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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11화 (11/220)

< 11화 >

희한하다.

가끔 샛별반 선생님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있었 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샛별반 6살 어린이로 대했다.

하지만.

단둘이만 있을 때. 서도현은 나를 어린아이로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한 명의 배우로서 대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 었다.

지금처럼.

“서준아. 갑작스럽게 삼촌이 보자고 해서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서도현의 납치에. 나는 현재 구름엑터스 대표실에  있었다.

“삼촌. 우리 둘이서 이렇게 몰래 만나면 도윤이가 삐져요.”

“뭐? 하하. 괜찮아. 서준이 네가 오늘 만남을 비밀로만 해준다 면 도윤이는 모를걸?”

이럴 수가.

치밀하기까지 하다.

정말로 단둘이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는지. 김도윤이 있는  유치원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엄마에게는 나를 잠시 구름엑터스 회사 내부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데려왔다.

내가 잠시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서도현이  무언가를 가지고 되돌아왔다.

“그게 뭐에요?”

서도현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무언가를 내려놓 았다.

이건···.

시놉시스인데?

“도윤이가 그러던데. 서준이 너는 바다 속 친구들을 그 자리에  서 다 읽었다면서? 가끔 동화책이 아닌 다른 책들도 읽는다던데. 맞니?”

끄덕끄덕.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긍정의 답변 을 했다.

가끔 샛별반 선생님이 자리에 두고 간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솔직히 동화는 읽기에 너무 유치해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환생 이후 한 번도 읽지 못했던 시놉시 스. 그게 지금 눈앞에 있었다.

“서준아. 삼촌이 잠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 그런데. 잠시 동안만 이걸 읽고 있을래?”

“···.”

나는 앞에 서도현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멍하니 시놉시 스 표지를 바라보았다.

가제 ‘너에게 다시’. 김도욱 연출에, 박우영 작가.

김도경으로 살던 시절과 다르기에 어떤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당장 저걸 읽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치솟는다.

오직 연기만이 내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 잊고 있었던 배우로 서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그때는 대본만 좋으면 흥행 여부 상관없이 작품성만 보고 촬 영에 들어간 적도 있었으니까. 결국 영화제에서 수상함으로써  내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었다.

“서준이 이거 읽을 수 있겠니? 회사에 있는 다른 만화책이라 도 대신 줄까?”

“아뇨! 이거 읽을래요.”

“삼촌이 도와주지 않아도 될까?”

“네. 혼자서 읽을 수 있어요.”

어떻게 보일지도 잊은 채. 나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서도현이  건넨 시놉시스를 허겁지겁 음미하기 시작했다.

크으. 좋다.

시놉시스를 다 읽고 난 내 소감은 저 두 마디로 충분했다.

대본이 끝내준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이 작품 안에 있는 캐릭 터들 중 ‘김우주’의 역이 너무나도 좋다는 뜻이지.

오랜 배우 생활을 하다보면 보는 눈 하나를 얻게 된다. 작품 내 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되는 배역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그런 내 눈이 말하고 있었다. ‘김우주’의 역은 정말 재밌는 캐 릭터라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랄까.

“서준이는 정말 잘 읽는구나.”

“네. 어릴 적부터 책을 읽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러니? 무슨 내용인지도 다 이해했어?”

“다 이해했어요. 엄청 재밌었어요.”

내게서 특별함을 본 서도현 앞에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6살인  척 연기할 필요가 없다.

보통 서도현 같은 사람은 자신만이 발견한 보물을 꽁꽁 숨기 기 위해 비밀을 지켜주거든. 오히려 자신의 눈이 맞았다며 기뻐 할 터였다.

“그래? 그러면 서준이는 방금 읽은 것들 중에서 누가 가장 마 음에 들었는지 삼촌에게 말해줄래?”

“김우주요.”

역시.

지금 서도현이 짓고 있는 표정을 분석하자면 저런 생각을 하 고 있을 듯싶다.

