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자! 좋습니다!”
찰칵찰칵.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감독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요구가 이 어졌다.
카메라 앞에 선 나는 현재 키즈용 바바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머리까지 한껏 멋을 부린 상태였다.
‘너에게 다시’의 촬영이라면 이런 옷을 입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현재 나는 아동복 화보를 촬영 중이었다.
“굿! 이제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다음 옷 준비해주세요!”
“서준아. 이리 올래?”
“네. 갈게요.”
내게 들어왔던 수많은 광고 제안들 중에. 새로운 키즈 브랜드 를 런칭하려는 의류 기업이 있었다.
서도현조차 ‘이건 괜찮은데?’라며 넌지시 내게 권유를 할 정도 로 좋은 조건으로 전속 모델 광고가 들어온 것이다.
원래는 최이안에게 가려고 했던 건데. ‘너에게 다시’로 환상적 인 인기를 끌고 있는 내게 그 기회가 넘어오게 되었다.
고급 브랜드로 런칭하려는 만큼 조건들이 제법 괜찮았다. 김 도경 시절을 경험한 내가 괜찮다고 느꼈을 정도니.
“이야. ‘너다’에서 서준이가 연기는 잘하는 건 알았는데. 저걸 보니 무슨 전문 모델인 줄 알겠어요.”
“감독님이 저렇게 무조건 오케이만 외치는 거 처음 아닌가?”
“그러게요. 저번에 개고생을 했던 악몽이 떠올라서 걱정을 했 었는데. 괜한 우려였네요.”
“내가 말했잖아. 저 친구는 이미 프로라니까. 포즈, 눈빛, 몸짓 봐. 크, 저런 친구만 있으면 이 일도 편할 텐데. 아마 오늘 촬영도 일찍 끝날걸?”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스태프들이 웅성웅성거리는 소리들 이 들려온다.
처음 광고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나를 바라보는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시선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동적인 장면을 찍는 드라마와 달리. 정적인 모습을 담는 화보 는 또 다른 분야였으니까.
특히나 고급 키즈 브랜드인 만큼. 광고주가 요구하는 기준이 확연히 높았다. 평소라면 오케이를 받을 결과물도 반려된다는 의미다.
저번 다른 촬영에서 아역 모델 하나랑 며칠을 애먹었다고 했 었나? 심지어 결과물도 광고주가 퍽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내가 이번 광고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 걱정했 을 터였다. 특히나 다양한 옷을 소화해야 하는 화보 촬영이었으 니.
하지만.
“좋아요 좋아!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그대로! 굿!”
이미 카메라를 든 감독님이 환한 미소와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입에서는 좋아요!를 연신 외치면서.
실내 촬영장에 한겨울용 패딩이 더울 법도 했지만. 나는 자연 스러운 시선처리와 함께. 감독이 요구하기도 전에 다음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입에서 연신 감탄만이 터진다.
이래 봬도 김도경 시절에 찍은 광고만 1년에 수십 개였다. 콘 티만 보면 원하는 샷이 무엇인지 알아서 다 해줄 수 있다는 말씀.
그렇게 촬영장에선 연신 나에 대한 감탄만이 가득 채운 채 촬 영이 이어져갔다.
“서준아. 어디서 광고 모델이라도 했었니?”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지. 잠시 옷을 갈아입는 타이 밍에 직원이 내게 묻는다.
“아니요. 화보 촬영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정말?”
“네. 대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열심히 공부하고 왔어요.”
“그게 공부를 한다고 해서 되나?”
내 천진난만한 대답에 직원이 고개를 갸웃한다. 연습으로 된 다면 촬영장에서의 고생 따윈 없을 테니까.
저기 떨어진 곳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은 광고주 쪽 관계자일 터였다.
다시 갈아입은 옷에 대한 촬영이 이어지고. 순식간에 좋아요 를 외친 감독이 시계를 살핀다.
“이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끝나겠는데.”
“그러면 방금 찍은 거 잠깐 봐도 돼요?”
“그럼. 일로 오렴.”
사실 지금까지는 모니터링할 필요조차 없었는데. 방금은 개인 적으로 느끼기엔 살짝 아쉬웠다.
역시나 방금 찍은 결과물을 확인하니. 감독과 같은 표정을 짓 게 된다. 기왕 하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해야지.
“여기 이 부분이 조금 어색한 거 같아요.”
“그렇긴 한데. 이 정도면 충분···.”
“아니요. 다시 해볼게요. 저 할 수 있어요.”
내 말에 감독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 정도의 프로 정신을 보 이는 아역 모델이 없었을 테니.
