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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14화 (14/220)

< 14화 >

이사는 빠르게 결정되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구름엑터스와   정식 계약을 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숙소가 구해진 것이다.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하기 전에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야 한 다면서. 서도현이 밀어붙인 결과였다.

서도현의 차를 타고 신축 대단지에 들어서자. 뒷자리에 있던  엄마의 얼굴이 기쁨으로 서서히 물든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내가 서도현에게 물었다.

“여기가 정말 제가 엄마, 아빠랑 새롭게 지낼 곳이에요?”

“그래. 특별히 가람 유치원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지. 단지  바로 옆에 서준이가 나중에 다닐 초등학교도 있고.”

농담이 아니라 정말 좋다.

제법 신경 써서 숙소를 구했는지. 가람 유치원 근처에 있는 신 축 단지로 골랐다.

서도현을 따라 차에서 내려 16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탔 다.

“어머···.”

먼저 도착한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고. 현관문에 발을 들인 엄 마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가뜩이나 사기로 인하여 금전적인 문제에 처한 우리 가족 상 황을 고려하여. 서도현은 숙소 내 가전, 가구까지 모두 채워두었 다.

연기 공부를 하라면서 거실에 걸어둔 대형 TV, 잠자리가 불편 하지 않도록 최고급 매트리스를 사용한 침대. 영양을 잘 챙기라 면서 넣어둔 대형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까지.

서도현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 지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정말 감사드려요 대표님.”

새로운 집을 확인한 엄마의 눈가가 붉다. 절망의 벼랑 끝에 선  거나 다름없던 우리 가족이었다.

그런 절망 속에서 서도현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것 도 하나뿐인 아들에게 재능이 보인다며 계약을 통한 정당한 대 가라고 하면서 말이다.

엄마라고 모를 리 없다. 부모의 사정을 알게 된 내가 서도현을  찾아갔다는 것을. 또 그런 우리 집 사정을 고려하여 서도현이 움 직였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서준이가 가진 재능에 걸맞은 대우를 해드리  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서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걸 바라보고 있던  내가 끼어들었다.

“삼촌. 제게 줄 선물도 있다고 했잖아요.”

그제야 내게 했었던 말이 떠올랐는지 서도현이 서류 가방을  찾는다.

“서준이가 하고 싶다던 김우주. 삼촌이 대본 구해왔다.”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차서준으로 눈을 뜨게 된 내가 처음으로 연기를 할 작품의 대 본이.

사실 내게는 새로운 숙소보다. 그 안을 채운 화려한 가전, 가구 들보다 이 대본 하나가 더 가치 있는 선물이었다.

방긋 웃는 내 얼굴을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은 서 도현이 직원에게 안내를 부탁한다.

엄마가 구름엑터스 직원을 따라 집안의 새로운 가전, 가구들 에 대한 설명을 듣는 사이. 나는 서도현을 옆에 둔 채 대본에 빠 져들었다.

사락, 사락.

문 너머 들려오는 말소리들을 제외하곤. 방 안에서는 오직 대 본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잠시 후.

단숨에 2화 대본까지 모두 읽은 나를 바라보는 서도현의 표정 이 묘하다.

“서준이는 따로 대본 읽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니?”

이런 질문 따윈 던지지 않는다. 그저 대본을 읽고 난 내 소감만  기다리고 있을 뿐.

무슨 말이 필요할까.

기대가 된다.

“삼촌. 제가 삼촌에게만 몰래 보여드릴까요?”

“뭐를?”

“여기. 여기 이 부분이요.”

내가 서도현에 짚어준 부분은 김우주가 우연히 아빠를 마주하 게 되는 씬이었다. 작가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던진 도박 수.

TV로만 보던.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다는 아빠를 병원 복도에 서 실제 마주한 김우주의 흔들리는 눈빛을 연기해야만 하는 장 면.

연출에 성공한다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테고. 반대로 실패한 다면 몰입이 깨져 떠날 수도 있었다.

“바로 보여줄 수 있니?”

“네!”

서도현이 우리 가족을 위해 너무나도 큰 선물을 준비했다. 그 러니 응당 나도 보답을 해야지.

어떻게?

내가 서도현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그에게 가장 큰 기 쁨을 줄 수 있는 선물.

연기력으로 말이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잠시 고개를 숙여 눈빛을 갈무리했다.

후우.

마지막 숨을 들이쉰 뒤.

나는 김우주가 되었다.

아이의 몸이 마치 무언가에 부딪친 듯 몸이 튕겨나갔다.

“아야.”

갑작스럽게 무언가에 막힌 아이가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들 었다.

그리고 아이는 보았다.

