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220)화 (220/227)

220화 북진기 (20)

“역시 이런 병신같은 전쟁은 일으키지 않는 편이 좋았어!”

“그 빌어먹을 새끼들! 우리만 전선으로 내보내고……!”

“사이비 새끼들은?! 그 새끼들이라면 좀비도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거 아니냐?!”

“병신아! 그 사이비 새끼들이 좀비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면 벌써 세계 정복 하고도 남았지! 그놈들이 제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좀비는 기껏해야 자기들 본거지에서 주물러 댄 ‘인형’들뿐이라고!”

타타타! 타타타! 틱! 틱!

“탄약 다 떨어졌어! 탄창 남는 거 없냐?!”

“방금 다 썼다고! 탄약이 없으면 상점창에서 직접 구입해서라도 쏴!”

막강한 화력과 머릿수를 자랑하는 양측 세력의 정예군이 충돌하고 전선이 고착된 지도 벌써 10시간 이상 지났다.

헬조선 단원들은 우회 기동을 위해 충청도 라인으로 빙 돌아서 경상도로 내려보냈던 별동대가 적들에게 차단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측면 보강에 나섰다.

적들이 우회 기동을 사전에 파악하고 그것을 손쉽게 차단했다면, 틀림없이 다음 공격은 고착된 전선의 측면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전선의 측면을 파고든 것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육지의 고층 빌딩도 집어삼킬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좀비였다.

거대한 육벽(肉壁)이 산을 넘어 들판을 달리고, 시가지의 아스팔트 도로 위를 맹렬하게 헤엄치며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그 광경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자신들은 못해도 2만 이상의 대군세를 동원해서 대대적인 침공을 가하고 있는데, 어떠한 이유나 원대한 목적도 없이 그저 살아 있는 인간의 생살을 탐하기 위해 이 척박한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는 좀비들이 가볍게 수십만이라니.

그것은 너무나도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수의 폭력이었다.

“캬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이 개새끼가!”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이성적인 인간들도 그 수가 너무 많으면 압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기에, 역설적으로 인간은 아무리 급해도 빠르고 격하게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좀비들은 개의치 않는다. 앞서가던 놈이 뒤처진 놈들보다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후발주자들이 망설임 없이 짓밟고 깔아뭉개며 앞으로 나아가니까.

인간의 신선한 피륙을 한 점이라도 더 뜯어먹기 위해서는 이 죽음의 레이스를 먼저 주파하는 놈이 곧 승리자인 법.

타타타타! 투앙! 투아아아앙!

총알이 여름 장마철 폭우처럼 줄기차게 쏟아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망설이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깟 맛대가리 없고 영양가도 없는 납탄 좀 몸에 박혔다고 죽는 것도 아닐뿐더러, 치악력만 멀쩡하게 살아 있다면 어떻게든 인간을 물어뜯을 수 있다.

“히이이익! 놈들이 대체 얼마나 몰려든 거야!”

“쏴! 더 쏘라고! 박격포든 기관총이든 있는 대로 다 쏟아부어! 어차피 부족한 물자는 대한제국파에서 다시 보급해 줄 거다!”

“물자가 부족하다면 상점창에서 웃돈 주고 구입해서라도 전선을 유지해라! 우리만 이 상황을 겪는 건 아닐 터다! 분명 저 버러지들도 지금쯤 정신없이 당하고 있겠지! 여기서 버티기만 하면 우리가 이기는 거다!”

“나, 난 안 돼! 여긴 이미 글렀어!”

“도망치지 마, 이 새끼야! 적전 도주는 즉결 처분이라는 단장님께서 정한 계율을 어길 셈…… 컥?!”

“그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

와장창! 끼이이이이이이 쿵!

설탕으로 만든 영화 소품처럼 강화 유리가 터져 나가고, 벽을 보강하기 위해 쌓아 두었던 바리케이드가 반대쪽에서 밀어붙이는 압도적인 힘을 버티지 못해 안쪽으로 무너진다.

좀비, 좀비, 그리고 좀비.

마이클 잭슨이 다시 부활해서 콘서트를 연다고 해도 인파가 이보다 더 많이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

저지선이 순차적으로 허무하게 무너지자 결국 필드에 나가 있던 장갑차가 급하게 복귀해 좀비들을 밀어 버리고 기관총을 마구 난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기껏해야 수백 마리의 좀비들을 처리한 것 정도로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장갑차는 만능이 아니었다.

우지직! 끼이이이이!

삽시간에 장갑차를 둘러싼 좀비들이 제한 없는 악력과 근력을 이용해 장갑차의 장갑을 마구 두들긴 결과, 마치 어린아이가 찰흙 놀이를 한 것처럼 마구 찌그러지고 뜯겨 나가서 원형을 알아볼 수도 없게 되었다.