감독뿐만이 아니다. 주변 모두의 놀란 시선들을 무시한 채. 나 는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DQ 패션에서 이번에 새롭게 런칭 준비 중인 고급 키즈 의류 브랜드 ‘피치노(piccino)’.
새로운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면서. DQ 패션 임원들이 가장 고 민한 것이 바로 모델이었다. 모델은 그 브랜드의 얼굴이나 마찬 가지였으니까.
가격이 가격대인 만큼.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모델을 선정해야만 했다.
“이번에 시작한 드라마 ‘너에게 다시’에 출연 중인 차서준은 어때?”
그때 차서준을 언급한 것이 바로 DQ 패션의 현 사장이었다.
그 결과.
최이안으로 기울던 모델이 순식간에 차서준으로 결정되었다.
“부장님. 솔직히 저는 사장님이 차서준 이야기를 꺼낼 당시에 는 의아했거든요? 그때는 무조건 최이안이 차서준보다 위였잖 아요.”
“인마. 네가 그러니까 매번 깨지는 거야. 당장 눈앞만 보지 말 고 길게 보라니까.”
“부장님도 저랑 같은 의견이었잖아요. 이번에는 사장님의 감 이 틀린 거 같다면서 하셔놓곤.”
“흠흠. 내가 그 정도 안목이 있었으면 나가서 독립했지. 넌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사장님은 사장님이네요. 차서준의 몸값이 이 정도로 올라갈 지 누가 예상했겠어요.”
DQ 패션은 ‘피치노(piccino)’의 메인 모델로 차서준과 장기 계 약을 체결했다.
차서준 하면 ‘피치노’가 생각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DQ 패션의 목표인 것이다.
그리고 촬영 현장을 찾은 DQ 패션 직원들의 얼굴에는. 그 결 정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포즈를 취하는 차서준을 보던 DQ 패션 직원이 멍하니 입을 벌 렸다.
“이야. 진짜 타고났네요. 타고났어.”
“저게 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쟤는 아예 연예인이 되기 위해 태어났네.”
DQ 패션 직원들은 감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수많은 광고 현 장을 따라다닌 그들이기에 한 눈에 알아차린 것이다.
연예인 차서준이 가진 재능이 얼마나 놀라운 것들인지에 대해.
특히 화면 너머로 ‘아우라(aura)’를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은 연 예인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어? 저기 구름엑터스의 서도현 대표 아니에요?”
“그러게. 아까는 매니저랑 왔더니만. 서 대표가 직접 챙기려나 보네.”
“이야. 확실히 기대주긴 기대준가 봐요. 다른 곳도 아닌 구름 엑터스 대표가 직접 케어하는 걸 보니.”
차서준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던 DQ 패션 직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어느새 도착하여 팔짱을 끼고 있는 서도현이었다.
허나 서도현을 계속 바라볼 수 없었다. 금방 차서준에게 시선 을 빼앗겼으니까. 정확히는 차서준이 보여주고 있는 ‘아우라(aur a)’에게 말이다.
“요즘 차서준, 차서준 이름이 많이 들린다곤 했는데. 이거 머 지않아 광고계에 블루칩이 되겠는데요?”
“내가 봤을 땐. 얼마 걸리지도 않을걸. 당장 이거 화보 공개되 면 난리 날 거다.”
화보 촬영 현장을 바라보는 DQ 패션 직원들의 입에는 환한 미 소가 걸려있었다.
*
“서준아. 화보 첫 촬영해보니 어땠어?”
“엄청 재밌었어요. 삼촌.”
“그래? 그러면 어제 서준이가 말했던 곳으로 갈까?”
“좋아요! 사실 거기 가려고 촬영도 얼른 끝냈어요.”
프로 정신을 발휘하여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릴 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뽑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 씬 빠르게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촬영장에 올 때는 수진 누나가 나를 데려왔지만. 촬영이 끝날 쯤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서도현이었다.
오늘 서도현과 가기로 약속한 곳이 있었다. 예정보다 광고 촬 영을 빨리 끝낸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서준아. 도착했다.”
“네!”
국산차 매장이었다.
내가 이곳이 김도경 시절 살던 곳과 다른 세상임을 알게 해준 그 자동차. 대성 자동차 전시장에 말이다.
“서준아. 어제 선택한 것들 중에서 고를 거지?”
“네. 두 개 중에서 하나 고를 거예요.”
“잘 생각했다. 많이 벌었다고 모두 쓰려고 하면 안 되는 거거 든.”
