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8화 (18/220)

< 18화 >

단체 사진 촬영을 끝으로 [너에게 다시] 대본 리딩이 끝났다.

느껴진다.

대본 리딩이 시작되기 전과 확연하게 달라진 시선들이.

‘지금이라도 가서 쟤랑 안면이라도 익혀둘까?’

‘아서라. 옆에 서도현 대표가 딱 붙어 있는 거 안 보여? 선생님 도 계속 먼저 말을 거시던데.’

‘그러니까 더 친해져야지. 솔직히 이번이 첫 촬영이라며. 오늘   보니까 무조건 뜨겠던데. 미리 친분 쌓아놓으면 나중에 뭐라도 떨어지지 않겠어?’

‘야. 저기 조연급들도 쟤한테 다가가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 는 거 안 보여? 우리 차례까지 오지도 않겠더라.’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무슨 말을 꺼내고  있을지 다 예상이 갔다.

이미 김도경 아역 시절 무수하게 겪었던 경험들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때의 재능에 20년의 연기 경력이 더해졌다.

“우리 서준이 오늘 너무 고생했어요. 혹시 어디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내게 연락주고.”

어느새 김도욱 PD도 박우영 작가처럼 나를 서준이라고 친근 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혹여나 내가 최이안처럼 다치지는 않을 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 옆엔 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주 머니에 넣을 기세인 박우영 작가도 보인다.

그만큼 내가 보여준 모습들이 충격적이었을 거다. 심지어 김 도욱 PD가 나를 업고 다니려는 걸. 조연출이 촬영 중이라며 말렸 을 정도였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대본 리딩이 진행되는 동안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김순철 선 생님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서준아. 다음 촬영 때 보자꾸나.”

“네! 선생님!”

“허허. 촬영 날이 기다려지는 건 오랜만이구만.”

김도욱 PD가 몇 번의 삼고초려 끝에 김순철 선생님을 모실 수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도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칼같이 자리를 떠나기로 유명  한 김순철 선생님이었는데. 오늘은 자리도 뜨지 않고 마냥 내가 귀엽다는 듯 말을 계속 걸고 계셨다.

6살 아역과. 모두에게 선생님이라 불리는 70이 넘은 원로 배우.

중견 배우들조차 어렵게 대하는 김순철 선생님이었건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친할아버지를 대하듯 편하게 대했다.

그런 행동에 몇몇 이들의 놀란 시선이 느껴졌지만. 정작 돌아 오는 김순철 선생님의 반응은 호탕한 웃음이었다.

“허허. 그래. 서 대표가 아주 좋은 배우를 찾았구만. 다음에 또  봅세.”

“예. 선생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마지막까지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한 뒤. 나는 서도현 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대본 리딩은 끝났지만 본격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부 터였다.

내 첫 드라마인 [너에게 다시]의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서준아. 아까 김우승과 대화 좀 나눴었지?”

“네. 조금 있다가 다시 만나자고 했어요.”

그랬다.

김우승이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추자 요 청을 했었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대본 리딩에 이어 연습을 한다면 그 감을 놓치지 않을 테니까.

가뜩이나 자신을 향한 우려의 시선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우 승이었다.

아까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에 침을 삼킨 이들이 여럿이었다.  김우승처럼 땀을 뻘뻘 흘리는 관계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투 자사 본부장이랬나.

“자기 집으로 오라던데. 괜찮아?”

“괜찮아요.”

그렇게 집으로 찾아가 김우승을 만나게 되었다.

아까 만났을 때에도 느꼈지만.

“안녕. 서준이라고 했지? 앞으로 계속 같이 촬영할 텐데 편하 게 우승이 형이라고 불러줄래?”

김우승. 이 사람 착하다.

정글 같은 연예계. 그중에서도 일 년에 수십 팀이 데뷔하여, 한 두 팀만 살아남는다는 아이돌 판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오히려 정글 같은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저런 성격 덕분에 연 기를 도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방송가에서 인맥만큼 강력 한 연줄은 없었으니까.

“네. 우승이 형.”

“서도현 대표님 감사드립니다. 제 개인적인 욕심으로 요청을  드렸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시다니.”

“하하. 아닙니다. 이렇게 미리 호흡을 맞춘다면 저희 서준이에 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서도현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자리를 비켜준다. 연습이 끝나 면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선.

“뭣 좀 먹고 시작할까?”

김우승은 대본 리딩이 끝나고 곧장 집으로 찾아온 나를 배려 하려는 듯싶었지만.