장갑차 안에 있던 운전수와 사수들은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갈기갈기 찢겨 거대한 육벽 속에 흡수되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보다 죽음이 더 빨랐던 것이다.

쉬이이이익! 펑! 꽈아아앙!

이따금 꿈틀대는 거대한 육벽 사이로 박격포나 유탄이 파고들어 폭발했지만, 육편이 조금 튀어 오르는 선에서 그쳤다.

그것은 거대한 호수 위에 조약돌을 열심히 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문명의 상징은 한때 인간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이자 든든한 일터였으나, 변이 단백질과 바이러스로 이루어진 호전적인 괴생물체 앞에서는 한낱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구……!

지진이 일어나기라도 한 양 건물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린다.

대한민국의 모든 부와 기술이 집약되어 있던 서울과는 달리 경북과 강원도의 경계에 자리 잡은 중소 도시와 마을의 건물들은 너무나도 빈약했기 때문에.

부둣가 근처에 방파제용으로 얼기설기 쌓아 놓은 테트라포드조차 매년 태풍이 밀어닥칠 때면 제 역할을 다하거늘, 인간이 제 터전을 위해 열심히 쌓아 올린 건물들은 너무나도 쉽게 제 기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존 본능은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좀비들의 탐욕스러운 호전성의 근간에는 끝이 없는 식욕이 자리하고 있지만, 인간은 생존 하나를 위해 다른 욕구들은 과감하게 포기할 정도로 삶에 집착적인 동물이다.

각기 다른 욕구가 맞부딪치며 새로운 결과를 창조해 내는 것, 그것 역시 두말할 것 없는 투쟁.

하지만 투쟁이란 것도 ‘해 볼 만하다’의 선을 벗어나면 그것은 더 이상 투쟁이 아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일 뿐.

“꺼흑, 그륵…… 그으으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아아!”

“노, 놈들이 더 밀려온다! 왜 수가 줄어들질 않는……!”

각성자가 좀비를 사냥하면 각성자는 레벨 업을 한다.

경험치를 얻고, DNA 샘플을 얻고, 운이 좋으면 특전 스킬이나 특성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불공평하지.

따라서 좀비도 인간을 사냥할수록 성장한다.

경험을 쌓고, 추가적인 변이가 일어나고, 이윽고 고도화된 지능이 발달한다.

강해지는 놈은 더 강해지고, 그 강함을 따라잡지 못하는 놈들은 점점 더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냉혹한 생존 게임.

눈앞에서 각성자의 피륙을 가장 많이 뜯어먹은 놈이 순식간에 변이하고, 이윽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일반적인 총탄이나 칼날 따위는 더 이상 박히지 않게 된다.

어느 정도 성장한 각성자가 일반 좀비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듯이, 변이에 변이를 거듭한 변종 좀비도 어지간한 수준의 각성자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게 되는 것은 이 새로운 시대의 ‘상식’.

자신들이 압도적인 강자이자 이 새로운 시대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머저리들이 공포에 질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 아, 아!”

각성자의 머리를 몇 개나 뜯어서 집어삼킨 것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육벽 속에서 홀로 고고하게 변이한 변종이 제 목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파도처럼 철썩이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이탈한 변종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인간들의 저지선에 난입했다.

그런 변종이 하나, 열, 백, 종국에는 천. 어쩌면 만.

일반 좀비가 일반인을 천 단위 이상 뜯어먹어야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을 만한 변이의 영역을 단숨에 앞당겨 준 각성자들은 이제 사냥꾼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이, 이이 괴물 새끼가……!”

퍼엉!

인간의 머리가 터진 건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물풍선이 터진 건지 알 수 없는 소음이 시끄러운 총성과 비명 틈새를 비집으며 퍼져 나갔다.

변종을 향해 달려들었던 인간은 착즙기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진 과일처럼 머리통이 쪼그라든 채, 안에 들어 있던 모든 내용물을 사방팔방으로 분출했다.

그저 좀비가 움켜쥐고, 힘을 줬을 뿐인데.

거기에 차이점은 변종이냐 아니냐 뿐이었을 텐데.

지배적 포지션이었을 인간이 단숨에 지배당하는 포지션으로 격하되었을 때, 주변으로 전염된 공포는 그 어떤 좀비 바이러스보다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주, 죽여!”

“아니! 여기서는 후퇴해야……!”

“사방이 좀비인데 어디로! 그보다 지원 요청을 했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데?!”

타다다다다! 타닷! 틱! 틱! 탕! 탕! 틱!

“아아아아아아아!”

“악! 잠깐! 내가 잘못했……!”

“안 돼! 안 대끄으으으!”

