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0화 (10/220)

< 10화 >

잠시 후.

나는 서도현의 옆에서 촬영 현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아까 대화를 나누었던 남자 배우. 그리고 옆에 있어 야 할 김도윤이 촬영에 한창이었다.

특별히 어려운 촬영은 아니었다. 아까 했던 말처럼 그저 간단 하게 대사 한 마디만 주고받는 씬이었으니까.

그런 간단한 촬영이니 갑작스럽게 해볼 생각 있냐는 제안을  한 거겠지.

아마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지 않는 이상. 김도윤의 등장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넘어갈 터였다.

“서준아. 아쉽지는 않니?”

“네. 하나도 아쉽지 않아요. 도윤이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걸 요.”

“이런.”

조카가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카메라 앞에 섰으니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나를 못 봐서 아쉬워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서도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김도윤이 나름 카메라 앞에서 잘하고 있는 모습에 대견한 미  소를 짓다가도. 옆에 있는 나를 슬쩍 바라볼 때면 입맛을 다신다.

“사실 아까 말했을 때. 옆에서 도윤이가 움찔했어요.”

“그래?”

“네. 만약 삼촌이 계속해서 저보고 하라고 했으면. 도윤이가  삐져서 다시는 삼촌을 안 본다고 했을지도 몰라요.”

“하하. 서준이가 생각이 깊구나. 이 삼촌이 도윤이를 영영 못  볼 뻔했네.”

다행히 오늘 급하게 찾던 아역 배우는 대사가 딱 한 마디뿐인  단역 중의 단역이었다.

서도현은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과연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나는 단역을 해볼 생각이 있냐는 제안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 었다.

옆에서 김도윤이 애타는 신호를 보내서였기도 했고.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내가 카메라 앞에 다시 서는 순간은. 저런 대사 한 마디밖에 없 는 그런 역할이 아니었다.

워낙 짧은 씬이었기에 촬영은 금방 끝났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김도윤이 외삼촌인 서도현보다 나를 향해 먼저 달려왔 다.

“서준아! 나 어땠어?”

“최고였어.”

“헤헤. 나 진짜 심장이 쿵쾅쿵쾅 거려서 카메라에 들리지 않을 까 엄청 걱정했어.”

“진짜 잘하던데?”

“정말? 고마워. 삼촌! 삼촌은 나 어떻게 봤어?”

얼굴이 붉게 상기된 김도윤이 재빨리 내게 짧은 촬영 동안 어 땠는지 열심히 떠들기 시작했다.

저 모습을 보니 양보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배우를 꿈꾸는 김도윤의 목표가 한 층 더 깊어진 것 같다.

“삼촌! 나 첫 촬영 했는데. 이런 날은 맛있는 거 먹어야 해.”

“녀석. 핑계도 좋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서도현은 무엇이 먹고 싶냐는 질문을  이어 던졌다.

“삼촌! 피자! 나는 오늘 피자가 먹고 싶어.”

“서준이는?”

“저도 피자가 좋아요.”

정말이다.

처음에 눈을 떴을 때에는 몰랐는데. 서서히 이 몸에 적응하면 서 과거와 달라진 점 몇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각.

과거 김도경 시절에는 아무리 고급 음식을 먹어도 괜찮네 정 도였다면. 이제는 속으로 미쳤다!를 외칠 정도로 맛이 잘 느껴졌 다.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본 피자라면 당연히 따라가야지.

이날 피자는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다.

“삼촌이 도윤이랑 서준이 집에 가져갈 피자 포장도 주문했으 니까. 잠깐만 기다렸다가 가자.”

자연스럽게 나를 더 챙겨준다. 그런 서도현의 센스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 아빠와 함께 먹은 피자는 더 끝내주게 맛있 었다.

*

김도윤이 다시 한번 나를 조르기 시작한 것은 이틀이 지나고  나서였다.

“어딜 가자고?”

“오늘 처음 연기 레슨 받으러 가는데. 서준이 너랑 같이 가고  싶어.”

“갑자기 연기 레슨은 왜?”

촬영장에 함께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꿈이 비록 미래에 배  우가 되는 것일지언정 당장 무언가를 배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연기를 배우겠다고 의지를 활활 불태우며  나를 조른다.

“그게···. 나중에 배우가 되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된 다고 했어.”

“누가? 도현 삼촌이?”

“응. 어떻게 해야 배우가 될 수 있냐고 계속 물어봤더니 대답 해줬어. 그러니까 오늘 나랑 같이 가주면 안 돼?”

