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218)화 (218/227)

218화 북진기 (18)

무전이 빗발치고 총구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각 지역에 배치된 아군 부대 간의 거리가 제법 되었음에도 시끄러운 포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지금 아군 중에 전투 상황이 아닌 부대가 없을 만큼 경북과 강원도의 경계는 혼돈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인간들만의 전쟁이었다면 우리는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고, 이왕 죽을 인간이라면 확실한 명분을 내세워서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

4~5만에 육박하는 대병력이 시가지, 평원, 산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고 한들 그 동족상잔의 비극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저 범죄자 집단이나 우리 생존자 집단이나 각자의 목적은 다를지언정, ‘속전속결로 이 전쟁을 끝내자’는 마음 하나만큼은 서로 통하고 있었기에.

놈들은 더 많은 경험치와 DNA 샘플을 원하고, 우리는 포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양측은 단 한 번의 충돌에 모든 것을 건다.

상대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내기 위해서 총을 난사하고, 흉기로 난자하고, 능력으로 분쇄한다.

다들 이 한겨울에 벌어진 전쟁이 짜증 나고 귀찮아서, 그러면서도 막상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임을 알기 때문에 필사적인 것이다.

당연하지만 인간들이 동족상잔 대축제를 벌인다는 소식을 접한 좀비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아아아아아아!”

“이런 씨발!”

으적!

더러운 체액을 질질 흘리면서 입을 쩍 벌린 채 몸을 내던진 좀비가 소총의 튼튼한 개머리판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었다.

우회 기동하여 후방 침투를 노리고자 했던 적들의 얍삽하고 구린내 풀풀 풍기는 별동대는 이미 처리했다.

다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차단 작전’에 투입된 아군 별동대는 자연스럽게 좀비 대응군 좌익과 합류한 것이 현 상황이다.

“사람보다 좀비가 더 많네. 퉤!”

입속에서 굴러다니는 까끌까끌한 흙먼지를 침과 함께 뱉어 낸 최묵호가 평소처럼 불만을 늘어놓았다.

내가 직접 선별한 각성자 유격대는 배테랑 각성자들 중에서도 난다 긴다 하는 ‘사냥’의 프로들뿐이라 당연히 전장에서의 수요도 남달랐다.

웹 소설에서 흔히 괴물들 뚝배기 깨고 다니는 직업 사냥꾼, 즉 헌터라고 불러도 될 인재들만 모아 놨으니 이놈 죽여 주십쇼, 저놈 죽여 주십쇼 하는 지원 요청들이 곳곳에서 쇄도했다.

각성자 유격대는 모두 내가 별도로 계약금 및 수당을 지불한 것은 물론, 향후 내가 운영하는 영역 내에서 더 큰 혜택을 주겠노라 약속했기 때문에 다들 쉬지도 못하고 싸우고 있다.

확실한 명분과 제대로 된 지원으로도 움직이기 힘든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있으니 대가가 큰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타앙!

“불평한다고 좀비들이 고분고분 물러나 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저놈들은 한 번 어그로가 끌리면 어그로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 놈들이니.”

“그래서 좆같다는 겁니다. 악에 받친 테러리스트나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들도 저놈들에 비하면 한 수 접어야 할 겁니다.”

한동석의 지적도 타당하고 최묵호의 불평도 이해는 된다.

실제로 좀비들은 개체의 강함이나 지능의 여부를 떠나 그냥 귀찮고 좆같은 놈들이다.

반드시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상황이 끝날 만큼 악착같이 달려드는 점, 조금의 실수라도 허용하면 새로운 감염자가 생겨서 전선이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점, 무엇보다 인간과 달리 놈들은 절대로 지치지도 않고 겁먹지도 않는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나는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총열을 통째로 교체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중기관총을 인벤토리에 수납하고, 그대신 영주의 중심지를 가로지르는 선로에 ATX를 불러들였다.

우리가 방어선을 구축한 사이에 무사히 도착한 ATX들은 새로운 방어선이 되어 주었는데,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인간들에게는 훌륭한 쉼터이자 피난처이기도 했다.

“1차 방어선은 이쯤 하면 됐고, 2차 방어선으로 후퇴한다!”

“2차 방어선으로 후퇴! 2차 방어선으로 후퇴!”

“차례차례 엄호하면서 빠져! 한 번에 다 빠지면 후퇴하다 죽는다!”

선로에 쭉 늘어선 ATX들이 이윽고 모든 객실 문을 개방하자, 내 신호에 맞춰 1차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던 아군이 ATX 안으로 차례차례 후퇴했다.

