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6화 (6/220)

< 6화 >

이번 생에서도 연기를 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김도경 시 절에도 내 삶의 모든 것은 오로지 연기뿐이었으니까.

그 어떤 근심과 걱정도. 카메라 앞에 선 그 순간만큼은 다 잊을  수 있었다. 당연히 이번 생에도 삶의 모든 것이었던 연기를 할 생 각이었다.

다만 6살의 어린이로 눈을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

“성인이 되면 시작하려고 했는데.”

천천히 가도 괜찮다. 이미 한번 걸어갔던 길이만큼 실패한다 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지금은 배우의 삶보다 먼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행 복한 가족 만들기’.

김도경 때와는 다른.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행복한 가족 말이다.

그래서 유치원 발표회에서는 지나가는 행인1이나, 대사 한마 디가 전부인 그런 역할로 넘기려고 했는데.

“···어린이 연극이라더니.”

내 입에선 멍하니 저 말만이 흘러나왔다. 내가 생각한 연극과  유치원 발표회용 연극은 대략 3만년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연극이긴 한데···.

연극에 등장하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하긴, 유치원 발표회니 샛별반의 모든 부모님들이 참석할 것 이 분명했다.

그런 연극에서 자기 자식만 대사 한마디만 하고 사라지면 얼 마나 속상하겠어.

“이번 연극은 우리 샛별반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가장 좋아했 던 ‘바다 속 친구들’을 할 거예요.”

“네!”

병아리들이 열심히 삐약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허나 그 가 운데에서 나는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삼켜야만 했다.

유치원 발표회.

이 중요한 단어를 ‘연극’이라는 단어에만 정신이 팔려 놓치고  만 것이다.

그랬다.

유치원 연극은 말 그대로 재롱잔치였다. 그러니 대사가 아니 라 노래도 중간중간 끼어 있었다.

벌써부터 발표회까지의 연습 기간이 상상되어 머리가 지끈거 리기 시작했다.

유치원 생활···. 정말 쉽지 않다.

“지금부터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먼저 우리 샛별 반 친구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눠볼 거예요. 알았죠?”

“네네! 선생님!”

“어제 선생님이 우리 샛별반 친구들에게 각자 무슨 역할을 하 고 싶은지 생각해 오라고 했었는데. 다들 생각해 왔나요?”

“네네! 선생님!”

마치 선장님을 부르는 것처럼 병아리들이 합창했다. 그런 모 습이 제법 귀여웠는지 샛별반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 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바다 친구들’의 역할을 고르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그 전에 잠시 샛별반 친구들끼리 어제 어떤 역할을 생각 해왔는지 의논하는 시간을 가질 거랍니다.”

샛별반 선생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이 서로 떠들기  시작했다. 어제 어떤 역할을 생각해왔는지에 대해서.

“우리 각자 하고 싶은 역할에 대해 먼저 한 명씩 이야기해보 자.”

“좋아.”

“응.”

“나는 반짝 조개 하고 싶어!”

“나나나 파랑 불가사리. 불가사아리.”

토론이 시작된 아이들의 가장 중심이 된 것은 삼총사. 아니, 내 가 새롭게 합류하게 된 사총사였다.

샛별반 선생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샛별반 친구들이 우르 르 사총사 주위로 몰려들었다.

김도윤이 묻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친구들에게서 각자 생각 해온 역할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파랑 불가사리 내가 할 거야!”

“나도 하고 싶단 말이야!”

“싸우지 말고. 그러면 파랑 불가사리의 친구 꽃게는 어때? 꽃 게랑 파랑 불가사리가 항상 같이 나오잖아.”

“우웅. 알았어. 내가 꽃게 할게.”

그중에는 서로의 생각이 겹치는 것들이 제법 있었다. 내가 하 고 싶다고 싸우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내 김도윤의 중재로 서로 의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울먹거리면서 목소리를 높이던 친구들도. 이내  김도윤의 중재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로 역할을 양보한다.

