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가람 유치원의 샛별반에는 슈퍼스타가 탄생했다.
누구냐고?
입 아프게 말해서 뭐 하겠어.
바로 나였다.
아직까지도 ‘너에게 다시’에 대한 관심이 다 식지 않은 상태였 다.
그리고.
그런 관심들은 샛별반에서도 이어졌다.
“서준아!”
“이거 봐. 어제 내가 만든 건데. 한 번 봐줘.”
“나 노래 진짜 잘하는데. 들어봐.”
아주 도떼기시장도 이런 도떼기시장이 없었다. 옆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친구 하나, 반대편에서 어젯밤 열심히 만들었 다며 뭔가를 흔드는 친구 하나.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된 친구에게. 뭔가 하나라도 더 보여주 고 칭찬을 받고 싶은 것 같다.
“잘하네.”
“정말?!”
이렇게 칭찬을 해주면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방긋 웃었다. 저 런 걸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도전! 샛별반 장기자랑을 끝날 때쯤이면. 다음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샛별반 친구 중 한 명이 우물쭈물하면서 내게 조심스럽게 묻 는다. 혹여나 내가 단박에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가득한 얼 굴로.
“서준아. 나 사인 하나만 해주면 안 돼?”
“당연히 해줄 수 있지. 종이 가지고 왔어?”
“응. 누나가 받아오라면서 종이 줬어.”
이런.
7살. 그것도 샛별반에서 작년부터 매일 보던 친구들이었다.
갑자기 내 사인을 받고 싶어 할 리는 없고. 주변에서 샛별반에 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인을 부탁한 모양이다.
“누구라고 써줄까?”
“우리 누나 이름은 하은이야.”
“그러면 하은 누나에게. 이렇게 써줄게.”
“고마워.”
한 명을 해주고 나니.
“나도나도! 혹시 나도 사인을 해줄 수 있어?”
“당연하지.”
그걸 본 다른 친구들이 달려와 다음 차례로 이어졌다.
그러다 무언가를 봐달라며 떼를 쓰는 친구가 등장하면. 다시 난장판이 되어버리곤 했다.
샛별반 친구들을 처리하고 나면 끝이냐.
아니었다.
저기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있는 다음 차례가 눈치를 보고 있 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샛별반 친구들은 작년부터 나와 함께 했기 에 익숙해졌다지만. 가람 유치원의 다른 반 꼬맹이들은 아니었 으니까.
“서준아. 나 옆에 있는 구름반 유하인데. 사진 같이 찍어주면 안 돼?”
“당연히 가능하지. 일로 옆으로 와.”
“고마워!”
평범한 7살이었다면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겠지만. 20년 이 훌쩍 넘은 베테랑 연예인인 나는 아니다.
자연스럽게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지환아. 우리 좀 찍어줄래?”
“알았어! 이쪽으로 와. 거기에서 찍으면 햇빛 받아서 뿌예져”
심지어 나를 돕기 위해 두 팔 걷어 올리고 나선 사총사들도 있 었다.
그중에서 나중에 감독님이라는 꿈이 생긴 최지환에게 사진 촬 영을 부탁하니 아주 기뻐하는 눈치로 나선다.
“어? 잠깐만! 방금 좀 이상하게 찍혔어. 다시 찍어줄게!”
심지어 나온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번쩍 손을 들고선 재촬영을 외치기도 했다.
“자자, 오늘은 서준이가 딱 10명만 해줄 거야. 막 자기까지만 해달라고 떼쓰고 그러면 안 돼. 내일도 서준이가 유치원에 오잖 아. 내일 다시 부탁하면 돼. 그렇지?”
“응!”
“맞아.”
“알았어.”
그리고 촬영장을 같이 간 이후 부쩍 성장한 것 같은 김도윤이 다른 반 친구들 통제를 도와준다.
하지우는 뭘 하고 있지?
“···사인할 종이 가지고 왔어.”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겠는데. 사인을 해주라며 가져온 종이 를 본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를 돕겠다며 나선 사총 사들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샛별반, 구름반 친구들. 선생님이 서준이 괴롭히면 안 된다고 했죠?”
“네에.”
그 난장판은 샛별반 선생님이 등장하고 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잠시 할 말이 있는지. 샛별반 선생님이 나를 교사실로 데려갔 다.
그러더니.
“서준아.”
“네?”
“정말 미안한데. 서준이한테 선생님이 사인 좀 부탁해도 될 까?”
우리 샛별반 선생님도 은근슬쩍 사인을 부탁한다. 말하는 본 인도 부끄러웠는지. 단둘이 있음에도 볼을 긁적이면서.
