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이건 기사 제목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르지 않을 수 없는 어그로였다.
안 그래도 양 방송사의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차서준 VS 최이안’, 그 두 아역 배우가 출연한 ‘폭군의 세자 VS 보이스피싱’의 대결 구도였다. 그 대결 결과가 벌써 나왔다며 기사를 썼으니.
“이건 봐야지.”
무엇보다 저 두 사람 중 하나인 나였기에 기사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 최이안 vs 차서준. 두 아역 배우 대결의 승자는?
방송 시작 전부터 최이안, 차서준. 이 두 아역 배우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던 NBC ‘보이스피싱’과 QTV '폭군의 세자‘의 맞대 결 결과가 나왔다.
···
시청률은 지상파인 NBC ‘보이스피싱’이 5화 20.2%, 종편 채널인 QTV ‘폭군의 세자’가 3화 13.5%.
숫자만 보면 ‘보이스피싱’이 승리 같으나. 지상파와 종편채널이라는 상황 고려. 시청률의 상승세로 보아했을 때 무승부라 볼 수 있다.
연기력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고 있는 최이안. 퓨전 사극에서 세자의 각성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차서준. 두 사람의 연기력 역시 무승부.
누구 하나의 승자도 아닌. 앞으로가 기대되는 두 아역 배우의 승부 결과는 무승부였다.
└ 이게 무슨 멍멍이 같이 정신 나간 기사임?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무승부를 말할 거면 대체 이 맞대결 기사는 왜 쓴 건데?
└ 왜? 오히려 기자가 영리하게 머리 써가지고 작성한 기사 같은데. 어그로로 조회수도 달달하게 잘 나왔고. 아직 어린애들을 데리고 누가 이겼네, 졌네 하면 좋겠음?
└ 맞아요. ‘보이스피싱’의 최이안도 지렸고. ‘폭군의 세자’의 차서준도 미쳤음. ㄷㄷ└ 근데 최이안의 승리 아닌가? 최이안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계속 출연하고. 차서준은 5화쯤에 분량 끝나는 걸로 아는데?
└ 그렇게 따지면 우리 차 배우가 이긴 거 아님? 종편에서 시청률 상승세가 미쳤잖아. ‘폭군의 세자’ 시작하고 ‘보이스피싱’ 시청률 상승세 팍 죽음. ㅋㅋㅋ
당연히 팬들의 싸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다만 의외인 건 기자들조차 누가 이겼네 식의 기사를 쓰지 않았다는 것.
당장은 기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옆에서 나를 살살 꼬셔서 다음 내용을 미리 듣고 싶어 하는 아빠를 진정시키는 것.
“서, 서준아!”
“안 돼요.”
3화의 마지막이 세자의 각성 씬이었다. 자신의 핏속에 있는 폭군의 피에 두려워하던 어린 세자가. 아버지이자, 왕인 연종의 무능함에 자신이 왕위에 오르겠다는 결심을 하는 장면.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옆에서 실시간 반응을 보여주는 아빠가 있었으니까.
“절대로 안 되니? 내일까지 이 궁금함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네!”
그럼에도 너무 궁금했는지 아빠가 다시 한번 내게 물으려고 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나섰다.
“여보. 당신 자꾸 서준이 드라마 볼 때마다 그러면.”
그러면?
“앞으로 서준이 드라마 볼 때마다 방으로 보내버릴 거예요.”
역시 엄마는 강했다. 자꾸만 조르려는 아빠를 한마디로 침몰시킨 뒤.
“서준이가 저 장면을 촬영하느라 힘들었겠네.”
“아니에요! 엄청 즐거웠어요.”
감정 연기를 하느라 고생했을 나를 걱정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아빠도 촬영장에서 힘들었을지 모를 날 걱정하기 시작했고.
“저 이번에도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너무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나는 마법의 주문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서도현을 찾아 기사들에 대해 물었다.
“삼촌. 기사들이 엄청 호의적이에요. 왜 그럴까요?”
보통은 먹이를 물면 놓지 않는 하이에나들인 기자들이었다. 그런데 3류 찌라 시들을 제외하곤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은 눈앞의 서도현이 뒤에서 노력했다는 뜻. 내 물음에 서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내가 이런 말을 꺼낼 줄 알았다는 듯이.
