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222)화 (222/227)

222화 북진기 (22)

상대가 나와 비슷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면 적의 본거지에 군인들을 직접 투입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계획이 아니다.

‘당장 내가 운용하는 거점 방위 무기만 해도 그래. 외부에서 거점을 공격하는 방식에는 매우 취약하지만, 일단 거점 내부에 침입자가 발을 들이는 순간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을 쓸어버리니까.’

게다가 특수 이동 거점에 해당하는 ATX로 외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거점 공유 스킬을 통해 거점 방위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면서 약점도 상당 부분 보완했다.

거점 방위 무기는 인간처럼 먹고 싸고 쉬어야 할 필요가 없다. 지치지 않는 좀비처럼 24시간 자동 방위가 가능하면서 내구도 자가 복구 기능까지 갖추었다.

이건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에서 당사자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인 것과 동시에, 타인에게는 굉장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수많은 생존자들과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공생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아무래도 대한제국파의 수장은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방위 무기 운용 인원은 둘째치고 경비조차 없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설령 미사일이나 드론이 날아오더라도 능히 요격할 수 있으며, 군인들이 각 잡고 강릉에 침투해도 방위 무기를 동원하면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

그 증거로 내가 확인한 헤드 캠 영상들 중 일부는 ‘이 사람은 죽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여럿 나왔다. 그 뒷내용은 모두 편집되었지만.

아마 이번 작전에 투입된 인원들 중 저 혼자 움직이는 전차를 상대로 과감하게 C4를 부착해 터뜨린 것은 해병대원이 유일했을 것이다.

그외에는 자동 포탑이라든가, 전차, 장갑차 등에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겠지. 내가 격납고에서 함교로 올라오기 전까지 좁은 함 내를 가득 채운 피비린내를 맡은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을 테니까.

“아무래도 현재 함 내 인원을 현장에 투입하는 건 포기해야겠습니다.”

영상을 모두 확인하고 다시 랩탑을 넘겨준 내가 그리 말하자 몇몇 군인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능이 살짝 부족해도 팔다리만 멀쩡하면 아득바득 군대로 끌고 가는 한국의 징병제와 다르게 미군은 모병제로 돌아간다.

돈 받고 전장에 나서는 그들은 일종의 용병 같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특이하게도 애국심과 전우애가 남다르다.

그런 그들의 면전에 대고 ‘능력 부족’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밝혔으니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철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적은 틀림없이 각성자일 테고, 그 각성자의 능력이 자네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어지간히 대단한 모양이지?”

“예, 저와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수준의 능력입니다.”

사실 내 능력에 대해 제대로 보여 준 적 없으니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도 미군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잭 함장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작전에 투입했던 우리 병사들 중 일부가 크게 다치거나 몇몇 이들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네. 우리가 일반인이라서 각성자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의견에 토를 달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복수할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나. 자네가 우리에게 약속한 보수와는 별개로.”

“상대가 병력의 대부분을 전선으로 내보내고 본거지를 텅 비운 것은 자신이 혼자 남더라도 절대 죽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종류의 자신감은 그만한 실력이 있기에 나오는 것인데, 지금의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반인인 우리는 감당할 수 없겠지. 하지만 각성자인 자네라면 가능하지 않나?”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약속된 보수만 받고 적당히 뒤로 물러나서 자기 보신을 우선시할 텐데, 눈앞의 양키들은 아무래도 이렇게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까 자네 입으로 말했지. 상대의 능력은 자네와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수준의 능력이라고.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다면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을 터.”

“예, 뭐…… 어쨌든 상대를 확실하게 죽여야 끝나는 전쟁이고, 저는 이 전쟁을 책임지고 끝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럼 우리가 숟가락 좀 얹는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겠군. 이건 보수를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자네도 전직 군인이니 이해해 주겠지?”

“……이해합니다.”