다른 반 아이들의 사인 요청에 시달리던 나를 데려와서 한다 는 말이 본인의 사인 부탁을 하는 상황이었으니.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더 이상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었는 지 양손을 모으며 내게 부탁을 한다.
“서준아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 저번에 선생님 친구들한테 발 표회 영상을 보여주면서 서준이라는 엄청 귀여운 친구가 샛별반 에 있다고 자랑한 적이 있었는데.”
가람 유치원 발표회에서 내가 연기하는 영상을 친구들에게 자 랑했다가. 그 아이가 TV에 나오는 바람에 제법 곤혹을 치룬 모양.
오히려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온 샛별반 선생님을 칭찬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저런 내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 니.
솔직히 샛별반 친구들이나, 눈앞의 샛별반 선생님 모두 매일 같이 나를 보았다. 같이 발표회 준비를 하면서 울고 웃기도 했었 고.
아무리 TV에 나와 신기하다 하더라도. 그 신기함은 이미 익숙 해졌을 것이다.
문제는 샛별반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주변이들 때문이었 지만.
괜찮다.
원래 연예인이란 팬서비스가 자동 반사처럼 나와야 하는 존재 였으니까.
“대신 선생님이 우리 서준이를 위해서 맛있는 초콜릿을 선물 로 준비했어요.”
“선생님.”
“응?”
“사인해드릴 테니. 종이 주세요.”
“그, 그래.”
7살 꼬맹이답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어느새 연예인이 되어버 린 나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담당하고 있는 샛별반에서 현역 아역 배우가 탄생했으니. 샛 별반 선생님도 이제는 능숙하게 애들을 다루기 시작한 날 봤다.
거기에 사인도 부탁해야 하니 열심히 인터넷에서 차서준의 팬 서비스에 대해서도 찾아봤을 것이다.
길에서 팬들에게 하는 팬서비스. 그리고 놀이공원에서 마이크 를 잡고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는 영상까지. 이 모든 것들을 봤 을 거고.
“선생님 친구들 이름 말해주면. 제가 이름 넣어서 사인해드릴 게요.”
“정말?”
“네.”
“그러면···.”
본인도 민망했는지 볼을 긁적이면서 사인을 해준 종이들을 받 아 간다.
“그··· 서준아. 선생님은 절대로 서준이 영상을 몰래 찍어서 누 군가에게 보내거나 그러지 않아요. 알겠죠?”
“네. 알고 있어요.”
아마 며칠 전 ‘샛별반 서준이 모습’이라며 올라온 영상 때문에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거 이미 범인이 내게 자수를 했다. 그것도 엉엉 울면서. 형한 테 보여줬는데 몰래 가져가 인터넷에 올린 것 같다면서.
“그거 지준이네 형이 올렸대요. 다음부턴 안 그러겠다고 사과 했어요.”
“다행이네. 선생님도 샛별반 친구들이 다음부터 그러지 않도 록 주의시킬게.”
“네. 고맙습니다.”
오히려 ‘우리 차 배우의 귀여운 유치원 생활’로 엄청난 반응이 터져서 좋았는데. 서도현이 그 사진의 효과가 뛰어났다면서 아 주 기뻐했었다.
‘너에게 다시’에서 김우주를 연기할 때와. 평상시 샛별반의 차 서준의 갭차이에 치였다나 뭐라나.
*
김시율은 퇴근 후 맥주 하나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무슨 재밌는 소식이 있었으려나.”
겨울이 회사 일이 가장 바쁜 시즌인지라 평소처럼 웹서핑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캔 맥주를 시원하게 딴 김시율이 콧노래를 부르며 인터넷 창 을 눌렀다. 그리고 인기 검색어를 본 순간.
“응?”
입에 가져다 대던 맥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실시간 검색어가 김시율의 모든 신경을 사로잡아버렸으니까.
1위. 차서준.
2위. 최이안.
3위. 폭군의 세자.
4위. 드라마 보이스피싱.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권이 모두 아역 배우에 대한 이름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김시율이 너무나 잘 아는 애들로.
그걸 확인한 김시율은 재빨리 커뮤니티에 접속을 했다. 이 상 황을 깔끔하게 정리해줄 사람들이 그곳에 있을 테니.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 무슨 일인가요?]
└ 지금 캐스팅 기사가 떴는데. 그 내용들 때문에 실시간 검색 어가 저럼.
└ 우와. 차서준과 최이안 맞대결 성사 실화냐?
