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QTV에서 준비 중인 퓨전 사극 ‘폭군의 세자’에 차서준이 합류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못했다.
“사극에 차서준이라니. 조금 아쉬운데?”
만약 차서준 캐스팅 기사만 단독으로 떴더라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최이안이 경쟁 시간대 NBC 작품에 들어간다는 소식 이 영향을 미쳤다.
└ 아니. 사극인데 왜 차서준을 썼지? 사극톤은 현대극이랑 달 라서 자칫하면 별로일 수가 있는데.
└ 맞음. 차서준이 연기를 잘한다는 것 정도야 이제 모두가 알 지. 하지만 배우들 중에서 사극 주연에 도전했다가 필모 삐끗한 배우가 한둘임?
└ 차라리 최이안 쓰지. 저번 사극에서 세자 역할 진짜 찰지게 했었는데. ㄲㅂ
└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우리 이안이는 NBC ‘보이스피싱’에 서 만나요! 심지어 QTV보다 일주일 먼저 시작합니다. ㅋㅋㅋㅋ
└ 그러면 최이안이랑 차서준 배역이 바뀌었음 오히려 나았겠 는데? ㅋㅋㅋ
└ 어? 이거 데자뷰인가? 차서준이 CBS에서 NBC보다 딱 일주 일 먼저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최이안이 차서준보다 일주일 먼 저 방송하네?
무엇보다.
‘너에게 다시’에서 보여준 김우주 연기가 너무나도 뛰어났기 에 터진 반응이었다.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던 우주가 과연 세자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이다. 그만큼 캐릭터가 정반대 였으니까.
└ ‘너다’에서 우주로 코믹 연기랑 눈물 연기를 잘한다는 건 보 여줬지만. 그거랑 사극에서의 세자 연기는 좀 결이 다르지 않나?
└ ㅇㅇ 예전에도 차서준 만큼은 아니지만 김지욱이라는 아역 배우가 현대극에서 나름 괜찮은 연기 보여주고. 사극 가서 깽판 침. ㄷㄷ
└ 어? 그거 ‘왕의 눈물’ 아니었음? 시청률 박살났던 거. 그때 무슨 현대 사람 데려다가 세자 역할 시키냐고 시청자 게시판 폭 발했었음. ㅋㅋㅋㅋ
└ 박우형이 서준이의 세자 이환도 기대해 볼만 하다고 했는데?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 거라고.
└ 그러면 주연 배우가 우리 드라마 캐스팅 망했어요. ㅠㅠ 이 렇게 말할까? 그냥 립서비스일지도 모름.
└ 맞지. 사극에서의 세자라면 어리더라도 위엄과 권위가 느껴 져야 할 텐데. 우주를 보면 세자 역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듦.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의 증명은 해도해도 끝이 없어요.”
김도경 시절에도 그랬다. 새로운 장르, 색다른 배역에 도전할 때마다 지금과 같은 ‘검증론’이 뒤따르곤 했다.
저번 연기와 너무 상반되는 배역이라서 힘들지 않겠어?
아예 다른 캐릭터잖아. 보나마나 연기가 겉돌게 분명해.
등등.
그때는 어떻게 했냐고?
배우는 연기로 말하는 법이다. 그래서 깔끔하게 증명해버렸다. 연기로.
그렇듯 이번에도 나는 태연하게 있는데. 정작 옆에서 불안감 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서준아. 아빠가 서준이 연습을 도와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바로 우리 아빠였다. 회사에서도 내가 사극에 도전한다는 소 식을 들었는지. 이런저런 걱정이 담긴 이야기를 아빠에게 해주 었다고 했다.
가뜩이나 ‘너에게 다시’의 캐스팅 당시처럼. 사람들의 우려 섞 인 반응들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아빠가 대본 연습을 도와주 겠다고 팔 걷고 나선 것이다.
“여보. 서준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리고 당신이 도 와주면 안 돼요.”
단호하다. 언제나 옆에서 아빠를 응원하고 북돋아 주는 말만 하는 엄마였는데. 나와 관련되니 단호하게 아빠를 제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연기가 좀···.”
침몰. 시무룩해진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엄마의 배를 보 더니 금방 얼굴이 방긋 핀다.
이내 기운을 회복한 아빠가 엄마의 배에 귀를 대며 둘째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여보. 아직 못 들어요.”
아빠의 두 번째 침몰. 나는 못 들은 척 대본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빠 미안.
*
꽤나 재밌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 [메이킹]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 ‘보이스피싱’ 대본 리딩 현장 공개!
너네 작전 진짜 좋더라.
인정.
그러니 우리도 한 번 써볼게.
CBS ‘너에게 다시’가 썼던 작전을 지금 NBC가 보여주고 있었 다.
조금 더 빠르게 대본 리딩 영상을 공개하고. 또 과감하게 메이 킹 영상들을 풀어내기 시작한 것.