미리 대비한 쪽과 대비하지 않은 쪽의 결말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 * *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아이템을 투입하고, 죽음을 각오한 이들의 희생을 동반한 끝에 필사적으로 벌인 좀비와의 사투는 간신히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놈들을 저지하기 위해 ATX를 길게 늘어뜨려 저지선을 수백 미터가량 늘렸으며, 그 저지선에 2천 명가량의 배테랑 각성자들을 투입해 악착같이 몰려드는 좀비들을 도륙했다.

경험치를 얻어서 레벨 업을 하면 곧바로 스킬에 투자하고, DNA 샘플을 얻으면 즉시 상점창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해서 사용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악으로 깡으로!

이것은 우리만 살아남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적들과 싸울 수 있도록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끝에 쟁취한 승리였다.

“후욱, 후욱…… 쿨럭!”

이 격전이 몇 시간이나 이어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ATX의 내구도가 끝내 50% 이하로 떨어져 자가 수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그저 미친 듯이 좀비들을 도륙하기만 했으니 시간 감각이 사라질 만도 했다.

그러던 차에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남은 것은 딱 2개였다.

살아남은 각성자, 좀비들과 함께 소멸할 예정인 각성자.

좀비와의 격전에서 부상자 개념은 없다. 좀비에게 상처 입으면 특수한 스킬이나 매우 희귀한 아이템으로 감염을 치유, 예방하지 않는 한 좀비로 변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상 사망자 처리 된다.

당연하게도 감염에서 벗어날 수단이 없는 각성자의 절대다수는 부상을 입자마자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을 인지하고 주변의 각성자 동료에게 자신의 머리를 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가진 경험치를 좀비에게 넘기는 것은 매우 아깝고 위험한 일이니까.

전투가 끝난 뒤에 내 주변으로 천천히 모여드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어 보니 그래도 얼추 절반 이상은 살아남은 것 같았다.

이것도 틈틈이 후방에 포격 지원을 요청하고, 모든 각성자들이 능력과 아이템의 사용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스로 만들어 낸 결과였다. 내 경우에는 영역 지정을 제외하면 정말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아마 영역 지정을 했다고 해도 오래 못 버텼겠지.’

그만한 수의 좀비들을 ‘잠깐’ 멈추기 위해 필드를 영역 지정했다고 해도 아마 1분이나 버텼으면 다행이었을 거다. 애초에 이런 작은 지방 도시에 영역으로 지정할 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었다.

그래서 3일이라는 쿨타임이 있는 영역 지정을 그렇게 허무하게 날리는 것이 이 전쟁에서 더 많은 희생자를 낳을 것이라고 판단해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 시답잖은 변명을 속으로 되뇌면서, 이미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 ATX에서 걸어 나오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뜨겁게 달아오른 신체를 조금씩 식혀 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곳에서는 인간들끼리 총탄을 주고받고 있거나 우리처럼 초대형 웨이브에 이끌린 좀비 떼와 격전을 벌이고 있겠지.

이북 땅에서 북한군과 일주일 내내 드잡이질을 할 때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나도 슬슬 나이를 먹었는지 비가 내리기 전의 노인처럼 뼈마디 곳곳이 쑤신다.

‘아니, 나 아직 20대 아니었나?’

으드득!

문자 그대로 산처럼 쌓인 좀비들의 시체가 서서히 소멸하는 광경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아직 소멸하지 않은 각성자들의 유해를 한데 모아 약식으로 장례를 준비했다.

이미 사망한 각성자들의 경험치와 아이템은 모두 다른 동료들이 회수했지만, 그래도 시스템이 그들의 유해를 덧없이 소멸시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배웅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유해 위에 장작을 쌓고, 기름을 붓고, 불태운다.

어디서 보고 배운 건 있는지 몇몇 각성자들이 하늘을 향해 총을 몇 발 쐈다. 더 이상 이곳으로 몰려들 좀비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제지하지는 않았다.

“개또라이. 긴급 연락이다.”

“……하루라도 좀 원 없이 쉬었으면 좋겠다.”

내가 불평을 하든 말든, 우리 못지않게 격전을 치른 기색이 역력한 이기열이 무전기를 냅다 들이밀었다.

이기열은 적들이 광역 재밍으로 차단하고 있는 지역의 아군과는 연락할 수 없다고 했지만, 대신 더 먼 곳에 있는 다른 아군과 연락할 수 있게끔 내 무전기를 스킬로 개조해 주었다.

덕분에 이렇게 피곤함을 인공위성이나 송신탑의 도움 없이 다이렉트로 바다 한복판에 떠 있는 미군과 연락할 수 있는 것이고.

“이승권입니다.”

-우리 군이 강릉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확인했는데,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연락했습니다.

싸움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전장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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