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9화 (19/220)

< 19화 >

[너에게 다시] 첫 촬영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스태프들  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조명이니, 마이크니, 소도구 등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혼잡한 현장과 다르게. 나와 김우승이 있는 대기실은 고 요했다.

정확히는 태연하게 앉아서 쉬는 나와. 계속해서 대본을 뒤적 이는 김우승이 요상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형.”

“응?”

“대사는 이미 다 외웠잖아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고사 지내러  가야 된대요.”

“마, 맞다. 그랬었지.”

분명 이틀 전 마지막으로 연습했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감이   차올랐었는데. 어느새 바람 빠진 풍선마냥 쪼그라든 모양이다.

불안했음일까. 풍랑을 만난 배처럼 요동치는 김우승의 눈동자 가 나를 향한다.

“서준아. 오늘 잘 부탁한다. 연습 때처럼만 하면 될 거야.”

“형. 제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카메라가 돌아가면. 다른 것 아무것도 의식하지 말고 서준이  너만 바라보라고.”

누가 본다면 두 사람의 대사가 뒤바뀌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다행히 대기실에는 김우승과 나, 단둘뿐이었다.

“맞아요. 감독님이 큐 사인을 외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 경 쓰지 말고. 오직 저만 바라보세요.”

넌 나만 바라봐.

내가 오늘이 오기 전까지 수없는 연습을 통해 김우승을 세뇌 시킨 내용이었다.

이렇게 세뇌를 시키기 위해서. 6살 어린이라는 가면을 벗고 아 낌없는 연기력을 보여준 것이고.

카메라 앞에서 트라우마로 몰입하지 못하는 김우승을 위한 특 급 처방이었다. 오직 나만 바라보고. 나와 호흡을 맞춘다.

“우리 많이 연습했잖아요. 형 잘할 수 있어요.”

“고맙다.”

6살의 꼬맹이가 성인인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 이런 말을 했지 만. 김우승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준이 너만···.”

이런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을 아는 사람은 딱 두 명뿐이었다. 하 나는 눈앞의 김우승. 다른 하나는 당연히 서도현이었고.

솔직히 말이 되는 상황은 아니잖아.

성인 연기자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6살 아역 연기자가 자 신만 믿으라고 어깨를 툭툭 두들기는 분위기의 이런 상황은.

하지만 김우승과 나 사이에는 어느새 당연시되어버렸다.

보여줬으니까.

김우승은 이번 [너에게 다시]에서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대 로 방송가에서 은퇴를 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노래, 춤, 예능. 김우승이 저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훨 씬 잘하는 이들이 넘쳐났으니까.

“서준이 너는 정말 천재구나.”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형 미쳤다는 소리 들을지도  몰라요.”

“이미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김우승은 나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린다. 지금까지 내가 보 여준 연기들이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일 터였다.

오직 연기력 하나로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나다. 그런 내가 보 여준 연기력은 김우승에게 차서준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선 사하게 만들었다.

“서준이 너만 믿는다.”

무엇보다.

절체절명의 상황인 김우승의 처지가 그 믿음을 더 굳건하게  만들었을 터였다.

이래서 사이비 종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생기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김우승에게는 드라마 주연을 맡을 만큼의 연기 재능과  실력이 있었다. 카메라 트라우마 때문에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 지 못하고 있을 뿐.

오늘 그 족쇄를 풀 예정이었다.

“10분 뒤에 고사 시작할 예정입니다. 준비해주세요.”

똑똑. 소리와 함께 고사 준비가 끝났다는 스태프의 말이 들린 다.

잠시 후.

첫 촬영이 시작하기 전. 드라마의 대박을 기원하는 고사가 준 비되었다.

스태프들과 감독들. 그리고 오늘 촬영 분량이 없는 배우들까  지 ‘너에게 다시’의 무사 촬영과 대박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다.

차례차례 각자의 소망을 담아 돼지머리에 기도를 올렸다.

고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촬영을 앞두고 있음에도 자리를 떠 나는 이들이 없었다. 심지어 오늘 촬영 분량이 없는 이들도 마찬 가지였다.

“근데 왜 첫 촬영을 병원 복도 씬부터 촬영한데요?”

“감독님이 김우주 감정선을 배려해서 결정했대요.”

“하긴. 저 1화 대본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잖아요. 무슨 어지 간한 성인 연기자보다 어려운 상황을 줘서.”

“그나저나 고사가 끝났는데도 다들 엉덩이가 무겁네요? 보통  이쯤이면 슬슬 일어나는 사람도 있는데.”

