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북진기 (11)
“가스! 가스! 가스!”
“왜 좀비가 이런 텅 빈 도시에……!”
“저 형광색 연기는 또 뭐야?!”
“닥치고 일단 방독면부터 써!”
각 전투 부대에 방독면을 착용하라는 무전이 전해지고,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형광색 연기를 내뿜는 이질적인 좀비를 포착한 군인들은 다급히 방독면을 꺼내 썼다.
한국군은 병적일 정도로 화력에 집착하는 변태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방독면에도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한국군이 훈련하는 영상이나 사진을 본 외국인이 ‘너희 한국군은 왜 허리춤에 이상한 파우치를 달고 다니는 거냐?’ 하고 질문할 정도다. 그 파우치가 바로 방독면 파우치다.
그래서인지 다들 총기 수입 하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개인 장구류에서 방독면을 꺼내 착용했다.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불법 무기와 마약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좀비까지 사용하는 미친놈들이었기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개인 장구류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급한 것이 바로 방독면과 정화통이었다.
총알 한 발 맞으면 너도나도 죽는 건 똑같은데, 하물며 생화학전에 대비하지 않았다가 군인들이 허무하게 떼죽음당하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이상한 좀비가 내뿜는 연기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저것들은 김해에서 목격된 폭발형 좀비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폭발형 좀비는 다른 좀비와 함께 돌아다니며 독무를 흩뿌리거나, 일정 수준의 충격을 받는 것으로 막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통에 상당히 귀찮은 놈이었다.
김해를 청소하면서 어깨에서 가시 뼈 같은 것을 쏘아 대는 원거리 공격형 좀비와 함께 씨를 말렸다고 생각했는데, 폭발형 좀비와 흡사한 개체를 이곳에서 또 마주할 줄이야.
“우리가 직접 가서 처리해요?”
한동석의 도움을 받아 방독면을 착용한 진가희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 후욱후욱 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걸 보니 사람이 아니라 좀비를 한바탕 썰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이번에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김새를 봐. 딱 봐도 변종이잖아. 게다가 화물 열차에 가득 실린 채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도심 한복판에서 풀려났어. 대놓고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데 굳이 미끼를 물어 줄 이유가 없지.”
내가 드라마를 좀 본 방구석 전문가라서 잘 아는데, 범죄 조직 입장에서 이 상황을 설명하자면 일종의 ‘던지기’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범죄 조직이 라이벌 세력을 조지기 위해 마약 덩어리를 대놓고 업장에 던져 두고 튀는 것처럼, 지금 우리도 상대가 끼얹은 똥물을 뒤집어쓴 상황이다.
“근접 특화 인원은 뒤로 빠지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인원만 대응한다.”
타타타타!
간단한 지시 사항을 전달한 나는 다시 소총의 개머리판을 단단히 견착하고서 시원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반동으로 총신이 크게 흔들렸지만 이미 총구를 벗어난 탄환은 신기하리만치 백발백중으로 불청객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하지만 전복된 화물 열차는 못해도 10량은 넘어 보였다. 각 화물칸의 헐거워진 문짝을 깨부수고 튀어나온 좀비들은 소수의 군인들이 대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세를 불렸다.
게다가 일정 수준의 충격만 줘도 물풍선처럼 펑펑 터지던 폭발형 좀비와는 확연히 달랐다.
폭발형 좀비는 움직임도 느리고 신체 내구도 역시 형편없어 처리가 손쉬웠지만, 지금 우리 앞에 당도한 놈들은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
“아윽! 끄륵! 크으으으으응!”
타타타타타타!
“막아, 씨발!”
“다른 구역으로 빠진 애들 전부 불러들여! 이거 못 막으면 도시 밖으로 쏟아져 나간다!”
“스킬과 개인 아이템 아끼지 마! 어차피 전쟁 끝나면 상층부에서 확실하게 보상해 주기로 했다!”
싸울 의지가 있고 명분도 있는 군인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나와 한동석을 비롯해 각성자 유격대 소속 인원들이 먼저 저지선을 구축하자 군인들도 하나둘 들러붙어서 화망을 형성했다.
