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41화 (41/220)

41화

‘폭군의 세자’의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엄마와 함께 ‘피치노’의 한정판 차서준 에디션 출시 준비를 하는 것.

“역시 영화와 현실은 달라.”

회귀한 주인공이 뭐든지 다 잘한다던데. 막상 김도경 시절의 옷들이 머릿속에 있었음에도. 완벽하게 그 느낌을 살리질 못했다.

내가 가진 재능은 뛰어난 ‘연기력’이었지. 그림 실력은 아니었으니까. 나름열심히 그려봐도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른 느낌의 디자인이 완성되곤 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의 디자인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는 점이었다.

“서준아. 이건 어떠니? 우리 서준이가 생각한 옷을 기본으로 해서 엄마가 조금 더 수정을 해봤는데.”

“이거에요! 제가 생각했던 옷이 딱 이런 것이었어요.”

“정말? 엄마가 잘했나 보네?”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예요!”

기쁨에 찬 내 대답에 엄마가 기쁜 미소를 짓는다.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 환한 미소를 말이다.

대략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내가 뼈대만 그려서 가져왔는데. 엄마가 그 위에 살을 덧붙이고 완벽하게 완성까지 한 수준이었다.

“정말로? 서준이가 엄마를 위해서 칭찬하는 건 아니고?”

“네! 아마 회사에 가져가서 보여줘도 다들 깜짝 놀랄 것 같아요.”

내 확신에 찬 대답에 또다시 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농담이 아니라 이전에 엄마와 함께 준비한 간략한 샘플 디자인들을 발표했던 때에도 반응들이 좋았다.

김도경 시절 오랜 연예계 생활을 했던 만큼 나도 눈이 생겼다. 이 옷의 디자 인에 대한 반응이 좋을지, 아니면 별로일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눈이.

그런 내가 객관적으로 봐도 엄마가 완성한 옷들의 디자인은 꽤나 좋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 DQ 패션에서도 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고.

“오늘 미팅에서 이 정도로만 준비해도 된다고 했니?”

“네. 어차피 이다음 단계부터는 DQ 패션에서 한다고 했어요.”

엄마와 내가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겠다가 아니었다. 꿈을 위해서 ‘차서준’ 한정판을 엄마와 함께 디자인에 참여했다는 데에 의미를 두겠다는 것.

무엇보다.

뱃속에 있는 동생을 생각하면. 엄마가 과도한 업무를 맡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서준아. 오늘은 엄마도 같이 가야 된다고 했니?”

“네. 저번에 DQ 패션 사장님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를 꼭 한 번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했어요.”

“어머. 정말로?”

“네!”

안 그래도 저번 발표 때 이유란 사장에게 엄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디어는 자신이 내었지만. 완성시킨 것은 우리 엄마였다고.

“그러면 다음에 엄마랑 같이 만나는 건 어떨까?”

그 말을 들은 이유란 사장이 먼저 제안을 한 것이다.

한때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가졌던 엄마에게 있어. 현 DQ 패션 사장인 이유 란은 전설과도 같은 존재라고 했다.

말 그대로 다 쓰러져가던 폐허만 남은 DQ 패션을 물려받아. 어느새 국내 최고의 패션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오늘 꼭 엄마랑 같이 나오라고 했어요.”

“정말?”

“네! 약속 장소도 회사가 아니라 조용한 식당이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DQ 그룹 현 회장의 차녀 이유란.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뒤 곧바로 한국에 들어와 DQ 패션에 입사.

당시에는 DQ 그룹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했다.

매출이 박살나다 못해 조만간 내놓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처참한 실적의 DQ 패션이었으니까.

그런 DQ 패션을 단 10년 만에 국내 패션 업계의 선두 주자로 끌어올린 패션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서준아. 엄마가 얼른 준비 좀 할게.”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요.”

그런 이유란 사장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3시간이나 넘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시간이 없다는 듯 부지런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설렘 가득한 표정이 된 엄마와 함께 이유란 사장을 만났다.

“서준이에게 이야기는 들었어요. 서준이는 아이디어만 내고. 미경 씨가 다 만 들었다고.”

“아니에요. 우리 서준이가 다 하고. 저는 조금 거들었을 뿐이에요.”

DQ 패션의 사장 이유란을 만난 엄마는 마치 동경하던 스타를 만난 소녀 팬 같았다.