“왜긴요. 진짜 카메라 앞에서 김우승 씨가 잘 할 수 있는지 궁 금해서들 남아있죠.”

여기 모인 배우들 모두 보았다. 적절한 편집으로 메이킹 영상 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본 리딩이 끝날 무렵 땀을 뻘뻘 흘리 던 김우승을 모습을.

오죽하면 맞은편에서 바라보던 투자사 본부장도 식은땀을 연 신 훔쳐야만 했었다.

그렇기에 고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자리를 뜨지 않은  것이다. 첫 촬영에서 김우승이 어떤 연기력을 보여줄지 궁금해 서.

남자 주인공이 흔들린다면. 첫방이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을  비워야 할 테니까.

“그런데 김순철 선생님 촬영 없으신데 현장에 계신 거 처음 아 니에요?”

“그러게. 저번 영화 촬영 때는 그냥 가셨는데. 우리처럼 김우 승 씨가 궁금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차서준 때문인가?”

그리고 그렇게 구경을 위해 남은 배우들 사이에는. 촬영이 끝 남과 동시에 떠나기로 유명한 김순철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선생님. 편한 의자라도 하나 드릴까요?”

“됐네. 어차피 짧게만 보고 갈 생각이네. 난 신경 쓰지 말어.”

촬영 감독과 대화를 나누던 김도욱 PD가 황급히 달려와 물었 지만. 김순철은 고개를 저으며 신경 쓰지 말라는 대답만 할 뿐이 었다.

“자! 그러면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김도욱 PD의 외침이 촬영장을 울렸다.

*

“후우.”

김우승은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지막 기회였다.

여기서도 배우 김우승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 대로 자신은 아이돌 출신의 실패한 배우로서 끝날 터였다.

“자, 우승 씨. 카메라 테스트 때처럼만 해줘요.”

“네. 감독님.”

다행히 첫 촬영 씬은 병원 복도에서 아들 김우주와 마주하는  장면이었다.

긴장감에 연신 숨을 들이쉬는 자신과 달리. 눈앞에는 태연해  보이는 서준이가 보인다.

누가 봐도 정반대가 되었어야 정상이었다. 첫 촬영인 아역 연  기자가 긴장에 떨고. 주연 배우인 자신이 토닥여 줘야 하는 건데.

‘누가 누굴 챙긴다는 건지.’

김우승은 쓴웃음을 삼켰다. 그의 눈엔 더 이상 눈앞의 아이가  6살로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재능 앞에선 나이 따윈 필요 없는 법이었으니까.

김우승은 연습하는 동안 지겹도록 보았다.

진정한 천재가 무엇인지.

6살?

그깟 나이가 뭐가 중요한데.

가끔 해외에서 말도 안 되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있다는 말  을 들어보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천재는 차원이 달랐다.

‘촬영이 시작되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서준이에게만 집중 하라고 했지.’

다른 배우가 한 말이라면 코웃음을 치면서 거절했을 터였다.

자신의 문제점이 어디서 발생하는지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았으니까.

촬영 현장에서의 카메라.

그게 문제였다.

아이돌 시절 수없이 바라보았던 카메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 이후, 배우 김우승은 카메라만 앞에 두면 식은땀이 나기 시 작했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감독이 소리치고.

“레디! 큐!”

복도 너머에서 아이 하나가 뛰어온다. 허나 갑작스럽게 들어 온 문자를 확인하던 최우성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퍽!

“아야.”

그제야 아이 하나가 자신에게 부딪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우 성은. 부축하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아이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최우성. 아니, 김우승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차서준이 자신 에게 보여주었던 건 예고편에 불과했다고.

다르다.

지금까지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던 카메라가.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조명과 스태프들이 지워진다.

심지어 그들 너머에서 자신을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보고 있던  배우들까지 사라진다.

오직 눈앞에서 흔들리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는 아이. ‘김우 주’만이 남았다.

최우성은 넘어진 아이가 걱정되어 물었다.

“괜찮니?”

“···.”

아이는 말이 없다. 최우성 역시 알 수 없는 느낌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던 두 사람. 그 침묵을 깬 것 은 최우성이었다.

회사에서 들어온 긴급한 보고가 떠올랐는지. 이내 서둘러 일 으키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어디 다치진 않았고? 엄마는 어디 있지?”

“···아니에요. 아···저씨는 괜찮아요?”

아이가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그 흔들리는 눈빛이 최우성에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키려는 순간. 화들짝 놀란 아이가 손을  밀쳐내며 그대로 엎어졌다.