반쯤 장난스럽게 이 도시에 틀어박혀 있던 적들을 사냥하던 것과 달리, 대구에서 숱하게 겪은 좀비 웨이브로 단련된 대응 능력이 빛을 발했다.
그럼에도 화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공장에서 생산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분대 지원 화기를 거점 창고에서 꺼내 뿌렸다.
“각 분대마다 기관총 한 정씩 받아 가! 탄통은 밑에 있으니 알아서 가져가고!”
인벤토리에 꺼낸 추가 보급 물자를 내 주변에 막 쏟아 내며 윽박지르니 몇몇 군인들이 총알 같은 움직임으로 튀어나와 무기와 탄약을 받아 갔다.
마치 행정반에서 훅훅! 마이크에 입김을 불며 작업 인원을 호출하자 자동 반사로 튀어 나가는 아쎄이들 같았다.
평시였다면 저 빠릿빠릿한 움직임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겠으나, 아군의 화력이 거세질수록 좀비 떼 사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무심코 욕이 흘러나왔다.
‘폭발형 좀비처럼 폭발하지는 않지만, 놈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체액이 주변을 오염시키는 건 물론이고, 연기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폭발형 좀비와는 용도 자체가 다른 건가?’
폭발형 좀비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지역 전체를 오염시키고, 생존자에게 숨을 곳을 주지 않는 짜증 나는 놈이다. 또 집단으로 덤벼들면 콘크리트로 보강한 바리케이드나 건물 벽도 우습게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좀비계의 공성 폭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놈들은?
‘철저하게 난전을 위해 준비된 놈들이다. 폭발형 좀비는 자력으로 인간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반면 저놈들은 인간들의 화망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 만한 저력이 있어!’
실제로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우리는 놈들의 놀라운 신체 내구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밤마다 대구 북부 외곽을 괴롭혔던 짐승형 변종보다는 못하지만 총알 한두 발에 사지가 날아가고 머리통이 박살 나는 일반 좀비보다는 확실히 튼튼했다.
놈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 줄 만큼 애착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하이브리드 개체라는 명칭이 어울리겠지.
일반 좀비보다 튼튼한 신체와 날렵한 몸놀림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인간에게 근접한 상태에서 상처를 입거나 사망하면 오염 물질을 내뿜어 추가 피해를 입히는 악랄한 타입.
자연 생태계에서 발생한 유행병 바이러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저열한 악의가 느껴진다.
“폭발물 사용은 자제해라! 놈들이 방출하는 오염 물질이 과하게 퍼지면 안 돼!”
안 그래도 겨울이라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 폭발물로 싹 날려 버리면 오염 물질이 어디까지 날아갈지, 그걸 전부 처리할 수 있을지 나도 장담할 수 없다.
틱틱!
탄창이 비어 공이가 헛치는 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새로운 탄창을 결합해서 다시 꺼낸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화물 열차 속에서 좀비들이 끊임없이 기어 나오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로 폭격을 때려 박고 싶은데 섣불리 그럴 수 없는 게 못내 아쉬웠다.
“끄으으으으으!”
그때, 기어코 화망을 뚫고 튀어나온 좀비 하나가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형광색 오염 물질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었다.
“어딜, 개새끼가!”
투캉!
근접전 전문인 최묵호가 재빨리 샷건을 쏴서 놈을 도로 되돌려보냈다.
산탄에 맞아 나가떨어진 놈이 주변에 막대한 양의 살점과 피를 흩뿌리며 도로를 마구 더럽혔다. 치이이익, 하고 희미하게 타오르는 걸 보니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그 광경을 본 근접 특화 각성자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한층 더 긴장했다.
놈들의 접근을 허용하면 좋든 싫든 자신들도 싸워야 하는데, 저런 놈들과 근접 전투를 하면 싫어도 옷이나 장비에 피가 튈 것이다.