제법이네.

첫 만남 때부터 느낀 거지만. 요 김도윤 꼬맹이는 제법 의젓한  모습을 종종 보이곤 했다.

소심해서 아무 역할도 말하지 않고 있던 하지우까지 챙긴 뒤.  샛별반 삐약이들의 역할들이 어느 정도 정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샛별반 선생님이 애들을 불렀다.

“자. 우리 샛별반 친구들의 토론이 끝난 거 같으니. 한 번 선생 님과 함께 정리를 해보아요. 샛별반 친구들 모두 주목!”

“주목!”

시끌시끌하던 애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선생님을 바라보 자.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역할표와 이름표들이 준비되어 있었 다.

“가장 먼저 대왕고래는 누가 하기로 했나요?”

나도 ‘바다 속 친구들’을 읽었기에 대왕고래가 무슨 역할인지 는 알고 있다.

모두가 주인공인 ‘바다 속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처음부터 등 장하며. 일종의 주연과도 같은 캐릭터였다.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샛별반 친구들 중 세 명 정도가 원했는 데. 원만한 합의(?) 끝에 한 사람이 결정되었다.

샛별반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번쩍 손을 든 친구는 바 로 김도윤이었다.

“제가 대왕고래가 하고 싶습니다!”

“우리 도윤이는 대왕고래가 하고 싶구나? 이유가 무엇인지 들 어봐도 될까요?”

이어지는 이유는 주인공인 것 같아서요. 같은 대답일 거라 생 각했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커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연 역할인  이 대왕고래를 꼭 하고 싶어요.”

김도윤의 입에서 나온 이유는 정말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배우가 되고 싶다고?

*

유치원에서 시끌시끌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갈 시 간이 찾아온다.

노랑색의 유치원 버스가 이내 익숙한 풍경에 도착했다.

“이제 서준이가 내릴 차례에요. 차가 완전히 멈추면 일어나야  해요. 알았죠?”

“네. 차가 멈추고 일어날게요.”

차가 멈추고 샛별반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불렀다.

샛별반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내리니.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반 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

“서준아!”

마치 한참 동안이나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만난 것처럼 나와  엄마는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잘 적응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들을 유치 원에 보낼 때마다 엄마는 걱정이 많았다. 아직까지 아들의 기억 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니.

샛별반 선생님과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만나자며 손을 몇 번 이나 흔들고 나서야 노랑 버스가 떠났다.

“우리 서준이 오늘 유치원에서 재밌는 일들 많았어?”

“네! 오늘은 발표회에서 할 연극 역할 나누기를 했어요.”

“우리 서준이는 무슨 역할을 하기로 했을까?”

“상어를 하기로 했어요.”

“상어? 어제 엄마랑 읽으면서 했었던 그 상어?”

“네.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랬다.

비록 동화인 ‘바다 속 친구들’이지만. 악역이 하나 등장했다.

나쁜 놈 역할이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기에, 결국 끝까지 손을  들지 않고 있던 내가 상어 역을 맡게 되었다.

“오늘 밤에 아빠랑 같이 바다 속 친구들 상어를 연습할까?”

“좋아요!”

무엇이든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만 많다면 좋았다.

생각보다 정신적 소모가 많은 유치원 생활과 다르게. ‘행복한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는 순항을 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했었던 ‘안아주기’였 다.

원래는 출퇴근하는 아빠만 해주었던 건데. 어느 순간부터 엄 마도 부러워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출퇴근이 없는 엄마를 위해. 내가 유치원을 등하교 할 때 ‘안아 주기’를 해주었다.

“내일 정말 동물 보러 가요?”

“그러엄. 우리 서준이가 어렸을 적에 엄마, 아빠랑 같이 갔다  왔었는데. 기억이 안 나니?”

“···잘 기억이 안 나요.”