마지막 인간들까지 모두 ATX 안으로 대피하자 객실 문이 굳게 닫히고, ATX의 자체적인 방어 수단인 화염 방사기와 거치형 기관총, 그리고 자주 박격포가 맹렬하게 불을 뿜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전부 막을 수 없을 만큼 외부 지역에서 몰려든 좀비들의 수는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병력과 물자 수송에 써야 하는 ATX까지 급하게 끌어다 써야 할 지경이었다.

“ATX의 자체 방어 수단으로 좀비들을 저지하고 있는 사이에 재정비한다! 탄약부터 우선적으로 보급하고, 미리미리 수분과 열량을 보충해 둬라!”

ATX는 특수 이동형 거점 취급이었기 때문에 거점 공유 스킬의 영향을 받는다.

덕분에 거점 창고에 그득하게 쌓여 있는 보급 물자들을 즉시 꺼내서 각 인원에게 배급했다.

일반인은 보통 전쟁 중에 군인이 언제 먹고 언제 싸고 언제 잠을 자는지 잘 모를 텐데, 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사실 그리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겠다.

그냥 틈틈이 먹어 두고, 틈틈이 싸고, 틈틈이 잔다.

거짓말 같은가? 전쟁에는 정해진 휴식 시간이나 작전 타임 같은 게 없다.

먹지 않아서 싸울 힘을 비축하지 못한 것도 본인의 책임, 싸지 않아서 거동이 불편한 것도 본인의 책임, 잠을 자지 못해서 꾸벅꾸벅 졸다가 머리통 날아가는 것도 본인의 책임이다.

인간이 24시간 365일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계나 좀비가 아닌 이상 제아무리 총탄이 빗발치고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이라고 해도 어쨌든 생리 활동은 해야 하는 법이기에, 나는 버럭버럭 악을 쓰면서 아군의 입에 스포츠 음료와 고열량 에너지를 밀어 넣었다.

“처먹으면서 들어라!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는 속 편하게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그러니 똥 기저귀 필요한 놈은 지금 말해라. 성인용 대형 기저귀는 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무제한으로 지급될 예정이니까 사양할 필요는 없다.’

급박한 상황에선 혈관이 수축되고 장기가 엄청나게 압박을 받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배변 활동을 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나올 것이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데 신경을 집중하느라 괄약근 조일 힘이 없어서 새어 나오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다 큰 어른이 똥 기저귀 차고 싸운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전투 중에 컨디션 체크는 필수다. 자기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별하는 것은 어려우니 서로서로 옆의 동료를 틈틈이 살펴 줘라. 전투 중에 정말 위험한 건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아군보다, 아군의 할 일을 늘리는 고문관이라는 걸 잊지 마라.”

컨디션이 나빠서, 아직 경험이 미숙해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엔 언제든지 후방으로 물리거나 다른 형태로 아군을 보조하도록 역할을 조정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해서, 혹은 쓸데없이 고집을 피워서 잘 싸우는 아군을 방해하기라도 하면 작게는 전투의 흐름이 깨지고, 크게는 전선 전체가 박살 날 수도 있다.

그건 폭탄 조끼를 껴입은 채 다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나 다름없다.

“아군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최소한 방해가 되지 않게끔 해라.”

나는 MZ 세대 특유의 젊은 꼰대라도 된 양, 전쟁 경험자이자 선배로서 군인들에게 훈계 아닌 훈계를 늘어놓는 한편, 거점창으로 ATX에 탑재된 무기들의 탄약과 내구도를 틈틈이 체크했다.

지진이 일어난 일본의 해안가로 밀려오는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좀비 대군을 상대로 ATX들이 확보한 시간은 기껏해야 15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15분이면 이 숙련된 각성자들이 수분과 열량 보충, 탄약 재보급 및 장비의 내구도 점검까지 모두 끝내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다.

카운트를 세기 시작한 나는 다시 인간들의 힘으로 방어선을 형성해야 하는 타이밍을 알렸다.

“셋, 둘, 하나, 지금!”

방탄유리로 된 객실의 모든 창문이 일제히 열리고, 자기 방위 능력을 상실한 ATX의 튼튼한 동체를 벙커 삼아 내부에서 총을 쏴 갈겼다.