최악의 경우 살갗에 닿은 것만으로도 어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감염은 둘째치고, 살이 녹아내린다거나 시스템적인 디버프 효과를 받게 되면 근접 특화 각성자들은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것 자체는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전선이 하나둘씩 뚫리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이유는 원래 그런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저런 오염 물질에도 대응할 수 있는 방호복이나 아이템, 아니면 그런 스킬을 보유한 각성자를 찾아봐야겠군.’
전쟁을 시작한 시점에서 전투원의 희생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지만, 그걸 용납하고 말고의 문제는 내가 정한다.
타타타타! 타타타!
“밀어붙여! 놈들의 머릿수보다 우리 총알이 더 많다는 걸 보여 줘라!”
그래, 전장에서 죽고 살고의 문제는 결국 자신의 탄창 안에 총알 한 발이 남았느냐가 결정한다. 그리고 나는 총알이 많다. 너무 많아서 이걸로 엿 좀 바꿔 먹어도 티가 안 날 만큼.
“씨발, 내가 람보다!”
힘 좋은 각성자 군인이 내가 지급해 준 기관총을 들고 미친 듯이 총구를 달군다. 그 옆에 선 부사수가 탄통의 탄이 바닥나면 즉시 새로운 탄통으로 교체하는 환상적인 합을 보여 주었다.
그의 발밑에 무수한 탄피가 쌓이는 만큼 좀비들의 시체도 빠르게 산을 형성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마구 밀어내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십수 미터는 뒤로 물러난 지 오래였다.
총을 쏘면서도 본능적으로 거리를 조금씩 벌린 이유는 놈들에게서 흘러나온 기분 나쁜 연기가 점점 바람을 타고 우리 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로는 괜찮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몸은 본능적으로 저 연기와 가까워지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예정보다 훨씬 더 빨리 본대를 위로 끌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방독면의 좁은 렌즈 너머로 악에 받쳐 달려드는 좀비들의 최후를 확인했다.
저 좀비들의 본래 용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허무하게 막히도록 가볍게 던진 미끼 같은 것이 아니었을 거다. 아마 태백에서 진출한 지원 병력이 우리의 뒤를 치는 타이밍에 맞춰 좀비들을 이 작은 도시에 풀어 놓을 생각이었겠지.
열차는 버림패용 기관사 한 명만 있으면 어떻게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니까.
태백에서 진출한 지원 병력의 발목을 붙들어 두지 않았다면 이 도시에서 전멸하는 건 놈들이 아니라 우리였을 거란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놈들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자신들의 본대가 강원도, 경북 경계까지 내려올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는 거다.’
전쟁에서 선공권을 가져가는 건 확실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저쪽이 먼저 선을 넘겠다면 우리도 굳이 봐줄 필요는 없겠지.
나는 방아쇠를 당기면서 곁눈질로 거점창을 확인했다.
대구에서 막 출발한 ATX들의 위치가 점점 최전선과 가까워지고 있다. ATX가 움직이고 있으니 당연히 지상 병력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움직이고 있을 터.
즉 본대가 올라오고 있다.
신해룡이 나와의 약속을 어떻게든 지켰다는 사실에 희미한 미소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거의 다 끝났다! 놈들을 처리하고 뒤는 후속 부대에 맡기면 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뜨끈한 국밥 한 그릇씩 조지고 쉬어야지!”
“국밥! 국밥! 국밥!”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 한 그릇이면 좀비가 몇 마리냐!”
연이은 전투에 시달린 선봉대와 선행 부대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눈앞의 숙제를 다 하지 않고 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들 국밥 한 그릇으로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내 무리한 요구에도 묵묵히 따라 주었다.
탕!
끝내 마지막 좀비가 화망을 돌파하기 위해, 지독하리만치 체액과 비명을 흩뿌리며 쓰러진 것은 저지선과 불과 5m 떨어진 장소였다.
좀비도, 인간도, 궁극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끝일 리가 없다. 놈들이 준비해 둔 수는 더 있겠지. 야생 좀비를 더 끌어들이든,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른 좀비를 내보내든, 필시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선을 가볍게 넘나들 것이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총열을 겨울바람에 식히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좀비와 인간을 죽여야 하는지 가늠을 해 보았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