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내 정규 촬영이 끝났다. 정은희 작가가 완성하는 대본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 쿠키 영상 촬영이야 하겠지만.
“끝났네.”
배우 차서준의 ‘폭군의 세자’ 촬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기자들도 5화가 끝남과 동시에 일제히 나에 대한 기사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업로드와 동시에 조회수가 보장되는 소스이니. 이를 놓칠 기자들이 아니었다.
- ‘폭군의 세자’ 성인이 된 세자의 등장. 시청자들을 압도한 박우형의 이환.
- 어린 세자가 성인이 된 순간. 보던 이들이 아쉬움과 탄성을 터트렸다.
- 어린 세자 이환은 앞으로도 쿠키 영상을 통해 매 화 마지막에 만날 수 있을것. 김준수 감독이 시청자를 위해 준비한 선물.
- 아역 배우 차서준의 세자 이환. ‘폭군의 세자’ 5화 시청률 14.2%로 견인하다.
└ 역시 차 배우. ㄷㄷ 5화에서 잠깐 신준철과 언쟁을 벌일 때 소름이 쫙 돋았음. 연기력 미쳤더라.
└ 최이안도 ‘보이스피싱’에서 잘하긴 하는데. 최이안이 출연 배우들 중 하나라면. 차서준은 그냥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주인공임. ㅋㅋㅋ└ 서준이가 어린 세자 이환을 보여줘서. 박우형의 세자 이환이 더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듯해요.
└ ㅇㅈ 무엇보다 세자빈이 된 계영과의 복잡한 감정선이 시청자들에게 납득된다는 게 대박이에요. ㅋㅋ└ 메이킹 영상 땐 몰랐는데. 왜 박우형이 쉬는 시간마다 차서준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는지 ‘폭군의 세자’를 보고 나니까 알겠더라.
└ 우리 차 배우 차기작은 어떤 걸 할까요? 솔직히 이제 어떤 캐릭터를 한다하더라도 믿고 기대가 될 듯. ㅋㅋㅋ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물론, 차기작으로 기존까지와 색다른 배역에 도전 한다 하면 또다시 ‘검증론’이 튀어나오기야 하겠지만.
특히 5화에서 폭군 연종의 신준철과 화면 속 기세에서 밀리지 않는 어린 세자 이환을 보여준 나에 대한 찬사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좋은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피치노’에서 출시했던 차서준 콜라보 한정판. 그 제품들의 대박과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 덕분에.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는 요즘 꿈을 꾸는 것만 같아. 고마워 서준아.”
“저도 요즘 엄마, 아빠 덕분에 정말 행복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도 우리 아들 사랑해.”
엄마가 디자이너로서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순간이 떠오르는지 인터뷰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계셨다.
마치 내가 드라마가 끝나면 사람들의 반응을 찾아보는 것처럼.
- ‘피치노’와 배우 차서준의 콜라보 제품을 디자인한 김미경 씨를 만나다.
Q : ‘피치노’와 콜라보한 제품이 극찬에 가까운 호평을 받고 있다. 소감은?
A : 인터뷰를 하는 이 순간까지도 얼떨떨하고 믿기지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패션 디자이너란 꿈을. 이렇게 이루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무엇보다··· 너무 기뻤다.
Q : 어떤 부분이 가장 기쁜가?
A : 꿈을 이루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세상에 하나 뿐인 우리 아들 서준이의 엄마를 위한 마음이 너무나도 기뻤다.
Q : 이유란 대표와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피치노’에서 공개한 제작 과정이 정말인가?
A : 과장 하나 없이 모두 사실이다.(웃음) 노트에 연필로 서준이를 그리는 게 취미였고. 또 이런 옷을 입히면 어떨까 상상하여 그리곤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서준이가 그걸 보더니 콜라보 프로젝트까지 진행되게 되었다.
···
Q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 서준이가 항상 의젓하게 행동하지만. 아직 7살의 어린아이다. 조금 더 따스한 시선으로 많은 사랑을 보내주셨으면 하고 바란다.
└ 다들 이 기사 꼭 전부 읽어보세요. 엄청 감동적이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임. 서준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엄마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가 느껴짐.