내가 얼마나 각성자의 위험성을 피로하든, 어젯밤에 죽은 그들의 전우들보다 더 많은 전우들을 떠나보낼 수 있다고 경고를 하든, 그들은 싸운다는 선택지 외에 다른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지독한 세상에서 적잖은 스트레스가 쌓였을 테니까.

안 그래도 좆같은 일들을 잔뜩 겪은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용병 일을 뛰다가 허무하게 전우들을 잃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해서 전쟁에 참전한 것도 아니지만,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증오를 쏟아부을 대상을 찾기 쉽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니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강릉의 대한제국파 수장에게 다들 꼭지가 돌아가 버린 것이다.

정의나 명분, 그딴 건 다 제쳐 놓고 그냥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로 억압되어 있던 폭력성을 한번 거하게 해소하고 싶은 마음을 어찌 이해 못 하겠나.

무엇보다 그들을 이 전쟁에 끌어들인 내 책임도 있다. 그럼 사후 처리도 확실하게 해 줘야지.

“이미 결심이 섰다면 제가 더 할 말은 없겠군요. 대신 각성자를 조지려면 지금부터 각성자인 제 말을 전적으로 따라 주셔야 합니다. 약은 약사, 진료는 의사, 각성자는 각성자가 전문이니까요.”

솔직히 미군은 강릉에 순항 미사일만 신나게 퍼부었어도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다만 강릉에 방공망이 촘촘하게 깔려 있어 순항 미사일이 먹힐 것 같지 않으니 자신들이 직접 나섰다는 특유의 프로 의식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을 뿐.

그래도 지금부터는 다르다. 완전히 달라진 전장을 완전히 달라진 시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미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정부도, 우리를 이끄는 함대도 없네. 그렇다면 용병이 따르는 건 돈 주는 의뢰주님 말씀뿐이지. 안 그런가들?”

“““Aye Aye, sir!”””

잭 함장이 힐끔 시선을 돌리며 좌중에게 묻자 함교 내 인원이 일제히 호응했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적응이 빠른 모양이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다 함께 ‘★두근두근 강릉 상륙 작전★’에 필요한 무기부터 확보해 보죠.”

“그건 어떻게…….”

“보시면 압니다.”

사실 창원에서 이들과 처음 접선했을 때부터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 고민이란 바로 군함을 내 능력으로 탈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 또 탈취에 성공한다면 지금껏 내가 확보한 거점(영역)들처럼 엄청난 변화가 생기느냐 마느냐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성공 확률을 매우 낮게 보고 있었다.

내가 김해 공항을 확보했을 때도 군용기나 여객기는커녕 헬기조차 생성되지 않았으니까. 그건 영역 지정으로 스킬이 강화된 지금도 변함없었다.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시스템의 농간인지, 아니면 내가 여전히 미지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결과가 그랬으니 무조건 안 될 거라는 고정 관념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왠지 될 것 같다. 군함은 단순한 거점이 아니라 싸우기 위해 만든 거대한 무기 그 자체였으니까.

거점을 확보해도 특정 무기가 생성되지 않는다면, 그냥 특정 무기를 통째로 확보해 버리면 되는 거다.

“영역 지정.”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의 지휘권을 보유한 인물이 현재 생존한 상태입니다.

-……영역 지정(A-)의 효과로 영역 강제 탈취에 성공하였습니다.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의 지휘권이 ‘퇴역병’에게 이양되었습니다.

-함 내에서 CEO의 권한이 함장의 권한으로 변형됩니다.

‘됐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자 때마침 처음으로 시스템을 접한 잭 함장이 당황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마 자신의 구축함 지휘권이 내게 강제로 이양되었다는 메시지를 본 것이리라.

단순히 내가 발 딛고 서는 ‘땅’뿐만이 아니라, 군함도 통째로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내 스킬의 범용성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걸 알았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통과하면 된다.

‘제발 리뉴얼, 제발 리뉴얼, 제발 리뉴얼!’

지금 이 전력으로는 강릉에 꼬라박아 봤자 역으로 당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꼬라박아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군함의 리뉴얼뿐이다.