드다다다다다다다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시끄러운 총성이 ATX 객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창가에 기대선 군인들의 발치에 탄피가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1선이 탄약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즉시 2선의 인원들이 그들과 교체하며 새로운 화망을 형성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소총탄만 해도 족히 1만 발은 가볍게 넘을 것 같은데,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좀비 놈들은 팔다리가 날아가고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와중에도 죽음의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하기야 머리가 날아가지 않으면 절대로 죽지 않는 놈들이니, 오히려 소총탄처럼 관통력이 높고 저지력이 약할수록 가성비가 떨어지겠지.

끄그그그그그그극!

총을 이렇게 열심히 쏘는데도 기어코 좀비들이 물량으로 선로 위에 길게 늘어선 ATX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일반 기차와 달리 ATX는 시스템에 속한 특수 거점이라 전복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ATX 동체에 가해지는 좀비들의 순수한 질량 압박만으로도 내구도가 쭉쭉 깎이고 있었다.

내구도가 50% 이상 남아 있다면 어떤 아이템이나 거점이라고 해도 자동 수복이 가능하지만, 50% 이하로 떨어지면 수리킷이나 수리 스킬을 사용해서 특수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기서 ATX를 잃는 건 크나큰 손해다.’

ATX를 잃는 것으로만 끝날까? 이 지역 전체를 방어하고 있는 좀비 대응군과 별동대마저 위태로워진다.

“좆같은 좀비 새끼들!”

이쯤 되면 놈들에게 김해 군주 이승권의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특수한 재능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의심까지 든다.

당장 이곳에 몰려든 좀비들의 수만 해도 가볍게 만 단위를 넘고 있으니, 2천 명이 채 안 되는 군인들로 막기에는 너무나도 많다. 심지어 이게 ‘1차’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

그래도 가능성이 없는 싸움은 아니다. 처음부터 질 싸움이었다면 아예 모든 아군 병력을 이끌고 크게 후퇴해서 이 똥을 저 범죄자 집단에게 죄다 떠넘겼겠지.

물론 지금 우리만큼이나 저 범죄자 집단 역시 갑작스럽게 난입한 금발 태닝 양아치 좀비 떼에게 앞뒤로 농락당하고 있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좀비들을 사냥하지 않고 우리만 쏙 빠지는 건 좀비들의 머릿수만 더 늘려 주는 꼴이니까, 나중에 더 큰 화를 입기 싫으면 지금 이곳에서 끝장을 내야 한다.

‘반대로 저 범죄자 놈들은 당장이라도 우리에게 좀비들의 어그로를 떠넘기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실제로 그럴 수는 없겠지.’

이 전쟁을 위해 양측 세력은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힘을 긁어모았다. 이대로 어처구니없이 후퇴하는 건 불가능하다.

탕! 탕!

권총을 뽑아 객실 창문 안으로 얼굴부터 들이밀고 보는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고, 나는 지금도 밤낮으로 쉬지 않고 생산되고 있을 군수 공장의 결과물을 확인했다.

1차로 납품된 물자는 거의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2차 납품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인데, 때마침 거점 창고로 갓 생산된 따끈따끈한 신품이 입고되었다.

인간들과의 전투는 대구 측 군대에 일임한 지 오래였기 때문에 내가 우선적으로 요청한 물자는 당연하게도 대좀비용 장비였다.

“아, 샷건. 너도나도 함께 쏘면 훌륭한 대화 수단이지.”

1선에서 다시 2선으로 물러난 이들에게 소총 대신 드럼 탄창이 탑재된 12게이지 반자동 샷건을 1정씩 지급했다.

샷건은 소총과 반대로 관통력이 낮지만, 저지력 하나는 탑 오브 탑.

찔끔찔끔 팔다리나 살점을 날려 버리는 소총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압도적인 청소 능력을 자랑한다.

“지금 총과 함께 지급해 준 산탄쉘은 모두 매그넘 벅샷이다. 기껏해야 오리 떼나 때려잡는 버드샷과는 위력 자체가 다르니까 반동 제어에 신경 쓰도록.”

샷건을 나눠 받은 이들은 저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곧 자신들의 애인과 다를 바 없는 소총을 버려 둔 채 새로운 사랑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좀비 떼를 향해 크고 아름다운 쇠구슬을 연사로 퍼부으며 환호성을 질렀다는 뜻이다.

쾅! 쾅! 쾅! 쾅! 쾅!

기관총보다 더 확실한 처리 능력에 전신이 갈기갈기 찢기고 터져 나간 좀비들이 순식간에 ATX로부터 밀려나며 한 줌의 경험치와 DNA 샘플로 산화했다.

언제나 최후의 역전승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한화 팬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 싸움, 아칰모른닭.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