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핸드폰이 울린다.
“누구지?”
6살의 차서준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핸드폰이 생 긴 것도 최근인지라 내 번호를 아는 이들이 몇 없었으니까.
배우 관련된 일은 회사에서 처리를 하고 있으니 아닐 테고.
“내일은 내 촬영도 없어서 그쪽도 아닐 텐데.”
드라마 관련해선 김도욱 PD, 김순철 선생님을 비롯한 몇 명이 전부였다. 저 사람들도 보통 전화가 아닌 문자로 연락을 했다.
그렇다면 남은 용의자는 우리 샛별반의 사총사였다. 내가 서 도현에게 핸드폰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지환과 하지우 역시 핸드폰이 생겼으니까.
특히 김도윤이 가장 유력했다. 안 그래도 촬영이 많이 바쁘냐 고 얼마 전에 물었거든.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 서준아!
“어?”
- 너 내일 토요일인데 촬영 가?
“아니. 내일은 촬영이 없어서 집에서 쉴 생각이었는데.”
- 잘 됐다! 내일 지우네 놀러가자. 지환이도 내일 온대. 지우도 다 왔음 좋겠대.
참으로 심플한 용건이었다. 요즘 많이 못 봐서 아쉬우니 지우 네 놀러 가자는 것.
원래 유치원에서 매일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최근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 이후 수업도 제법 빠지느라 별로 보질 못했다.
- 많이 힘들면 못 가도 괜찮아. 그런데 다 같이 놀면 더 재밌을 거 같아.
김도경 시절의 나는 이런 제안들을 모두 거절했었다. 정확히 는 내가 아닌 엄마 선에서 모두 컷을 했다는 점이었지만.
이유야 간단했다. 오로지 배우 생활에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그때의 나 역시 연기에 대한 욕심이 우선인지라 친구보다는 오 직 앞만 보고 달렸었다.
그 결과 오랜 연예계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속을 터 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가 없다는 결과로 이어졌었다.
하지만.
“그럴까? 내일 지우네로 가면 돼?”
- 응. 너 매니저 누나랑 같이 움직이지? 그러면 가는 길에 나랑 지환이도 태워줘. 안 되면 다시 전화해. 엄마가 태워다 준댔어.
“알았어. 내가 매니저 누나에게 물어보고 문자 줄게.”
- 꼭 가자!
차서준이 된 나는 아니다.
이번 생에는 오직 연기만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모두 멀리할 생각 따윈 없었다.
이미 박우영 작가가 완성시킨 대본은 모두 외운 지 오래였다. 캐릭터 분석까지 모두 끝냈기에 최상의 컨디션만 유지하면 되는 상태였고.
그렇기에 나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차서준의 삶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같이 놀면 힐링되는 기분이긴 하지.”
아직은 조금 유치할지 몰라도. 어느새 샛별반의 사총사가 된 유치원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볼 생각이었다.
걔들이 좀 더 자라고 나면 말도 통하고 그러지 않겠어? 샛별반 에서 함께 지내본 결과 애들이 나를 잘 따르기도 했고.
“엄마. 저 내일 지우네 가서 사총사 친구들이랑 놀다 올게요.”
“그래? 우리 서준이 촬영은 없어?”
“네. 내일은 지방 촬영 가는데. 저는 안 가도 괜찮아요.”
“그러면 지우네 가서 친구들 만나서 재밌게 놀고 와. 다음에는 우리집에도 초대하고 그래야 돼요. 알았지?”
“네!”
당장 내 말에 얼굴이 밝아지는 엄마만 보더라도 정답임을 알 수 있었다.
아역 배우로서의 성공?
물론 좋다. 당장 대박 난 드라마에 기뻐하는 모습도 내게 보여 주었고.
하지만.
엄마, 아빠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오직 하나였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
만약 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힘든 상황이 찾아왔더라도 구름엑터스와 계약을 하진 않았을 엄 마, 아빠였다.
“오늘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 요리 지인짜 잘한다고 자랑할 거 예요! 그래서 다음에 꼭 놀러 와서 먹어보라고 할 거예요!”