└ 맞아요. 서준이가 엄마의 꿈이 패션 디자이너인 걸 알고서 DQ 패션에 미팅요청했다고 함. 물론 서준이네 엄마도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성공한 일이겠지만.
└ 삐딱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보면 ‘피치노’에서 준비하고. 서준이 이름만 가져다 쓴 줄 알겠지만. ‘피치노’ 공홈에 실제 제작과정이 다 있어요.
└ 사실 의심이 되어서 가보긴 했는데. 실제 첫 미팅 사진이랑, 그 전에 서준 이가 엄마랑 준비하는 과정 사진들이 다 있어서 믿게 됨.
└ 인기가 엄청나긴 했지. 저거 사려고 몇 시간씩 줄 서고. 그래도 못 구해서 웃돈까지 얹어주고 난리도 아니었음. ㅋㅋㅋ└ 올겨울에 내년 신상 출시된대요. 그때는 꼭 사야지.
“엄마. 여기 사람들이 다 디자인이 엄청 예뻐서 좋았대요.”
“정말? 사실 서준이가 다 생각하고. 엄마는 살짝 그려서 완성만 한 건데.”
“아니에요. DQ 패션 사람들도 엄마 디자인이 예뻐서 대박이 난 거래요.”
내 말에 엄마가 방긋 웃는다. 저 미소를 보고 싶어 노력한 수고가 사르륵 녹아내릴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아빠가 인터뷰 기사 나온 기념으로 외식하자는데. 우리 서준이 가고 싶은데 있니?”
“짜장면이요! 우리집에서 기쁜 일이 있으면 짜장면에 탕수육 먹으러 가야 돼요.”
“그럴까?”
“네!”
나는 엄마 품에 안겨서. 엄마와 함께 사람들의 반응을 음미했다.
처음에는 ‘폭군의 세자’에 대한 것들. 그리고 다음은 엄마의 인터뷰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들을.
*
“서 대표. 오랜만이야.”
서도현은 갑작스러운 전화에 불려나온 참이었다. 이 시간에 그를 불러낼 수 있는 이들이 많을 리가 없었다.
그 말은.
엉덩이가 무거워진 서도현이 움직일 만큼 매력적인 자리라는 의미였다.
“오랜만입니다. 우 감독님.”
영화감독 우지학.
누군가는 돈만 쫓아 찍는 자존심 없는 감독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또 누군가는 상업성의 정점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하는 감독.
그런 우지학은 서도현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에 한 사람이었다. 일단 우지 학 감독의 촬영 현장에선 잡음이 크게 터지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영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또 그걸 추구하는 감독이었다.
“구름엑터스에 신선한 배우가 하나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던데.”
“저희 차 배우 말씀이시군요.”
“맞아. 서 대표도 소문 들었겠지만 내가 작품을 하나 시작하려고 하는데. 준 형이가 시나리오 보더니 서 대표네 배우가 딱 떠오른다고 하더라고.”
지금 말하는 준형이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 이준형을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준형과 서준이가 접점이 있었나?’
없었다.
아직 배우 차서준의 필모에는 드라마만 있을 뿐. 영화 쪽에는 딱히 접점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 서도현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우지학 감독이 차서준을 알게 된 계기를 말한다.
“아, 준형이가 박우형이와 친분이 깊어. 박우형에게 차서준에 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다고 하더라고.”
“그렇군요.”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폭군의 세자’ 본 촬영이 시작하기 전에 차서준을 데리고 여행까지 떠났던 박우형이다.
그런 박우형이 이준형에게 차서준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많이 한 모양.
그 인연이 이어져 우지학 감독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혹시 차서준이 차기작으로 다른 작품 염두에 둔 게 있나?”
“아직 없습니다. 아직 QTV에서 ‘폭군의 세자’가 계속 방송 중이기도 하고. 또 저희 차 배우가 마지막 전까지 가벼운 쿠키 영상 형식으로 계속 출연할 예정이어서 말입니다.”
서도현의 말에 우지학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황이 자신의 마음에 퍽 들었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
“그러면 내가 시나리오를 줄 테니까. 한 번 읽어보고 연락 달라고.”
“우 감독님 영화인데. 무조건 오케이부터 외치고 오디션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서도현의 농담에 우지학 감독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말은 반은 농담이었지만, 또 나머지 절반은 진심이었다.