드라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캐릭터를 파악한 셈이니까. 그 리고 나를 꼬시기 위한 미끼가 김우주였을 것이다.

잠시 미련이 남는 눈길로 시놉시스를 한 번 바라본 뒤. 나는 단 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연기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 아쉽네. 서준이에겐 재능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연기 에 관심이 없다니.”

마음에 안 든다.

마치 내 속마음을 다 알겠다는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저 얼 굴이.

잠시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서도현이 웃음기를 숨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삼촌은 저 김우주라는 캐릭터를 읽었을 때. 서준이랑 정말 찰 떡궁합이라는 생각을 했거든.”

“왜요? 엄청나게 어려운 역할 같은데요. 표현해야 할 감정이  엄청 복잡한 거 같아요.”

“그렇지. 아무나 연기할 수 없는 캐릭터이니 서준이가 생각났 다는 거란다.”

신기하네.

지금 서도현은 눈앞의 나를 6살 어린이가 아닌. 한 명의 배우 로서 대하고 있다.

환생했다는 사실까지는 추측하지 못하겠지만. 마치 나만 가지 고 있는 특별함을 꿰뚫어 보고 있기라도 한 듯이.

“그러니 서준이 마음이 바뀌면. 누구보다 가장 먼저 삼촌에게  말해줄래?”

“연기가 하고 싶어지면 삼촌에게 가장 먼저 말할게요.”

보통 상대방을 나이가 아닌 지닌 가치로 대하는 사람은 두 종 류밖에 없다.

사기를 치려고 하는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업계에서 정말 크게 성공할 인물이거나.

내 감으로 봤을 땐. 눈앞의 서도현은 후자의 인물이었다.

“오늘은 이만 일어날까?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시겠다.”

“네.”

나는 미련이 남는 시놉시스를 뒤로한 채. 결국 서도현을 따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서준아.”

“네?”

“이거 서준이가 재밌게 읽었다니까. 삼촌이 서준이에게 선물 로 줄게. 대신 삼촌이 준 선물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그러 면 안 된다.”

이런.

서도현의 미끼 흔들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솔직히 서도현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긴 했 다.

‘6살 꼬맹이가 시놉시스를 읽을 줄 안다?’

그게 말이 되겠냐고.

당장 최이안만 하더라도 눈앞의 차서준처럼 시놉시스를 읽을  순 없었다.

막상 눈앞의 차서준을 보면서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면. 자신 조차 헛소리로 치부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었다.

시놉시스를 건네받은 차서준이 정말로 읽고 있었다.

단순하게 글자를 읽는다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캐릭터를 보고,  또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도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시놉시스를 살피는 차서준을 보 면서 자신의 감에 확신을 더했다.

‘이 아이. 무조건 배우로서 대성한다. 아니, 최고의 배우가 될  재능을 가지고 있다.’

가끔 나이를 뛰어넘어 모두를 경악케 할 재능을 보여주는 이 들이 나타나곤 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여주는 이들을 보 고 이렇게 불렀다.

‘천재.’

눈앞의 차서준은 그런 천재들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재능 을 가진 천재임이 분명했다.

서도현이 자신의 감에 이 정도의 확신을 가져본 적이 언제였 더라.

아마 최근 쌍끌이 천만 영화를 달성한 대배우 ‘김정우’를 처음  봤을 때를 제외하곤 없었다.

20대 초반. 극단에서 활동하다 생계를 문제로 이 바닥을 떠났 던 김정우는. 34살의 늦은 나이에 어릴 적 꿈을 찾아 돌아왔다.

대사 한 줄 단역을 시작으로 영화 ‘끝까지 쫓는다!’의 명품 조 연을 통해 그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그 김정우가 내 배우가 될 수 있었는데.’

그때는 구름엑터스를 만들기 한참 전인지라 김정우를 발견하 고서도 눈앞에서 놓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때부터 시작된 친분이 이어지곤 있다지만. 구름엑터 스로 데려오기에는 김정우의 체급이 너무나도 커졌다.