“아니요. 바로 하고 싶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김우승이라는 배우 에 대해서 모두 파악해야만 했다.

그래야 어떤 방법으로 저 트라우마를 극복시킬지. 정확한 치 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잠시만 기다릴래? 대본 가지고 올게.”

아까 처음으로 책으로 제본된 대본을 받았다. 하지만 김우승 은 방으로 들어가 손때가 가득 묻은 종이들을 가지고 나왔다.

[너에게 다시]의 남자 주인공. 최우성의 대사 위아래에는 김우 승이 추가한 지문들이 한가득이었다.

김우승이 대사 하나하나에도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공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김우승은 주연 배우로서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 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김도욱 PD 선에서 컷 당했을 것이다.

“서준이 너. 정말 열심히 준비했구나.”

내가 김우승의 손때 묻은 대본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듯. 김우 승 역시 내가 가방에서 꺼낸 대본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러면 한 번 이 장면부터 맞춰볼까?”

“네! 좋아요!”

몇 시간을 같이 연습한 뒤.

나는 김우승의 트라우마를 극복시킬 수 있는 해답을 찾았다.

김우승은 배역에 ‘몰입’할수록 더 깊은 연기력을 표현할 수 있 는 재능을 가진 배우였다.

감독의 큐 사인과 동시에 몰입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데. 배우 로 도전했던 첫 촬영장에서의 ‘그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가 폭탄 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뒤로 촬영장에서의 카메라는 김우승의 캐릭터에 대한 몰입 을 방해하는 스위치가 되어버렸다.

만약 김우승을 배역에 온전히 몰입시킬 수만 있다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느낌만 찾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연기력 난조 따윈 보여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삼촌.”

“응?”

이틀 뒤 다시 연습을 하기로 약속을 잡은 후. 나는 서도현의 차 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감독님이 저만 원한다면 촬영 순서 바꿔준다고 했잖아요.”

“그랬었지. 왜? 무슨 문제가 있었어?”

갑작스런 내 말에. 서도현이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혹여나 내가 오늘 대본 리딩 현장에서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 나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나 때문이 아닌 김우승 때문이었다.

“혹시 가능하다면 저랑 우승이 형의 첫 만남 장면부터 촬영 가 능해요?”

가능할 거다. 아니, 그럴듯한 이유만 붙인다면 당장이라도 김 도욱 PD는 순서를 바꿔줄 터였다.

이미 김도욱 PD가 일전에 나와 서도현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혹시 감정을 잡기 위해 첫 만남 장면 먼저 촬영하고 싶으면  말해요. 내가 촬영 순서를 조정해줄 테니까.”

처음 카메라 앞에 서게 되는 나였다. 나야 내가 김도경 시절부 터 셀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섰다는 걸 알기에 걱정 따윈 없었지만.

그걸 전혀 모르는 김도욱 PD는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

마침 잘됐다.

*

[너에게 다시]의 대본 리딩 영상이 공개되었다.

원래라면 첫방 시작 전쯤에 시선을 잡기 위해 공개되곤 했지 만. 김도욱 PD는 화제성을 가져오기 위해 과감하게 선공개를 선 택했다.

“조회수는 좀 나와?”

“네. 지금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보고 있고. 또 각종 커뮤니티 에서 조금씩 저희 이야기 나오고 있어요.”

“그래? 반응은?”

“그게···,”

의외로 영상이 올라옴과 동시에 제법 빠른 속도로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문제는.

분명 25분짜리 메이킹 영상을 다 시청하기도 전에 댓글들이  주르륵 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메이킹 EP.01] 김우승X인설아, 로맨틱 코미디 ★대본 리딩 현 장★ ‘너에게 다시’

└ 이게 그 로봇 연기의 김우승이 남주를 하는 그 드라마인가 요?

└ 네. 심지어 동시간대 드라마에 비하면 한 줌 출연진으로 더  유명한 ‘너다’입니다. ㅋㅋㅋㅋ

└ 이 정도면 명예로운 죽음은 ‘너다’ 아니냐? 어차피 망할 거  미리 알고서 방송국에서 대충 섭외한 듯.

└ 경쟁 시간대에 NBC에선 한류스타 박윤후에, 스타작가 최은 정이 뭉쳤는데. 여긴 첫 연출에 입봉 작가임.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

└ 그나마 희망이 최이안이었는데. 다리 부상으로 인하여 하차 함. ㄷㄷ 드라마 시작도 전에 다들 하차할 듯.

