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210)화 (210/227)

210화 북진기 (10)

다다다다다! 드르르르륵! 탕! 탕!

“저기다! 건물 안에 숨어 있다!”

“저 개새끼들한테 한 방 먹여 줘!”

꽈아아아앙!

한 각성자 군인이 쏜 무반동총이 그대로 상가 건물을 타격하자 벽과 유리창이 터지며 먼지와 함께 육편이 튀어 올랐다.

90mm 고폭탄두의 위력은 박격포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기에, 별도의 방폭, 방편 처리가 되지 않은 엄폐물 뒤의 적을 다진 고기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영주는 본래 인구가 10만 언저리에서 놀고 있던 가장 작은 규모의 도시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나름 도시다운 시가지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릴라전이 특기인 헬조선 단원들이 필사적으로 숨어들었다.

문제는 숨어든 것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시가지 전체를 압도적으로 쓸어버릴 수 있는 규모의 적이 몰려오면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평범한 군인이 아니라, 무려 3개월이라는 실전 압축 살육전을 거쳐 온 각성자 군인들이라면 더더욱.

대구 출신 각성자 군인들은 좀비 사태 초기에 수도권에서부터 대구로 도망쳐 오는 동안 수많은 각성 범죄자와 좀비들과 사투를 벌여 왔다. 그들이 쌓아 온 시가전, 야전, 난전 경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

그런 이들을 상대로 기껏해야 1개 중대 규모에 불과한 선봉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 뒤져, 개새끼들아!”

타타타타타!

헬조선 단원 대부분은 불법적으로 생산한 각성제를 본인의 허벅지에 꽂고, 불법적으로 개조한 AK 소총을 들고 미친 듯이 쏴 갈기며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대한민국이 2차 남북 전쟁으로 혼란한 틈을 타 빨갱이들과 엮이며 군사 훈련을 받는 한편, 꾸준히 테러까지 자행해 왔던 그들 역시 실전 경험만큼은 풍부했다.

하지만 전쟁이란 결국 압도적인 수와 화력의 폭력으로 전세가 크게 기울어지는 법.

무능하지 않은 지휘관, 충분한 보급, 체계적인 지휘 계통과 작전을 양측 모두 보유하고 있다면 남은 것은 순수한 힘 대결뿐이다.

“누가 저 좆만한 새끼 대가리부터 따버려!”

콰앙!

대구 출신 군인 중 누군가가 거친 욕설을 내뱉기 무섭게 각성자의 위력적인 스킬이 날아들었다.

어둠 속에서 날아든 묵직한 철근이 AK를 갈기고 있던 헬조선 단원을 그대로 덮치고 건물 벽 일부를 무너뜨리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명분 없는 전쟁은 싸우는 이들을 모두 지치게 만들고 끊임없이 정신을 괴롭힌다.

하지만 명백하게 죽어 마땅한 악의 축이 꼴사납게 죽어 나자빠지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오히려 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가 있다.

착한 사람이 고통받으면 불쌍하고, 나쁜 사람이 고통받으면 통쾌한 것처럼.

물론 극단적인 흑백 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는 자칫 집단의 광기를 폭주시킬 위험이 있지만, 그것도 이미 방아쇠가 당겨진 시점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느 한쪽이 반드시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이라면,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조금 더 효율적인 살인 기계가 될 필요가 있으니까.

봉화에서 적 지원 병력의 발목을 붙들고 영주 공격군과 합류한 나는 이곳에서의 일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차라리 시가전이 아니라 야전에서 승부를 봤다면 일말의 승산이라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제 발로 무덤을 택했군.”

나는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와 불타고 있는 거리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시가전은 야전에 비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수십, 수백 배는 더 많아지니까 방어자가 유리한 건 맞다.

탁 트인 야전은 지붕이 없기 때문에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공격은 어쩔 도리가 없지만, 시가지에 존재하는 모든 건물은 방어자 입장에서 천연 요새이자 얼마든지 교체 가능한 방공호나 다름없었으니까.