작년에 자신을 따르던 전담 매니저와 회사까지 설립한 김정우 였다.

“흐음. 차서준이라.”

보통 하늘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3번의 기회를 준다고 했 던가.

첫 번째 기회였던 김정우는 놓칠 수밖에 없었으나. 두 번째 기 회는 놓치지 않고 잡아 구름엑터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차서준이 마지막 세 번째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천재는 일반인과 다르다.

그런 천재를 꼬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도현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

문제가 터졌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알 수 있 었다.

집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엄마!”

“으, 응. 우리 서준이 오늘도 유치원에서 잘 보냈어?”

“네! 얼른 집에 가요.”

엄마는 애써 괜찮은 척 미소를 지으려 해봤지만. 내 눈을 피할  순 없었다.

한 가지 예상이 가는 부분은 있었다.

바로 한눈에 보더라도 낡고 오래됨이 느껴지는 우리 가족의  집.

“아들. 혹시 유치원 친구들에게 우리 집이 어디인지 이야기 한  적 있어?”

“아니요! 없어요.”

“그래? ···다행이네.”

그리고 그 예상은 아니었음 하는 마음과 달리 적중한 모양이 다.

걱정이 되긴 했었다.

거실에 잠든 척하고 있던 내게 부모님의 심각한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엄마, 아빠가 나누었던 대화가 바로 전세 계약에 관한 것 이었다.

“오빠. 우리 집은 안전한 거겠지? 요즘 주변이 시끌시끌하니 까 너무 걱정 돼. 우리집도 전세 만기가 얼마 안 남았잖아.”

“계약할 때 부동산에서 보험까지 들었다고 했었으니까 괜찮 을 거야. 다음 주 월요일에 내가 오전 반차를 써서 한 번 다녀올 게.”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요즘 회사 일로 많이 힘들 텐데. 자꾸 이 런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해 오빠.”

“아니야. 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미리 알아봤어야 했는데.”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살짝 걱정이 들긴 했었다. 다음 날 유치 원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경험하느라 잊어버렸지만.

한눈에 보더라도 오래된 빌라다. 김도경 시절에도 뉴스에서  수없이 터졌던 전세 사기가 설마 우리 집에 벌어지겠어? 하던 우 려가 현실이 된 모양이다.

“아빠!”

“···서준이가 아빠 기다렸구나.”

매일같이 안아주면 방긋 웃으며 피로를 씻어내던 아빠의 얼굴 이 거무죽죽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도마소리에도 힘이 없다.

지금까지 ‘행복한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로 활기가 넘치던 집  안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것도 매우 우울하고 슬픈 그림자가.

“서준아. 자니?”

“자나본데. 오늘 엄마, 아빠가 이상해서 눈치를 보느라 피곤했 을 텐데.”

“후우.”

대화를 듣기 위해 잠든 척을 했다. 혹여나 내가 깰까 한 층 낮 아진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지만. 귓가엔 선명하게 들린 다.

“오빠. 부동산에서는 뭐래? 그때 보험에 가입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중개업자가 그랬잖아.”

“미경아···. 그게···.”

고통에 잠긴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안아주고 싶을 만큼.

“없어졌더라. 그 부동산만 믿고 계약한 집들이 또 있었는지.  어디로 갔냐고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어.”

“그, 그러면 우리 돈은? 우리 전세 보증금은 어떻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뛰어다녀봤는데. 우리가 계약하 고 난 바로 직후에 누가 우리보다 먼저 근저당권을 설정해버렸 더라.”

이런.

예상이 맞았다.

김도경 시절에도 시끌시끌했던 전세 사기. 그런 사기에 우리 집도 당한 것이다.

잠시 고요하던 집안이 서서히 슬픈 물기에 젖어든다.

“흐흑. 우리 이제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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