어지간히도 졸랐나 보다.

당장 서도현은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김도윤에게 연기를 시킬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내게서 재능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눈이라면. 당연히 조카가 가  진 재능 역시 보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레슨 한 번 시키지 않았다는 건···.

어차피 개인적인 집안 사정으로 보였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김도윤이 촬영 이후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 고 싶다며 외삼촌을 닦달한 모양이다.

“안 돼. 집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유치원 버스가 도착했 는데 내가 안 내리면 어떻겠어?”

시무룩한 얼굴로 김도윤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설픈 설 득보다는 단호한 의사 표현이 훨씬 잘 먹힌다.

이것도 유치원에서 삐약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배운 지혜였 다.

“서준이 너랑 꼭 같이 가고 싶었는데···.”

시무룩해진 얼굴로 김도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시선을 던진 다.

그런 시선을 모르는 척 애써 무시한 채 하루를 보냈다.

문제는.

정작 김도윤의 시선과 애원을 잘 넘기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이 되어서야 터졌다.

“어쩌지? 서준아. 오늘은 서준이네 엄마가 급한 일이 생겼으  니 잠시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친구들 먼저 보내주고 와서 선생님이 서준이랑 같이 기다릴게요. 알았죠?”

“네. 여기서 기다릴게요.”

변수가 생겼다.

평소처럼 집으로 향하는 유치원 버스에 올라타려고 했는데.  엄마가 갑자기 볼일이 생겼는지 샛별반 선생님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7시나 되어서 올 수 있다고 하니. 부모님들 모두 직장을 다니 는 맞벌이 친구들과 함께 있게 생겼다.

“어?!”

옆을 지나가다 그 말을 들은 김도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서준아. 엄마가 안 기다린대?”

“어. 여기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러지 말고. 오늘 나랑 가자. 끝나고 삼촌이 끝나고 돈가스 도 사준다고 했단 말이야.”

뭐? 돈가스?

이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서도현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대표로서. 하나뿐인 늦둥이 조카 를 위해 맛있는 것을 사주는 데에 있어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말은.

“저번 피자처럼 맛있는 거?”

“응. 그 말을 듣고서 서준이 네가 먼저 떠올랐단 말이야. 같이  가자.”

저번에 황홀한 감동을 선사했던 피자만큼 맛있는 돈가스가 기 다리고 있단 뜻.

서도현에게 말을 하면 엄마에게 전화를 할 테니.

“그, 그러면 특별히 친한 친구인 도윤이 널 돕기 위해 같이 갈 까?”

“정말?! 가자!”

갑작스럽게 김도윤의 연기 레슨을 따라가게 되었다.

*

김도욱 PD.

CBS 드라마국 소속 PD인 그는. 성격이 지랄 맞기로 소문난 박  철수 연출 밑에서 조연출로 구르던 끝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침 편성을 앞두고 있던 드라마가 작가의 음주운전 사고로  인하여 엎어진 것.

“아니. 형님. 위에서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제게 던졌다니까요.”

“알지. 당장 경쟁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들이 그렇게 빵 빵한데. 명예롭게 죽을 자리라면서?”

“후. 형님 말이 맞습니다. 사실 이거 완전 독이 든 성배인데. 솔 직히 저 진짜 자신이 있거든요.”

말을 하는 김도욱 PD의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취기로 인 하여 얼굴이 붉게 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형님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시죠?”

“음. 도욱이 네 능력을 믿으니까. 잘 하지 않을까 싶다.”

“이거 봐, 이거 봐. 형님과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너 망할지 도 모르겠는데?를 돌려 말했다는 거 다 압니다.”

“진짠데. 도욱이 너라면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니까.”

서도현이 조연출 시절부터 친분을 다져온 PD다. 능력과 미래 를 보고 쌓아온 관계이기에 허튼사람에게 투자할 리 없는 그였 다.

김도욱 PD와 술잔을 기울이던 서도현이 웃으며 잔을 부딪쳤 다.

조카와 차서준을 집에 데려다줌과 동시에 김도욱 PD의 긴급 한 전화가 왔다. 술이 간절히 필요하니 나와 달라고.

“아니. 그래서 그렇게 자신이 있는데. 갑자기 날 보자고 한 이 유가 뭐야?”

“하. 저 좃댔습니다.”

“뭐?”

“조오···.”

“아니. 그거 말고. 무슨 사고가 터져서 그런 건데?”