└ 와. 역시 김은율 작가네요. 인물들 대사 하나하나가 숨 막힐 정도로 긴장감을 주는데요? 대본 리딩인데도 배우들도 작정하 고 대사 침. ㄷㄷ
└ 이거 준비하려고 대사 단어 선택 하나까지 세세하게 다 신 경 썼다고 했음. 대작 탄생할 거 같은데?
└ 이게 드라마지. 사랑 이야기도 좋긴 한데. 이런 쫄깃한 심리 전을 원했다고!
└ ‘너에게 다시’가 경쟁작들보다 일주일 먼저 시작해서 대박 났듯이. ‘보이스피싱’도 이번에 크게 사고 한 번 칠 듯.
└ NBC가 이를 갈긴 했네요. ‘너다’의 김우주 때처럼 작정하고 최이안을 중심으로 보여주네요. ㅋㅋㅋㅋ
특히나 최이안과 차서준의 경쟁 구도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만큼. 최이안을 중심으로 메이킹 영상을 공개하였다.
데자뷰처럼 ‘너에게 다시’를 따라 하는 NBC의 행동에 사람들 이 하나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반응들도 확실히 좋았다. 지상파답게 후반부로 가면서 러브 스토리가 나오긴 하겠지만. 초반부는 전개에 힘을 팍 준 게 느껴 졌다.
“일 났네, 일 났어.”
스튜디오 마운틴의 대표 박홍철은 또다시 떨리는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경쟁 시간대에서. 그것도 일주일이나 먼저 시작하는 작품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결과 박홍철은 불안 증세 초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 작가는 뭐래?”
“신경도 안 쓰던데요. 대본 써야 한다면서 방에서 나오지도 않 고 있어요.”
박홍철의 물음에 제작 PD가 답했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끼니 조차 제대로 때우지 않는 정은희 작가를 위해 제작 PD가 가끔씩 먹을 걸 들고 확인하고 있던 참이었다.
정은희 작가는 집. 그것도 자신의 침실 옆 책상에서만 글이 나 오는 참으로 독특한 작가였다.
그나마 대본 작가가 눈곱만큼도 신경 쓰질 않는다니 참으로 다행인 소식이었다.
“미치겠네. 네가 봤을 땐 어때?”
“어, 그게···.”
“어떠냐고!”
“대사는 아주 기깔나더라고요. 역시 김은율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이고.”
확실히 박홍철이 봐도 그랬다. 차라리 ‘폭군의 세자’가 일주일 먼저 들어간다면 이런 걱정을 하지도 않을 터였다.
문제는 ‘폭군의 세자’는 종편 채널인 QTV. ‘보이스피싱’은 지 상파인 NBC에서 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상대가 일주일이나 먼저 시작.
아무리 입소문을 탄다 하더라도. 같은 대작일 경우 지상파, 그 것도 먼저 시작한 놈이 유리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북이가 결승선에서 이긴다 한들. 그 결승 직전까지 내내 뒤 처진다면 아무 의미 없었다. 이건 끝에 누가 이기느냐가 아닌 얼 마나 앞서가느냐의 싸움이었으니까. 심지어 토끼는 절대로 잠들 지 않을 거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대본이 더 죽이잖아요.”
“그렇지?”
“네. 문제는 저쪽도 죽인다는 점인데.”
“죽일까? 너는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거냐!”
버럭 화를 내는 박홍철 때문에 제작 PD가 자라목 오그라들 듯 움찔한다.
“우리도 곧 대본 리딩 하잖아요. 그리고 제 감으로 봤을 땐.”
“봤을 땐?”
“처음에야 어떨지 몰라도 우리 게 더 대박 날 것 같아요. 솔직 히 우리가 더 구성이 좋잖아요.”
“그렇지?”
감이 제법 좋은 제작 PD의 확신에 찬 말에 그제야 먹구름이 걷 히는 박홍철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차 배우는 잘 지내고 있나?”
가뜩이나 비교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괜히 어린 아역 배우가 흔들리지 않을지. 박홍철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 다.
*
“재밌네.”
작정을 했는지 아예 홍보 수단으로 '최이안 VS 차서준‘을 타이 틀 매치에 올려두었다.
저쪽에선 9살이 된 최이안을 확실하게 케어할 수 있다는 확신 이 있는지. 아주 거창하게 판을 벌리고 있었다. 저러다 지면 망신 살이 뻗칠 텐데.
“아니면 최이안 본인이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럴 거 같아요. 아무래도 저에게 세자 역을 뺏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서도현 역시 그런 상황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결과 적으로는 내가 비공개 오디션을 통해 최이안을 밀어낸 셈이었으 니.
현재 서도현이 걱정하는 건 딱 하나였다. 혹시나 내가 이 상황 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것.
“서준아. 혹시 조금이라도 부담감이 느껴지거나 그러면 언제 든지 삼촌에게 말해야 된다.”
“걱정 마세요 삼촌. 저 이런 경쟁 같은 거 좋아해요.”
당찬 내 말에 그제야 걱정을 내려놓는 서도현이었다.
