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77)화 (227/227)

177화 수복기 (27)

미친 사이코패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타인이 고통받는 걸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스스로가 고통받지 않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이 고통받지 않길 원한다. 문명 사회에서 그건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내가 지난날 동안 고통 종합 선물 세트를 감내해야 했던 건 나처럼 슬기롭고 올바른(?) 생각을 하던 놈들이 이 세상에 생각보다 적었다는 뜻이다. 그저 타인이 고통받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만 멀쩡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 사디스트들이 이 세상에 만연해 있던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불면증과 인간 불신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순진하게도 그런 놈들을 섣불리 믿었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리라.

차치하고, 나는 지금 즐겁다.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자에 ‘이기적’, ‘사디즘’이라는 특성을 추가해서 플레이하고 있었던 놈들이 이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뇌내 마약인 도파민을 자체 생산하고 있는지 알게 된 덕분이다.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는 것은 반드시 그럴듯한 대의명분이나 정당방위라는 합리적 이유들이 선행되어야 하는 법인데, 이렇게 그냥 ‘내 눈에 거슬리니까.’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이유로 고통을 주는 건 정말 즐겁기 짝이 없다.

딱히 내가 감수성이 풍부해서 이 광란의 이승권 배 제1회 불꽃 축제를 개최한 것은 아니다.

이미 죽어 버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죽은 건 죽은 거고,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는 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인류의 전통 아니던가.

하지만 때로는 산 사람에게도 죽음이라는 DLC를 팔아야 할 때가 있다.

사람이라는 범주 안에 넣을 수 없는 놈들, 같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조차 불쾌한 놈들, 내가 개고생해서 재건한 사회의 일원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역겹고 쓰레기 같은 놈들.

그런 놈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죽음 2편에 3편, 프리퀄까지 낼 것이고, 더 많은 고통 패키지를 미끼 상품으로 끼워 팔 것이다.

뭣하면 ‘나 이승권을 대한민국 학급 반장으로 뽑아 주신다면!’으로 시작해서, 표팔이에 미친 유사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공약을 약속하고 이행할 자신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도시의 밤하늘에 대량의 폭죽을 쏴 올린 것도, 도시 외부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생존자를 찾아나서는 야생 좀비들을 불러들인 것도, 전부 공약 이행을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하다.

슬슬 폭죽으로 불러들일 놈들은 거의 다 불러들인 것 같고, 도시 내부를 가득 메운 좀비들을 처리하느라 쓰레기들도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당분간은 폭죽을 쏴 올려도 큰 의미가 없겠지.

그래서 나는 새로운 고통행 열차를 준비했다.

거점창 기능을 이용해서 홈마트 내부에 존재하는 매장 스피커를 죄다 떼어 낸 뒤, 다시 내 인벤토리에 옮겼다.

그외에도 자잘하게 소형 발전기나 스피커를 연결할 오디오 기기, 전기 코드, 음량을 확대해 줄 확성기 등등, 축제 2부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설마 홈마트가 내 스킬로 리뉴얼되면서 매장 내 음악도 자동으로 추가될 줄은 몰랐지.’

홈마트 상태를 살피기 위해 몇 번인가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더이상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이전 세대 최신 유행곡이나 발라드, 팝송, 해외 빌보드 차트 음악까지 꽤 다양한 선곡 플레이어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한 거점에 자리 잡은 쓰레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좀비의 침입을 저지하는 감동 실화를 보고 조소를 흘렸다.

그래도 꼴에 각성자와 불법 무기로 무장한 범죄자 집단이라고, 어지간한 군부대와 비슷한 전투력을 자랑해서 좀비들만으로는 쉽게 놈들의 방어선을 뚫을 수 없었다.

무고한 민간인을 도축하고, 고문해서 좀비 밥으로 던져 줄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류애가 갑자기 샘솟기라도 한 건지, 놈들은 상황이 순조롭게 좀비를 막아 내는 쪽으로 흘러가자 서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뿜뿜했다.

내가 저 도시 바깥에서부터 도시 내부에 이르기까지 너희가 저지른 만행을 똑똑히 확인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 단합력을 보여 주면 오히려 더 박살 내고 싶지 않겠니?