이미 여기에 오기 며칠 전부터. 서도현에게 차를 아빠한테 선 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말에 깜짝 놀라던 서도현은. 이내 외제차가 아닌 대성 자동 차를 생각하고 있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 관련된 업무야 매니저인 수진 누나가 따라다닌다지만. 쉬는 날 우리 가족이 움직일 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었 으니까.
[너에게 다시]가 대박이 난 지금. 예전처럼 편하게 대중교통을 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오늘 서준이가 그 두 개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면. 나머 지는 삼촌이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 고맙습니다 삼촌.”
[너에게 다시]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가족에겐 딱히 차가 필요 없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걷고. 또 대중교통을 환승하며 어디든 다 닐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되고. 시청률이 점점 올라가며 내가 유명해질수 록. 어디론가로 이동할 때 차가 필요하게 되었다.
“어? 차서준 아니야?”
“맞네. 오늘 방문 예약한 손님 하나 있다고 했는데. 설마?”
“조용히들 해. 저희 매장 방문을 환영합니다.”
지금 나를 반기는 전시장 직원들처럼.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진 것이다.
엄마와 함께 길을 걷다가도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이들이 많 아졌다는 뜻. 그렇다고 6살의 어린이가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도 그것 나름대로 시선이 끌렸다.
연예인이란 팬들의 요청에 언제든지 자동 반사처럼 팬서비스 가 나와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외출 시 사인이 일상이 되어버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어딜 나 가기가 힘들어졌다.
“혹시 어느 분이 타실 차를 보시려는지 말씀해주시면 안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빠요! 아빠에게 차를 선물할 거예요.”
“이런. 차서준 배우님이 효도를 하시려는 거군요. 제가 최선을 다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 결과.
나는 광고 몇 개를 찍어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기왕이면 내가 직접 보고서 고르기로 했 고.
만약 우리 가족이 김도경 시절과 비슷했다면. 절대로 하지 않 았을 결정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열매를 맺고 있었 다.
대표적으로 내가 구름엑터스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엄마, 아빠가 서도현에게 했던 말들이 그 증거였다.
이후로도 김도경 시절과 달리. 차서준의 엄마, 아빠는 철저히 내가 버는 돈들과 거리를 두었다. 지금 우리 가족 생활비도 모두 아빠가 벌어오는 돈에서 쓰고 있었다.
그런 아빠이기에 주는 선물. 정확히는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내 선물이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주말에 엄마, 아빠랑 여행도 가고 싶어 서.
“저거부터 볼래요.”
확실히 국내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답게. 커다란 전시장에는 온갖 차들이 잔뜩 있었다.
“저쪽은 SUV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만약 승차감을 생 각하신다면 승용차는 이쪽에 있습니다.”
나를 향한 설명이 아니다. 정확히는 내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서도현을 향한 말이지.
서도현이 어떤 차를 보기 위해 왔는지 딜러에게 설명하는 동 안. 나는 미리 봐둔 차로 걸음을 옮겼다.
비싼 차를 사려는 게 아니다. 뒷자리에 신생아 카시트가 넉넉 하게 놓일 수 있고. 혹여나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튼튼한 SUV면 된다.
왜 신생아 카시트가 필요하냐고?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서도현도 내게 묻긴 했었다.
“신생아 카시트? 그건 왜?”
“음.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잖아요.”
“나중에?”
“네. 조만간일 수도 있구요.”
정말로.
요즘 엄마, 아빠의 분위기로 보아선. 정말 머지않아 내게 동생 이 생길지도 모른다.
애기가 있는 집에는 SUV가 최고라고 했다. 그러니 기왕 선물 로 사는 김에 SUV로 가야지.
딜러의 안내를 받으며 꼼꼼하게 차들을 살펴본 뒤.
“이걸로 할래요!”
후보군에 올렸던 두 종류의 SUV 중 하나를 선택했다. 국민 SU V라고도 불리는 그 모델로.
뒷자리에 카시트도 놓고. 트렁크에 유모차도 들어가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술 한 잔 하면서 언젠가 꼭 타게 해주겠다 며 엄마에게 말했던 그 차로 말이다.
“그러면 서준이는 저쪽에 가서 코코아 마시고 있을래? 삼촌이 나머지 계약 관련된 부분들을 이야기를 할 테니.”
“네!”
됐다.
이제 쉬는 날 엄마, 아빠와 더 멀리 있는 맛집을 찾아갈 수 있 게 되었다.
엄마가 더 이상 장을 보고 무거운 짐들을 낑낑거리며 들고 오 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기대가 된다.
깜짝 선물을 받은 엄마, 아빠의 표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