사고야 터질 거리는 많았다.

커리어를 신경 쓴 주연 배우들 중 누군가 하차를 결정했을 수 도 있고. 입봉작인 신인 작가가 멘탈이 무너져 내용이 산으로 가 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도욱 PD의 말은 서도현의 예상과 전혀 다 른 것이었다.

“제가 형님 조언 듣고서 최이안 데려오려고 정말 노력한 거 아 시죠?”

“알지.”

알다마다. 이번 김도욱 PD가 준비하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비 중을 가진 인물이 아들 김우주역이었다.

[너에게 다시.]

서로의 오해로 헤어졌던 두 연인이. 몇 년이 지난 끝에 다시 만 나 펼쳐지는 로맨스 코미디였다.

두 사람의 오해로 이별한 여자 주인공은 사랑의 결실이 생겼 음을 알고도 홀로 키운다.

그 결실의 이름은 엄마의 성을 따 ‘김우주’로 지어졌고. 시간 이 흘러 7살이 된 김우주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친부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 심지어 그 사람을 엄  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마주쳤다는 것. 밤마다 사진을 꺼내 보는 엄마를 보고선 친부를 찾아갈 결심을 한다. 마치 우연히 마주하 는 것처럼.

그렇게 끊어졌던 두 사람의 인연이. 아들인 김우주로 인하여  다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김도욱 PD의 눈에 이 ‘김우주’역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흥행까지 결정된다고 강조할 정도였으니.

그런 김우주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아역배우로 최이안을 추천 하고,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서도현 자신이었다.

아역배우인 최이안이 딱히 문제를 일으켰단 소리는 못 들었는 데. 그런 생각을 하며 서도현이 물었다.

“왜? 갑자기 그쪽 소속사에서 못하겠대?”

“아뇨. 그건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같은 말이 되었네요.”

자꾸 선문답을 하고 있는 김도욱 PD를 재촉하려던 서도현의  입이.

“오늘 사고 났답니다. 다리가 심하게 부러졌대요. 촬영 시작  전까지 절대 무리랍니다.”

“···망했네.”

“그죠? 확실히 최이안이 하차하면 김우주를 연기할 수 있는  아역이 있을까요?”

“···.”

서도현은 답하지 않았다. 김도욱 PD 역시 대답을 듣고자 한 말 도 아니었고.

“이번 작품이 저 경쟁작 둘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진짜  김우주가 필요해요. 형님.”

겉으로 보기엔 가벼운 로맨스 코미디. 그 안에 담긴 반전의 사 연. 그로 인한 웃음과 눈물.

그 미묘한 줄타기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김우주’ 역이 정말  중요한 상황이긴 했다.

“하. 주연도 투자를 받기 위해서 무리수를 던졌는데. 김우주까 지 나가리 되면 그냥 드라마 엎어지는 수밖에 없어요.”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했는지 김도욱 PD가 거칠게 술잔을 들 이킨다.

“형님! 정말 미치겠어요. 갑자기 그 정도 연기가 되는 아역을  어디서 구하겠냐고. 못 구하면 시작과 동시에 망할 판인데.”

서도현은 잔을 채우자마자 속상한 마음을 푸는 김도욱 PD의  하소연을 마냥 들어주었다.

성인 연기자라면 서도현 자신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하 지만 아역배우는 그로서도 딱히 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푹푹 내쉬던 김도욱 PD가 서도현의  손을 덥석 잡은 건.

마치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김도욱 PD가 서도현의 손을 꽉 붙잡고 애달픈 도움을 요청했 다.

“형님. 어디 건너건너라도 아는 연기력 좀 되는 아역 또 없어 요? 다른 사람이라면 제가 이런 거 묻지도 않는 거 아시죠? 형님 이니까 진짜···.”

김도욱 PD의 저 말을 듣는 순간.

서도현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 들었던 연기 선생님의 말이 떠 올랐다.

조카인 도윤이 때문에 연기 레슨까지 따라갔던 차서준이라는  아이에 대한 평가가.

“저 아이는 가르칠 게 없어요. 제가 수많은 천재라고 불리는  친구들을 봤는데. 저 아이는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입니다. 미 래가 기대가 되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었을지도 모릅니 다.”

거기까지 생각이 떠오른 서도현의 입이 취기 때문인지 멋대로  움직였다.

“음. 한 명 떠오르는 친구가 있긴 한데.”

그 말을 들은 김도욱 PD의 고개가 홱 소리까지 내며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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