“괜찮아 서준아. 이번에 엄마, 아빠랑 같이 다시 동물원에 가 서 동물들 구경하자. 알았지?”

“네! 좋아요!”

이어지는 하루 일과는 매일매일 비슷했다.

회사에서 피로에 찌든 아빠가 도어락을 누르면 내가 달려 나 가 안아준다.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린 아빠는 흥얼거리며 샤워 하러 화장실로 향한다.

다음으로는 엄마를 도와 식탁 위에 반찬을 옮기고, 수저를 놓 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복한 저녁 식사.

아, 오늘은 특별히 ‘바다 속 친구들’ 연극 연습도 했다. 연습이 라기보다는 동화책 낭독에 가까웠지만.

나름 6살 어린이 수준에 맞춰서 연기를 한다고 했는데. 대사를  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엄마, 아빠가 깜짝 놀랐다.

캐릭터별로 감정을 다르게 실었던 게 아무래도 너무 나갔던  모양이다.

6살 어린이의 생활. 참 쉽지 않다.

*

다음 날.

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움직였다.

차가 없는지라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지만. 그래도 즐 거웠다.

“조금 이따가 점심에 엄마랑 같이 만든 김밥 먹어요!”

“우리 서준이는 벌써부터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는가 보구나.  조금 이따가 배가 고파지면 아빠한테 말해야 돼요. 알았지?”

“네!”

엄마가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김밥을 만들었다. 나도 한 시간  뒤 눈을 비비며 나와 엄마를 도와 김밥을 말았다.

아빠는 피로가 풀리지 않았는지 출발 시간에 맞춰서 간신히  준비를 마쳤다.

김도경 시절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추억. 그때는 학 교에서 소풍을 간다하더라도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이 전 부였으니까.

김밥 햄이 아닌 분홍 소시지가 들어갔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서준아. 여기가 동물원 입구에요.”

“여기가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요!”

“주말이라 사람이 많네. 아빠가 저기 가서 입장표를 사 올 테 니까. 우리 서준이는 저기 그늘 아래서 엄마랑 기다리고 있어. 알 았지?”

“네!”

아빠가 길게 늘어선 매표소 줄 끝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엄마  손을 잡고서 그늘 아래에 자리 잡았다.

“야! 거기 사람 지나가지 않게 막으라고! 몇 번을 말해야 되냐 고!”

“죄, 죄송합니다.”

그때였다.

나와 엄마가 있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온 것은.

“어머. 드라마 촬영을 하나 보네.”

“촬영이요?”

“우리 서준이 어제 엄마, 아빠랑 저녁에 드라마 봤었지?”

“네. 재밌었어요.”

“그런 드라마를 서준이가 보기 위해서는. 저렇게 사람들이 촬 영을 해야 한단다.”

6살은 한창 호기심이 넘칠 나이다. 그렇게 여겼는지 엄마는 부 산스럽게 스태프들이 뛰어다니는 촬영 현장을 설명해주었다.

“구경해도 돼요?”

어차피 아빠가 표를 사기까지 30분은 더 걸릴 것 같았다. 표를  사오겠다면서 손을 흔들고 줄 끝으로 사라진 아빠가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엄마. 안 돼요?”

“가까이는 안 돼. 저기 다른 사람들도 구경하러 가다가 안 된 다고 하는 거 보이지?”

“네. 그냥 엄마랑 같이 조금만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어요.”

“그러면 가서 조용히 구경만 할까?”

“네!”

다행히 촬영 현장을 구경한다고 거친 통제나 그런 건 없었다.  가뜩이나 인파가 가득 몰린 주말 동물원이었으니.

“자자. 구경까지는 괜찮은데. 감독님께서 촬영 시작을 외치시 면 크게 소리 지르면 안 됩니다.”

애써 구경꾼들을 관리하는 스태프 너머로 거친 욕설이 들려온 다.

아마 로케 장소 섭외를 왜 사람이 미어터지는 주말에 잡은 거  냐는 의미를 담은 거친 말들이 들린다. 쪽대본 어쩌고도 들리고.