“뭐? 친구들이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어쩌려고.”
“그럴 리가 없어요. 엄마 요리는 최고니까!”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엄마를 보니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
나는 매니저인 수진 누나에게 부탁해 김도윤과 최지환을 태우 고 하지우네 집으로 향했다.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누나!”
“누나.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재밌게 놀고. 집에 가기 전에 미리 누나에게 연락만 해. 알았지?”
“네.”
차례로 김도윤, 최지환, 내가 데려다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수진 누나가 집에 갈 때 연락 달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만약 수진 누나가 다른 사람과 나를 병행해서 케어하는 매니 저였다면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겠지만. 현재 내 전속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수진 누나였다.
드라마 촬영 외엔 딱히 활동이 없는 나인지라. 언제든지 이런 부탁을 해도 된다고 했었다. 자꾸 월급루팡이 되는 기분이라나 뭐라나.
“안녕하세요!”
하지우네 집은 마당이 딸린 2층 가정집이었다. 나를 제외한 삼 총사들은 종종 서로의 집을 다녔는지 익숙해 보였다.
아이들을 반기던 하지우네 어머니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어머! 네가 서준이구나. 어서 오렴.”
유치원 친구가 놀러 왔다고 했는데. 그 안에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이 있는 셈이니.
특히나 유치원에서 사총사라고 불릴 만큼. 내가 자기 아들인 하지우와 친하다는 사실에 정말 기쁜 듯 보였다.
“방에 가서 놀고 있으렴. 조금 있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아줌마 가 맛있는 점심 준비해서 부를 테니까. 알았지?”
“네!”
합창을 한 우리는 하지우의 방으로 향했다.
“우와! 컴퓨터 진짜 부럽다!”
“나도 컴퓨터 가지고 싶은데. 엄마가 핸드폰도 그렇게 오래하 는데 컴퓨터 생기면 중독된다고 안 된데.”
하지우의 방은 깔끔했다. 6살 남자애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 들도 잘 정리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애들에게 감탄을 터트리게 만든 컴퓨터도 있었다.
“지우는 컴퓨터도 만질 줄 알아?”
“···응.”
내가 묻자 하지우가 마우스를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러면서도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이 어째 신기한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왜 그렇게 봐?”
“···신기해서.”
“뭐가?”
“엄마랑 TV를 보는데. 서준이 네가 나와서.”
그러니까. 드라마에 같이 유치원에 다니는. 그것도 샛별반 사 총사의 일원이 된 내가 나오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서준이 넌 드라마 나오는 거 재밌어?”
“어. 재밌어.”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옆에서 빨리 황금 카 드왕을 틀어 달라 재촉하는 최지환 때문에.
“우리 빨리 황금 카드왕 보자! 나 어제 거 못 봤단 말이야.”
역시나 애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끄는 건 역시 황금 카드왕이 었다.
안 그래도 최지환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야광 카드를 보는 듯해서 의식되던 참이었는데.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니 그 시선 이 더 심해졌다.
황금 카드왕을 보기 위해 너튜브에 접속하는 걸 지켜보던 나 는. 한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지우 너 아이돌 영상을 많이 보네?”
그랬다.
너튜브에서는 사용자가 자주 보는 영상들을 분석해서 추천 영 상들을 띄우는데. 하지우의 너튜브에는 애들용 애니메이션보다 아이돌 가수 영상들이 많았던 것.
“응? 지우 너 그런 것도 봐?”
애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순식간에 시선이 하지우에게 쏠렸다.
“···서준이 보니까 나도 꿈이 생겨서.”
날 보고 꿈이 생겼다고?
“무슨 꿈인데? 지우 너도 서준이처럼 배우 될 거야?”
최지환의 그 말에 김도윤이 화들짝 놀란다. 가뜩이나 앞서나 가는 나를 따라가기도 벅찬데. 경쟁자가 하나 더 생기면 어쩌나 하는 어린 마음에 걱정이 든 것.
하지만.
“···아니. 난 저런 가수가 되고 싶어.”
정작 하지우의 입에서 나온 건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말 이었다.