현대의 우수한 콘크리트 공법으로 건설된 건물들을 보라. 자재와 기술력이 부족해서 건물도 대충 지은 북한과 다르게 한국 시가전은 지옥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다만 우리는 막강한 화력과 머릿수로 적들이 가진 지리적 이점을 찍어 누르며, 격렬한 시가전을 느긋한 소탕 작전으로 바꿔 버렸을 뿐이다.

평범한 군인들이었다면 건물 안에 숨어 있는 거동 수상자나 적들을 일일이 찾아내느라 애 좀 먹었겠지만, 각성자들은 그런 거 없다.

적이 숨어 있을 것 같으면 추적 스킬이나 감지 스킬을 사용하고, 신체 능력이나 무기 본연의 능력을 강화해서 그냥 밀어 버리면 그만이다.

오히려 시가지에 숨어든 놈들이 각개격파 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총과 스킬을 난사하면서 발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이런 시가지에서 앞뒤로 적을 맞이했다면 우리가 된통 당하긴 했을 겁니다.”

“그건 그렇죠.”

지금 이곳에 고립되어 각개격파 당하고 있는 놈들도 필시 태백에서 자신들을 돕기 위해 증원군을 보낼 거라고 확신했으니까 농성에 들어간 거지, 만약 우리 때문에 증원군이 어이없이 발목이 붙들리게 된다는 걸 알았다면 미련 없이 영주를 버리고 후퇴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발을 빼기엔 너무 늦었다.

영주에 고립된 놈들은 이제 퇴로 없는 이 작은 도시 내부에서 철저하게 학살당할 것이고, 괜히 어쭙잖게 아군을 돕기 위해 태백에서 진출한 적 증원군은 자신들이 계획했던 그대로 허를 찔리게 될 테니까.

타앙!

한동석이 무심한 표정으로 건물 옥상에서 옥상을 뛰어 도망치려던 적을 엽총으로 쏴서 떨궜다.

테러리스트 아니랄까 봐 자신이 준비한 폭약을 주변에 마구 흩뿌리며 아군의 포위망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던 놈은 저 멀리서 날아온 포격에 건물과 함께 분쇄되었다.

자신이 각성자니까 뭐라도 된 양 원맨쇼를 하는 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짓이 가능한 각성자는 의외로 많지 않다.

적어도 너는 아니다.

“싸움이 안 될 것 같으면 미련없이 후퇴하면 되는데 왜 죽을 자리에 고집스럽게 붙어 있는 걸까요?”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진가희의 질문은 실로 타당했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후퇴하면 되는데 어째서 후퇴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상층부의 명령이 우선이니까, 우리가 후퇴하면 다른 아군이 더 고생하거나 죽을 위험이 커지니까, 지금 이곳에서 후퇴하면 전술적 이점을 상실하고 전략적 측면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등등. 여러 답변들이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규군에 해당하는 상황이고, 놈들은 범죄자와 테러리스트, 사이비 광신도로 묶인 잡탕찌개 같은 무장 세력이다.

“지금껏 싸워 오면서 눈치챘겠지만, 놈들은 지휘 체계가 중구난방이야. 각기 다른 세력이 대등한 입장으로 협력할 경우 필연적으로 지휘에 문제가 생기거든. 우리 애들을 다른 세력의 인간이 지휘하게 둘 수 없다든가, 다른 세력의 작전을 우리가 곧이곧대로 따르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든가. 서로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고 또 얼마나 협조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으니까 내부에서 혼란이 발생하는 거지.”

“그게 후퇴하지 못하는 거랑 관련이 있어요?”

“후퇴라는 것도 그냥 도망친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야.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후퇴를 돕기 위해 엄호를 해 줘야 하고, 또 재빠른 후퇴를 하기 위해 퇴로를 확보하는 작업도 필요하지. 그런데 서로 소통도 제대로 안 되고, 지휘 체계도 엉망인 놈들이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꼬리에 불붙은 쥐새끼처럼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게 전부겠지.”