“아야!”

“안 되겠다. 다쳤을지도 모르니까. 이 아저씨랑 검사받으러 가 자.”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지만 아이는 일어나려다 비명과 함께 주저앉았다. 그 모습  에 최우성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파하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커엇!”

다시 김우승을 현실로 불러들인 건. 만족 가득한 느낌을 담은  감독의 외침이었다.

“이야. 우승 씨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네. 아까 카메라 테스트  때보다 훨씬 좋아요.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줘요.”

“아···. 감사합니다.”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자신이 카메라 앞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연기를 펼친 건.

아니. 오히려 연습했던 그 어떤 순간보다 최고의 연기를 펼쳤 는지도 몰랐다.

김우승은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 주인공에게 감사 인사 를 건넸다.

“···고맙다.”

“봤죠? 앞으로 저만 믿고. 방금 순간의 감각을 잊지 마세요.”

“그래. 그럴게.”

“다음 장면도 형이랑 저니까. 한 번 더 저에게 집중해주세요.  방금 그 몰입되던 순간의 느낌을 잊지 마세요.”

그랬다.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서준이의 말처럼 다음 씬 촬영에서 한 번 더 확인해야겠지만.  이제야 어떻게 최우성에 몰입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김우승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매번 제대로 된 연기를  펼치지 못해 수군거리는 뒷말들만 들려왔는데.

“뭐야? 잘하는데?”

“그러게. 저 정도면 걱정할 필요 없겠네.”

처음이었다.

감독이 컷을 외쳤음에도 자신을 향한 감탄이 들려온 건.

“그보다 서준이 쟤가 그냥 미쳤다.”

“왜 선생님이 안 가시고 의자까지 구해와 앉으셨는지 이해가  가더라.”

“저 정도면 우리 경쟁작들과 해볼 만한 거 아닌가?”

“솔직히 지금 폼만 유지할 수만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 데?”

물론 모두의 감탄이 향한 곳은 단연 차서준이었다.

본인 촬영이 끝나면 사라지시기로 유명한 김순철 선생님조차  의자를 받아 아예 앉아버렸다. 촬영 전에는 금방 갈 거라고 했으 면서.

“자! 그러면 다음 씬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우승 씨와 서준이  계속 준비해주세요.”

촬영은 빠르게 이어졌다.

그리고.

김우승은 인설아와 몇 년 만의 재회 씬을 찍는 순간. 드디어 자 신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법을 알았다는 걸 깨달았다.

촬영 첫날.

김우승의 갇혀있던 재능이 부화하는 순간이었다.

*

[너에게 다시]의 메이킹 영상이 또 하나 공개되었다.

그것도 안티팬들이 가장 물어뜯고 있는 김우승에 관한 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메이킹 EP.01] ‘너에게 다시’ 첫 촬영 현장 분위기 대공개!

└ 뭐임? 연출 아예 작정하고 김우승만 보여주네? ㅋㅋㅋㅋㅋ  NG 컷들 치우고 좋은 것만 뽑아 보여주면 누가 못함?

└ 김우승이 못했었음 ㅋㅋㅋ 오죽하면 카메오로 출연해서 로 봇 연기를 선보였겠냐고.

└ 근데 김우승 유니온 시절부터 연기에 재능이 있긴 했어요.  그래서 팬들도 김우승이 배우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다들 응원 한 거고요.

└ 우승이 팬들 어서 오고. 어차피 ‘너다’를 봐 줄 사람은 우승 이 팬들뿐인 ‘너다’. ㅋㅋㅋ

└ 어? 그런데 나 자꾸만 차서준이라는 아역한테 눈길이 가는 데? 방금 눈동자 흔들림 연기 실화임?

영상이 공개됨과 동시에 당연히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특히나 첫방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너에게 다시’의 한 줌 팬 들과, 한류스타 팬들의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 심지어 ‘너다’가 ‘시크릿 라이프’보다 일주일 먼저 시작하는  거 개웃김.

└ 그거 하던 것도 시청률이 저조해서 그래요. ㅋㅋㅋ 연달아  망하면 CBS 드라마국 어쩌려나.

└ 매도 먼저 맞으려고 그런 듯. 심지어 이것도 12부작임.

CBS에서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한 자리 중에서도 낮은 숫자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의 조기종영을 결정한 것이다.

그 덕분에 [너에게 다시]는 경쟁작들보다 일주일 먼저 첫방이  결정되었다.

모두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너에게 다시]의 첫 방송 날이 밝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