“좀비 웨이브를 한 차례 막아 내면 최소한의 경계 병력만 빼고 나머지는 다시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시키고 싶겠지.”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침대에 늘어져서 한숨 자고, 좀비를 잡으면서 얻은 짭짤한 부수입에 자기가 뭐라도 된 양 자신감도 부쩍 키우고.

그런데 유감스럽지만 나는 여러분들의 행동에 따라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는 교관이다.

좀비 웨이브가 어느 정도 끝나길 기다린 나는 상대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미묘한 각도로 대형 스피커를 세팅했다.

슬슬 좀비들의 침입도 잦아들고, 다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어서 들어가서 쉬자고 서로를 다독이면서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때가 적기다.

놈들의 긴장을 풀고 안심하려는 그 순간, 나는 음악 재생 버튼을 눌렀다.

-조강지처가 좋더라!!! 버닝썬 연료가 좋더라!!!!!!

-친구는 오랜 친구! 국민 연료! 버닝~썬 연료!!!!!!

“뭐야 씨발?!”

“어떤 새끼가 눈치 없이 방송 기기 건드렸어! 지금이 파티나 할 때야, 이 새끼들아?!”

“우, 우리 쪽 방송 기기가 아닙니다! 소리는 분명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데, 우리 쪽 기기는 이미 다 꺼 놨습니다!”

“그럼 대체 어디야?! 아니, 그보다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다시 나와! 또 몰려온다!”

“미치겠네, 진짜!”

노래 취향이 좀 아닌가? 나는 다음 노래로 넘겼다.

이토록 시린 겨울 밤의 추위 속에서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기에 걸맞은 발라드가 120%의 음량으로 흘러나왔다.

-내 가슴이~ 쉬리도로오오옥~ 그대 생각에에에에에에~

힙합, 락, 재즈, 팝송, 이제는 한물 갔다는 평가가 자자한 펑크까지.

그냥 내키는 대로 재생 버튼을 누르다 보니 온갖 음악들이 튀어나왔다.

꼭두새벽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온갖 음악을 120% 음량으로 들으면서 몰려드는 좀비까지 상대해야 하는 저놈들은 벌써부터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깜짝 콘서트를 이대로 끝내기는 너무 아까운지 마음속 깊이 앵콜을 외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저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자동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제 소형 발전기의 연료가 다 떨어지거나, 스피커가 망가질 때까지 이 광란의 콘서트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물만 뿌리면 한 겨울의 흠뻑쇼 워터밤도 즐길 수 있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오, 무너지나?”

당분간은 이 상태가 유지되게끔 내버려 두고 잠시 다른 구역을 살필 생각이었는데, 그새를 버티지 못하고 이름 모를 쓰레기 집단의 거점 입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놈들이 필사적으로 총을 쏘고,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수류탄을 던지면서 저지해 봤지만 머릿수의 폭력 앞에 장사 없었다.

방어선이 점점 밀리기 시작하자 각성자로 추정되는 놈들이 저들의 취향에 맞게 개조한 몽둥이나 칼 따위를 들고 호기롭게 나서서 좀비들을 처리했다. 물론 그마저도 오래 가진 않았다.

잠깐 분위기 반전이 됐나 싶었던 것이, 각성자 한 명이 운 나쁘게 감염된 순간부터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딱 봐도 야생의 좀비들을 그리 많이 상대해 본 것 같지 않은 놈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감염되어 아군마저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긴 할까?

애초에 놈들은 경험과 센스뿐만 아니라 현실 감각까지 부족했다.

자신들이라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동료들과 함께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거라는 의미 불명의 자아도취.

그런 놈들에게 좀비 아포칼립스란 적당히 마음대로 즐기고, 적당히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며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해도 되는 ‘유흥’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세상은 게임 같은 게 아니라고, 병신들아.”

비록 각성하고, 상태창 같은 것이 나타났다지만, 여전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아아아아아악!”

“마, 막아! 막으라고, 새끼들아!”

“여기서 탄약 없어! 탄약 좀 달라고!”

“다 꺼져, 씨발! 난 여기서 나갈…… 커흑!”

세상을 한없이 가볍게 보다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된 저들을 보라.

나는 신명 나는 음악 속에서, 더이상 음악 따위는 신경 쓸 수도 없을 만큼 지척까지 다가온 죽음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놈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놈들은 참 추하고 비참하게도 죽었다. 오합지졸과 지리멸렬의 환상적인 콤보라고 해야 할까.