“아니요. 서준이가 따로 보여줬습니다. 자기가 엄마에게 어떤 초안을 보여줬는지에 대해서요.”

그랬다.

막연하게 우리 엄마가 정말 뛰어나요. 이렇게 말한다 한들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내가 무엇을 보여주었고, 엄마가 어떻게 완성을 했는지에 대해서.

“고맙습니다.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아니에요. 본인의 능력에 대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세요. 만약 제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서준이 엄마라고 할지라도 거절했을 테니까요.”

정말이었다.

DQ 패션 사장 자리에 오른 이유란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실력 없는 책임급들을 모두 쳐내는 일이었으니까.

대규모 구조조정에 한 차례 언론에서도 시끌시끌했을 정도였지만. 결국 결과로 증명해낸 사람이 눈앞의 DQ 패션 사장인 이유란이었다.

즉, 아무리 내가 '피치노‘의 메인 모델이라 할지라도. 엄마가 완성한 디자인 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단박에 거절했을 거란 뜻이었다.

“아, 그리고 아까 보여준 것들을 보니 생각이 났는데 말이죠.”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다음으로 한 일이 엄마의 노트를 이유란 사장에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우리 엄마 노트에는 저를 모델로 엄청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내가 저렇게 자랑을 했었으니까. 그 결과 최근 1년 동안 엄마가 나를 모델로 그린 그림들을 직접 확인한 이유란 사장이었다. 정확하게는 그 그림 속의 내가 입고 있는 옷들에 대해.

잠시 노트 속 디자인들을 떠올리는지 이유란 사장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엄마를 향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을 꺼냈다.

“아까 노트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인데. 그대로 노트 안에 놔두기엔 아깝던데요. 우리 ‘피치노’와 차서준의 콜라보로 해서. 1년에 한 번씩 차서준 에디션으로 한정판 제품들을 내놓기로 하는 건 어떤가요?”

“저, 정말요?”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저 내 요청으로 인하여. 그리고 내가 곧 출연할 ‘폭군의 세자’의 효과를 노려 이번 한 번만 한정판을 출시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유란 사장이 1년에 한 번씩. 그것도 엄마가 직접 디자인한 옷들을 차서준 에디션으로 콜라보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일단 센스가 정말 좋았어요. 아직 투박한 부분들이 있어서 조금 다듬기는 해야겠지만. 그 부분들이야 우리 쪽에서 도와주면 될 테고. 제안이 어때요?”

“저, 정말 감사드립니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준비해보겠다며 이유란 사장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그런 엄마를 진정시킨 이유란 사장이 말을 잇는다.

“서준이에게 동생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올해 차서준 에디션은 이것으로 끝내고. 내년에 출시될 제품들에 대한 디자인을 앞으로 차차 이야기 해봐요 우리.”

좋은 생각이었다.

어차피 패션업계에 있어 여름 아이템은 큰돈이 되질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피치노’와 ‘차서준’이 콜라보한 한정판 제품들을 굳이 여름 제품까지 만들 필요가 없는 셈이다.

고가의 가격대를 이루는 ‘피치노’인 만큼. 한정판의 주력은 겨울 아이템. 그리고 봄, 가을의 일부 아이템만 노려서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서준아.”

“네?”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 오늘 만난다고 하니 서준이 사인 좀 받아달라는 요청들이 많아서.”

“제가 10개라도 해드릴게요!”

내 말에 방긋 웃음을 터트리는 엄마와 이유란 사장이었다.

*

‘폭군의 세자’ 첫 촬영 현장.

야외에 세운 거대한 세트장은 퀄리티에 제법 투자를 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건 세트장에 도착한 배우들의 표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야. 작정했다는 건 아는데. 이 정도일 줄은 예상도 못 했네요.”

“이거 괜찮나? 이 정도 투자했으면 어지간한 성공으로는 회수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 아닐까요?”

배우들의 시선이 김준수 PD와 정은희 작가를 향했다. 첫 촬영 현장에는 꼭 참석한다는 정은희 작가의 옆에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관심을 받는 배우가 한 명 있었다.

“저 대본 리딩 때 깜짝 놀랐잖아요.”

“왜? 차서준 때문에?”