그 말을 들은 최지환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나! 나도 너네처럼 나중에 TV에 나오는 사람 될 거야!”
“너는 또 뭐가 되고 싶은데?”
“나는 너네 찍는 감독이 되고 싶어!”
“감독은 TV에 안 나오잖아.”
“아니야. 엄청 유명한 감독은 TV에도 나와!”
이런.
원래 (구)삼총사들 중에는 김도윤만이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삼총사가 나를 만나면서 각자의 꿈이란 것들이 생긴 모양이다. 그것도 연예계 쪽으로.
물론 크면서 저 꿈들이 변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 같은 걸 적어보면 대통령, CEO 등의 다양한 꿈들이 나오는 법이 니까.
나라는 존재가 이 아이들의 꿈에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
과연 미래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
본격적인 시청률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과연 1, 2화만에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준 [너에게 다시]가 3화 시청률 10프로를 넘을 수 있을지.
또 한류스타에 스타작가가 모인 초호화 군단 [시크릿 라이프] 의 첫 방송 시청률은 얼마나 나올지.
마지막으로 법정물 여왕의 귀환과. 변호사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배우 이이란의 [법대로 살자]가 어떤 성적을 보여줄지.
비로소 지상파 3사의 삼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참고로 팬들 은 아직까지 [너에게 다시]를 촉나라 초창기라고 불렀다.
“너 괜찮냐?”
선배의 물음에도 김도욱 PD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괜찮아요. 형도 저번 주 시청률 봤잖아요.”
“봤지. 근데 이제 NBC랑 YBS도 시작하잖냐. 불안해서 그렇 지.”
안 그래도 촬영장의 자신감 넘치던 얼굴들이. 슬슬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수요일이 다가올수록 거무죽죽해져만 갔다.
[시크릿 라이프]의 팬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나니.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관련 검색어가 수시로 올라가기 시작했기 때문.
거기에 법정물 하면 국내 최고로 뽑힌다는 이나경 작가의 [법 대로 살자]도 대기하고 있었다. 특히 이이란은 영화 [법정구속] 에서 최고의 변호사 연기를 선보였기에 다들 기대가 큰 상황이 었다.
“솔직히 너에게 부담될까 말은 못 해서들 그렇지. 10프로 못 넘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 쫌. 형 진짜 맞을래요?”
결국 김도욱 PD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온 순간. 선배가 낄낄거리 며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이제야 좀 표정이 풀리네. 후배 부담감 덜어주는 것도 선배의 일이라니까. 국장님이 너 멘탈 도와주라고 내게 당부하시더라.”
나름 긴장했을 김도욱 PD를 위해 저런 모양인데.
“저 진짜 괜찮다니까요. 수요일에 나갈 3화도 진짜 끝내주게 뽑혔어요.”
김도욱 PD는 자신이 있었다. 주변에서야 이제 두 자리 수 시청 률은커녕,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떠들고 있지만.
“박윤후고, 이이란이고. 우리 서준이 앞에서는 다 소용없습니 다.”
선배가 촬영장에서 미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차서준을 봤 더라면. 이런 쓸데없는 걱정 따윈 꺼내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때였다.
문을 열고 조연출이 [너에게 다시] 3화의 추가 촬영본 편집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감독님. 테이프 종편 준비 끝났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안 그래도 떠도는 이 야기를 들었던 참이었다. 촬영장의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배우들 연기가 아주 미쳤다고.
“잘됐네. 나랑 같이 좀 보자.”
“그래요 그래. 내가 왜 자신 있다고 그렇게 소리쳤는지 형이 직접 확인 좀 합시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선배가 김도욱 PD의 뒤에서 시청하기 시 작했다.
잠시 후.
“···.”
3화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없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을 뿐.
그 반응을 본 김도욱 PD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 에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는지.
“야야. 이거 미쳤네! 차서준이 아니라 보물이야 보물!”
선배의 입에서 ‘시크릿 라이프’니, ‘법대로 살자’니 하는 이야 기가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도욱 PD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마 3화 방송 나가고 나면. 그냥 활활 타오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