드드드드……!

“!”

이게 진짜 된다고?

거점(영역) 리뉴얼의 전조 증상인 지진 같은 진동이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한 순간, 좁고 답답했던 함 내 구조가 큐브 퍼즐처럼 휙휙 돌아가며 바뀌기 시작했다.

좁았던 통로와 함교 내부는 더욱 넓어지고, 비릿한 기름과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던 공간이 쾌적해지면서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함교가 더욱 높아지면서 외부의 풍경도 달라졌다.

구축함 특유의 무장으로 꽉꽉 채워 넣어 좁아터진 갑판이 3대 500을 꾸준히 치는 헬창의 어깨처럼 떡 벌어지더니 급기야 함종 자체가 달라지는 기형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기존의 갑판이 싹 바뀌면서 어마어마한 수의 VLS(수직 발사대)가 쫘악 깔렸다. 알레이버크급이 소화할 수 있는 최대 VLS 수를 가볍게 뛰어넘어, 고작 군함 한 척이 100발이 넘는 미사일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함포의 성능이나 규모, 방공 시스템, 헬기 이착륙 포트, 심지어 함 내 격납고와 직통으로 연결된 화물 엘리베이터까지 모두 크게 개선되거나 추가되었다.

나보다 군함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미군이 보기에도 판타지 같은 일인지, 다들 함교 창가에 들러붙어 입을 헤 벌린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껏해야 만재 배수량 9천 톤급에 불과한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이, 내 스킬의 수혜를 받으면서 못해도 엄청난 체급으로 재탄생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아직 정확한 정보가 다 들어오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함의 체급이나 무장 규모를 보건대 순양함급은 확실히 뛰어넘었다. 어쩌면 독도급 대형 수송함과 맞먹지 않을까?

“대체 이게 무슨……!”

“아아, 모르십니까. 이게 바로 ‘멋있다’입니다.”

“멋있다……?”

잭 함장은 순식간에 타인의 손길과 취향에 의해 바뀌어 가는 자신의 전 여친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군함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윽고 모든 것에 통달한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이건 ‘멋있다’군.”

거침없이 바뀌기 시작한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의 앙증맞은 섹시도발은 이제 어엿한 숙녀다운 성숙미를 갖춰 나갔다

그렇게 리뉴얼이 완전히 끝났을 때, 눈앞에 나타난 거점창의 새로운 정보들은 나를 전율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승권급 강습 상륙 연안전투함

-만재 배수량 1만 5천 톤

-거점 방위 무기 : 155mm 함포 4문, VLS 150문(별도의 탑재 미사일 목록 확인), 상륙정(LCM) 2척, 상륙 장갑차 10대, 헬기 2대, 강습병 100기(외부 활동 제한 : 12시간) 대함 미사일 시스템, 대공 미사일 시스템, 대잠 레이더(소나) 및 어뢰 발사관…….

나의 좁아터진 뇌 용량을 어거지로 밀고 들어오는 정보의 쓰나미에 입꼬리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아직도 셀 수 없이 많고, 비전문가인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인 군함의 무기와 시스템 정보가 주르륵 나온다.

만약 내 영역 지정 스킬의 등급이 A가 아니라 S였다면 진짜 경항모(3~6만 톤급) 스케일의 어마어마한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거의 완전 자동화.’

이 함은 이미 함 내 인원이 별도의 조작이나 관리를 해 주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지휘권을 가진 내가 할 일은 UCAV나 ATX를 원격 제어하던 것처럼 이따금 필요한 명령을 내리는 것뿐. 그럼에도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면 그냥 군함에 익숙한 미군을 거점 일원 및 거점 방위자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이윽고 리뉴얼이 완전히 끝나자 나는 함장석에 놓여 있는 이승권 전용 군모를 착용하고서 얼이 빠진 양키들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꼬라박으러 가 볼까요?”

검은 머리 대원수 이승권이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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