기어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좀비가 방심하고 있던 쓰레기를 감염시켜 새로운 좀비로 만들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더 많은 좀비들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쓰레기들의 사지를 찢고 살점을 마구 물어뜯었다.

민간인을 가축처럼 처분했던 놈들이 이제는 분쇄기에 갈려 나가듯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없다.

그래도 저놈들의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 소리는 여전히 귀에 거슬렸기에, 나는 스피커의 음량을 더 높였다. 고막 보호용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어도 귀가 웅웅 울릴 지경이었다.

“아직 1일 차인데 벌써부터 우는 소리 하면 안 되지.”

관객도 게스트도 충분하니 다들 막차 끊길 걱정일랑 말고 최선을 다해 이 축제를 즐겨 줬으면 한다.

그래야 내가 너희 무덤에 침을 뱉을 수 있으니.

* * *

타앙!

“또 저격수다! 이번엔 만수가 당했어!”

“씨발, 어떤 새끼가 우리 낭만파를……!”

겨울이라 해가 빨리 저문 탓에 어두컴컴한 밤은 소리 소문 없이 곧바로 세상을 뒤덮었다.

그 직후에 터진 폭죽 테러에 의해 포항의 모든 구역이 난리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불과 몇 시간 전, 이제 폭죽은 더 이상 터지지 않고 있었지만 한 번 도시 내부로 침입한 좀비들은 미친 듯이 각 세력들의 거점을 두들겼다.

자신들의 힘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큰 건물에 자리 잡고 조직을 상징하는 표식을 걸어 두고서 의기양양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건만, 갑작스럽게 거리를 가득 메운 좀비들 앞에서 특정 조직을 나타내는 표식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었다.

자신들이 낭만파 소속 조직원이라고 밝히기만 해도 상대적 약소 세력은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눈치였는데, 좀비들은 오히려 총성과 고함에 반응해 더욱 열정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래도 처리해야 할 적이 좀비뿐이었다면 포항의 로맨티스트, 뱃사람들로 구성된 낭만파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앙!

“히익?!”

저 창문! 저 창문에!

또다른 누군가가 원초적 공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어떤 우주적 존재라도 본 것처럼 그렇게 외치다, 갑자기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창문을 뚫고 들어와 그의 가슴팍을 정확히 관통한 총알은 일반적인 소총탄도 아닌, 무려 사냥용 엽총에 사용되는 묵직한 슬러그탄이었다.

저 바깥에선 또다른 로맨티스트의 죽음에 환호하기라도 하듯, 한층 더 흥분한 좀비들이 끔찍한 절규를 토해 냈다.

어디서 날아드는지 알 수 없는 저격에 낭만파 조직원들은 밖으로 나가서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뜯어 내고 있는 좀비들을 막을 엄두도 못 냈다.

나가면 죽는다. 나가지 않아도 한 명씩 죽고 있지만, 그래도 당장 죽는 것보단 낫다고 다 함께 정신 승리를 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판국이었다.

콰직! 으지지직! 우지끈!

지금 이 순간에도 바리케이드가 부서지고 있다. 각성자들이 상점창에서 구입한 원자재로 보강하고 있지만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음을 모두가 안다.

입구를 열심히 봉하고 있던 각성자조차 어느 순간 콘크리트 벽을 뚫고 날아든 치명적인 관통샷에 머리통이 터지면서 쓰러졌으니까.

“아, 아아아……!”

입구와 가장 가까이 있던 조직원은 좀비들이 바리케이드를 부수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럴 리가 없는데.

조직원 모두가 불법 무기로 무장하고, 일반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각성자들도 있고, 자신들만의 안락한 거점도 있는데.

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몰렸단 말인가.

콰앙!

“캬아아아아아아!”

“이이이! 이이이이이이이이!”

바리케이드가 완전히 무너지고 좀비들이 좁은 입구로 비집고 들어올 때, 그는 내심 창가로 저격수의 탄환이 날아들어 자신을 일격에 끝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가 검은 핏물과 체액으로 번들거리는 좀비들에게 붙들려 갈기갈기 찢기기 전까지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능한 오랫동안 고통받으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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