“우주야. 아빠는 저기 하늘 위에 반짝이는 별에 살고 있어.”

“정말요?”

‘거짓말···.’

반짝이는 별에 살고 있는 아빠.

하지만 TV에 가끔 나오는 아빠.

마지막으로 매일 밤 엄마를 울게 만드는 아빠.

언젠가 만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던 그 아빠가 눈 앞에 있었다.

“괜찮니?”

“···.”

손을 내밀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니 가슴이 뛴다.

나를 알아봤을까?

못 알아봤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몇 번이나 이 상황이 오기를 간절히 원했  지만. 직접 마주한 현실은 어린아이의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7살의 아이가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이 순간을 너무나도 꿈꿔왔고.

또 두려웠다.

눈동자가 빠르게 눈앞의 남자를 담았다. 마치 카메라로 그 모 습을 저장이라도 하는 듯.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으나 참았다. 눈물을 참는 건 엄마 앞에 서 수없이 연습했기에 괜찮았다.

“얘. 많이 다쳤어?”

“···아니에요. 아···저씨는 괜찮아요?”

아이는 숨 막힐 듯 차오르던 숨을 간신히 내뱉었다.

다행이다.

“서준아.”

여기까지.

김우주가 현실로 돌아온 것은 엄마가 나를 찾았을 때였다.

나는 보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본 경악.

자신의 감과 선택이 맞았다는 데에서 온 기쁨.

그리고 이런 재능을 가진 내가 보여줄 앞으로의 필모에 대한  기대까지.

“서준이 너···. 정말 천재였구나.”

선물을 받은 서도현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

CBS 드라마국에 도착하니 확연히 느껴졌다.

“달라. 정말 다르네.”

“뭐라고? 서준이 말을 삼촌이 못 알아들었네.”

“아니에요. 처음 방송국에 와보아서 엄청 신기해요!”

서도현의 손을 잡은 나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구경하느라  바빴다.

김도경 시절 수도 없이 다녔던 방송국이 신기해서 일리는 없 다. 그저 그때의 기억과 전혀 다른 낯선 모습들이 신기했을 뿐.

구름엑터스에 대한 서도현의 자부심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방송 관계자들이 너도나도 먼저 서도현에게 인사를 건넸으니까.

그중에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접근하는 하이에나도 있었다.

“서 대표! 이게 얼마 만이야.”

“박 PD님. 오랜만입니다.”

“혹시 김우진 씨 다음 작품 결정됐어? 내가 진짜 끝내주는 거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하하. 박 PD님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죠. 언제든지 시놉시스  보내주시면 저희 김우진 배우에게 가장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완곡한 태도에 입맛만 다시던 박 PD라 불리던 남자가 사라진 다.

서도현에게 말을 걸 때 주변인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방송국  내 평판이 좋지 못한 연출인 모양이다.

“서준아. 나중에 서준이가 진정한 배우가 되고 나면. 저런 하 이에나들을 조심해야 돼.”

마치 먹지 말아야 할 불량식품을 설명하듯 말한다. 말하는 태 도나 말투를 보니 나도 알겠다.

실력 좋은 양아치들이 넘치는 곳이 방송국 세계다. 여차하면  편집으로 사람 하나 나락으로 보내는 건 큰 사건도 아닌 곳.

“그러니 무조건 매니저나, 이 삼촌이랑 함께 다녀야 해요. 알 았지?”

“네!”

분명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 정확히는 [너에게 다시]  김우주 역을 확정 짓기 위한 일종의 오디션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서도현의 얼굴에는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일절 걱정의 기색조 차 없었다.

왜?

직접 봤으니까.

“그러면 우리 서준이랑 오랜만에 국장의 놀란 얼굴을 좀 보러  갈까?”

“네! 좋아요!”

서도현이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드라마국장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현재 아역배우들 중에 가장 연기력이 뛰어나다 평가받던 최이안 이 하차한 상태였다.

그로 인한 도미노 현상으로 최이안만 보고 들어왔던 광고주  몇이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저어버렸다.

김도욱 PD가 증명한 연출이면 노력으로 다른 광고를 따올 수 도 있겠으나. 이제 막 조연출의 ‘조’자를 떼려는 그에겐 쉽지 않 은 일이었다.

충분한 제작비가 없다면. 제대로 된 촬영을 진행할 수가 없었 다.

“야야. 국장님 저기압이다. 너 진짜 사전에 확인 안 했어?”

“형. 저도 오늘이 처음이에요.”

김도욱 PD의 태연한 대답에 선배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 다.

“으휴. 국장님 모시기 전에 네가 확인을 했어야지. 너 이거 나 가리 되면 진짜 촬영 골 때려진다니까.”

안다.