└ 그거 소속사에서 최이안 필모를 위해 부러뜨린 거 아님? 내 가 소속사 대표라도 어떻게든 망할 드라마 출연은 막겠다. ㅋㅋ ㅋㅋㅋㅋ

“아니. 영상 올라온 지 10분도 안 지났는데 댓글들을 달고 있 네.”

“심지어 다 조롱글이에요. 아무래도 박윤후 팬들이 분위기 조 성하는 거 같은데요.”

“거기 팬도 있긴 한데. 우리 김우승 쪽 안티팬들도 붙은 거 같 네.”

그랬다.

중소돌의 기적이라고 불리던 ‘유니온’이었지만. 소속사와의  끝맛은 꽤나 씁쓰름했다.

특히나 해체 직전 소속사 후배 그룹인 ‘블랙독’과의 불화설은.  현재 정상을 달리고 있는 블랙독 팬들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PD님. 어떻게 할까요?”

원래대로였다면 당장이라도 분통을 터트렸어야만 하는 김도 욱 PD였다.

하지만.

“냅둬. 조금 있으면 슬슬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의 반응들이 올 라올 테니까.”

악플에 가까운 댓글들을 봤음에도 김도욱 PD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두고 보자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 뿐.

정확히 30분이 더 지났을 무렵. 악의가 가득하던 댓글창에 변 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응? 나 김우승 로봇 연기를 보려고 영상 보고 있었는데. 자 꾸만 저기 아역에게 시선이 뺏김. 뭐지?

└ 너도? 나도 아까부터 저기 아역 배우의 대사만 시작되면 하 던 일 멈추고 보게 되던데. 딕션이 귀에 아주 따박따박 박힘.

└ 심지어 대사 칠 때 대본 쪽에는 시선도 안 두네? ㅋㅋㅋㅋ  다른 배우들은 대본을 보면서 하는데. 쟤만 그냥 자연스럽게 대 사 치는데?

└ 귀엽다. 기사에 올라온 사진은 다 만진 거라고 날조하더니 만. 사진이랑 영상이랑 똑같은데? 실물이 더 귀여운 듯?

└ 진짜 귀엽네. 혹시 저 차서준이라는 아역에 관한 정보 또 없 어요?

그 변화의 바람은 바로 차서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공개된 메이킹 영상 역시 차서준을 중심으로 편집되었다.

‘차서준’이라는 훌륭한 분위기 반전 카드를 가졌음에도 숨길  필요는 없었다. 특히 댓글창에서도 언급되었듯 대작 사이에서 ‘ 너에게 다시’가 살아남으려면.

조롱을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호기심에라도 본방 사수를 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 이거 첫방 언제에요?

그리고 김도욱 PD가 원하는 반응들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 다.

*

벌써 김우승과 호흡을 맞춘 지 5번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김우승의 트라우마 극복 프로젝트를 시작 할 생각이었다.

“형.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으, 응?”

연습을 하다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내 행동에. 김우승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6살의 어린 친구가 당돌하게 태클을 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 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저번에 선생님에게 물어봤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고 했어요.”

당시 김우승도 보았을 것이다. 대본을 들고서 한참이나 김순 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나를.

그리고.

“이상하네.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데. 내가 어디 서 본 적이 있기에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지?”

우연히 병원 복도에서 부딪친 아이. 그 뒤로 이어진 아이를 향 한 자꾸만 알 수 없는 끌림에 혼란에 빠진 최우성의 얼굴.

내가 그 연기를 선보이자.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는 김 우승이 보인다.

아마 방금 내 연기가 김우승이 수없이 떠올렸던 가장 이상적 인 표현이었을 거다.

“형. 선생님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 그랬구나.”

비슷한 나이의 김우주를 연기하는 것과. 30대의 최우성을 연 기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자신의 눈앞에서 직접 보여주었으니 저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심지어 김우승이 보더라도 100점에 가까운 연기였 을 테니.

만약 김우승이 배우로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면. 방금 내 행 동에 크게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김우승은 절벽 위에 선 상태였다. 그것도 한 발이라도 더  미끄러진다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

오죽하면 작품에서 아빠, 아들인 아역 배우에게 호흡을 맞추  자며 도움을 요청했을까. 그 정도로 간절한 상태인 김우승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될까?”

눈앞의 내가 6살의 어린이란 것조차 잊은 채.

김우승은 심각한 얼굴로 다시 한번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마치 방금 전 내가 보여주었던 연기를 조금이라도 쫓으려는  듯.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김우승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열매가 맺히고. 수확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드디어 [너에게 다시]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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