“솔직히 아역이 잘해봤자 얼마나 잘하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날 끝나고 ‘너다’도 다 찾아봤어요.”

“나는 ‘너다’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며 봤거든. 우주 연기를 봐서 이환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냥 연기 자체를 잘하는 친구더라.”

바로 어린 세자 이환인 차서준이었다.

심지어 ‘너에게 다시’를 보지 않았던 이들조차. 대본 리딩 날 어린 세자 이환그 자체를 보여주는 차서준 때문에 다들 다시보기로 찾아봤다고 했다.

분명 첫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차서준에게는 별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어깨에 올려진 짐들이 가볍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쟤는 안 떨리나? 솔직히 처음 대본 나왔을 때보다 분량이 확 늘었잖아요.”

“그러게. 우주 때랑 다르게 이번에는 최소 4화까지는 자기가 이끌어 가줘야 하는데.”

“쟤 지금 웃는데요? 강심장인가?”

“글쎄. 그보다 그냥 자신 있는 거 아닐까?”

아직 쌀쌀한 날씨에 손난로를 비비며. 배우들은 하하호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시선이 쏠린 장소에서는 한창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서준아. 컨디션은 좀 어때?”

“엄청 좋아요.”

“그래? 오늘 부담 가지지는 말고. 딱 대본 리딩 때 보여줬던 정도만 해도 좋아. 알았지?”

“아니요.”

김준수 PD의 말에 차서준이 고개를 젓자 놀란 반응이 터졌다.

하지만.

“그때보다 10배는 잘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자신 있어요.”

당찬 차서준의 말에 그만 웃음이 빵 터지고 마는 감독과 작가였다.

“그나저나 박우형 씨가 아직 안 갔던데.”

“봤어요. 서준이 응원을 위해서 남았다고 하던데요? 저기 자리까지 준비해서 앉았네요.”

정말로 스태프들의 동선이 방해되지 않는 구석쯤에 의자까지 준비해서 앉은 박우형이 보였다.

“어? 이지예는 왜 안 갔지?”

그 옆에 앉은 이지예를 본 김준수 PD가 고개를 갸웃하자.

“우형이 형이 잡았대요. 그래도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확인해야 된다고요.”

옆에 있던 차서준이 재빨리 설명했다.

“감독님. 촬영 준비 다 끝났습니다.”

세팅을 모두 마친 조연출이 다가와 말하자. 김준수 PD가 알겠다는 듯 촬영 시작을 소리쳤다.

본 촬영이 시작되고.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 배우들이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구경을 하기 위해 주변에 있던 이들 중 한 명의 손에 있던 커피가 툭 떨어지고 말았다.

“와. 미쳤는데?”

다행히 손에 아무것도 없어 떨어뜨리지 않은 이들도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씁. 이거 잘못하면 잡아먹히겠는데?”

“그러면 쓰나. 오늘 긴장 좀 해야겠어.”

“나는 독대 씬도 있는데. 대본 좀 다시 보러 가야겠다.”

이런 반응이 터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눈빛, 몸짓, 목소리까지. ‘폭군의 세자’의 어린 세자 이환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는 차서준 때문에.

대본 리딩이야 대사 안에 감정을 싣는 정도가 끝이었다. 허나 지금 카메라 앞에는 ‘세자 이환’이 있었다.

“오케이! 잠깐 쉬었다가 합시다.”

잠시 후.

몇 씬을 NG 없이 촬영한 김준수 PD의 만족한 외침이 울려 퍼지고.

“감독님.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해요.”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고 있던 작가 정은희가 서둘러 그에게 다가왔다. 다급한 표정을 한 채로.

“감독님. 이대로 5화 초반에 서준이의 이환을 퇴장시키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김준수 PD가 입맛을 다시며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쉽긴 하지만 인제와서 더 분량을 늘릴 수도 없었다.

‘폭군의 세자’의 메인 스토리는 박우형의 세자 이환이 등장하면서 시작이었으니까.

그런 김준수 PD의 고민을 예상했다는 듯이. 정은희 작가가 재빨리 생각한 아이디어를 꺼냈다.

“우리 서준이의 이환 분량을 조금만 더 늘려 봐요. 나는 저 이환이를 이대로 못 보내겠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매 화 마지막 쿠키 영상으로요. 저 서준이의 이환을 5화 만에 보내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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