엄마 손을 잡고 키가 작은 나도 볼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 행히 자리는 금방 생겼다.

“뭐야. 잘생겨서 좀 구경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더는 못 봐주 겠다.”

“그러게. 얼굴만 잘생겼네. 그냥 들어가서 얼룩말이나 보자.  그게 더 재밌겠네.”

“그룹도 망하더니. 배우 도전은 더 빠르게 망하겠는데?”

“낄낄. 그러게 말이다. 무슨 되도 않는 연기력으로 배우를 하 겠다고 도전한 거야.”

우리보다 먼저 드라마 촬영 현장에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떠나간다. 무언가에 실망했는지 불평 가득한 말들을  남기고선.

나 역시 몇 분 지나지 않아 왜 사람들이 실망한 표정으로 흥미 를 잃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연기가 정말 형편없다.

“아니! 김우승 씨. 내가 어려운 거 부탁한 거 아니잖아. 그냥 리 허설할 때처럼만 하라니까. 왜 그러는데!”

“···죄송합니다.”

분명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까지의 연습은 괜찮아 보였다. 그   때문에 나도 흥미를 느끼고 엄마에게 구경을 하자고 했던 거고.

그런데.

감독의 외침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는 정말 형편없었다.

나는 금방 흥미를 잃고선 엄마의 손을 살짝 당겼다. 그냥 그늘 로 가자는 의미를 담고서.

“엄마. 근데 저 형 뭔가 이상해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 말에 엄마가 그만 작게 웃음을 터트 리고 말았다.

스태프들 표정에서부터 발연기가 느껴지는데. 당연히 엄마 역 시 모를 수가 없을 테니.

“그러네. 우리 서준이도 그렇게 느꼈어?”

“응.”

“엄마가 예전에 힘들 때 정말 힘이 나는 노래를 불렀던 그룹의  가수였는데. 해체되고 배우에 도전한다고 하더니 아쉽네.”

나도 아쉽다.

저 연기력 난조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 람이 나였으니까.

저 배우에게 그 부분만 딱 잡아줄 수 있는 사람만 곁에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알에서 부화하듯 재능이 만개할 수 있을 텐데.

뭐.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니 굳이 참견할 생각은 없다. 지  금 6살의 몸으로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믿어줄 리도 없고.

“서준아! 아빠가 표 사 왔다. 얼른 들어가자.”

구경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아빠가 표를 사서 돌아왔다.

“서준아. 우리 코끼리 보러 갈까?”

“코끼리? 좋아요!”

감독의 고함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동 물원으로 향했다.

사실 동물에는 큰 관심은 없었다. 그저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기다려졌을 뿐.

그랬는데.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동물원 소풍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마 치 내가 정말 6살 어린이라도 된 것처럼.

그 절정은 점심시간이 되어 돗자리를 펴고 앉았을 때였다.

“아빠. 김밥 드세요. 아~”

“서준이가 아침에 엄마랑 만든 거야?”

“네! 아빠 줄려고 햄을 두 개나 넣었어요.”

정말이다. 아침에도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아빠를 위해  분홍 소시지를 두 줄이나 넣었다. 일명 아빠 김밥이라는 말씀.

“음. 정말 맛있는데?”

“엄마도 드세요!”

“어머. 서준이가 아침에 엄마 줄 거라고 만든 김밥이네?”

“네! 아, 하세요.”

엄마 김밥은 계란이 두 줄 들어갔다.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김밥 하나씩을 쏙 넣어주니. 내 입이 빵 빵해질 정도로 김밥이 되돌아왔다.

“맛있어?”

“눼.”

입안의 김밥 때문에 발음이 뭉개졌다. 그 모습이 많이 귀여웠 는지 엄마, 아빠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걸 본 나도 따라 웃 었고.

6살의 차서준 생활.

너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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