└ 진짜임? 최이안 대타로 ‘너다’에서 초대박 친 우리 서준이랑 최이안이 맞붙는다고?
└ 웃기네. 아무리 차서준이 ‘너다’에서 엄청난 연기력을 선보 였다곤 하나. 아직 우리 이안이에게는 안 되지.
└ 심지어 차서준은 사극에 처음 도전하는 거임. ㅋㅋㅋㅋ 저 번에 사극에서 주연 맡았다가 박살났던 배우가 누구였더라?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김시율이 다시 맥주를 홀짝였다.
그러고는 재빨리 마우스를 움직여 캐스팅 기사들을 확인했다.
- ‘폭군의 세자’ 아역 배우 차서준 캐스팅 완료.
- 작가 정은희의 새로운 도전. 퓨전 사극 ‘폭군의 세자’는 어떤 드라마?
- 차 배우 차서준의 새로운 도전. 퓨전 사극 ‘폭군의 세자’.
먼저 ‘폭군의 세자’에서 아역 배우 차서준이 캐스팅되었다는 기사들을 올라오자.
- 김은율 작가의 복귀작. ‘보이스피싱’에 아역 배우 최이안 전 격 캐스팅.
- 오랜 부상 끝에 돌아온 아역 배우 최이안이 선택한 작품은? 김은율 작가의 ‘보이스피싱’
- “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아역은 오직 배우 최이안뿐.” 작가 김은율이 던진 당찬 출사표.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보이스피싱’ 측에서 최이 안 캐스팅 기사를 터트렸다는 점이다.
그 기사들을 본 사람들은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너에게 다시’에서 최이안의 부상으로 인한 하차로 발견된 배 우가 차서준이었다.
그 기회를 통해 라이징 스타가 된 아역 배우 차서준과, 부상으 로 인하여 아깝게 그 기회를 놓친 최이안의 맞대결.
이보다 더 흥미로운 주제는 없을 테니.
당장 난리가 난 사람들의 반응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었다.
└ 와, 동시간대 맞대결 실화냐?
└ 무조건 우리 이안이의 완승 아님? 아무리 차서준이 ‘너다’에 서 좋은 연기력을 보여줬다곤 하나. ‘폭군의 세자’ 저건 사극이 잖아. 사극 무덤에 빠져서 필모 날아간 배우가 한둘임?
└ 전통 사극 아니고 퓨전 사극이에요. 그리고 우리 서준이라 면 세자의 어린 시절 역도 충분히 소화 가능할 걸요? 오히려 지 금 최이안 쪽에서 불안해해야지. 그래서 이렇게 난리들인가? ㅋ
└ ㅋㅋㅋㅋ ‘보이스피싱’ 작가가 김은율임. ‘형사들의 밤’의 그 김은율. 이번에 2년 동안 저거 준비했다던데. 심지어 김은율 이 가장 잘한다는 장르인 미스터리 스릴러임.
└ ‘폭군의 세자’도 정은희임. 대박작은 못 터트렸어도 꾸준히 중박은 터트려준 작가인데. 그런 정은희가 우리 차서준을 만났 다? 이거 못 막지.
└ 아니 님들아. 저 둘은 주연이 아니라고. 주연을 놔두고 아역 들 가지고 싸우는 건 또 처음 보네. ㅋㅋㅋ
잠시 사람들의 갑론을박을 보던 김시율이 흥미로운 걸 하나 발견했다.
바로.
“기사 어디에도 상대방을 헐뜯거나, 깎아내리려는 기사가 없 네?”
없었다.
보통 이렇게 맞불 기사를 놓게 되면 디스를 하기 마련인데.
최이안이나, 차서준 둘 모두 순수하게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자신감인지. 그런 내용이 일절 없었다.
마치.
“아역 배우들 간에 작품성과 연기력으로 한 판 붙어보자 이건 가?”
깎아내리기가 아닌.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자는 뉘앙스를 보여 주고 있었다.
어디 근본 없는 인터넷 신문사에서나 그런 기사를 하나 올렸 다가 사람들의 댓글 폭격을 맞았을 뿐.
“둘 다 자신 있다는 건가?”
*
“재밌네.”
일제히 쏘아진 기사들을 보면서.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 었다.
“서준아. 기사 봤니?”
때마침 서도현도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손에 들린 핸드 폰을 보아하니 방금 막 기사들을 확인한 모양.
“네. 봤어요.”
“어때?”
어떠냐고?
한번 붙어보자고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오는 상대다.
“보여줘야죠.”
그러면 연기력으로 대답 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