“당연하지. 아직 어린애들인 서준이 너나 최이안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썼다간 팬들이 난리를 치거든. 실제로 행동에 움직이는 이모, 삼촌 팬들도 많았고.”
그랬다.
처음부터 기자들이 몸을 사린 건 아니었다. 달달한 조회수의 냄새를 맡은 몇몇이 자극성 기사를 썼다가 뭇매를 맞았던 것.
이제 7살인 나. 그리고 9살이 된 최이안의 팬들 중에는 실제로 움직인 팬들이 제법 많았던 것이다.
“이상한 기사나 쓰던 인터넷 신문사가 제대로 항의를 받았거든. DQ 패션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는 상태고.”
현재 ‘피치노’와 차서준의 콜라보 한정판 제품이 뜨거운 인기를 얻은 상태였다.
돈이 있어도 한정판으로 출시된 지라 물건이 없어 난리가 난 상태. 매년마다 콜라보를 계획하고 있는 DQ 패션 측에서도 신경을 제법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삼촌도 힘을 썼죠? 저쪽 최이안 소속사에서도 그렇고.”
“당연하지. 우리 차 배우를 가지고 장난 기사를 쓰려고 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최이안 측도 같은 반응이었고.”
서도현의 말처럼 구름엑터스와 최이안의 소속사가 뜻을 맞춰 움직였단다.
라이벌 관계.
연예계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구도가 있을 리가 없다.
누구를 깎아내리면서 홍보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라이벌을 언급하면서 홍보 소스로 활용한다는 것. 이쪽 업계에 있어 이보다 좋은 수단이 없었다.
“솔직히 두 드라마 모두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상태라. 저쪽에서도 현 상황에 제법 만족하는 눈치더라.”
서로 물어뜯고 힐난하는 관계라면 마이너스겠지만. 나와 최이안은 서로의 존재가 윈윈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
샛별반의 사총사 중 한 명인 김도윤의 생일날은 어제였다. 허나 야간까지 ‘폭군의 세자’ 촬영이 있던 나 때문에 오늘 생일 파티를 하게 되었다.
김도윤의 집에서 유치원 친구들을 모두 부른 것이 아닌 사총사들만 모인 생일파티였다.
“어서 와!”
“어서 오렴. 서준이는 더 잘생겨졌네?”
“안녕하세요.”
“빨리 방으로 가자. 지환이랑 지우가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어. 엄마나 서준이랑 방에 갈게요.”
“그러렴. 엄마가 준비가 다 되면 부를게.”
김도윤의 방으로 가자. 제법 넓은 방 안에 놀고 있던 최지환과 하지우가 나를 반긴다.
“서준이다!”
“···서준이 안녕.”
이미 최지환과 하지우가 준 선물을 오픈했는지 포장지가 한 구석에 고이 접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피치노’ 한정판 옷을 선물해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순없었다.
누군가는 백화점 오픈하기 전날 밤부터 줄을 서서 구매했는데. 내 지인이라는 이유로 선물로 받게 된다면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이 사라질 테니까.
그래서 김도윤이 받았을 때 가장 기뻐할 선물로 준비를 했다. 내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면서 김도윤에게 말하자.
“저, 정말?!”
김도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가 정말로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지는 몰랐다는 듯이.
“어. 작가님과 감독님도 모두 오케이 하셨으니까. 나랑 또 연습하자.”
“좋아! 정말 너무 좋아! 고마워 서준아!”
물질적인 선물이야 김도윤에겐 큰 의미가 없었다. 집이 많이 잘 살기도 했고.
7살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은 이미 서도현이 모두 선물을 해주었으니.
최지환이나 하지우가 준비한 선물들도 7살에 어울리는 가벼운 것들이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김도윤이 가장 기뻐할 만한 드라마 출연 기회라는 선물을.
“너무 좋아! 얘들아 나 또 TV에 나올 수 있게 됐어!”
김도윤이 마치 최지환이라도 된 것처럼 방방 뛴다.
“대박! 그러면 도윤이 너 또 드라마에 나오는 거야? 이번에는 무슨 역할로 나와?”