그리고 그런 놈들은 대부분 일망타진당하기 딱 좋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영주 내부의 광경에서 볼 수 있듯이, 호전성이 넘치는 헬조선 단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악으로 깡으로 싸우고 있다.

그런데 다른 놈들은 어떤가? 대한제국파의 범죄자들은 근본이 양아치 아니랄까 봐 저들만 살아남으려 도망치다가 픽픽 쓰러지고 있고, 새천년평화교의 사이비 광신도들은 아예 아군이 죽든 말든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개인행동을 하고 있다.

기껏해야 1개 중대 규모에 불과한 선봉대조차 저렇게 단합이 되지 않아 서로의 등에 칼을 박고 있는 마당에, 그보다 더한 규모의 적들은 어떨까. 우리는 이미 봉화에서 고작 4명으로 성과를 낸 적이 있다.

“단합이 안 된다면 하다못해 체계라도 확실하게 잡아 뒀어야 했는데 그런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았으니, 제아무리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결국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거야.”

사람 5명이 모이면 그중 1명은 무조건 쓰레기라는 놀라운 법칙이 있다지만, 그것도 4명이 협력하면 어떻게든 커버 칠 수 있는 게 바로 사회 질서의 힘이다.

“질서보다 혼돈을 추구하는 놈들의 밑바닥을 까 보면 별 볼 일 없는 것도 다 그런 이유야.”

그냥 나라가 싫고, 이 사회에 불평불만이 가득하니까 반국가 단체 소속이 되어 테러나 벌이겠다?

진짜 나라와 이 사회에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나도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는데, 제깟 놈들이 뭐 대단하다고 테러나 저지르면서 자기 합리화를 한단 말인가.

내 말에 최묵호도 동감한다는 듯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겪어 본 사람들은 안다.

그 답답하고 병신 같은 질서와 법치, 이성적인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최소한의 보험마저 없으면 사회가 이토록 빠르게 붕괴하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걸 아니까 이러는 거다. 우리라고 살인 기계가 되고 싶어서 무기를 들었겠나.

착잡한 심정으로 불타고 있는 밤의 도시를 걸으며 소탕 작전이 마무리되어 가는 걸 확인하고 있던 그때.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 꽈아아아앙!

고막을 찢을 듯한 엄청난 금속 마찰음과 함께 무언가가 충돌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해 보니 시가지 중심부를 관통하는 기차선로에서 발생한 소음인 듯했다.

나도 본대 병력이 경상북도 경계를 넘어 강원도를 진격하게 되면 ATX를 이용해 각 지역의 선로를 이용할 계획은 세워 두었지만, 아직 최전방까지 ATX를 투입하지는 않았다.

‘나 말고도 기차를 굴리는 사람이 있었다고?’

팀원을 비롯해 중간에서 합류한 군인들과 함께 서둘러 소음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시가지 중심부로 향하자, 그곳에는 내가 운용하는 최신예 ATX와 달리 어딘가 많이 낡아 보이는 화물 열차가 전복되어 있었다.

외부에서 이곳으로 급하게 들어오자마자 모종의 사고로 전복된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 고립된 놈들을 빼내기 위한 철수용 화물 열차? 아니면 지원 병력을 급파하기 위한 화물 열차? 어느 쪽이든 이런 상황에 열차를 보내는 건 그리 좋은 판단이 아닐 텐데.’

군인들은 이미 열심히 무전을 치며 영주역 방면 선로에 적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화물 열차가 급히 들어오다 전복되었다는 보고를 했고, 우리는 각자의 무기를 겨눈 채 잠시 침묵을 지켰다.

왠지 섣불리 접근해선 안 될 것 같은, 각성자 특유의 감이 경고하는 것 같아서.

콰앙!

총성이나 폭음은 여전히 시가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화물 열차의 문짝이 거칠게 뜯겨 나가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전복된 화물 열차 안쪽에서 몸이 희미한 야광 빛으로 빛나고 있는 인형이 기분 나쁜 호흡을 내쉴 때마다 다량의 유독 가스를 내뿜는 광경을 보았을 때.

나는 이미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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