누구보다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김도욱 PD였다. 당 장 자신이 이번 작품의 연출이 아니던가.

최이안의 하차로 광고가 떨어져 나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그만큼 최이안의 부상으로 인한 하차는 뼈아픈 손실 이었다.

이대로라면 본격적인 촬영 시작도 전에 돈 걱정부터 해야 할  판이었다.

다만. 김도욱 PD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주사위를 던진 건 아니 었다.

“형. 저도 막 던진 거 아니에요. 이번에 서도현 대표가 확신했 어요. 최이안보다 좋은 선택일 거라고.”

“서도현? 그 구름엑터스에 서도현 대표?”

“예. 그 구름엑터스의 서도현 대표요.”

“그 서 대표가 최이안 소개해줬다면서. 김우주 역을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라면서.”

선배의 고개가 갸웃 꺾인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구름엑터스 에 아역배우가 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심지어 연기력 끝내주는 조연은 받아도. 아역은 받지 않는다 는 소문만 떠올린 선배였다.

“야. 심지어 구름엑터스는 아역 받지도 않잖아. 최이안도 전에  문 두들겼다가 까였다며.”

뭔 헛소리를 하냐는 타박을 하던 선배의 얼굴은.

“···있어요. 이번에 엄청난 친구 하나 발견했다고 계약서에 도 장 찍었대요.”

김도욱 PD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얼빠진 표정으로 변했다.

“서도현 대표 그 양반 눈은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긴 한데···.”

자신의 안목을 결과로 증명한 남자였다. 그렇다면 눈앞의 김  도욱이나, 서도현이나 자신이 있어 주사위를 던졌다는 말인데.

“그냥 나만 믿어라. 내가 저 까칠한 국장님 기름칠 좀 해줄 테 니까.”

선배가 걱정 말라는 듯 김도욱 PD의 어깨를 토닥인 뒤 국장 앞 으로 나섰지만.

“사람을 불러놓고 뭘 그리 쑥덕대?”

“헤헤. 아닙니다. 국장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표정이 영 안 좋 으시네.”

“너 같으면 좋겠냐? 광고들 떨어져 나갔다며. 그리고 넌 또 왜  여기 있어. 시간 많아?”

몇 마디 제대로 나누지도 못하고 침몰해버렸다.

국장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놉시스와 1,  2화 대본만 보더라도 김우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런 배역의 배우가 하차했다.

“어이, 김도욱이. 진짜 자신 있어? 내가 오늘 직접 확인하고 영  시원찮다 싶으면 그냥 편성 갈아치울 거야.”

국장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김도욱 PD는 쫄지 않았다. 아니, 솔 직히 쫄렸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괜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시험도 못 보고 기회가 날아갈지 도 모를 테니.

“예. 지금 앞에서 대기 중이라고 하니까. 바로 보여드리겠습니 다.”

“내 시간을 괜히 뺏은 게 아니어야 할 거야.”

깐깐한 표정으로 국장이 삐딱하게 자리에 앉았다. 현재 그의  심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세였다.

허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의 얼굴을 본 국장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최근 실력파 배우 소속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름엑터 스의 대표. 서도현이 열린 문 사이로 등장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국장님도 같이 계셨네요. 오랜만에 인사드리 겠습니다. 구름엑터스의 서도현입니다.”

서도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 그저 김도욱 PD의 말에 최이안 의 대타로 들어온 아역의 연기만 확인하려던 국장이 허를 찔렸 다.

서도현이 직접 모습을 보였다는 건. 지금 확인할 아역배우가  구름엑터스 소속이란 뜻이었다.

“크흠. 오랜만입니다. 서 대표네 회사에 아역이 있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하하. 이번에 저를 엄청 두근거리게 만드는 친구를 발견해서  요. 아마 국장님도 직접 보시면 고개를 끄덕이시게 될 겁니다.”

서도현의 자신만만한 보증수표에. 찡그렸던 국장의 표정이 한 결 더 누그러졌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이번 김우주 역을 하고 싶은 차서준입니다.”

차서준의 얼굴을 확인한 국장이 자세를 바로 했다.

“크흠. 보고 이야기합시다.”

6살 어린이.

그것도 아역 생활 한 번 해보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김도욱 PD의 눈에 보인 차서준은 너무나도 차분해 보였다. 순 간적으로 베테랑 연기자와 겹쳐 보였다면 착각이었을까.

“시작할게요.”

꾸벅 숙여 인사를 한 차서준이 고개를 든 순간.

‘이게 6살. 그것도 처음 연기를 해보는 애의 눈빛이라고?’

김도욱 PD는 당장이라도 카메라로 확인하고 싶은 갈증을 느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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