비록 천만 관객 영화가 필모그래피엔 없었지만.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는 흥행에 성공을 거둔 영화는 여럿 있었으니까.
이미 우지학 감독이 차기작 준비에 나선다는 소문이 돌았을 테니. 투자사들이 앞다투어 돈다발을 들고 달려들었을 터였다.
“사실 오늘 서 대표를 만나자고 한 건. 하나는 배우 캐스팅에 관한 거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 서 대표에게 확인을 좀 받아보고 싶어서야.”
우지학이 오늘 서도현을 찾은 본 용건이 두 개였다. 하나는 방금 말한 차서준의 캐스팅. 다른 하나는 현재 작업된 시나리오의 성공 가능성 가늠하기.
이 바닥에서 서도현의 작품을 보는 ‘눈’만큼은 진짜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누군가의 농담처럼 구름엑터스 대표 서도현이 달려드는 작품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투자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
실제로 구름엑터스에 들어간 배우들의 필모가 확연히 좋아졌다는 증거들도 있었다.
“시간 끌 필요 있겠습니까. 지금 여기서 한 번 봐도 될까요? 저희 차 배우의 캐스팅에 관한 말씀도 하셨으니 말입니다.”
“정말? 사실 내가 서 대표를 만나자마자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게 체면이란게 또 뭔지. 하하. 그리 먼저 말해줘서 고맙네.”
웃음을 터트린 얼굴과 다르게. 우지학 감독의 손이 재빨리 시나리오 하나를 꺼냈다.
잠시 후.
“이거. 우리 차 배우에게 무조건 보여줘야겠네요.”
서도현이 시나리오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
서도현의 문자에 유치원이 끝나고 대표실로 향했다.
“삼촌. 불렀어요?”
“그래. 요즘 조금 심심하지?”
“조금요.”
내 대답에 서도현이 웃음을 터트린다. ‘너에게 다시’를 시작으로 제법 바쁜 일정들을 소화했었던 나였다.
그랬는데 ‘폭군의 세자’ 5화에 박우형이 세자 이환이 되면서 오랜만에 휴식을 얻게 되었다.
“삼촌이 서준이 네가 흥미를 가질 만한 걸 찾았는데.”
“정말요?”
구름엑터스를 지금의 위치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이 바로 눈앞의 서도현이 가진 ‘눈’ 덕분이었다.
어떤 작품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는 ‘눈’. 그 덕분에 구름엑터스 소속 많은 배우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 서도현이 나를 직접 불러가면서까지 보여주려 한다는 건. 그의 감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게 샀다는 뜻.
“서준이 네게 들어온 것들이 정말 많은데. 삼촌은 이게 서준이한테 정말 괜찮은 것 같아서 추천해보려고.”
“한 번 볼게요. 주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도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서도현이 내미는 것을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어?”
받자마자 뭔가 알 것 같다는 내 반응에 서도현이 미소를 짓는다.
“이거 영화네요?”
그랬다.
서도현이 내게 추천해준 건 드라마가 아닌 영화였다. 당장 건네준 것이 영화시나리오였으니까.
“추석을 노리고 제작 준비 중인 영환데. 서준이 네가 꽤나 즐겁게 할 수 있는 작품인 거 같아서 가지고 왔다.”
저 말은 추석 특수를 노린 가족 오락 영화라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도 현이 내게 시나리오를 보여준다는 건 간단했다.
그 안에 내가 노릴 캐릭터가 꽤나 매력적이라는 뜻.
“삼촌. 지금 읽어봐도 돼요?”
“당연하지. 삼촌도 어제 그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읽어봤었거든.”
오호. 어제 만난 시나리오를 기다리지 못하고 가져온 거구나.
나는 서도현이 건네주는 코코아를 홀짝이며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삼촌. 이거 재밌는데요?”
“그렇지? 촬영도 재밌을 거고. 무엇보다 추석을 노리는 가족 영화인지라, 서 준이 네가 원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와 함께 본다면 좋은 추억이 될 거다.”
그랬다.
무엇보다 이 시나리오 안에는 한국 코믹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는 신파가 없었다.
감독이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에게 웃음만을 주려 하고 있었다.
“이거 해보고 싶어요.”
배우 차서준의 첫 영화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