“드디어 대본 리딩 날이 내일인가?”
“네. 우형이 형이 데리러 온다고 같이 가자고 했어요.”
“박우형이 서준이 네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마음에 든 수준이 아니었다. 무슨 김우승 버전 2도 아니고. 시 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는 중이었다.
오죽하면 옆에서 보던 박우형 매니저가 나를 그만 괴롭히라고 말렸을 정도.
- 서준아. 배우들 목에 좋다는 차를 좀 구했는데. 보내줄까? 아 니다. 이야기도 나눌 겸 만나서 줄게. 시간 언제 되니?
- 대본 리딩하러 가는 날. 형이랑 같이 가자. 가는 길에 최종 점 검도 하게.
- 자니? 생각해 보니 내일 대본 리딩 때 중요한 게···
마지막 장문의 문자는 또 뭔지.
어쨌거나 박우형이 줄기차게 연락을 하곤 있었지만. 그 주제 는 오직 하나였다.
‘연기’.
그 외에 다른 대화 주제는 일절 없었다. 박우형은 오직 연기에 관련된 이야기만 주구장창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가기 위해 회사를 나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저 런 박우형과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행동을 하는 김우승이.
내일 있을 대본 리딩 전에 응원을 하겠다며 직접 찾아온 것이 다.
“서준아. 신경 쓰지 말아도 돼. 어차피 방송 시작하면 다들 네 연기를 인정할 테니까.”
“형. 신경 안 써요.”
정말이다. 그리고 ‘너에게 다시’를 시작하기 전과 달라진 점도 하나 있었다.
어느새 배우 차서준의 팬들이 하나둘 생겨나 최이안의 팬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
처음 ‘너에게 다시’에 캐스팅되었을 당시와 비교해 본다면 눈 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내 편이 생긴 건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봤는 지 김우승도 옆에서 걱정 말라는 듯 응원을 했다.
“그리고 서준아. 형이 널 위해서 밥차 알아보고 있다.”
“네? 무슨 밥차요?”
“아니. 저쪽 최이안 팬들이 촬영장에 벌써 커피차 보내겠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 형이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저기가 커피차 면 서준이는 밥차 정도는 되어야지!”
마치 질 수 없다는 듯 김우승이 방방 뛴다. 그 마음이 고맙고, 감동적이긴 한데.
“형.”
“응?”
“밥차는 과해요. 그냥 커피랑 간식으로 보내주세요.”
“왜? 서준이 네 덕분에 내가 찍은 광고가 몇 갠데. 당연히 내가 가장 먼저 밥차를···.”
“스타트를 밥차로 끊으면. 다른 분들 팬들이 부담스러워할 수 도 있어요. 그리고 밥 잘 나온다고 했으니 간식으로 보내주세요.”
“그, 그래. 그러면 내일이 드디어 대본 리딩 날이니. 오늘 형이 랑 같이 보양식이라도!”
이 형이 어째 점점 푼수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형. 저 7살이에요. 보양식 안 먹어도 튼튼해요.”
“아, 맞다. 그러면 서준이 네가 좋아하는 맛있는 거 먹으러 가 자.”
단둘이 있을 때 너무 가면을 벗어서 그런가. 나를 대할 때면 내 가 아직 7살이란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김우승이었다.
*
모두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폭군의 세자’ 대본 리딩 현장 영상이 공개되었다.
- ‘폭군의 세자’ 차서준, 박우형 세자 이환의 대본 리딩 현장 대 공개!
- 어린 세자 이환과 성인이 된 세자 이환의 만남. 두 세자의 대 본 리딩 모습은? 설렘 지수↑
- ‘폭군의 세자’ 이지예♥박우형, 대본 리딩부터 보여주는 환상 케미.
- ‘폭군의 세자’ 대본 리딩 현장. 조연 배우들의 환상적인 연기 력도 눈길을 끌었다.
└ 뭐지? 우리 차 배우 발성 좋은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 ㄴㄴ 박우형이 따로 개인 인터뷰한 거 있음. 세자 이환의 캐 릭터를 분석하기 위해 서준이랑 같이 연습했다고 함.
└ 역시 우리 서준이! 사극톤이 어쩌고 뭐고 하던 사람들 다 입 다물었죠?
└ ㅋㅋㅋㅋㅋ 그냥 쟤는 연기를 잘해. 오히려 최이안이 사극 에서 보여준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 아니!!! 그냥 어린 시절의 세자가 저기 있잖아. 우리 차 배우 에게 연기력 어쩌고저쩌고 한 사람들 죄다 반성해라!!!
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 가득하던 걱정과 우려들은. 정작 대 본 리딩 영상이 등장함과 함께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 었다.
“대본 리딩 가지고 벌써부터 저러면 안 될 텐데.”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단 말이다.
지금도 저렇게 난리들인데. 본격적으로 드라마에서 확인하면 얼마나 더 놀라려고.
정말 기대가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폭군의 세자’ 첫 촬영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