 우리끼리 여기와도 괜찮아?”
“나는 돈 없는데.”
“···나도 돈 없어.”
7살 꼬맹이들의 용돈이라 해봤자. 근처 마트에 들러 과자 한두 봉지를 살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돈가스 가게 방문에 꼬맹이들이 가게 정문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이런 날에는 너희를 위해 맛있는 것 정도는 사줄 수 있어. 그러니 들어가자.”
“알았어.”
“고마워!”
“···최고야.”
내가 재촉하자 그제야 머뭇머뭇 걸음을 옮긴다. 돈까스를 먹을 생각에 싱글벙글한 얼굴을 한 채로.
“누나. 누나도 같이 들어가요.”
“응? 나도?”
내 말이 의외였는지 수진 누나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사총사들과 할 말이 있어 왔다면서 같이 가잔 말을 꺼냈으니까.
“애들도 누나 자주 봤잖아요. 그리고 여기 돈가스가 진짜 맛있어요. 같이 먹어요.”
내 말에 수진 누나의 눈동자에 감동이 차오른다. 아무리 어른이 되었다고 한들 소외되면 슬픈 법이다.
특히나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떠들 텐데. 혼자 테이블을 잡고 먹는다면 그것만큼 처량한 기분도 없을 테지.
항상 나를 위해서 고생하는 매니저인데. 당연히 다 같이 먹어야지. 먹을 거 가지고 차별하고 그러면 가장 서운한 법이다.
“고마워 서준아.”
“아니에요. 오늘도 갑자기 불렀는데도 와줘서 고마워요 누나.”
“언제든지 편하게 불러줘.”
“누나가 제 매니저니까요?”
웃으면서 묻는 내게 수진 누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안내받은 뒤. 자리에 앉은 나는 메뉴판을 들어 곧바로 주문을 시작했다.
“먹고 싶은 거 하나씩 골라.”
“나는 치즈 돈까스!”
“나는 등심.”
“···모듬 가스 먹고 싶어.”
각자 선택한 메뉴와 수진 누나의 메뉴까지 주문을 마쳤다.
주문을 마치자 맛있는 돈까스를 먹을 생각에 사총사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서준아! 고마워!”
“···고마워,”
“진짜 콜라도 시켜도 돼?”
초롱초롱한 애들의 눈빛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어.”
어차피 7살 꼬맹이들이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어. 그리고 엄마, 아빠 덕분에 돈 관리는 자산관리사를 통해 내가 하고 있었다.
이윽고 돈가스가 나오고. 사총사들이 신이 난 표정으로 포크를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곳은 애들을 위해 썰어서 나오는 가게였다.
“자, 여기 휴지 있으니까 입가도 닦으면서 먹어.”
“응!”
우물우물. 한가득 채운 앙증맞은 입들이 열심히 움직인다.
잠시 후.
만족한 얼굴로 통통해진 배를 두들기는 사총사들이었다.
자,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 이곳까지 오게 된 본론을 시작해야 할 때였다.
“지우야. 무슨 고민이 있는지 말해줄 수 있어?”
끄덕끄덕. 내 말에 하지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까지 돈까스를 열심히 먹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
잠시 손가락을 꼬물거리던 하지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아이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아하, 알겠다.
어찌해서 하지우가 최근 우울한 표정으로 다니고 있었는지에 대해.
7살의 꼬맹이.
그것도 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하지우의 미래 꿈이 아이돌 가수라고 할지라도. 당장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했을 거다.
아직 이렇게 어린아이를 연습생으로 뽑는 소속사도 없을 테니까.
“···서준이 너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하지우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마치 내게 무언가 답이라도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득 품은 채로.
실제로 내겐 하지우를 도울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도와줄 생각도 가지고 있었고.
“그러면 이렇게 하자.”
“···어떻게?”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내가 조금씩 가르쳐줄게. 당장 말고 먼 미래를 보고 천천히 준비하는 거야.”
수많은 필모를 쌓은 배우는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 그중에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가수도 있었을 거고. 또 관중을 홀리는 역동적인 춤을 추는 댄서도 있었을 거다.
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한 연구는 배우에게 있어 당연한 일.
그랬다.
모두 김도경 시절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였다.
비록 전문 트레이너만큼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7살 꼬맹이의 작은 꿈을 도울 정도가 되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전문가의 가르침이 필요할 때 가서 전문적인 트레이너를 소개시켜줘도 될 테고. 아니면 그때쯤이면 하지우가 오디션에 도전하여 연습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저, 정말?”
‘어떻게?’가 아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굳건한 신뢰를 담은 눈이 나를 향한다.
아마 하지우의 눈엔 내가 슈퍼맨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건 옆에서 초롱초롱한 다른 두 명 역시 마찬가지고.
“그래. 그러니 시무룩해있지 말고. 고민이 생기면 우리한테 바로바로 말해.
우린 친구잖아.”
“···응!”
활짝 웃는 이 순간에도 반 박자가 느린 하지우였다.
*
‘폭군의 세자’ 10화가 끝났을 무렵.
모두가 놀랄 만한 결과가 펼쳐지고 있었다.
- ‘폭군의 세자’의 폭군 같은 행보. 10화 시청률 18.2% 돌파.
- 드디어 왕위에 오른 이환. 깨알 같은 쿠키 영상의 차서준에 시청자들 아우성. 대체 왜?
- ‘폭군의 세자’ 흥행 뒷면에 숨겨진 숨은 조력자. 쿠키 영상의 세자 이환 차서준 때문?
작가의말
사총사의 내용이 나이에 맞게 수정되었습니다.?
오늘도 제 글과 함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