마찬가지로 김도윤의 손을 잡고 방방 뛰는 최지환과.
“···부러워.”
한 타이밍 늦게 부러움을 표출하는 하지우까지.
저 둘에 대한 생일 선물도 미리 생각을 해둬야겠다. 최지환이야 뭘 좋아할지는 예상이 갔지만. 하지우는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아서.
“6화 마지막에 나오는 쿠키 영상에 나오는 김헌의 어린 시절 역할을 할 거야.”
“쿠키 영상? 더 좋아!”
요즘 ‘폭군의 세자’를 보는 시청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건. 다음 편 예고도 아닌, 그다음에 나오는 쿠키 영상들이었다.
“나 서준이 너가 나온다고 해서 드라마 다 챙겨보고 있는데. 쿠키 영상이 너무 재밌었어.”
당장 쿠키 영상에 나온다는 말을 듣고서 더 기뻐하는 김도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잘됐다.
이참에 최지환과 하지우가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도 물어봐야겠다. 정확히는 하지우가 어떤 걸 원하는지 궁금하던 참이었으니까.
본인이 원하는 선물을 받는 것이 가장 기쁠 터였다. 지금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김도윤처럼 말이다.
“지환이나 지우는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음.”
“···.”
내 물음에 둘이 곰곰이 고민에 잠긴다. 최지환이나 하지우의 입에서 무리한 것들이 나오지 않을 걸 알기에 던진 질문.
그런데.
“나도 촬영장에 데려가주면 안 돼?”
최지환에게서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생각한 최지환이 원하는 선물은 미래의 감독님이 되기 위한 카메라 관련 서적 같은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최지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김도윤이 갈 때 같이 데려가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도. 나도 서준이가 드라마 찍는데 가보고 싶어.”
하지우도 그 말을 듣고선 번쩍 고개를 들더니 천천히 말했다.
이건 예상치 못했던 전개인데. 아마 나 때문에 감독님, 아이돌의 꿈을 꾸게 된 최지환과 하지우가 한 번 따라가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건 내가 한 번 감독님께 물어볼게.”
*
‘폭군의 세자’ 촬영장의 분위기는 훈풍이 가득했다. 어느새 안정적인 두 자리에 도달한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반응 덕분이었다.
그런 촬영장에 오늘도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5화 중반에 성인이 된 세자 이환의 등장으로 정규 촬영은 끝이 났지만. 6화 쿠키 영상 촬영을 위해 등장한 차서준이 그 주인공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쎄요!”
“···안녕하세요.”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라고도 불리는 차 배우. 차서준의 트레이드 마크인 등장 인사였지만. 오늘은 스태프 막내에게까지 다 하는 인사의 목소리가 4중창이었다.
“서준이 친구들이야?”
구석에서 대본을 보고 있던 박우형도 나와 차서준을 반겼다.
“네! 오늘 쿠키 영상 촬영 때는 여기 도윤이가 같이 할 거고요. 저기 두 친구는 촬영장 구경 왔어요.”
“너희가 샛별반 사총사들이구나?”
박우형이 자신들의 정체를 알자 사총사들이 화들짝 놀란다. 마치 연예인인 박우형이 자신들의 정체를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
“서준이에게 들었다. 감독님께도 인사드려야지.”
“네!”
“따라올래? 마침 형도 감독님께 물어볼 게 있었거든.”
“네!”
그런 박우형과 사총사들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형 씨가 서준이를 엄청 좋아하네요?”
“그러게. 원래 연기 관련된 걸 말할 때를 제외하면. 촬영장에서도 과묵하기로 유명한데.”
“그래요? 전 이번 촬영하면서 처음 봤는데. 말 엄청 많이 하던데요?”
“그게 다 저기 서준이 덕분이야. 아까도 구석에서 대본만 보는 거 봤지? 그거 본 촬영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 점검하느라 그런 거거든.”
그렇게 보니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마치 박우형이 끈질기게 차서준에게 달라붙고. 차서준이 조금 귀찮아하는 느낌?
“희한하네.”
스태프들이 그렇게 수군수군하는 사이.
“자! 촬영 시작합시다!”
김준수 PD가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